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국정농단']물증 나오자 등 떠밀려 '녹화 사과'..'연설문 유출'만 시인

이용욱 기자 입력 2016. 10. 25. 22:41 수정 2016. 10. 25.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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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최대 위기 박 대통령 긴급 회견, ‘콕 집어 사과’
ㆍ인사 개입 등 쏙 빼…1년 넘어 보좌체계 완비도 ‘황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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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은 25일 최순실씨의 대통령 연설문 첨삭을 인정하고 “국민 여러분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취임 후 ‘일정 기간’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청와대 비서진 인사내용이 최씨에게 미리 전달됐다는 의혹, 미르재단 등의 사유화 논란 등은 언급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이 청와대 문서 유출을 인정함으로써, 최씨가 ‘비선 실세’라는 의혹을 확인시켰다는 지적도 나온다. 여기에 박 대통령이 과거 상대를 공격하기 위해 했던 “국기 문란” 등의 발언들이 ‘부메랑’으로 돌아와 옥죄고 있는 상황이다.

■‘연설문 유출’에 한정한 사과

박 대통령은 이날 춘추관 기자회견장에서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긴급 발표해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치고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 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이어 “취임 후에도 일정 기간 동안은 일부 자료들에 대해 의견을 물은 적은 있으나 청와대 보좌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 해명을 두고, 각종 의혹을 해소하기에 불충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 대통령은 ‘일부 자료들’이라고 했지만, JTBC 보도에 따르면 최씨 컴퓨터에 저장된 청와대 관련 파일은 400개고, 연설문이나 공식발언 내용을 담은 문서는 44건이나 됐다. 무더기 유출이라고 할 만하다.

특히 당선인 때인 2012년 12월28일 이명박 대통령과의 독대 자료 중에는 ‘최근 군이 북한 국방위원회와 3차례 비밀접촉을 했다’는 민감한 대북정보도 있었다. 최씨가 비서실장, 수석비서관 인사와 관련된 문서를 미리 받아보는 등 청와대 인사에 개입했다는 의혹도 제기됐지만 박 대통령은 언급하지 않았다. 최씨가 단순히 연설문·홍보문을 보고 시중 여론을 전달하는 수위가 아닌 국정에 깊숙이 개입한 정황과 의혹은 그대로 남은 것이다.

또 박 대통령은 “청와대 보좌체계가 완비된 이후” 최씨 연설문 첨삭이 멈췄다고 했지만, 최씨가 본 마지막 문건은 2014년 7월 문건이었다. 박 대통령 해명대로라면 취임 후 무려 1년5개월이나 보좌체계가 완비되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 이와 관련해 여권에선 그해 11월 ‘정윤회 문건’ 사건을 주목한다. 문건 유출과 국정 농단 파문이 불거지자 최씨에게 청와대 내부 문건을 전달하는 것을 멈춘 게 아니냐는 것이다.

■대통령 의상 챙겨…영향력 계속

그러나 최씨 위세가 이후에도 여전했다는 정황들은 속속 나타나고 있다. TV조선은 이날 최씨가 2014년 11월 서울 강남 한 의상실에서 박 대통령이 국내외 행사에서 입을 옷과 장식을 고르는 장면을 담은 폐쇄회로(CC)TV 영상을 입수해 보도했다. 11월3일 촬영된 화면에서 최씨가 챙겼던 붉은 계열의 의상은 일주일 뒤 중국 베이징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박 대통령이 입었다. 2014년 9월 박 대통령의 4박7일 일정 ‘북미 순방 일정표’도 화면에 포착됐다. 이 때문에 JTBC가 확보한 파일 중 가장 늦게 작성된 시점을 근거로 최씨와의 관계를 ‘일정 기간’이라고 선을 그은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된다.

그러다보니 ‘국정 농단’ ‘국기 문란’ 의혹은 그대로 남았다. 청와대 안종범 정책조정수석 관여 의혹이 제기된 미르재단·K스포츠재단 논란, 최씨 딸 정유라씨의 이화여대 학사부정 등은 최씨 위세가 계속됐음을 보여준다. 박 대통령의 사과로 추락하는 지지율 등 정권의 위기에서 벗어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국민 사과 방식을 두고도 진정성 논란이 일고 있다. 박 대통령은 오후 3시35분쯤 기자회견장에 도착해 95초간 준비한 원고를 읽은 뒤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질문을 받지 않고 곧장 퇴장했다. 청와대는 언론에 보도시점을 오후 4시로 정해 ‘녹화 사과’란 비판이 나온다. 최순실 게이트에 직간접적 연관성이 제기되는 우병우 민정수석, 안종범 정책조정수석, 김용승 교육문화수석은 배석하지 않았다.

<이용욱 기자 wood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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