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싹쓸이의 힘 '아파트투표'

2008. 4. 15.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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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21] 뉴타운·재개발 지역 '무조건 한나라당 강세'야당 지지 40대, 막판에 '재산증식' 유리한 후보 찍어4·9총선 '전형적인 계급투표'…강남은 표쏠림 더 심해

4월9일 밤 11시, 개표 방송을 지켜보고 있던 통합민주당 개표상황실에서 "이럴 수가…"라는 탄식이 터져나왔다. 서울 도봉구갑에서 '뉴라이트'를 표방한 한나라당 신지호 후보가 민주화운동의 대부 민주당 김근태 후보를 눌렀다는 확정 보도가 나오는 순간이었다. 여론조사에서 선전했던 민주당 유인태 후보(서울 도봉구을)와 오영식 후보(서울 강북구갑)의 탈락 소식도 이어졌다. 15대 국회부터 단단히 이어져오던 민주당의 '강북 벨트'가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밤 11시30분, 서울 노원구병의 진보신당 노회찬 후보가 "겸허한 마음으로 결과를 받아들인다"는 낙선소감을 보냈다. 지난 3월 한 달 내내 10차례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 홍정욱 후보를 상대로 '10 대 0'이라는 파죽지세를 이어가던 노 후보였다. 진보신당도 원내 진출의 마지막 꿈을 그렇게 접었다.

40대의 본심, 재산 증식

정치권에서는 "국민주택 규모인 85㎡(25.7평형) 이상의 아파트만 사면 한나라당 지지자가 된다"는 말을 흔히 한다. 서울시에서 아파트 비율이 높은 상위 10개 구의 18대 총선 결과는 이런 속설을 사실로 보여주고 있다. 상위 10개 구의 21개 선거구에서 한나라당은 20석을 차지했다. 민주당 당선자는 동작구갑의 전병헌 후보가 유일했다.

이들 10개 구 중에서 '강북3구'라 불리는 강북·노원·도봉구와 성동구는 민주당이 계속 선전해온 지역이었다. 총선을 앞두고 3월 한 달 계속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도봉구갑의 김근태 후보는 신지호 후보에게 '9 대 1'로 앞서왔다. 도봉구을의 민주당 유인태 후보도 여론조사에서는 한나라당 김선동 후보에게 '5 대 0' 완승이었다. 강북갑의 민주당 오영식 후보 역시 여론조사 '무패'의 기록은 마찬가지였다.

막판에 뒤집힌 이유는 뭘까. 오영식 후보는 "3월 말부터 가파르게 상승한 강북 지역의 아파트 가격이 원인이었다"고 진단했다. 이미 오른 가격을 지켜줄 후보, 더 오르게 해줄 것으로 보이는 당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국민은행의 '2008년 3월 전국 주택가격 동향조사'를 보면 서울 노원구의 집값은 한 달 새 5.7% 올랐다. 도봉구도 2.2% 올랐다. 전국(0.8%)은 물론 서울 전체 평균(1.4%)의 두세 곱절이다. 노원구의 경우 올해 누적 상승분은 10%가 넘었다.

민컨설팅의 박성민 대표는 강북 지역 여론조사와 선거 결과가 180도 다르게 나온 이유를 "40대의 거짓말" 때문이었다고 했다. 박 대표는 "그동안 민주당 등 개혁 성향의 정당을 지지해왔던 40대는 지난 18대 대선 때부터 '경제 살리기'를 전제로 이명박 후보에 대한 '비판적 지지'로 돌아섰다"며 "이번에도 여론조사에서는 심정적으로 동의하는 민주당과 진보신당 후보를 지지한다고 했다가, 막상 투표에서는 부동산 가치 상승을 가져올 한나라당 후보에게 표를 준 것"이라고 말했다. '고소영 내각'이란 비판이 쏟아진 장관 인선과 대운하, 영어 몰입교육 등 동의할 수 없는 정책들이 쏟아지니까 지지 철회를 고민하다가, 최종 순간에는 '재산 증식'에 유리할 것으로 보이는 한나라당을 택했다는 것이다.

