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의 재도전 판돈이 달라졌네

천관율 기자 입력 2016. 4. 27.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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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가 부활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는 대선 레이스에서 사실상 탈락한 것으로 여겨졌으나, 총선 약진으로 극적인 반전을 만들어냈다. 문재인은 살아남았다. 더불어민주당(더민주) 문재인 전 대표는 더민주가 수도권 압승과 영남 진출로 원내 1당이 되면서, 호남 참패라는 부담은 안았지만 일단 책임론에서 벗어났다. 야권의 리더십은 당분간 이 두 축을 중심으로 재구성될 가능성이 높다. 2012년의 치열했던 대선 레이스에 이은 2회전이다. 더민주에 비노계 대선주자가 여럿 포진해 있고 국민의당에 호남 블록이 공고하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여론은 두 인물을 각 당의 얼굴로 인식한다.

ⓒ사진공동취재단 : 2015년 12월30일 서울 도봉구 창동성당에서 열린 김근태 4주기 추모미사에 참석한 안철수(왼쪽)·문재인(오른쪽) 의원.

2016년부터 벌어질 2회전은 2012년의 1회전과는 다르다. 무엇보다 두 주자의 ‘판돈’이 달라졌는데, 특히 안철수 대표의 변화가 극적이다. ‘1회전 안철수’는 2030 세대와 무당파의 폭발적인 지지를 등에 업은 후보였다. 2016 총선에서 드러난 ‘2회전 안철수’의 주된 자산은 호남과 중·장년층이다. 2030 세대는 대거 퇴장했다. 불과 4년 만에 일어난 변화다.

아래 <그림 1>은 주요 국면에서 조사된 안철수 대표의 지지층을 연령대별로 추적한 그래프다. 시기별 한국갤럽 여론조사 자료를 재구성했다. 대선 출마를 선언했던 2012년 9월에 대선주자 안철수의 주력 지지층은 20대(36%)와 30대(41%)였다. 50대는 시큰둥했다(17%). 대선 이후 서울 노원병 보궐선거로 국회에 입성한 안철수 의원은 2013년 11월 신당 창당을 추진한다. 이 ‘1기 안철수 신당’의 주력 지지층 역시 2030 세대였다(38%). ‘안철수 현상’은 본질적으로 대안을 요구하는 청년 세대의 폭발이었다.

2016년 총선을 앞두고 탈당한 안철수 의원은 ‘2기 안철수 신당’을 띄운다. 2기 신당의 지지율을 떠받친 것은 여전히 2030 세대였으나, 지지의 크기는 적잖이 줄어 있었다(26%). 이후 국민의당 간판을 내건 2기 신당은 고난의 행군에 들어간다. 정당 지지율이 8%에 머무는 위기를 겪으며 2030 세대의 지지율도 빠르게 한 자릿수로 추락했다. 그런데 총선 직전부터 반전이 일어났다. 국민의당 지지율이 3월 5주차 조사부터 급격한 반등세를 보이더니, 총선 직전인 4월 2주차 조사에서는 17%로 뛰어올랐다. 반등을 견인한 것은 50대였다(25%). 한때 안철수 현상을 상징하던 20대는 뚜렷이 이탈했고(8%), 30대도 전체 지지율을 밑돌았다(14%).

그 결과는 비례대표 선거 출구조사에서 뚜렷이 나타난다. 20대와 30대에서는 더민주가 더 많이 득표하고, 40대에서 경합세로 돌아서며, 50대 이상은 국민의당이 더 많이 득표했다고 방송 3사 출구조사는 예측했다. 여야 경쟁에서 등장하던 세대별 표 갈림 현상이 두 야당의 경쟁에서도 등장했고, 청년 현상의 아이콘이던 안철수 대표의 지지층이 이제는 상대적으로 더 나이가 많다. 이건 무슨 의미일까?

