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통령에 6·15선언 읽어보라 말하고파"

2010. 6. 14.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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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 인터뷰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인 이희호(88)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은 천안함 침몰 사건 이후 군사적 충돌 위기로 내몰리고 있는 최근의 남북관계 상황을 안타까워했다. 이희호 이사장은 "남편이 살아계실 때 가장 걱정한 게 바로 전쟁이었다. 전쟁이 나면 하루아침에 모든 게 사라지게 된다"며 "지난 10년간 교류하며 평화롭게 지냈는데 왜 이렇게 전쟁이야기까지 나오게 됐는지 답답하다"고 한탄했다. 절박함 탓인지, 아흔을 앞둔 나이로 건강이 좋지 않은데도 "진짜 (평양에) 갈 수만 있다면 가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만나고 싶다"고 거듭 밝혔다. 이명박 대통령한테는 "6·15공동선언을 한번 읽어봐달라고 말씀드리고 싶다"고 했다. 남과 북의 정상이 6·15공동선언의 정신에 따라 남북관계를 대화로 풀어 한반도의 평화를 일궈달라는 당부다.

이 이사장과의 특별인터뷰는 6·15남북공동선언 발표 10돌을 나흘 앞둔 11일 오전 서울 마포구 동교동 자택에서 이뤄졌다. 이 이사장이 인터뷰에 장시간 응하기엔 건강이 좋지 않아 서면인터뷰도 따로 했다.

생전 남편, 전쟁 가장 걱정…남북정상 만나라 하실 것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뜨개질을 많이 했어요. 북한의 3~4살 자그마한 어린이들한테 보내줄 모자를 짰죠. 많이 짰는데 요즘 어깨가 아파요. 의사가 뜨개질을 하지 말라고 해서, 저는 그만두고 다른 분들이 짜고 있어요. 남북관계가 좋지 않아 어떻게 보낼까 걱정했는데, 유진벨재단의 스티브 린튼 박사를 통해 10월쯤엔 보내줄 수 있을 것 같아요. 매달 어린이공부방과 양로원, 노숙자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곳을 방문해 간식거리와 금일봉도 전해요."

-현충원엔 가시나요?

"남편이 돌아가신 지 열달이나 지났어요. 두 달만 있으면 1주기(8월18일)가 돼요. 매주 화요일과 토요일에 현충원에 들러 남편의 묘소를 찾아요. 거기 좀 앉아 있으면 많은 분들이 다녀가시는 걸 볼 수 있어요."

-6·15남북정상회담 10돌인데 감회가 남다르실 거 같은데요.

"남편은 1971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때부터 3단계 통일방안을 제기했어요. 점진적으로 평화롭게 통일하자는 주장이었죠. 남편은 그 일로 '빨갱이·공산당'이라는 공격을 받았지만, 한번도 생각을 바꾼 적이 없어요. 신념은 바꿀 수 없죠. 30년 동안 주장해온 남편의 뜻이 결실을 맺은 게 6·15공동선언이라고 생각해요. 6·15 이후 세상이 얼마나 바뀌었나요. 금강산으로 관광을 가게 되고, 개성공단이 만들어지고, 남북 도로·철도가 연결되고…, 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 일어났어요. 6·15공동선언이 있어서 가능했던 일이죠. 그런데 현 정부 들어 남북관계가 파탄났어요. 냉전시대로 돌아가버렸죠. 안타까운 일이에요. 남편도 이명박 대통령께 충언하고 했는데…. 저세상에 가셔서도 남편은 크게 걱정하고 있으리라 생각해요."

북과 경협 우리에도 도움…중국에 기회 뺏길까 걱정

-6·15공동선언 이후 그때나 지금이나 햇볕정책을 지지하는 분들도 많지만, '퍼주기다' '북쪽에 끌려다니며 이용만 당한다'고 비판하는 분들도 많은데요.

"보수적인 분들이 항상 하는 말이지요. 남편은 그런 주장에 흔들리지 않았어요. 북한과의 경제협력은 우리에게 더 많은 이득이 된다고 했어요. 그리고 시베리아, 중앙아시아, 유럽으로 진출하려면 북한과의 관계를 잘해야 한다고 했어요. 남편은 '철의 실크로드'라는 말을 많이 했어요. 최근 천안함 사건으로 남북관계가 악화되니까 우리 경제에 얼마나 많은 피해가 옵니까. 주가는 떨어지고 환율은 오르고…. 개성공단에 진출한 중소기업들은 속이 탈 거예요. 햇볕정책은 계속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말씀대로 남북관계가 파탄 지경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금강산관광은 중단된 지 2년이 다 되어가고, 지난 20년간 지속·발전해온 남북 경제협력과 사회문화교류도 끊겼습니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며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요?

"남편 생각을 많이 하게 돼요. 만일 남편이 살아계신다면 오늘의 현실을 매우 안타까워하시며 현 정권에 좀 생각을 달리할 수 있게 조언을 하셨을 거예요. 남편이 제일 걱정한 게 바로 전쟁이었어요. 남편은 전쟁이 나면 남과 북이 다 멸망하고 말 거라고 염려하셨어요. 전쟁이 나면 하루아침에 모든 게 사라지잖아요. 지금 마치 남편이 걱정하신 게 맞아들어가는 거 같아 걱정스러워요."

-김 전 대통령이 살아있다면, 어떤 해법을 내놓으셨을 거라 생각하시는지요?

