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2백여 명 북한으로 다시 넘어갔다"

정락인 freedom@sisapress.com 2010. 8. 4.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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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전영기

북한을 탈출해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가 2만명에 이르렀다. 이처럼 늘어나고 있는 탈북자들의 실상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 시사저널 > 은 탈북자들로부터 충격적인 증언을 들었다.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 가운데 상당수가 재입북했다는 것이다. 더욱이 북한으로 돌아간 탈북자 중에는 '간첩'으로 의심되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했다. 재입북한 탈북자 중에는 탈북과 월북을 반복한 사례도 있다. < 시사저널 > 은 탈북자 재입북 실상을 추적하고, 탈북-입북-재탈북으로 이어진 드라마 같은 인생 역정을 겪은 북한 특수부대 출신 남수씨를 만나 그의 월북과 탈북에 얽힌 이야기도 직접 들어보았다.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가 2만명에 이르는 시대가 되었다. 지난 1990년 북한의 경제난 이후 생겨난 탈북자들은 대부분 중국 등 제3국을 거쳐 남한에 정착하고 있다. 최근에는 탈북자를 가장한 간첩들이 공안 당국에 속속 검거되면서 '탈북자 관리'에 비상이 걸리기도 했다. 지난 4월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를 암살하려다 검거된 북한 특수요원 김명호·동명관과 2008년 8월에 검거된 '여간첩 원정화'도 탈북자로 위장해 국내로 잠입했다.

< 시사저널 > 은 탈북자들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탈북자들로부터 충격적인 증언을 들었다. "지금까지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 가운데 2백여 명이 다시 북한으로 넘어갔다"라는 것이다. 더욱이 재입북한 탈북자 중에는 '간첩'으로 의심되는 인물도 적지 않다고 했다. 한창권 탈북인단체총연합(이하 탈총련) 회장은 이런 내막을 자세히 알고 있었다. 탈총련은 국내 탈북자 단체 30여 개의 연합체이다. 이 단체를 이끄는 한회장은 북한에 대한 정보력이 상당하다고 알려진 인물이다. 다시 북으로 간 탈북자들, 그들은 어떤 이들이며 왜 돌아간 것일까.

함경북도 회령 출신인 이성국씨(남·가명)는 지난 2008년 초 중국을 거쳐 남한으로 넘어왔다. 이씨는 하나원에서 사회 적응 교육을 받은 후 사회에 나왔다. 그런데 지난해 초 감쪽같이 사라졌다. 한창권 회장은 "이씨가 하나원 내부를 촬영해 CD로 만들어 소지하고 있었고, 이것을 가지고 잠적했다"라고 전했다. 그 뒤 이씨의 행적은 오리무중이었다. 그러다가 회령 출신의 탈북자들이 남한으로 오면서 이씨의 소재가 파악되었다. 북한에서 그를 목격했다는 사람들이 나타났던 것이다. 이씨의 구체적인 인적 사항도 드러났다. 그의 아버지는 회령시 역전 분주소(파출소) 소장이며, 이씨가 탈북한 뒤에도 신분상 불이익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한창권 회장은 "이씨의 행적으로 볼 때 그는 간첩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

간첩으로 의심되는 탈북자는 또 있었다. 함경북도 청진 출신인 김평석씨(남·가명)는 2008년 말에 탈북했다. 김씨는 남한에 정착한 후 뚜렷한 직업을 갖지 않았다. 그런데 그의 행적에는 이상한 점이 많았다. 김씨는 '탈북 브로커'로 활동하면서 탈북인 단체들에 의도적으로 접근했다. 다른 탈북인 단체장들과는 "호형호제하는 사이이다"라며 각별한 친분이 있다고 떠벌렸다. 그는 또 현 정부의 장관급 인사를 거론하며 "우리 고모부이다"라는 말까지 했다고 한다.

그런 김씨가 올 2월에 느닷없이 자취를 감추었다. 김씨가 사라진 뒤에야 그의 행적 일부가 드러났다. 한창권 회장은 "1월 초쯤에 김씨가 내게 전화를 했다. 무슨 얘기인지 들어봤더니 '광주 등지에 집 몇 채가 있는데 살 사람이 없는지 급히 알아봐 달라'고 했다. 아마 북한으로 가기 위해 돈을 만들려고 했던 것 같다"라고 전했다.