반새누리 연합의 두 축 어긋난 20대 총선 결과

고전적인 반(反)새누리 연합은 크게 두 축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는 호남이다. 역사적 궤적 때문에 호남 거주민은 물론 수도권에 사는 호남 원적자 가족도 강한 반새누리 성향을 보여준다. 도시 중산층이 두 번째 축이다. 그중에서도 비교적 젊고, 고학력이고, 개인의 자유에 대한 국가 개입은 거부하지만 경제 영역에서 시장의 불평등에 어느 정도는 국가가 개입해 교정해야 한다는 성향을 가진 블록을 흔히 ‘리버럴’이라고 부른다. 호남을 원적지로 하는 고학력 도시 중산층은 두 정체성을 동시에 갖는 경우도 많고 연합 내부에서 둘의 충돌과 갈등도 빈번했지만, 어쨌든 두 블록은 반새누리 연합의 양대 축 구실을 해왔다.

그런데 2016년 총선은 두 축의 분열이 극적으로 드러난 선거이기도 하다. 도시 리버럴은 더민주의 수도권 압승을 견인했다. 호남은 국민의당으로 확연히 쏠렸다. 연령별 지역별 투표 성향을 통해 추론해볼 수 있듯이, 반새누리 연합의 핵심 지지 블록 둘을 문재인(리버럴)과 안철수(호남)가 나눠 가진 모양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국민의당의 선전은 호남 결집 이상의 사건이었다. 국민의당이 얻은 정당 득표는 636만 표, 득표율로는 26.7%였다. 더민주가 얻은 607만 표보다 많다. 비례 득표력만 보면 국민의당은 새누리당에 이은 제2당이다. 기존 양당처럼 단단한 지지층과는 거리가 멀지만, 규모 자체가 간단치 않다. 서울대 정치학과 박원호 교수는 '호남 지역당의 등장보다는 더 큰 사건일 가능성이 높다'라고 논평했다.

만일 이번 총선이 호남·리버럴 연합의 분열만을 뜻하는 것이라면, 국민의당의 호남 약진은 설명할 수 있어도 비례표 636만 표를 설명하기가 곤란하다. 박원호 교수는 상세한 데이터가 나오기 전에는 가설 수준의 설명일 수밖에 없다는 전제하에 이렇게 말했다. '만일 호남·리버럴 연합을 대체할 수 있는 ‘호남 플러스 알파’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이번 비례 투표가 대체 연합을 만들어낸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라면?'

이런 얘기다. 호남·리버럴 연합은 서로를 썩 달가워하지 않으면서도 합치지 않으면 새누리 지지 블록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연합을 유지해왔다. 그런데 기존 정당이 미처 대변하지 못했던 선호를 가진 유권자 블록이 대규모로 존재한다면? 그리고 그 블록을 반새누리 연합으로 포섭할 수 있다면? 그때는 안철수 대표가 호남 고립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도식화하면 <그림 2>와 같다. 여기서 가로축은 ‘개인 자유’를 중시하는 정도를, 세로축은 ‘시장 자유’를 중시하는 정도를 나타낸다. 리버럴은 대체로 ‘개인의 자유와 시장에 대한 국가 개입’의 조합을 지지하는 블록을 뜻한다. ‘2-D’ 지역이다. 여기가 반새누리 연합의 고전적인 두 기둥 중 하나다.

그런데 이 그림에서 ‘2-A’와 ‘2-B’에 해당하는 시장 자유주의자가 한국에서는 의외로 갈 곳이 없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2-D’의 손을 잡고 반새누리 연합에 참여하기에는 국가의 시장 개입에 거부감이 크다. 그래서 주로 새누리당에 투표하곤 하는데, 새누리당은 잠시만 한눈을 팔면 권위주의와 국가주의(‘2-C’)로 미끄러져가곤 한다. 박근혜 정부 들어 통치 형태와 내용의 퇴행이 두드러지면서 특히 ‘2-A’ 블록이 도저히 새누리 투표 블록에 남아 있기 어려운 상황이 전개되었다. 이 좌표에 있는 유권자들은 공천 과정의 유승민 찍어내기나 청와대의 노골적인 선거 개입과 같은 퇴행에 ‘2-C’ 그룹 유권자보다 민감하다.

