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기관 경쟁하듯 개입.. 부끄러운 '사찰 공화국'

정제혁·황경상 기자 입력 2010. 7. 2. 03:28 수정 2010. 7. 2.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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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은 '기본' - "광범위한 민간인 사찰" 박원순 이사 폭로 대표적기무사 '가세' - 쌍용차 집회 참가 시민주소·차량번호까지 추적경찰 '뒤질세라' - 특정 사이트 게시물 감시 '촛불' 검거자 연좌제 적용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사찰은 현 정부 들어 지속돼온 국가정보기관의 민간 사찰 흐름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번 파문은 일부 공무원들의 예외적 일탈행위가 아니라 그릇된 권위주의적 통치관이 낳은 구조적 사건에 가깝다는 평가다. 군사정권 때 벌어졌던 '사찰공화국' 논란이 재연되면서 민주주의의 퇴행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 정부 출범 후 국가정보원·기무사·경찰 등에 의한 초법적 민간인 사찰 의혹은 끊이지 않았다. 국정원에 의한 민간인 사찰 논란이 대표적이다. 2009년 9월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는 "국정원에 의해 광범위한 민간인 사찰이 진행되고 있다"고 폭로했다. 그는 국정원이 시민단체를 후원하는 단체나 개인을 상대로 정보를 수집하고 유·무형의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2009년 12월 국정원 광주지부는 이명박 대통령의 4대강 사업을 풍자한 설치미술 작품 '삽질 공화국'을 전시장에서 철거하도록 광주시에 압력을 행사해 전시가 한때 중단되기도 했다. 올해 초에는 국정원 충남지부가 세종시 예정지인 충남 연기군의 면장 등에게 세종시 수정안을 지지하도록 회유한 사실이 폭로됐다. 지난 2월에는 국정원 직원이 조계사에 압력을 가해 시민단체들의 불우이웃돕기 행사를 취소시켜 논란이 됐다. 지난 5월에는 방한한 프랭크 라뤼 '유엔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 일행의 동향을 국정원 소유 차량 안에서 캠코더에 담는 모습이 포착돼 파문을 일으켰다.

기무사가 민간인 사찰을 벌인 정황도 여러 번 드러났다. 2009년 8월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은 평택역에서 열린 쌍용자동차 관련 집회에서 입수했다는 기무사 소속 군인 S씨의 수첩 등을 근거로 기무사의 민간인 사찰 의혹을 제기했다. 이 수첩에는 시민단체 관계자들과 민주노동당 당직자 등 민간인 10여명의 주소와 차량번호, 행적이 일시별로 메모돼 있었다.

같은 달 민중가요 노래패인 '우리나라'는 재일동포 학교인 '고베조선고급학교'의 초청 공연을 위해 일본 간사이 국제공항에 도착해 입국 절차를 밟던 도중 신원을 알 수 없는 한 남성에 의해 사진촬영을 당했다. 이를 수상히 여긴 노래패 회원들이 그 남성을 붙잡아 추궁하는 과정에서 그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내사 중인 '우리나라'의 일본 체류 일정과 동향을 파악하라"는 지시 내용이 담긴 '3급 비밀문서'(2장)를 소지하고 있음이 확인됐다. 그는 승강이 과정에서 기무사 소속이라고 자신의 신원을 밝혔다.

민간인 사찰은 경찰도 예외가 아니었다. 2009년 7월 경찰청 보안과는 '보안 사이버 검색·수집 시스템' 강화 사업을 신규 발주했다. 경찰이 지정하는 특정 사이트의 게시물과 댓글, 아래한글·액셀 등으로 제작된 첨부파일 내용을 실시간으로 검색·수집해 데이터베이스 형태로 저장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2009년 10월에는 경찰이 촛불시위 검거자에 대해 연좌제를 적용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최규식 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경찰은 촛불집회에 관련된 시민들을 기소하면서 '참고자료'로 배우자·아버지 등 가족의 '공안사범 조회 리스트'까지 첨부했다. 지난 4월에는 서울경찰청이 "좌·우파' 교육감 후보의 정보를 수집해 5일 내로 보고하라"며 우파엔 도움되는 정보를, 좌파엔 시민단체의 조직·자금 지원 상황 등을 조사토록 한 문건을 일선 경찰서 정보과에 하달했다가 선거 개입 논란을 빚기도 했다.

현 정부 들어 정보기관의 민간인 사찰이 빈발하는 데는 국민을 소통의 상대가 아니라 통제와 관리의 대상으로 보는 비뚤어진 통치관이 근본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통령의 국정 철학이 '촛불 배후가 누구냐, 국민들이 반성해야 한다'는 식이니까 그 철학이 공무원들에게까지 스며든 것"이라고 말했다.

민간인 사찰은 국가 권력의 사유화 문제와도 연결된다. 공권력을 집권세력의 사익추구 용도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영포회'라는 특정 지역 출신 공무원들이 중심이 된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사찰은 이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또한 사찰 대상이 평범한 생활인이었다는 점도 국민 누구나 정권의 사찰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사찰 방법도 전통적인 미행·감시부터 인터넷·개인정보 감찰로 확대되고 있다. 영장 없는 압수수색이나 세무조사 협박 등의 초법적 행태를 동원하고, 국가권력기관들이 선단식으로 압박하면서 사찰 방식도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민간인 사찰은 독재정권의 핵심적 통치 도구였다"며 "민주화를 거치면서 공고해졌다고 믿었던 절차적 민주주의마저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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