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고위급접촉은 사실상 '대리 정상회담'

박영환 기자 2015. 8. 24.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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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째 이어지고 있는 남북 고위급접촉은 우리측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홍용표 통일부 장관, 북측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과 김양건 노동당 대남 비서가 대표로 나선 ‘2+2 회담’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남북 안보 1인자들 간의 회담이다.

하지만 실제 접촉 진행 과정을 보면 사실상 박근혜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 간의 ‘대리 정상회담’에 가깝다. 양 정상이 접촉 상황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며 협상 방향을 지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위급접촉은 판문점 우리측 평화의 집에서 언론에 전혀 공개되지 않고 비공개로 열리고 있다. 양측 정상은 그러나 실시간으로 접촉 내용을 파악하고 있다. 회담장에는 폐쇄회로(CC)TV가 설치돼 있고 영상과 소리가 남측으로 전송된다. 청와대, 국가정보원, 통일부는 실시간으로 회담을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특히 청와대는 위기관리상황실에서 내용을 확인하면서 실시간으로 지시도 내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과 김 실장간 연락 채널이 상시 열려있는 것이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회담이 남측 평화의 집에서 열리고 있지만 CCTV를 통해 협상장의 화면과 음향이 실시간으로 전달된다. 김 제1비서도 평양에서 협상 상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황 총정치국장에게 지시를 내릴 수 있다는 의미다.

양측 정상의 직·간접 지시는 주로 전화를 통해 협상장에 나가 있는 대표들에게 전달된다. 지시 전달은 도·감청 위험이 적은 판문점 내 남북 개별 대기실에서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과거 남북 협상의 경우, 북측은 예민한 문제를 결정해야 할 때 평화의 집을 나와 판문점 북측 지역으로 넘어가서 ‘상부’에 보고하고 훈령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향후 한반도 정세의 분수령이 될 이번 협상도 마찬가지로, 김 제1비서의 지시를 전달받을 때는 판문점 북측 지역으로 넘어가 중요한 보고와 답신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접촉이 길어지는 것도 이런 복잡한 과정을 통해 양 정상의 지시를 직접 받고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협상 대표 간 대화뿐 아니라 정상의 판단을 기다리는 데 시간이 걸리고 있다는 것이다. 정상들이 협상에 실시간으로 개입하게 되면서 내용상으로도 양측 대표의 재량이 줄어들고, 돌파구 마련이 어려워지는 면이 있다.

따라서 이번 접촉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면 사실상 남북 정상간 입장차가 분명히 확인된다는 의미가 된다. 양측이 시간을 투자해서라도 뭐든 성과를 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큰 상황이다.

<박영환 기자 yh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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