강북 지역에서도 1990년대 말~2000년대 초 고급 아파트 타운으로 재개발된 곳의 표심은 참여정부 중반부터 한나라당으로 넘어가 있었다. 동대문구와 성북구가 대표적이다. 17대까지는 민주당의 아성이었던 이 지역에서, 18대에 출마한 민주당 후보들은 여론조사에서부터 한 번도 승세를 잡지 못했다.

구체적으로 성북구을 선거구를 보자. 돈암1동, 길음3동, 종암1·2동, 석관동 그리고 월곡·하월곡동으로 이어져 있다. 그간의 투표 성향은 강한 야성과 '친호남성'이었다. 호남 인구층이 많을 때는 40%를 넘었다. '성북구을'이란 선거구가 처음 생긴 11대 국회(1981년)부터 17대까지, 한 차례(15대 국회)를 제외하곤 모두 야당 또는 호남 기반 정치인들이 뽑혔다.

키 낮은 단독주택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던 성북구 종암1동 종암경찰서 앞은 2000년부터 현대 아이파크와 삼성 래미안, 동부 센트레빌 등 대단위 아파트 타운으로 바뀌었다. 지금도 건물 4~5층 높이의 거대한 장막으로 가린 재개발 공사가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개표 결과 아파트 타운으로 변한 성북구의 표심은 한나라당 김효재 후보(47.3%)에게 쏠렸다. 민주당의 박찬희 후보(17.6%)와 공천 탈락 뒤 무소속으로 출마한 신계륜 후보(29.1%)의 표를 합쳐도 못 미친다. 투표구별로 보면, 대단위 아파트가 몰린 종암1동에서의 김 후보 지지율이 50.9%로 제일 높았다.

성북구갑에서도 재산세 납부액과 표심은 분명한 상관관계를 보였다. 재산세는 주택의 기준시가를 기준으로 부과된다. 가구 수는 비슷한 반면 재산세 납부액은 9배 차이가 나는 성북2동과 삼선1동을 비교해 봤다. 성북2동에서 민주당 손봉숙 후보는 31.1%를 얻어, 전체 투표구 평균(36.8%)에 미달했다. 반면, 삼선1동에서는 41.7%를 얻어 전체 평균을 상회했다. 한나라당 정태근 당선자의 경우 정확히 반대 현상을 보였다.

강북의 강남화, 연대는 끊어져

서울 동대문구을에 출마했던 민병두 후보(민주당)에게 가장 힘든 순간은 장안동 아파트 타운 유세였다고 한다. 삼성 래미안, 현대 홈타운 등 고급 아파트 타운으로 재개발된 장안동은 냉랭했다. 목청껏 외쳐도 돌아오는 것은 아파트 외벽에 부딪힌 메아리 뿐이었다. 민 후보는 "표심은 재개발 상태에 따라 완전히 다르더라"고 했다. 고급 아파트로 재개발된 곳, 그리고 뉴타운 계획이나 재개발 계획이 수립되고 있는 곳은 무조건 한나라당 강세 지역이라는 것이다. 아파트를 가진 이는 가격 상승을 꿈꾼다. 아파트 마련을 꿈꾸는 이들은 재개발이 하루라도 더 빨리 이뤄지기를 바란다. 그게 표심이다.

중요한 것은 아파트의 계급화, 계층화다. 도시사회학에서는 '주택계급'(Housing class) 또는 '주택계층'이라고 한다. 단국대 조명래 교수(도시지역개발학과)는 "우리 사회에서도 사회계층과 주택계층이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있다"며 "한국 사회에서 주거형태는 부의 표시일 뿐 아니라 삶의 양식의 표시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중소형 아파트에서는 옆집에 누가 사는지 관심이 없지만, 타워팰리스에서는 거주자들이 다양한 커뮤니티를 만들어 서로 어울리는 현상이 나타난다. 조 교수는 "그런데 이런 주택계층이 세금 문제로 자신들의 지위 유지에 위협을 받게 되자, 이 이익을 지키기 위해 특정 정당에 쏠리는 현상을 보이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강남의 주택계급·계층은 이미 본격적인 정치적 행동을 시작했다. 지난 3월28일 강남구 대치동 강남구민회관에서는 각 당 출마자들을 대상으로 한 종부세 관련 토론회가 있었다. '강남구 공동주택 입주자 협의회'란 단체가 주최한 토론회였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진보신당 신언직 후보(강남구을)의 회고다.

