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 민주당은 '부자정당'이다

2009. 3. 25.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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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최재천 기자]

민주당 정세균 대표가 지난 19일 오전 국회에서 일자리 창출과 서민 지원을 뼈대로 하는 '13조 8000억원'의 추경안을 발표한 뒤 김효석 의원이 민주당안에 대해 추가설명하고 있다.

ⓒ 남소연

김효석 의원(민주정책연구원장)은 최근 "민주당은 중산층과 서민 이야기를 주로 많이 했고, 이것은 마치 '강남 때리기'나 '부자 때리기'로 비쳤다"며 "민주당이 분배에만 관심 있다는 이미지는 바꿔야 하며, 부자를 적대시하는 정당이라는 이미지도 안 된다"고 말했다. 앞으로 민주당은 부자와 대기업을 적대시하지 않으면서 서민과 중산층 중심으로 가야 한다고도 했다.

< 조선일보 > 가 이를 놓칠 리 없다.

19일 자 < 조선일보 > 사설 "민주당은 부자와 대기업 적대시 말아야"

ⓒ 조선일보

"김 의원의 말처럼 민주당은 그동안 부자와 대기업에 적대적이라는 이미지를 스스로 쌓아왔다. 노무현 정권 때부터 민주당은 걸핏하면 '국민의 2%밖에 안 되는 부자'라는 식의 공세를 펴면서 실제로는 중상류층 모두를 적대시하며 제 자신을 고립시켜왔다. 민주당도 이제는 '2% 대 98%'의 망상에서 깨어나 중간으로 이동할 때가 됐다. 민주당이 지지율 10%대의 벽을 깨는 길도, 다시 한번 집권의 꿈을 꿀 수 있는 길도 거기서부터 출발한다." ( < 조선일보 > , 3월 19일자 사설)

현재 민주당은 새로운 강령 역할을 할 '뉴(new) 민주당 플랜'을 준비 중이다. 그래서 김 원장의 발언은 예사롭지 않다.

하지만 < 조선일보 > 를 비롯한 보수언론과 뉴라이트 등을 비롯한 일부 기득권층의 민주당에 대한 이런 규정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이들에 따르면 민주당은 '반기업적이고, 부자에 적대적인 정당'이었다.

단순한 프레임을 넘어 일종의 이데올로기화

이런 규정, 이런 프레임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로 이어지는 '민주파' 정부들이 사회경제적 문제를 개혁하고자 할 때마다 개혁에 반대하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방어하기 위함 담론으로 철저히 활용되어 왔다. 그런 측면에서 '반시장적, 반기업적, 부자에 적대적인 정책과 정당'이라는 규정은 단순한 프레임을 넘어 일종의 이데올로기가 됐다.

문제는 보수언론이 아니라 이런 이데올로기에 길들여져 버린 현재의 일부 기득권 민주당원들이다. 불행하게도, 이들은 보수언론의 조작된 이데올로기에서 단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고는 자인한다. '민주당은 부자에 적대적이고, 반기업적인 (이미지를 가진) 정당입니다'라고.

이러한 현실인식은 필연적으로 좌표오류를 가져온다. 정책오류를 동반한다. 미래와 비전에 대한 치명적 오류와 늘 함께 간다. 이들에게 민주당이 집권에 실패한 이유는 너무도 간단하다. '민주당이 너무 좌파적인 정책을 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해결책은, '지금의 정책보다 좀 더 오른쪽으로, 중도로 가면 된다'는 것이다.

< 조선일보 > 의 사설 역시 한 치도 다르지 않았다. 비교정치학적으로는 '제3의 길'이라 표현되지만, 좀 더 냉정히 표현하자면, '한나라당화'하자는 것이요, 좀 더 매몰차게 표현하자면, '명품 한나라당화'하자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민주당이 조중동과 같은 주류언론의 눈을 통해 현실을 인식하고 해법을 찾고 있으며, 이를 스스로 자백하고 있다는 점은 예사롭지 않다.

너무나 뻔한 악의적 이분법

근본적으로 되물어 보자. 과연 민주당은 '부자에 적대적인 정당'이었나? 그리고 민주당의 실패는 '좌파적 정책'의 결과였나?

