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되게 낯설다"..더민주의 '인재자랑대회'
[한겨레] 정치BAR_“김종인, 김종인”연호…여긴 어디?
1월17일, 평소같으면 조용했을 일요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 주변은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더불어민주당(더민주)이 세계적인 지식 강연 프로그램인 테드(TED)를 본따 개최한 ‘더불어 컨퍼런스 사람의 힘’행사가 열렸기 때문입니다. 총선을 앞두고 더민주가 영입한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김병관 웹젠 의장·오기형 변호사·김빈 디자이너·양향자 전 삼성전자 상무·김정우 세종대 교수 6명의 인사가 번갈아 무대에 올라와 우리 사회의 문제와 그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는 형식의 프로그램이었습니다. 6명 모두 전문분야에서 몸담고 있던 분들이라 가능한 프로그램이겠죠. 저는 더불어민주당을 출입한지 2년3개월 정도 됐습니다. 그런데 이날 풍경은 낯설기만 했습니다. 낯설었던 몇 가지 장면을 소개합니다. (낯설었던 이유는 조금씩 다릅니다.)
1. 야당 행사에서 터져나온 ‘김종인’이라는 이름
최근 선거대책위원장에 임명된 김종인 선대위원장이 무대에 모습을 나타내자,“김종인, 김종인”김 위원장의 이름을 연호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왔습니다. 순간 ‘내가 행사를 잘못 찾아왔나’라는 생각이 들며 어리둥절했습니다. 이날 행사 참석자들은 최근 가입한 온라인 신입당원과 기존 당원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야당 지지자들이 모인 행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 멘토’로 불렸던 김 위원장에 대한 뜨거운 반응이 낯설기만 합니다. 더민주 안에서 여당 인사들에 대한 거부감은 생각보다 크기 때문입니다.
2014년 9월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가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를 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선임하려했다가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을 지냈던 이 교수의 이력에 대한 당내 반발로 무산된 적이 있습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SNS에선 이상돈 교수 영입불발과 김종인 위원장의 영입을 두고 온도차를 보이는 더민주 의원들의 모습을 꼬집는 글들이 심심찮게 올라오기도 합니다. ‘모순’이라는 거죠. 하지만 안철수 의원의 탈당과 연이은 의원들의 탈당과 분당론 등 당이 어수선한 상황에서 ‘김종인 카드’가 더불어민주당을 반등시키는 디딤돌이 됐다는 것에는 대다수가 동의합니다. 더민주와 안철수 의원의 국민의 당이 야권 주도권을 두고 경쟁한다고 했을때, 경제민주화를 상징하는 김종인 위원장의 영입은 ‘절묘한 수’라는 것이죠. 김 위원장에 대한 더민주 지지자들의 뜨거운 반응은 그동안 지켜본 당의 위기에 대한 절박감이 투영된 것일까요.
2. 멘토와 정치판‘테드’…젊은 정당 이미지 회복?
원래 더불어민주당은 젊은 정당을 표방했습니다. 하지만 대선 패배 등 연이은 선거 패배를 거치며 무기력하고 기득권에 안주하는 낡은 정당이라는 이미지가 형성됐습니다. ‘젊은 정당’이란 이미지에서 멀어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날 행사는 젊은 층에게 익숙한 테드를 벤치마킹하며 신선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또 강연자로 나선 6명의 인사들은 정치권 경험은 없지만 각기 전문분야를 가진 분들입니다. 당연히 강연 내용도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습니다. 몇분은 ‘멘토 강연’에 갖다놔도 어울릴만한 분들이기도 합니다.
방송인 출신으로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표창원 전 교수가 다양한 사례를 들며 “더불어민주당이 많이 졌다. 그렇다고 떠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역전승을 못보고 떠나가는 팬들이 떠오른다. 우리는 함께 해낼 수 있다. 여러분의 페이스메이커가 되어드리겠다”고 목소리를 높이자 객석에서는 박수와 함성이 터져나왔습니다. 김병관 의장은 차분하게 자신의 벤처 창업 경험을 소개했고, 양향자 전 상무는 “스펙은 결과가 아닌 자부심이라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모두 마이크 대신 헤드셋을 착용하고 프리젠테이션에 나섰습니다.
그동안 “인재가 없다”고 고심하던 정당이 ‘인재자랑대회’를 한 셈이죠. 이들을 소개하는 문재인 대표의 표정은 밝았고 발언에는 힘이 실렸습니다.
“각 분야의 전문가이고 지금껏 우리 당에도, 기존 정치권에도 매우 드문 새로운 인물들이다. 여기에 경제민주화의 상징 김종인 박사님을 선거사령탑으로 모셨다. 정말 어려운 결심을 해주셨다. 당원 동지 여러분, 큰 박수 부탁드린다.”
손혜원 홍보위원장이 더불어민주당 로고를 활용해 디자인한 점퍼, 머그컵, 천가방 등의 당 기념품도 이날 공개했는데, 프로야구 구단이 유니폼·모자·마스코트 인형 등의 기념품, ‘굿즈’를 마케팅하는 모습과 겹쳐지기도 했습니다. 당 기념품은 행사장 밖에서 판매가 이뤄지기도 했습니다. 문재인 대표와 영입 인사들이 기념품을 직접 들고 홍보하는 ‘패션쇼’도 있었습니다. ‘근엄하고 고집센 50대 정당’이라는 기존의 익숙한 정당 이미지와는 다른 풍경이었습니다.
3. 활짝 핀 문재인 대표의 얼굴
이날 컨퍼런스에 참여한 관객들은 최근 가입한 온라인 당원들의 대부분이었다고 합니다. 문재인 대표의 열성 지지자들이 많이 참여한 것 같았습니다. 행사 전부터 ‘문팬’이라고 쓰인 손팻말을 들고 서있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문 대표가 입장하자 ‘문재인, 문재인’을 연호하는 함성이 터져나왔습니다. 급기야 아이돌 그룹의 콘서트에서 나올법한 “우유빛깔 문재인”이라는 외침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문 대표가 무대에 올라서자 청중들 대부분이 일어서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 문 대표와 안철수 의원의 계속된 ‘핑퐁게임’, 탈당, 비주류들의 대표 사퇴 요구 등 계속 흔들려온 당의 모습을 매일 보다가 청중들의 열띤 반응을 보니 당황스럽기도 합니다. (최근 굳은 표정일때가 많았는데) 몇배나 밝아진 문 대표의 표정도 낯설었고요.
문 대표는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여러분께서 민주주의와 국민의 삶을 지키는 10만 양병이 되어 주십시오. 20만, 40만으로 온라인 당원을 배가해서 우리당의 당원 구조를 바닥에서부터 바꿔주십시오. 여러분이 우리 당의 미래이고 새로운 희망입니다.”
비주류 의원들은 이러한 모습에 대해 “친노(친노무현) 열혈 지지자들로는 당의 확장에 한계가 있다. 열성 지지자들만 보고 정치하면 안된다”고 비판하곤 합니다. 반대로 주류쪽은“여의도 밖 국민의 여론은 다르다”고 반박합니다. 이날 풍경은 3~4년간 계속된 당내 주류-비주류의 뿌리깊은 갈등과 더민주와 국민의당으로 나눠진 야권의 상황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작은 조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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