"참석자들이 다짜고짜 '종부세 폐지를 약속하라'고 하기에 '그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차원에서도 폐지할 수 없다'고 답했죠. 그랬더니 50대로 보이는 남자가 '노블레스 오블리주도 좋은데, 그 전에 종부세부터 폐지해라'고 닦달하더군요. 종부세 대상인 부유층들이 집단적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시키기 위해 총선 후보들을 불러놓고 토론회를 여는 것은 초유의 일이라고 봅니다. 부유층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시키기 위해 계급투표를 선택하는 것으로 봐야죠."

신 후보는 강남의 아파트 소유자들은 주택계급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이번 투표는 전형적인 '계급투표'라고 주장했다.

전형적인 계급투표

이번 총선에서도 강남은 표쏠림이 심했다. 강남구갑 당선자인 한나라당 이종구 후보는 64.9%를, 민주당 김성욱 후보는 18.3%를 얻었다. 강남구의 핵심인 압구정동과 도곡동에서는 그 비율마저 완전히 무너져 있었다. 김성욱 후보는 압구정1동에서 10.4%, 압구정2동에서 10.2%를 얻었을 뿐이다. 도곡동 타워팰리스에 설치된 도곡2동 2투표소에서 김 후보의 득표는 단 5.5%에 그쳤다. 반면 이종구 후보에게는 79.8%의 표가 쏠렸다.

강남·서초구가 원래 이랬던 것은 아니다. 15대 총선의 국민회의, 16대 민주당, 17대 열린우리당 등 민주당과 흐름을 함께했던 정당의 후보들은 강남·서초구에서 30~40%의 득표를 꾸준히 이어왔다. 이 흐름이 완전히 깨진 것이 18대 대선과 총선이다. 원인은 바로 아파트였다.

이처럼 종합부동산세 저항으로 먼저 시작된 강남의 계층투표 성향이 18대 총선에선 강북으로 번져나갔다는 진단이 이번 한나라당의 서울 싹쓸이 결과를 설명해준다.

전문가들은 이를 '강북의 강남화'라고 설명했다. 한귀영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연구실장은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층이었던 서울의 중소형 아파트 거주자와 30~40대가 지난 대선을 기점으로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 지지자로 바뀌었다"며 "이를 이른바 '386세대'의 강남화, 기득권화라고 보고 싶다"고 분석했다. 80~90년대의 민주화를 이끌어온 세대들이 사회의 기득권 구조에 들어가면서, 부동산과 교육이라는 개인적 이해에 잠겨들어 사회적 연대의 고리를 끊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의 김현아 선임연구위원(박사)은 "강북의 중소형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앞으로 중대형 아파트로 주거를 옮김으로써 계층이동을 하겠다고 꿈꾸는 이들"이라며 "그런데 참여정부에서 이런 기회가 차단되기 시작하고, 재산세 현실화로 재산세 부담이 늘어나기 시작한 것에 강한 불만을 가지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참여정부가 중반부터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등 엄격한 대출규제를 시작하면서 이들이 은행 대출을 끼고 좀더 큰 평수의 아파트로 옮겨갈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됐다는 설명이다.

결국 부동산의 계급화, 계층화 현상은 강남에서 강고한 성을 이루고, 강북으로 확산되는 꼴이다.