대한민국 정당은 국가보안법의 공포에 짓눌려 하층 혹은 하층계급이라는 말을 사용할 수 없다. '서민'이라는 대체용어를 개발했다. 민주당은 오랫동안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정당'으로 자임해 왔다.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정당은 필연적으로 반기업적이고, 부자를 적대시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 그렇다면 역으로 한나라당은 상류층을 위한 정당일까. 한나라당은 중산층과 서민에 적대적인 정당일까. 한나라당이 친기업적이라면, 반국가적이고 반가계적인 정당인가? 너무나 뻔한 악의적 이분법이다.

민주당은 서민과 중산층을 정책의 중심 목표로 놓겠다고 늘 얘기해왔다. 그렇다고 결코 기업을 적대시하거나 부자를 멸시한 적은 '전혀' 없다. 종부세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일부 위헌결정이 있고 난 다음, 결과적으로 민주당도 부동산세금을 낮추는 데 동의했다. 노무현 행정부는 2003년 법인세 2%를 감세하는 감세정책을 시행했다. 지극히 친기업적이다. 한나라당보다 먼저 법인세 감세를 시행한 역사적, 정치적 선례가 있다.

친기업적 정책의 최종판은 한미FTA 전격 추진

지난 시절 노무현 행정부는 비정규직 문제, 부동산 원가공개 문제, 기업에 대한 규제완화 등 경제정책의 영역에 있어서 한나라당과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최장집 교수는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의 가장 큰 특징은, IMF 금융위기와 같은 엄청난 균열과 갈등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경제적 정책의 차이가 정당간 경쟁의 축을 만들기보다는, 거꾸로 사회경제적 차원의 정책적 차이가 더욱 무의미해지는 결과를 낳았다"고 했다. 그리고 이것이 선진 민주주의 국가들이나 사회보장체제가 발전된 복지국가에서 나타나는 양상과 크게 구별된다고 분석했다.

"경쟁하는 정당들이 민주파냐 냉전수구세력이나, 호남이냐 영남이냐, 또는 친북이냐 반북이냐, 친미냐 반미냐 등으로 구획되는 차이는 갖지만 정작 민주적 삶의 조건에 직접적이고도 구체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회경제적 정책 차이를 발전시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최장집, < 민주주의의 민주화 > , 179면)

참으로 정책정당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아닐 수 없다. 노무현 대통령은 '권력은 이미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명시적으로 선언했다. 스스로 고백했듯, (좌파)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했다. 이러한 친기업적 정책의 최종판은 한미FTA 전격 추진이었다.

민주당을 '반부자 정당'으로 모는 건 일종의 프레임

민주당 정세균 대표가 지난 19일 오전 국회에서 일자리 창출과 서민 지원을 뼈대로 하는 '13조 8000억원'의 추경안을 발표한 뒤 민주당이 제시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지원내역 등을 설명하고 있다.

ⓒ 남소연

우석훈 선생의 표현을 빌리자."흐름으로 보자면, 아마 노무현 대통령이 정치인들 가운데서 기업에 처음으로 결정권을 내어준 사람이고, 이명박 대통령은 한 발 더 나아가 한국경제를 이제 국가에서 기업으로 넘겨준 사람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 < 괴물의 탄생 > 117면).

'아'와 '어'의 차이가 아니라, 종이 한 장의 차이도 못 된다. 민주당은 충분히 친기업적이다. 그것도 친 대기업적이었다. 친 과점시장적이었다.

따라서 < 조선일보 > 등이 민주당을 '반부자 정당'으로 모는 건 일종의 프레임이요, 조선이 그렇게 쓰기 좋아하는 용어인 '포퓰리즘적' 이데올로기다. 기득권을 방어하고, '민주파' 세력을 고립시킬 수 있는 이데올로기다. 민주당은 이런 기득권층의 프레임에 그대로 포획되고 말았다.

특히, < 조선일보 > 는 "노무현 정권이 국민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갈라 세우고 잘사는 사람에게 세금을 때려 못사는 사람에게 나눠줘야 한다고 했던 반(反)시장·반(反)기업 노선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않은 것이다"라며 "서민을 잘살게 하고 서민의 눈물을 닦아주겠다고 했던 노 정권 5년의 평등주의적 분배정책이 기업의 투자 의욕을 꺾고 경제성장률을 떨어뜨려 서민 생활을 더 고단하게 만들었고, 그래서 중간선거·총선거·대통령 선거에서 잇따라 참패해 정권을 잃게 됐다는 사실에는 눈을 감고 있다"라고 친절하게 분석했다.

