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등록 당일 판 뒤엎은 집권여당 대표 '황당 드라마'
■ 4.13 총선
◆ 金 측 "코너 몰려 불가피한 선택"
그동안 김 대표는 당내 친박계, 청와대 등과 갈등이 생기면 결국엔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여왔다. 그러나 총선을 3주 앞두고 발표한 '무공천 지역' 결정은 이번만큼은 본인의 뜻을 관철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총선 결과를 책임져야 하는 당 대표로서 '더 물러서면 정치적 기반이 완전히 무너질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이 발동한 것으로 보인다. 김 대표는 대구 동을(유 의원), 서울 은평을(이재오 의원), 대구 동갑(류성걸 의원) 등 5곳은 상향식 공천의 취지에 맞지 않게 지지도가 높은 예비후보가 공천되지 않아 공관위의 심사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했으나 번번이 친박계 최고위원들의 집단 반발에 부딪쳤다.
23일 밤 유 의원이 탈당을 발표한 직후엔 최고위에서 "이런 식으로는 (당 대표를) 못해먹겠다"고 말할 정도였다. 특히 이날 오전 공관위가 대구 동을에 이재만 후보를 단수 공천하겠다고 밝히자 결국 김 대표가 '옥새 투쟁'을 선택했다는 후문이다.
김 대표 측 관계자는 "친박계가 공천을 주도하면서 김 대표 의견은 대부분 무시되는 쪽으로 흘러갔다"며 "이번 옥새 투쟁은 코너에 몰린 김 대표로선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김 대표가 최고위에서 마지막까지 의결을 보류했던 지역의 후보들은 모두 유 의원과 가까우면서도 지역 경쟁력이 있는 인사거나 영향력 있는 당내 중진이다. 무공천 결정으로 이들을 간접 지원하는 모양새가 되면서 김 대표는 공천 국면에서 한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비박계들을 규합하는 역할도 자연스럽게 할 수 있게 됐다.
유 의원이 탈당으로 친박 견제 세력의 선봉에 선 것처럼 이날 발표로 김 대표 역시 본격적으로 당내 계파 투쟁의 구심점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김 대표의 행보가 너무 유치하다. 보이콧을 선언하고 부산에 가는 모습은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 대표의 데자뷔"라면서 "박 대통령을 상대로 선전포고를 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힐난했다.
◆ 원유철 "오늘 최고위"-김무성 "입장 그대로"
화들짝 놀란 친박계 최고위원들은 이날 오후 5시에 원내대표실에 모여 대책회의를 열었다. 전날 새벽 감자탕 회동까지 하며 공천 심사에 대한 의견을 봉합한 것으로 여겼다가 김 대표에게 뒤통수를 맞은 격이기 때문이다.
25분간 대책을 논의한 친박계 최고위원들은 "김 대표의 행동은 정상 당무를 거부하는 심각한 상황"이라며 "조속히 긴급 최고위를 열어야 하며, 끝까지 거부하면 당헌 30조, 당규 4조, 7조에 의거해 (자체적으로) 최고위를 열어 (5곳의 공천안을) 의결하겠다"는 결론을 냈다.
회의가 끝난 뒤 서청원 최고위원은 "당헌·당규에 따르면 원내대표가 (대표직을) 대행해 (최고위를) 소집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보면 친박계 최고위원들이 유리하지 못한 상황이다. 총선 후보 등록 시한이 25일 오후 6시까지로 물리적인 시간이 촉박하기 때문이다. 원 원내대표는 회의 직후 부산으로 건너가 김 대표를 만났다. 이날 오후 두 사람은 비박계인 이진복·박민식 의원과 함께 부산 중구 자갈치시장의 한 횟집에서 1시간가량 이야기를 나눴다. 회동 후 원 원내대표는 김 대표가 상경하기로 했다고 취재진에게 밝혔다. 그러나 김무성 대표는 "당사 대표 방에 가서 업무를 보겠다"고만 밝힌 뒤 최고위 소집 의사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일단 원 원내대표로서는 김 대표를 여의도로 복귀시켜 최고위 개최의 물꼬를 튼다는 데는 성공한 셈이다. 그러나 김 대표 입장에선 원 원내대표의 설득을 받아들였다기보다는 친박계 최고위원이 당헌 30조를 자의로 해석해 최고위를 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상경 후 당무'를 선택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회동을 통해 김 대표가 부산에 머문다는 의지를 접었다는 측면에서 25일 극적 갈등 봉합의 여지는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김 대표가 요구한 지역 중 1~2곳에 대해서만 무공천을 실시하는 절충안이 나올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 5개 지역 與 후보들 "황당하다" 반발
이변이 없는 한 공천이 확정될 줄 알았던 유재길, 유영하, 정종섭, 이재만, 추경호 후보는 김 대표의 강수로 출마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돼버렸다. 유재길 후보는 매일경제와 통화하면서 "도저히 상상하기 어려운 결정이다. 황당하다"며 "김 대표의 무공천 지역 선언은 피선거권을 원천봉쇄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명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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