여기가 안철수 대표의 블루오션일까? 알 수 없다. 이 유권자 블록의 크기도, ‘전향’ 가능성도 검증되지 않았다. 다만 기존 정당들이 놓치기 쉬운 이 블록이 의외로 ‘숨은 다수파’일 가능성은 연구해볼 가치가 있다고 박원호 교수는 지적했다. '연구가 부족한 상태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삼성이 살아야 한국 경제가 산다’라거나 ‘내 능력으로 벌어서 살 테니 국민연금이니 세금이니 뜯어가지 말았으면 좋겠다’라는 정서는 한국에서 꽤 보편적이다.' ‘2-A’ 블록이 꼭 이론으로 무장된 시장주의자일 필요는 없다. 직관과 정서 차원에서 국가 개입을 극도로 싫어하고 내 능력으로 앞가림하며 살겠다는 태도는 아주 흔한데, 이 정도로도 충분히 ‘2-A’ 블록 유권자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기존 정당 응징 차원에서 국민의당으로 움직인 유권자의 성향이 ‘2-A’ 블록에 해당한다는 징후도 있다. 조사방법론과 정치사회학 연구자인 서울대 김석호 교수(사회학)는 이번 총선에서 방송 3사 출구조사팀에 속해 여론의 변화 추이를 추적했다. 김 교수는 이런 논평을 들려줬다. '이들을 견고한 국민의당 지지층이라고 보기에는 아직 무리이며, 기존 정당에 대한 응징 성격이 더 강해 보인다. 새누리당과 더민주 지지층 모두에서 이동이 감지되었는데, 특히 새누리 지지층 중에서는 화이트칼라가 이동한 징후가 있다. 50대 이상의 고소득층이 움직인 것 같다.'

ⓒ사진공동취재단 : 2012년 12월15일 서울 광화문 유세에서 예정에 없이 깜짝 등장한 안철수 전 후보가 자신이 매고 있던 노란 목도리를 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 후보에게 둘러주고 있다.

의미심장하게도 국민의당에는 이런 성향 유권자를 잡아내본 기획자가 있다. 비례대표 8번에 이름을 올린 이태규 당선자는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만들었던 선거 기획자였다. 당시 이명박 후보는 수도권의 합리적 보수층을 주력으로 포섭하면서, 영남권 정통 보수가 기반인 박근혜 후보보다 앞선 본선 경쟁력으로 험난한 당내 경선을 돌파했다. 이명박 후보는 ‘가장 진보적인 후보’로 유권자에게 인식될 정도로 시장 자유와 시민적 자유에 대해 열린 인상을 심어주었다가, 집권 이후에는 민간인 사찰과 공영방송 통제 등 시민 자유의 본질적 가치를 침해했다.

새로운 반새누리 연합을 만들어내 리버럴이 선호하는 문재인 카드를 고립시키는 것은 안철수 대표 처지에서 최선의 시나리오다. 이번 총선 과정에서 리버럴이 연합의 분열을 주도한 안철수 대표에 대해 갖게 된 강한 반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구체화 단계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고, 대선까지는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 안철수 대표 처지에서 최대로 잡은 기대수익이 ‘새로운 연합 창출’이라면, 당장 ‘현찰’은 호남이다. 이 현찰만으로는 수도권 선거를 이기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이번 총선은 보여 주었다. 국민의당은 야권 내에서 의석 배분으로 봐도 확실한 소수파고, 지지층의 견고함도 의심스럽다.

안철수 대표의 ‘호남 기반’ 그리고 대북정책

하지만 한국 정치는 지역 기반이라는 ‘확실한 현찰’의 위력을 되풀이해 입증해온 역사이기도 하다. 수도권 주도 보수당이라는 웅대한 꿈을 꾸었던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친이계는 한때 청와대와 국회를 모두 장악하며 전성기를 누렸지만, 불과 4년 만에 당내 소수파로 전락하고 대권 후계자를 만드는 데도 실패했다. 지지율 부침이 있어도 영남이라는 지역 기반은 어느 정도 버텨주는 반면 스윙 지역인 수도권은 그게 어렵다. 비슷한 일은 반새누리 연합에서도 있었다. 개혁적 전국 정당을 꿈꾸었던 열린우리당은 2004년 총선의 압승을 유지하지 못하고 2007년 대선 국면에서 사실상 공중분해되었다. 지역 기반이라는 현찰은 단순한 의석 배분 이상으로 비빌 언덕을 제공하기 때문에 협상력을 높여준다.

