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정부 '귀'는 없고 '입'만 있다..FTA시위 초강경 대응

2006. 11. 25.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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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만 있고, 귀는 없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시위에서 빚어진 폭력사태와 관련해 정부가 24일 이른바 '무관용(zero tolerance)의 초강경 대응방침을 밝힌 데 대한 지적이다.

정부가 시위 과격화의 원인 분석이나 합리적 문제 해결의 의지 없이 '대화 거부'를 선포했다는 비판이 그것이다.

자연 '귀닫은' 정부의 대처방식이 평화적 시위문화 정착보다 끝없는 물리적 충돌의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부는 이날 한명숙 총리 주재로 긴급 관계장관대책회의를 열어 불법 집회·시위에 대한 '무관용' 원칙에 의견을 모으고 김신일 교육부총리와 김성호 법무·박홍수 농림·이용섭 행자·이상수 노동부 장관 공동명의로 담화문을 발표했다. "불법·폭력에 대해 더 이상 관용은 없다"는 게 큰 골격이다.

정부는 담화문에서 "불법·폭력 집단행위에 대해 주동자뿐만 아니라 적극가담자, 배후조종자까지 철저히 밝혀내 반드시 법과 원칙에 따라 엄단하겠다"고 강조했다. 또 "형사처벌은 물론 징계, 나아가 민사상 손해배상청구 등 정부가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확실하게 취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담화문은 올 들어 여섯번째다. 지난 5월 평택 미군기지 이전 반대 시위 등이 벌어졌을 때 나온 담화문이 '호소'에 무게를 뒀다면 이번은 '최후통첩'에 가깝다. 담화문은 '대화'나 '정부 책임' 등의 표현 없이 '응분의 제재' '불법과의 타협은 용납하지 않겠다' 등으로 일관했다.

이 때문에 정부의 '무관용 정책'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당장 참여정부 스스로 '귀'를 열지 않으면서 국민들의 '입'을 막으려 한다는 지적이다.

참여연대 이태호 협동사무처장은 "폭력이 주장의 호소력을 떨어뜨리는 측면은 있지만, 정부가 농민 시위의 배경이 된 한·미 FTA에 관한 여론을 모으려고 어떤 노력을 했는지 먼저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관용'을 얘기하는데 농민들은 정부가 특정 계층만을 배려하는 것을 '관용'할 수 없는 처지"라며 "그렇다면 '배후조종자'는 FTA를 졸속으로 추진하는 정부"라고 주장했다.

정부의 강경 대응방침은 참여정부 초기 반대 여론까지 적극적으로 수렴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2004년 8월 당시 문재인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은 천성산 환경파괴 문제로 단식 중이던 지율 스님을 면담했고, 한명숙 총리도 환경부장관 재직 시절인 2003년 5월 새만금 간척사업에 반대하는 종교인들의 '3보1배' 시위현장을 위로방문한 바 있다.

정부의 강경 대응은 최근 부동산정책 실패 등으로 국민 여론이 악화된 상황에서 '더이상 밀리면 끝'이라는 위기감에서 비롯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숭실대 강원택 교수는 "부동산정책 혼선 등으로 정부의 공신력이 많이 떨어진 가운데 공권력마저 무능한 것으로 비치면 임기말 레임덕이 가속화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 강경한 담화문이 나왔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정부가 차용한 '무관용'이란 용어의 적절성도 도마에 올랐다. '무관용'은 94년 미국 뉴욕시가 노상방뇨 등 경범죄와 윤락, 구걸행위 등의 집중 단속을 위해 선포한 정책이다.

따라서 생존권을 요구하는 한국 농민 등의 시위와 뉴욕의 경범죄 위반 시민들을 같은 선상에 놓고 정책을 수립·집행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안홍욱기자 ah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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