이런 현상은 경기도도 예외는 아니다. 대표적인 곳이 용인이다. 용인 수지는 박근혜 계열인 무소속 한선교 후보(43.0%로 당선)와 한나라당 윤건영 후보(37.1%)의 2자 구도가 팽팽했던 '한나라당 초강세' 지역이다. 강남·분당과 다를 바 없다.

용인 수지의 '꽃'은 성복동이다. 7차례에 걸쳐 LG빌리지와 수지 자이가 세워졌다. 50평형대부터 102평형대까지 대형 평수로만 8천 세대가 들어섰다. 대부분 종합부동산세 과세 대상이다. 성복동의 지난해 재산세 납부액은 67억6100만원이다. 전체 9개동으로 이뤄진 용인 수지 투표구 전체 재산세의 20.7%를 차지한다. 성복동에서는 한나라당 윤건영 후보가 49.7%를 얻어 당선자인 한선교 후보(39.0%)를 제쳤다. '아파트 계급'의 표심은 한나라당이었던 것이다. 반면 단독주택이 여전히 많은 죽전2동의 경우는 민주당 김종희 후보(전체 19.3% 득표)가 26.4%로 상대적으로 가장 많은 지지를 받았다. 죽전2동의 재산세 납부액 14억2400만원은 전체의 4.3%에 그친다.

용인 역시 한때 민주당색이 강했던 곳이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 민주당 김윤식 의원과 남궁석 의원이 갑·을 양쪽에서 당선됐다. 1999년 상현동을 시작으로 신봉동과 성복동까지 이어지는 대규모 아파트 개발이 이뤄지면서 정치적 성향이 바뀌기 시작했다. 성복동 '백석공인중개사'의 김재도씨는 "주로 강남권에서 은퇴한 고령자들이 많이 들어왔다"며 "이들은 한나라당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프랑스 지리학자인 발레리 줄레조는 한국의 아파트 문화를 10년간 분석한 <아파트 공화국>이란 박사논문에서 '아파트의 정치경제학'을 이렇게 분석했다.

"한국의 권위주의 정권은 인구 증가를 관리하고 봉급생활자들이 경제 발전에 헌신할 수 있도록 가격이 통제된 아파트를 대량공급했다. 중간계급들을 대단지 아파트로 결집시키고, 이들에게 주택 소유와 자산소득 증가라는 혜택을 줌으로써 정치적 지지를 획득할 수 있었다. 또한 이런 상호 혜택의 구조 때문에 한국의 도시 중산층은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하층의 사회계층과는 공간적으로 분리될 수 있었다."

한나라당을 선택한 서울의 표심은 그런 계층 상승과 분리를 원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뉴타운과 재개발을 통해 대부분이 아파트 단지로 변화할 서울과 수도권 남부는 한나라당의 '천년왕국'이 될 것인가. 현재로서는 그럴 확률이 높다. 하지만 중요한 변수가 있다.

서울은 한나라당의 천년왕국?

박성민 대표는 "18대 대선과 총선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을 지지한 30~40대들은 '비판적 지지'를 한 것"이라며 "만약 약속대로 경제 살리기가 이뤄지지 않고, 자신들의 삶에 부담만 늘어난다면 이들은 즉각 지지를 철회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강북 지역의 아파트값 상승은 조만간 서울과 수도권 전체의 아파트값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한나라당이 공약한 부동산 규제 완화는 이를 더욱 부채질할 것이다. 하지만 부동산 가격 급등은 장기적으로는 여당에 악재다. 한나라당의 딜레마인 셈이다.

소설가 이외수씨는 2004년판 <감성사전>이란 저작에서 아파트를 '인간 보관용 콘크리트 캐비닛'이라고 표현했다. 2008년 서울의 아파트는 '욕망 확장용 콘크리트 캐비닛'이 되고 있다. 그리고 그 욕망이 총선 투표함에 고스란히 모였다. 하지만 모두가 욕망을 채우기란 쉽지 않다. 채워지지 못한 욕망은, 원망이 되고 절망이 된다.

<한겨레21> 이태희 기자herme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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