노무현 행정부의 실패는 경제적 불평등을 확대했던 기업중심, 부자중심적 신자유주의 정책 때문이 아니라, 평등주의적 분배정책 때문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의 실패가 '반기업적, 반시장적 정책' 때문이었나?

다시 되묻는다. 현재의 민주당의 실패가 < 조선일보 > 사설이 주장하듯, '반기업적, 반시장적 정책' 때문이었나? 그래서 서민과 중산층의 삶이 악화되었단 말인가?

표피를 제거하고 심부를 분석하자면, 서민과 중산층 시민들은 전보다 개혁적인 정부의 집권으로 자신들의 삶이 이전보다 좀 더 나아질 것으로 기대했고 지지를 보냈지만, 결과적으로 이전 정부와 아무런 차별성을 갖지 않았거나, 오히려 삶의 조건은 더욱 나빠졌기 때문에 민주당은 실패했다.

비정규직은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2007년 8월 861만 명, 임금노동자의 54.2%로 전체 노동자의 절반 이상을 넘어섰다(김유선, < 비정규직 규모와 실태 > ). 비정규직 임금이 정규직 월급의 절반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점에서 하층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소득 불평등이 더욱 확대되었다. 소득불평등을 나타내는 지니계수를 보면 노태우-김영삼 정부 때는 평균 0.29였으나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는 0.31로 불평등이 더 심해졌다.

경제위기 이후 노동분배율은 1996년 63.4%에서 2004년 59.1%로 악화되면서 가처분국민소득에서 법인의 처분가능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은 1999년 1.6%에서 2005년 10.1%로 급증한 반면, 개인의 처분가능소득 비중은 1999년 75.1%에서 2005년 63.9%로 급속히 하락했다(조영철, < 금융세계화와 한국경제의 진로 > ).

자본의 몫은 급격하게 확대된 반면, 노동의 몫은 감소했다. 이는 친기업적 정책의 결과인가, 아니면 친노동적 정책의 결과인가. 이런 구체적 결과를 두고도 평등주의적 분배정책을 얘기한다. 일부 민주당원들은 이 분석을 수용한다. 부는 더욱 부를 더했고, 가난은 더욱 가난을 더했다. 여기에다 부동산 정책의 실패는 보통 사람들의 소박한 꿈마저도 완벽하게 빼앗아갔다. 민주당의 실패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민주당 패배는 중산층의 평범한 꿈 이룰 대안을 만들지 못한 탓

18대 총선 수도권 참패를 두고 '욕망의 정치'라고 분석했다. 나는 이 분석에 동의하지 않는다. '욕망'이 아니라 '욕구'다. '욕구'가 아니라 '희망'이다. 수도권 서민과 중산층들은 한나라당에서 '교육'을 통한 '신분상승의 희망'과 '내 집 마련'을 통한 '자산 늘리기의 꿈'을 실현코자 했다. 그래서 자사고·특목고 등 교육공약과 재개발 뉴타운 등 부동산공약이 유권자들에게 가장 쉽게 받아들여졌다.

내 집을 갖고 싶고, 내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 서민과 중산층의 평범한 꿈에 대한 대안을 민주당은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렇다고 만들어내지 못한 원인이 평등주의적 분배정책 때문이었다고? 뻔한 질문에 뻔한 답변인데도, < 조선일보 > 사설은 '그렇다'고 강요하고 있고, 일부 민주당원들은 한가하게도 '우리가 너무 급진적인 정책을 편 결과'였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아니, 그렇게라도 믿고 싶었을 것이다.

이러한 현실인식은 앞으로 발표될 민주당의 '뉴 민주당 플랜'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결국 대안은 서민과 중산층을 '포기'하고, 중소기업이 아닌 '대기업'과 '부자'를 끌어안는, 이른바 '더 중도적'인(사실은 지극히 뉴라이트에 가까운) 정책을 미래의 대안으로 내놓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나는 염려한다. 그렇다면, 그때 즈음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차이는 무엇일까? 호남과 영남의 차이? 집권세력과 비집권세력이라는 차이? 민주주의가 서로 다른 의견을 두고 공론의 장에서 다투는 정당간의 경쟁체제를 중심으로 한다고 정의할 때, 민주당의 존재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이때쯤 민주당은 일본 자민당의 55년 체제를 꿈꿀 수밖에 없다. 한나라당과 아무런 정책적, 지향적 차별이 없다면, 한나라당과 '친박연대'의 200석만으로도 충분하다. 물론 나라와 시민을 중심에 놓고 통합과 연대의 기치를 높이 든 채, 다 함께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무릇 정치는 그래야 한다.