"'남북 정상이 만나 대화하라'고 하실 거 같아요. 가능하면 만나서 문제를 풀려고 해야지, 이렇게 전쟁과 같은 상태로 들어가면 안 된다고 말씀하셨을 거 같아요. 김정일 위원장도 이야기가 되는 사람이고, 이명박 대통령도 실용을 강조한 분이니까 만나면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습니다. 남편은 지난해 6·15공동선언 9주년 행사장에 힘든 몸을 이끌고 참석해서 (생전의 마지막 공개) 연설을 했어요. 남편은 이 대통령에게 '전직 두 대통령이 합의한 6·15와 10·4선언을 지키라'고 고언했어요.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남과 북의 정상이 합의한 6·15공동선언을 착실하게 지켰다면 천안함 사건 같은 것도 일어나지 않았을 거예요."

남북관계 파탄 안타까워…'햇볕정책' 계속 이어져야

-이 대통령과 김 위원장한테 당부하시고 싶은 게 있다면?

"두 분은 한반도의 평화를 지켜낼 수 있는 분들이에요. 후손들에게 축복받을 수 있는 일들을 하시면 좋겠어요. 두 분이 정상회담을 이어가기를 바라죠. 솔직히 이명박 대통령께 6·15공동선언을 한번 읽어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셨을 때 여기(동교동)에 오셨는데, 그때 남편의 3단계 통일방안에 대해 당신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말했거든요. 그러니 그때 말한 것을 그대로 지켜주면 좋겠어요. 김정일 위원장한테도 우리가 (2000년에) 평양에 갔을 때 합의한 그대로 지켜주시면 좋겠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진짜, 만날 수 있으면 가서 만나보고 싶어요. 남편과 약속한 답방도 꼭 해주면 좋겠고요."

-버락 오바마 미국 정부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오바마 대통령이 이명박 대통령과 상당히 친한 거 같아요. 만날 때마다 포옹을 하고 이 대통령 생각도 지지하고. 한데 문제는 중국이 벌써 북한에서 광산도 하고 그렇게 하겠다는 거 아니에요? 사실은 남편이 살아계실 때 그것도 염려하셨어요. 잘못하다가는 중국한테 뺏기게 될 거라고. 그런데 그게 현실로 돼 가고 있는 것 같아 걱정이에요."

-김 전 대통령은 생전에 민주개혁진영의 통합이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지방선거를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

"저는 정치문제에 관해서는 노코멘트예요. 남편도 퇴임 뒤에는 정치에 직접 참여하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했어요. 사실 지방선거에서 통합이 좀 됐지요, 전체가 다 된 것은 아니지만. 결과는 그게 국민의 뜻이라고 봐요. 지금은 (이 대통령이) 국민의 소리를 잘 듣고 계신지 의문이 들 정도예요. 그렇기 때문에 표의 결과가 이렇게 나타나지 않았나 생각해요."

- 김 전 대통령 서거 1주기가 다가오는데.

"남편의 자서전 출판에 특별히 신경을 쓰고 있어요. 실은 남편이 자서전을 거의 다 쓰셨는데, 마무리는 못하셨어요. 여럿이 함께하고 있는데, 나도 첫 부분부터 쭉 읽어가며 집어넣을 것은 넣고 수정할 것은 수정하고 그래요. 일본판은 남편이 돌아가시기 전에 계약을 했고요, 미국 중국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도 출판할 예정이에요. 1주기 때는 남편의 뜻을 받드는 시간을 갖도록 준비하고 있어요. 미국과 독일 베를린에서도 추모회가 준비되고 있다고 들었어요."

인터뷰/김종철 정치편집장, 이제훈 기자 nomad@hani.co.kr, 사진/이종찬 선임기자 rhee@hani.co.kr

이희호 이사장은DJ와 '동지적 부부'…한평생 여성·약자 보호 앞장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은 인터뷰 내내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남편'이라고 불렀다. 이승과 저승으로 갈라져 있지만, 각별한 부부애가 느껴졌다. 아흔을 앞둔 나이 탓에 걷기가 불편하지만,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 겸 고문, 사단법인 '사랑의 친구들' 고문으로 아직도 왕성한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

이 이사장은 1922년 서울에서 나서 이화여고와 서울대 사범대를 거쳐 미국에서 사회학 석사학위를 받은 당대의 대표적 신여성이자 여성지식인이다. 62년 김대중 전 대통령과 결혼한 뒤에도 여성운동과 사회적 약자를 위한 활동에 매진해왔다. 2008년엔 자서전 <동행>을 펴냈다.

인터뷰 도중 이화여고 3학년 때 금강산 수학여행을 다녀온 얘기가 나왔을 때에는 일순 낯빛에 화색이 감돌았다. "니꾸사꾸(등 배낭) 메고 걸어서 갔는데, 내가 비로봉에 제일 먼저 올라갔어요. 2007년 여름에 금강산에 다시 갔어요. 70년 만인데 비로봉엔 가지 못하게 해서 못갔어요. 별로 변한 게 없던데, 돌바위에 '김일성 장군 만세' '김정일 장군 만세'를 새겨놓은 게 상당히 달라진 거죠.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북한의 산은 민둥산이더군요. 예전엔 울창했는데, 땔감 때문인 거 같아요. 그런 건 아쉽고 안타깝죠."이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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