한명숙 인격살인 보도와 '노무현 데자뷰'

입력 2011. 1. 10. 16:13 수정 2011. 1. 10.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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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재판에 몰두하는 검찰, 알면서 받아쓰는 언론

[미디어오늘 류정민 기자]

"검찰의 고위 관계자가 공판 중에 특정 언론사 기자를 불러 마치 특종인양 공소사실과 무관한 별개의 확인되지도 않은 사실을 흘린 것은 용납할 수 없는 비겁한 행동이다."

민주당 '한명숙 검찰탄압 진상조사위원회'를 이끄는 박주선 최고위원은 10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이러한 내용을 담은 기자회견문을 언론에 공개했다. 다시 한명숙이다. 검찰 수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언제 끝날지 알 수도 없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죄가 있어 수사의 대상이 되는 것인지, 죄를 찾을 때까지 수사를 하겠다는 것인지 궁금할 정도이다. 왜 한명숙일까. 그는 누구일까. 한명숙 전 총리는 국무총리 출신으로 참여정부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노무현 재단 이사장을 지낸 인물이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9년 5월23일 서거한 이후 영결식장에서 '눈물의 추도사'를 통해 국민의 마음을 울렸던 인물이다. 노무현 재단 이사장이던 한명숙 총리는 2009년 연말 검찰이 2009년 봄 노무현 전 대통령을 향해 들이댔던 그 칼날을 경험했다.

한명숙 전 총리는 깨끗하고 청렴한 이미지를 지닌 정치인이었지만 검찰 수사와 언론의 부풀리기 보도가 이어지면서 '부패 정치인' 이미지가 덧씌워졌다. 진실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언론은 검찰발 받아쓰기 보도를 이어갔다. 바로 '곽영욱 사건'이다.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이 한명숙 전 국무총리에게 인사청탁 대가로 5만 달러를 줬다는 의혹은 4월 9일 법정 심판대에 올랐다. 결과는 '한명숙 무죄'였다. 한명숙 전 총리를 짓누르던 굴레에서 벗어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바로 그날 검찰과 언론은 또 다른 '작품'을 준비했다. 법원이 한명숙 전 총리에게 무죄를 선고했던 바로 그날 동아일보 1면에는 < "한 전 총리, 건설시행사서 9억 받은 혐의" > 라는 새로운 검찰발 사건기사를 올렸다. '한만호 사건'이다. 건설업자인 한만호씨가 한명숙 전 총리에게 9억 원의 불법정치자금을 전달한 혐의가 있다는 게 검찰 주장이었다.

검찰은 '비겁한 행동'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보수신문 시각이 그랬다. 조선일보는 4월10일자 < '5만 달러 무죄 선고' 하루 전 또 불법자금 수사라니 > 라는 사설에서 "하필 이런 시점과 이런 상황에서 또 다른 수사 착수는 적정성 논란과 야당의 반발을 불러오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 조선일보 2010년 4월10일자 사설

오죽하면 조선일보가 '하필 이런 시점과 이런 상황'이라는 표현까지 사용하며 검찰의 행동을 비판했을까. 그렇다면 정말로 한명숙 전 총리는 한만호씨에게 9억 원의 돈을 받았을까. 한만호씨가 '양심선언'을 해버렸다. 지난해 12월 20일 한명숙 전 총리의 1차 공판에서 벌어진 일이다.

한만호씨는 판사가 보는 앞에서 "한명숙 전 총리에게 어떤 정치자금도 준 적이 없다"면서 "수감 후 억울하게 빼앗긴 회사자금을 되찾을 욕심 때문(에 허위 진술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뚜렷한 물증이 없는 상황에서 한만호씨의 진술이 번복되자 검찰은 사색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한명숙 트라우마' 생길 정도라는 검찰 내부의 자성론이 나왔다. 검찰은 '곽영욱 사건'에 이어 '한만호 사건'까지 망신을 당했다.

검찰이 왜 참여정부 국무총리이자 노무현 재단 이사장 출신 인사에게 이토록 집요하고 적극적으로 수사의 칼날을 들이대는지, 망신을 당하면서도 멈추지 않는지 생각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박주선 민주당 최고위원이 1월 10일 국회 정론관에서 밝힌 내용은 또 무엇인가. '한만호 사건' 공판 과정에서 벌어진 사건에 대한 얘기다. 한명숙 전 총리의 3차 공판은 2011년 1월 4일부터 1월 5일 새벽 2시20분까지 12시간 20분 동안 진행됐다.

주요 신문의 3차 공판 관련 뉴스는 마감시간 관계로 1월6일자 지면에 실렸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이런 내용을 기사로 내보냈다. 조선일보는 1월 6일자 9면에 < 곽영욱씨, 외환은행 여직원 남편 명의로 환전해 한 전 총리에 전달 > 이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동아일보는 1월 6일자 14면에 < "곽영욱 100만원권 수표 3장 한 전 총리 남동생에 들어가" > 라는 기사를 실었다.