부자·중산층·서민 모두 끌어안겠다는 것은 아무도 대표하지 않겠다는 것

민생민주국민회의와 MB악법저지비상국민행동은 지난 3일 오후 여의도 국회앞에서 'MB악법 통과에 대한 한나라당-민주당 합의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악법을 무더기 통과시키려는 한나라당과 무력하게 끌려다니는 민주당을 규탄했다.

ⓒ 권우성

하지만 부자와 대기업, 중산층과 서민을 모두 끌어안겠다는 것은 아무도 대표하지 않겠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따지고 보면 한나라당도 부자와 대기업만을 위한 정당이라고는 말한 적이 없다.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정치를 늘상 입에 담는다. 한나라당도 '민생, 민생' 한다.

현재 한나라당의 정책적 스펙트럼에 비추어 볼 때, 민주당의 주류 정책노선은 한나라당 안에서도 왼쪽에 끼지 못한다. 솔직히 그렇다. 어쩌면 한나라당의 중간 내지는 중간에서 오른쪽에 줄을 설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책적 차이와 대립의 공론화라는 정당의 기본 개념에 비추어 볼 때 민주당의 존재가치는 없다. 한나라당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세간에서는 제1 야당이 민주당이 아니라 박근혜 대표와 친박연대라고 얘기하기도 한다. 앞으로 이런 현실 인식에 바탕하여 '뉴민주당 플랜'이 발표된다면 민주당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전 사회적 논의가 확산될 것이 분명하다.

정책과 비전을 새롭게 정립하고, 정치적 상비군을 양성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하지만 정책과 비전은 미래를 담보할 수 있어야 한다. 정치가 갖는 예언자적 소명에 충실해야 한다.

세계사는 지금 대전환기이다. 신자유주의적 세계질서는 종말을 고하고 있다. 미국의 일방주의 또한 다자주의 앞에서 서서히 완화되고 있다. 그런데 과거의 실패와 잘못된 진단에 얽매여, 다시 과거에서 해법을 찾겠다고?

민주당의 미래, '해밀턴 프로젝트'에서 찾아야

민주당은 미래전략과 관련하여, '오바마노믹스'의 이론적 배경이 되고 있는 '해밀턴 프로젝트'(The Hamilton Project)를 다시 분석할 이유가 충분하다. 이른바 '큰 정부'를 지향하는 오바마노믹스의 경제전략은 '해밀턴 프로젝트'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잘 알려졌다시피 해밀턴 프로젝트는 미국 민주당의 싱크탱크인 브루킹스 연구소가 지난 2006년 4월 발표한 보고서로 양극화 해소와 사회안전망 확충,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보고서는 작은 정부나 감세정책 등으로 대표되는 '공급 경제학'의 오류를 지적하고, '작은 정부' 대신 '할 일은 하는 효율적인 정부'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지금 오바마 행정부가 얘기하는 '스마트' 외교, '스마트' 정부가 그것이다. 모든 것을 시장에만 맡겨두면 경제 성장의 조건인 교육과 과학, 의료 및 연금 등 사회 인프라에 대한 투자가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모든 계층에 혜택이 돌아가야 하고 양질의 공교육을 통해 기회 균등을 보장해야 한다는 점을 주장한다. 이미 노무현 행정부는 양극화 해소 방향과 관련하여 이 보고서를 적극 벤치마킹하겠다고 밝히기도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보고서는 지난 1970년대 이후 미국 경제의 소득편중 현상이 심화되고 경제성장이 중산층 소득향상에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가장 심각한 문제로 보고 있다. 따라서 미국이 지속적으로 번영하기 위해서는 기업이나 상층만이 아니라 모든 계층을 아우르는 더 폭넓은(broad-based) 경제성장이 필수적임을 강조하고 있다. 정확한 현실인식이다. 일부 계층에 편중된 경제성장의 한계를 명확히 인식하고,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 구조가 지속성장의 기본전제임을 천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민주당은 현재의 경제상황, 그리고 민주당 실패의 원인이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정책의 실패에서 기인한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다.