다만 호남을 지지 기반으로 한다는 것은 대북 정책에서 상당한 제약을 받는다는 의미다. 햇볕정책으로 대표되는 대북 포용 노선은 호남 기반 정당이 폐기하기 어렵다. 그런데 안철수 대표를 상징하다시피 하는 슬로건 중 하나가 2012년 대선 때 내세웠던 '경제에는 진보, 안보에는 보수'라는 말이다. 이 말을 다시 좌표로 그리면 왼쪽의 <그림 3>이 된다. 가로축은 경제에 대한 태도를, 세로축은 안보(사실상 ‘북한’)에 대한 태도를 나타낸다. 반새누리 계열 세력의 전통적인 좌표는 ‘3-A’다. 반대로 새누리당의 전통적인 좌표는 ‘3-C’다. 2012년 안철수 후보는 기존 정당이 대변하지 않는 ‘3-D’에서 거대한 유권자 집단을 발견해냈다. 이 유권자 집단의 파괴력이 워낙 강해, 좌표 ‘3-D’의 유권자가 알고 보니 최대 다수파였을지 모른다는 논평이 나올 정도였다.

공교롭게도 호남의 성향을 이 좌표로 구분하자면 오히려 ‘3-B’에 가깝다. 경제적 태도에서 호남이 유난히 진보적일 이유는 찾기 힘든 반면, 북한에 대해 포용·교류·협력을 선호하는 태도는 어느 정도 분명하게 나타난다. 총선 과정에서 더민주 김종인 대표가 내놓은 북한 궤멸론이 호남 민심을 악화시켰다는 분석도 나왔다.

안철수 대표 특유의, 기존 양당이 대변하지 않는 숨은 다수파 발굴 전략은 ‘3-D’에서 최대의 파괴력을 낸다. 그런데 호남이라는 핵심 지지 블록과 그를 기반으로 한 당내 호남 세력은 ‘3-D’를 용인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 다루기가 매우 까다로운 시한폭탄이다.

수많은 고비가 있다 하더라도, 제3당이 생존의 공간을 확보하려면 단순한 진보·보수 직선 좌표가 아니라 <그림 2>나 <그림 3>처럼 좌표의 차원을 확장해내야 한다. 한국에서 이런 시도가 성공 가능성이 있을지는 논란이 많지만, 어쨌거나 안철수의 정치 궤적은 좌표 확장에 성공할 때 파괴력이 최대로 올라가고 틀에 갇힐 때 실패하는 패턴을 되풀이했다.

안철수 대표 측에 오랫동안 핵심적인 조언을 해온 한 전략통은 안 대표의 미래를 이렇게 내다봤다. '대선 전 통합은 안 대표의 머리에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파트너가 될 친노를 믿지 않는다. 당내 호남 세력으로부터 통합 압력이 와도 버틸 가능성이 높다. 일단은 독자 완주다. 수도권 경쟁력에서 우위를 확보하려 할 것이다. 그러면 자연히 사퇴 압력이 더민주 후보에게로 간다. 아마도 내년 4월에 보궐선거가 있다면 거기서 경쟁력을 시험할 가능성이 있다. 이번에 새누리당에서 튕겨 나온 수도권의 합리적 보수 인사들도 영입하려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안철수가 확실히 주도하는 통합은 생각해볼 수 있다. 이건 총선 이후 더민주 내부 사정에 달렸다. 당내 소수파인 비노·비문 세력이 안팎으로 호응하는 그림이라야 안 대표도 통합을 옵션으로 고려할 것이다.'

어떤 구상으로 가려 하든 관건은 호남 밖에서 지지 블록을 만들어내는 것이고, 그러려면 문재인 전 대표가 공고하게 다져놓은 리버럴을 우회해서 그걸 해내야 한다. 패는 깔렸다. 대선 재수생 안철수는 ‘새로운 연합의 가능성’이라는 의심스러운 수표와, 시한폭탄 달린 현찰 호남을 들고 다시 테이블에 앉았다.

천관율 기자 /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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