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회사는 '어르신'이 지정하는 곳으로 가..안종범과도 얘기"

정제혁·구교형 기자 2016. 10. 31. 06: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ㆍ차은택 측 ‘광고회사 포레카 강탈 과정’ 녹취록 나와
ㆍ포레카 대표, 입찰 업체 사장과 ‘회유성 대화’ 고스란히
ㆍ권력 핵심부 ‘돈줄 만들기 프로젝트’ 치밀한 기획 가능성

포스코그룹 계열 광고회사인 포레카 매각 과정에서 당시 이 회사 대표이던 김영수씨(46)가 입찰에 참가한 중소 광고업체 ㄱ사 대표 ㄴ씨를 회유·협박한 사실이 30일 확인됨에 따라 ‘비선 실세’ 최순실씨와 차은택씨 측근들의 ㄱ사 지분 강탈 시도에 포스코 최고경영진은 물론 청와대 핵심부까지 개입했다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 ㄱ사 강탈 시도가 권력 핵심부의 ‘돈줄 만들기 프로젝트’ 일환으로 치밀하게 기획됐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포스코 회장님이 오케이”

경향신문이 단독 입수한 포레카 당시 대표 김영수씨와 ㄴ씨의 2015년 3월12일 대화 녹취록을 보면, 김씨는 ㄴ씨에게 포레카를 ㄱ사에 넘기기로 이미 다 얘기가 됐다는 듯이 말하면서 “본사에서 다 알아서 처리하기로 했다. 회장님까지 오케이를 받은 상황”이라고 했다. 이에 ㄴ씨가 “(경쟁업체인) 저쪽은 80억을 써냈고 우리는 50억을 써냈다고 하면 우리한테 줄 명분이 없는 것 아니냐. 돈을 많이 써낸 쪽에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자 김씨는 “저쪽에서 입찰가를 나한테 알려주기로 했다”고 답변했다. 김씨는 또 “일단 입찰가를 쓰고 나중에 협상하면서 (가격은) 내려가고. 절대 손해 안 나게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며 “최고 결정권자랑 얘기를 했던 것이기 때문에 걱정을 전혀 안 하고 있다”고 말했다. 포레카를 가급적 높은 값에 매각해야 할 회사 대표가 차씨 측과 합세해 ㄱ사 지분 80%를 넘기라고 압박한 뒤 ‘ㄱ사가 포레카를 싸게 인수할 수 있도록 손을 써두었다’는 취지로 ㄴ씨를 회유한 것이다.

차씨 측은 포레카를 인수한 ㄱ사 지분을 넘겨받아 포레카를 우회적으로 인수하려 계획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포레카 매각 상황이 담긴 2014년 4월30일자 청와대 문서가 최근 최순실씨 사무실에서 발견된 것도 이런 추정을 뒷받침한다.

차씨 측은 포레카를 우회 인수한 뒤 권력을 등에 업고 대기업 광고를 싹쓸이하려 했다. 차씨 측근 김모씨는 2015년 6월10일 ㄴ씨를 만나 “포레카가 포스코만 위해서 매각이 되는 게 아니다. 그 이면에는 다른 대기업도 많이 있다”면서 “A사(B그룹 광고계열사)가 B그룹 물량만 맡는 게 아니지 않으냐. 정치권에서 어마어마한 물량 가는 거 아시지 않느냐”고 말했다.

대·중소기업 상생 차원에서 2015년 중소기업에 매각된 포스코 계열 광고회사 포레카의 서울 강남 사옥. 포레카(POREKA)는 포스코와 유레카(알았다는 의미의 그리스어)를 합성해 만든 이름이다. ‘포스퀘어 홈페이지’ 캡처

■“안종범 수석과 커뮤니케이션”

주목되는 건 차씨 측이 거대한 권력이 있음을 수차례 암시한 대목이다. 김영수씨는 2015년 3월12일 “(포스코그룹) 최고 결정권자와 다 얘기가 됐다”고 여러 번 반복했다. 당시 포스코그룹 회장은 권오준 현 회장이다. 김씨는 또 2015년 6월3일 ㄴ씨에게 “저는 경제수석이랑 커뮤니케이션 하고 있다”고 했다.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은 안종범 현 정책조정수석이다.

차씨 측근 김씨는 2015년 6월10일 ㄴ씨에게 “윗분들은 ‘내가 지정하는 회사’에 (포레카가) 가는 건데 거기에 ㄱ사가 참여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포레카는 어르신이 지정하는 회사에 갈 수밖에 없다”며 “그분들 얘기했던 게 다 지켜진다. 롯데 (계열사인 엠허브를 입찰에서) 뺀다, 포스코 움직인다”고 말했다. 그는 ‘배후’와 관련해 “포스코 회장님은 한 분이시겠죠. 그런데 저희가 말씀드리는 어르신은 다 포함된, 정권과 대통령은 한 분이지만 저거는 대통령 혼자는 아니지 않으냐”면서 “복수의 사람들이고 일하는 사람들은 다 역할 분담이 되어 있다”고 말했다. 김영수씨와 차씨 측근 김씨의 발언대로라면 ‘포레카 인수 프로젝트’에 포스코그룹 권오준 회장은 물론 안종범 당시 경제수석, ‘비선 실세’ 최순실씨와 차씨 등 권력 핵심부가 모두 개입돼 있는 셈이다.

두 사람 발언은 이후 전개된 상황과도 맞아떨어진다. ㄴ씨가 회사 지분을 넘기지 않고 포레카 인수계약을 체결한 직후 송성각 한국콘텐츠진흥원장은 ㄴ씨에게 “ㄱ사는 물론 ㄱ사와 거래한 업체까지 모두 세무조사를 할 수 있다”고 했다. 같은 해 11월 안종범 당시 경제수석은 금융위원회가 발주한 금융개혁 광고를 ㄱ사에 맡기지 말도록 지시했다. 포레카 인수가 무산된 뒤 차씨와 그 측근들이 운영하는 광고회사는 KT와 현대자동차 등 대기업 광고를 쓸어담았다. 지분을 넘기지 않은 ㄱ사에 대한 고사작전과 차씨 측 회사의 대기업 및 미르재단·K스포츠재단 광고·홍보 물량 쓸어담기가 동시에 진행된 셈이다.

검찰도 수사에 착수했다.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는 30일 ㄴ씨를 불러 조사했다.

<정제혁·구교형 기자 jhjung@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