민주당은 더 왼(바른)쪽으로 움직여야 침체된 지지율을 회복할 수 있다

'과도한' 평등주의적 분배가 문제가 아니라 '과소한' 평등주의적 분배정책의 결과다. 잘못된 현실인식은 잘못된 정책대안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민주당은 기업이나 상층을 위한 정책을 선언하고 좀 더 오른쪽으로 움직여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보다 더욱 왼쪽으로 움직여야만이 침체된 지지율을 상승시킬 수 있다.

좀 더 정밀하게 표현하자면, 이것은 왼쪽, 오른쪽의 문제가 아니다. 바르냐 그르냐의 문제이다. 왼쪽으로 가자는 것이 아니라, 바른쪽으로 가자는 것이다. 극단적 소유권 중심주의에서, 극단적 물신주의에서 인간 중심으로 가자는 것이고, 사회적 공공성을 확보하자는 것이다.

물, 건강, 의료, 방송, 교육, 일자리, 금융 등의 영역에서 분명하게 지킬 건 지키고, 그저 모든 것을 시장만능주의에만 던져두지 말자는, 그것도 재벌 중심의 독점시장에만 맡기지 말자는 것이다. '스마트'한 정부가 공정하고 효율적으로 시장을 감시하자는 것이다. 공공의 영역을 지켜가자는 것이다.

해밀턴 프로젝트 입안을 실무적으로 주도한 이는 피터 오그작 현 백악관 예산관리국장이다. 그가 말했다. "부시 행정부가 부유층 권익을 강조한 '오너십 사회'를 주된 경제정책으로 삼은 반면, 오바마 정부는 복지와 성장에 균형을 둔 정책에 무게를 둘 것"이라고.

세계는 지금 신자유주의의 결함을 교정하고, 본래적 의미의 시장, 건전한 의미의 국가로 되돌아가려 한다. 그런데 현재의 한나라당은 이미 실패한 부시 전 대통령의 '오너십 사회'로 역주행하겠다는 것이고, 민주당은 따라가겠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원정경기'를 그만두고 '홈경기'에 나서야 한다

얼마 전, < 경향신문 > 이대근 에디터는 고정 칼럼에서 이렇게 비판했다. 맞는 말이다. 민주당은 '원정경기'를 그만두고 '홈경기'에 나서야 한다.

"민주당은 지금 한국 정치가 정상적이라고 은폐하는 도구, 나아가 이 정권의 장식품이 된 줄 알아야 한다. …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 먼저 이명박 정권이 깔아 놓은 멍석에서 노는 것을 그만두어야 한다. 그 멍석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최선을 다해야 고작 최악을 피할 수 있는 정도이다. 너무 피곤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정치이다."

국가보안법의 이분법에 익숙한 < 조선일보 > 를 비롯한 보수 기득권층은 경제발전과 경제성장을 구분하지 못한다. 그리고 경제는 오로지 '성장과 분배'로만 구분된다. '성장과 분배'는 어느 한쪽을 위해 다른 한쪽을 희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분배'가 '성장'을 저해하는 것도, '성장'이 이루어져야만 '분배'가 가능한 것도 아니다. '분배'를 이야기하면 '성장'을 저해하는 것으로, 반기업적이고, 반부자적인 것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보수언론과 한나라당이 만들어 놓은 프레임이며, 그들이 깔아 놓은 멍석에서 노는 것에 불과하다.

민주당은 반기업 정당인 적도 없었고, 반부자 정당도 아니다. 다만 부자보다는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정치를 지향해 왔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입으로만 중산층과 서민을 얘기했을 뿐, 정책과 성과로 이들을 이해시키지 못했다. 그럼에도 이러한 정체성의 추구야말로 민주당이 한국 정당사에 존재할 수 있는 분명한 이유다.

마하트마 간디의 말이다."자신의 행동이 옳은지 그른지 의심날 때면 가장 가난한 사람을 생각해보라. 당신의 행동이 그의 삶을 향상시킬 수 있는지 판단하라. 만약 그렇다면 당신은 옳은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의 지지율은 화석화되고 있다. 한나라당 정부가 더 이상 시민의 지지를 확보하는 데 실패를 거듭하고 있음에도 대안(정당)의 이미지는 민주당이 아니라 '개인 박근혜'에 있다.

한나라당을 따라 해서는 한나라당밖에 되지 못한다. 그렇게 보면 민주당은 지금 너무 한가하고, 안일하다. 왜? 여전히 부자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부자정당'이라는 자인과 < 조선일보 > 의 규정은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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