김씨도 앞의 이씨처럼 청진 지역에서 온 탈북자들을 통해 북한으로 갔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한회장은 "김씨는 북한 특수부대 출신으로 그의 아버지가 대남부서에서 근무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공안 당국에서는 그를 '다시 남한으로 유도할 수 없느냐'라고 내게 묻기도 했다"라고 밝혔다. 탈북자들은 김씨 역시 간첩일 것으로 보고 있었다.

이창수씨(남·가명)의 사례는 좀 더 구체적이다. 그는 1997년 6월에 탈북했다. 약 2년 동안 중국에 머무르다가 1999년 중국 공안에 체포된 후 강제로 북송되었다. 북한 보위사령부는 이씨를 정보원으로 포섭한 후 2000년 2월 위장 탈북시켰다. 이씨는 2002년 11월 베이징의 한국대사관 영사부에 진입했고, 2003년 6월 하나원을 거쳐 대전에 정착했다. 동료 탈북자와 결혼도 했다. 이씨는 2004년 4월 북한에 다시 들어갔다. 북한에 있는 동생들을 데려오기 위해 압록강을 넘다가 북한 경비병에게 체포되었다. 보위사령부는 이씨에게 "탈북자동지회 등 남쪽 탈북자 단체에 가입한 뒤 회원증을 증거물로 갖고 재입북하라"라는 임무를 주었다. 이씨는 같은 해 5월19일 인천항을 통해 남쪽에 도착한 후 관계 당국에 자수했다.

남수씨(53·남)는 탈북과 월북을 반복한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남한과 북한을 오가며 산 그의 드라마틱한 인생은 한 편의 영화와도 같다. 남씨는 1996년 1월에 홍콩을 거쳐 남한으로 들어왔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된 위장 탈북 여간첩 원정화씨가 선고 공판을 받기 위해 경기도 수원지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 탈북자 재입북해 자수하면 환영한다는 방침 세워

북한 특수부대 출신인 남씨는 제대 후 함경북도 온성에 있는 우산 공장에서 지배인으로 일하다가 탈북했다. 특수부대 출신답게 탈북 보름 만에 중국을 거쳐 홍콩까지 들어갔다. 홍콩 공안 당국에 들켜 잠시 감옥에 갇혔다가 국내로 오게 되었다. 그는 북한에 부인과 아들 둘을 두고 있었다.

남씨는 남한에 정착한 후 식당을 운영했다. 그는 탈북한 지 약 4년쯤인 2000년 6월 중국으로 출국한 뒤 연락이 끊겼다. 그는 식당 운영 자금과 대출금 등 약 7천만원을 가지고 혼자 중국으로 들어간 것이다. 남씨는 주중 북한대사관을 찾아가 입북을 요청했고, 북한의 라디오 방송에서는 "남수 동지가 당비를 가지고 들어온다"라며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북한 당국은 남씨에게 전국을 돌며 '탈북 방지 강의'를 하도록 했다. 그러면서 온성에 있는 고급 사우나의 지배인 자리를 주었다. 그리고 3년 후인 2003년 10월 남씨는 두 번째 탈북을 감행했다. 이번에는 북한의 아내를 제외한 아들 둘과 동생을 데리고 중국을 통해 남한으로 들어왔다. 당시 국가정보원은 "남씨가 북한으로 재입북한 뒤 노동당에 가입해 충성 맹세를 했다"라고 밝혔다. 남씨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어 약 2년형을 살고 출소했다.