▲ 동아일보 2011년 1월 6일자 14면.

조선과 동아는 왜 갑자기 곽영욱 사건 얘기를 전했을까. 박주선 최고위원이 "공소사실과 무관한 별개의 확인되지도 않은 사실을 흘린 것"이라고 지적한 대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민주당 진상조사위는 "이 사건의 공소와 무관한 엉뚱한 피의 사실을 공표하면서 언론매체별 마감시간까지 고려한 치밀한 공판지연 행위를 통해 '법정'이 아닌 '법정 밖의 여론 재판'에만 진력했다"고 비판했다.

검찰의 목적이 한명숙 전 총리의 망신주기, 모욕주기라면 모를까 검찰의 이날 행동은 의문의 대상이다. 검찰의 한명숙 전 총리 관련 수사는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을 연상케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둘러싼 검찰 수사 행태를 둘러싼 논란이 바로 그것이다.

민주당 진상조사위는 "검찰은 3차 공판 개정 전에 합의된 공판절차가 아닌 다른 이벤트가 준비되어 있음을 사전에 언론에 예고했다"면서 "노무현 대통령 수사 당시 일부 언론과 협잡해 마치 '마녀사냥'식 여론몰이로 대통령을 음해했던 '논두렁 시계' 보도를 연상케 하는 참으로 비열한 작태"라고 비판했다.

1월 4일부터 5일 새벽까지 이어진 한명숙 3차 공판 과정에서 보여준 검찰의 행위는 따져볼 대목이다. 이를 전하는 언론의 모습 역시 따져볼 대목이다. 법의 심판대에 오른 누군가에게 특혜를 줘서도 안 되지만, 억울하게 해서는 더욱 안 되기 때문이다.

논란의 핵심은 한만호씨가 한명숙 전 총리에게 9억원을 줬는지 여부이다. 한명숙 전 총리는 물론 한만호씨도 이를 부인하고 있는 상황이다. 검찰이 주장을 입증하려면 '증거'가 있어야 한다. 검찰이 돈을 줬다고 주장한 당사자가 "검찰에서 허위진술을 했다. 한명숙 전 총리는 억울한 피해자"라고 밝히는 마당이다.

문제는 검찰이 내놓은 증거가 거꾸로 검찰을 궁지로 몰아넣고 있다는 점이다. 검찰은 2007년 3월 한명숙 전 총리가 한만호씨에게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 전화번호를 알게 됐고, 이 시기에 한만호씨가 한 전 총리와 수차례 전화통화를 했고, 시간과 장소를 정해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했다면서 한만호씨 부모로부터 제출받은 휴대폰 복원기록을 법원에 제출했다.

그러나 문제는 한만호씨가 한 전 총리 전화번호를 안 시기는 2007년 3월이 아닌 2007년 8월 하순인 것으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당시 공판을 참관했던 강기석 전 경향신문 편집국장은 오마이뉴스에 올린 < 새벽2시 한명숙 법정에 있던 기자들은 무얼했나 > 라는 기사에서 이렇게 전했다.

강기석 전 편집국장은 "검찰이 증거로 제출한, 증인의 핸드폰에 저장된 전화번호들을 과학적으로 분석한 결과 한 사장의 핸드폰에는 그해 8월 21일까지 한 총리의 전화번호가 입력되지 않았다는 것이 입증됐다"면서 "이날의 핵심은 12시간의 마지막 10분에 명명백백하게 밝혀진 '검찰의 한명숙 총리사건 조작 의혹'이다. 그것이 30년 가까이 현장에서 뛴 선배 기자의 판단이었다"고 설명했다.

강기적 전 편집국장이 주장한 '30년 가까이 현장에서 뛴 선배 기자의 판단'은 실제로 언론이 주목한 내용이었을까. 언론 대부분은 그런 내용을 제대로 전하지 않았다. 한명숙 전 총리 3차 공판이 12시간 넘게 이어졌다는 데 초점을 맞추거나 그냥 공방으로 전달한다거나 조선과 동아처럼 엉뚱하게 '곽영욱 사건' 의혹을 전달하는 데 그쳤다.

현장에 있던 기자들이 제대로 전달해주지 않으면 국민은 알 길이 없다. 당시 상황의 핵심 포인트를 짚은 언론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주인공은 한국일보였다. 한국일보는 1월 6일자 12면 < "한만호 휴대폰엔 한명숙 전화번호 없다" > 라는 기사를 실었다. 이날 기사에서 보여준 '한국일보의 눈'은 다른 언론이 주목해야 할 시각이다.

▲ 한국일보 2011년 1월 6일자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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