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졸업생들이 제시하는 '카이스트 해법'
[머니투데이 교육팀]잇따른 자살로 '홍역'을 앓고 있는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에 대해 사회 각계에서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정치인 등 다수의 사람들이 서남표 총장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서 총장만의 책임은 아니라며 보다 근본적인 해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그럼 카이스트를 가장 잘 알고 가장 사랑하는 '카이스트 졸업생'들은 이번 사태를 어떻게 지켜보고 있을까. 졸업생들에게 이번 자살 사태의 원인과 해법에 대해 의견을 물어봤다.
◇이다솔(30·한화증권 연구원) "학생 입장에서 접근해야"
카이스트는 과학고 2학년 마치고 오는 경우가 많다. 신입생은 일반대학보다 보통 나이가 1~2살 어리다. 7살에 초등학교 들어가면 또래보다 2살 어린 게 보통이다.
나이 어리고 사회경험이 적기 때문인지 대학에 와서도 굉장히 진로 고민이 많다. 정부에서는 나랏돈 받아 공부했으니 당연히 이공계 쪽에 취업해 국가발전에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1~2학년은 18~19살의 감수성 예민한 소년소녀에 가깝다. 기숙사에 오래 있다 보면 엄마가 보고 싶고 이성문제로 괴롭기도 한 그런 학생들이다.
공부를 하다 보면 다른 분야에 관심도 생기고 다른 경험도 하고 싶고 진로 고민도 많은데 문제는 상담할 데가 별로 없다. 주변에는 온통 과학자 분들만 계시니까 깊이 있게 대화 나눌 기회가 별로 없는 것이다.
일반대학의 경우 선배가 후배를 챙겨주는 학과 문화도 강하고 상담할 분들도 많지만 카이스트는 구조적으로 기숙사 생활에 개인주의 문화가 강하다. 놀고 싶어도 놀 데가 별로 없다. 힘들어도 스트레스를 풀 수 있으면 버틸 수 있는데 그게 잘 안 되고 있는 것 같다.
징벌적 등록금제나 영어몰입 이런 데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학생들의 분출구를 마련해 주는 게 급선무인 것 같다. 학생들 입장에서 접근하면 문제는 의외로 쉽게 잘 풀릴 수 있을 거라고 본다.
◇이병운(37·건국대 기계공학부장) "도전은 계속돼야"
학생들이 패배에 대한 면역이 약해서, 경쟁의 치열함을 못 견뎌서 목숨을 끊었다고는 보지 않는다. 그건 정말 위험한 이야기다. 학생들도 인생의 행복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을 것이다. 그런 고민 끝에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개인적 선택을 한 것이다.
차등등록금 제도 같은 것은 학생들에게 좀 더 공부를 할 수 있는 동기를 준다면 나름대로 필요할 것이다. 본질적으로 카이스트에서는 과학적 진실에 대해 실력을 쌓겠다는 마음으로 강의를 듣고 연구하는 거다. 내가 다른 학생을 이겨야겠다는 마음으로 공부해서는 버틸 수가 없다.
그런 노력의 산물로 평점이 나오지만 그걸 경쟁의 치열함으로 모두 환원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카이스트는 정부 지원을 받는 대학이니까 좀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다짐을 주지시켜 주는 하나의 수단이 된다면 차등등록금제도 필요할 것이다.
영어강의의 경우는 이공계에서 대외적인 연구를 하려면 한번 정도는 벼랑을 타고 올라가는 고통이 있어야 한다. 그 고통을 겪고 나면 새 세상이 온다. 물론 처음에는 힘들지만 끝에 올라가면 새로운 세상이 있다. 그런 식의 도전을 하라고 카이스트가 있는 거니까 그런 도전이 필요하리라고 본다.
카이스트에서 향후 여러 가지 대책을 내놓겠지만 근본정신만 지켜진다면 교수님들의 개인적인 선택이라고 본다. 교수님들이 판단할 부분이다. 본인들이 약간 물러서서 교육하는 게 학생들에게 일시적이라도 편한 감정을 줄 수 있다면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본다.
◇강원형(30·직장인) "여유가 있어야 창의력 발휘"
열심히 실력 키워서 대학에 왔는데 나보다 잘하는 사람이 많으면 누구나 좌절하기 마련이다. 진로를 바꾸는 사람도 많다. 사회 전반적인 문제도 있지만 학부 제도가 급격히 바뀌면서 불을 당기지 않았나 싶다.
'정부가 수업료 대주니까 공부 못하면 잘라낸다'는 식의 접근은 잘못됐다. 카이스트의 원래 취지는 잠재력 있는 학생들이 돈 걱정 안 하고 마음껏 공부하게 해주자는 것이었을텐데 지금은 가능성이 안 보이는 학생들을 미리부터 쳐내려고 한다. 역량을 발휘할 때까지 기다려주질 않는 것이다. 지금 당장 성적이 좋지 않은 학생도 나중에 놀라운 결과를 보여줄 수 있는 것 아닌가.
최근 학교에 가보면 공연·예술·친목과 같은 성격의 동아리는 사라져가고 있다. 수업이 많고 바빠진 데다 성적에 대한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동아리가 사라지니 선·후배나 친구 간 교류가 없어지고 고민을 털어놓을 데가 없어진 것이다.
학교의 여러 제도들이 학생들로 하여금 총을 들게 만들고 있다. '우리가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변명이다. 지금처럼 공부만 시키면 획기적인 벤처 회사도 나올 수 없다. 여유가 있어야 창의성도 발휘되지 않겠나.
◇송흥익(33·대우증권 연구원) "학력격차 세심한 배려 필요"
600여명 정원 중에 80% 정도가 과학고 출신이었는데 대부분 잘 적응하는 편이었다. 과학고 수업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 외국어고나 일반고 출신 학생들은 많이 힘들어했다.
예를 들어 미·적분 시험 문제가 주관식으로 답안지만 5~6페이지다. 훈련이 안돼 있으면 풀기가 쉽지 않다. 패배감, 좌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런데 몇 백만원 벌금까지 내라고 하니 학생들 입장에서는 부담이 컸을 것이다. 아시다시피 카이스트 학생들은 집안형편이 넉넉하기보다 평균이나 평균이하가 많다.
그런데 좌절할 필요가 없는 것이 3학년 정도가 되면 일반고 출신도 과고 출신을 대부분 따라잡는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학생들을 1학년 때부터 성적으로만 몰아부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서남표 총장이 세계 최고로 평가받는 MIT 학과장 출신이어서 이런 부분을 놓친 것 같다. 학력 격차를 고려해서 연착륙을 시켜야 하는데 마음이 급해서 무리수를 둔 것 같다.
초·중·고 쉼없이 앞만보고 달려온 애들인데 학교에서 학력차를 인정하지 않고 '공부 못하면 무조건 낙오자'라고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차등등록금제는 폐지하고 인센티브를 도입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영어몰입수업도 3~4학년 일부 과목에만 적용하는 게 바람직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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