지난 1996년 7월11일 자전거 고무튜브를 몸에 둘둘 말고 예성강을 따라 남한으로 귀순했던 최승찬씨(42·남)도 다시 북으로 갔다. 최씨는 북한 특수부대인 38항공육전여단에서 제대한 후 벽돌 공장에서 일했다. 남한에서는 하나원을 나와 농협에 취업했다. 재입북하기 직전까지 농협중앙회 대리로 근무했다. 최씨는 농협에서 퇴직한 후 퇴직금과 저축한 돈 등 약 1억원을 마련해 다시 북한으로 갔다. 서울 중계동 임대아파트와 개인 승용차는 처분하지 않은 채 그대로 두고 갔다. 최씨의 지인인 탈북자 강 아무개씨는 "당시 북한에 5~6살 된 애가 있었는데 브로커를 통해 연락을 주고받았다. 남한에서는 가정을 꾸리지 않고 혼자 살았다"라고 말했다. 여러 정황을 보면 최씨는 북한에 있는 가족들을 그리워하다 자진 입북한 것으로 보인다. 최씨는 가지고 간 돈의 일부를 북한 당국에 바쳤고, 탈북을 용서받아 가족들과 재회해서 살고 있다고 전해진다.

귀순한 북한 주민 최승찬씨가 월남할 때의 옷차림 그대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995년에 탈북한 김 아무개씨도 2006년쯤 북한으로 재입북했다. 그도 하나원을 나와 농협에서 근무했으며 입북 당시 약 3억원 정도를 소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도 탈북자들이 다시 북한으로 간 사례는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공안 당국과 탈북자들이 쉬쉬해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노원구에 정착한 탈북자 동 아무개씨(남·20대 후반)와 최 아무개씨(여·40대)의 경우 약 1년 전부터 행적이 묘연해 공안 당국이 쫓고 있다고 한다. 두 사람이 출국한 기록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탈북자들은 위조 여권을 사용해서 해외로 빠져나갔을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관할 노원경찰서는 그런 사실이 없다고 했다. 보안과 관계자는 "노원구 관내에는 1천여 명이 넘는 탈북자가 있다. 직원 1명당 50여 명을 관리하고 있는데, 아직까지 특이한 동향의 탈북자는 없다. 장기간 해외여행을 나갔거나 탈북자들 간 채무 관계 등으로 연락이 안 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여튼 특이 동향자가 없는 것은 확실하다"라고 말했다.

북한은 탈북자들과 관련해 '돌아와 자수하면 용서하고 환영한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탈북자들에 따르면 5만 달러(약 6천만원) 정도를 당에 바치면 탈북을 용서받을 수 있다고 한다. 만약 돈이 없으면 대신 남한의 '고급 정보'라도 가져와야 한다는 것이다.

한창권 탈북인단체총연합 회장은 "북한에서는 탈북자들의 동향을 손금 보듯 훤히 알고 있다. 탈북자 명단도 벌써 다 넘어갔다. 정부의 탈북자 관리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 탈북인 단체를 통해 탈북자들을 관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강조했다. 탈북자들은 또, 탈북자들에 대한 사회의 냉대와 무관심도 이들이 다시 북한으로 가는 한 원인이라고 말한다.

하나원 물갈이 인사, 보안 사고와 연관 있었나

탈북자들이 남한에 들어오면 우선 사회 정착 기관인 하나원으로 들어간다. 이곳에서 약 3개월간 교육을 받은 뒤 사회에 정착한다. 하나원을 수료하면 '특별 관리 대상'과 '일반 관리 대상'으로 나누어지는 데 특별 관리 대상은 국정원에서 직접 관리한다. 황장엽 전 비서 등 북한 고위층에 있던 사람이나 특이 신분자 등 '요주의 인물'이 여기에 속한다. 일반 관리 대상은 탈북자가 정착한 해당 지역의 경찰에서 6개월간 집중 관리한다. 그러나 해마다 탈북자가 늘어나다 보니 관리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 시사저널 > 취재에 따르면 하나원에는 지난 6월 큰 폭의 물갈이 인사가 있었다. 이때 탈북자 출신 계약직 직원 10명을 한꺼번에 내보냈다.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하나원 내부에서 보안 문제가 발생했고, 탈북자 출신들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쫓겨났다"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통일부는 일반적인 인사였다고 강조했다. 통일부 대변인실 관계자는 "6월에 인사가 있었던 것은 맞다. 계약직 직원 14명 중 5명이 바뀌었다. 계약직의 경우 계약 기간이 최대 5년인데 기간이 만료된 사람도 있었고, 채용 시험 등을 보기 위해 그만두기도 했다. 이것은 정상적인 인사로 문제될 것이 없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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