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 조성주 "용기있는 타협과 작은 성공으로 단단해져라"

입력 2015. 6. 28. 10:40 수정 2015. 6. 28.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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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뉴스분석, 왜?

정의당 대표 출마한 조성주씨

▶ 지난 23일 조성주 정의당 대표 후보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조성주 당원님이시죠? 선거에 누가 나오신 줄 아십니까?" 다른 후보의 선거운동원이 물었습니다. "제가 출마했습니다."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조 후보가 웃으며 말하더군요. "저 좀 찍어 주십시오!" 선거운동원은 단호하게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조 후보는 페이스북에 "아직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놈)인 것 같은데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썼습니다. 곁에서 본 실제 상황입니다.

"약자들의 싸움에선 패배해선 안 된다. 강자들은 한번 패배가 좋은 약이나 좋은 경험이 되지만, 진짜 없는 사람들은 한번의 패배로 모든 게 무너진다. 약자들의 싸움은, 약자들과 함께 싸우는 사람은 이기는 싸움을 해야 한다. 질 것 같은 싸움은 피하고 도망가고, 이길 수 있는 싸움만 해야 한다. 약자는 한 번의 패배가 끝이다."

인터뷰를 하다 딴생각을 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질문을 하고 답변을 듣다 그 답변과 관련된 지극히 개인적인 과거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다. 지난 23일 서울 합정동 후마니타스 책다방에서 조성주(37) 정의당 당대표 후보를 만나 약자들의 싸움이 무엇인지에 관해 듣고 있을 때였다. 상대의 말소리는 멀어지고 생각은 후마니타스 책다방을 빠져나와 1년 전 여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옛 직장 선배의 장례식장에 닿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허탈함으로, 공기 빠진 인형마냥 주저앉아버린 옛 직장 동료들과 그 속의 내가 보였다. 장례식장에서 입술을 깨물고 처음으로 후회했었다. '회사와 싸우지 않았더라면, 선배를 살릴 수 있었을까, 죽지 않았을까. 그깟 정의, 그게 뭐라고, 그딴 게 뭐라고….' 결사 투쟁이라 외치며 주먹을 쥐고 회사 앞에서 함께 노래부르던 기억이 반복해서 지나갔다. 옛 직장에서 3년 전 벌인 파업 패배와 선배의 자살이 명확한 인과관계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파업이 실패하고 동료들이 떠나갈 때 끝없이 혼자만의 괴로움과 우울함으로 침전해 들어갔다는 사실이다.

사실 90분에 걸친 조성주 후보와의 인터뷰가 귀에 들어온 건 시작한 지 약 15분이 지나서였다. 약자들의 싸움은 한 번의 패배로 모든 게 무너진다는 말을 듣고 나서였다. 2009년 쌍용차 집단 해고 이후 노동자와 가족 등 28명이 자살 등으로 목숨을 잃었다. 약자들의 패배는 모든 걸 잃게 하는 싸움이 대부분이다. 사회는, 사람들의 출발선은, 강자와 약자의 싸움은 비틀어질만큼 기울어진 그라운드에서 벌어지는 게 현실이다. 약자가 정의를 부르짖었던 시간이 핏빛 비수로 되돌아오고, 동료나 가족이 죽고, 다시 정의라는 이름을 내걸고 내 삶을 드러내놓기가 얼마나 두려워지는지. 망설여지는지. 사람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지금 기득권이 되었다면, 정의를 책이나 이념으로 먼저 익혔다면, 밥줄이 걸린 현장이 아니라 운동장에서 투쟁을 배웠다면, 내 곁의 약자가 모든 걸 잃고 처참해지는 상황에 가슴 저며 본 적 없다면. 조성주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조금 비겁해도, 우리 다 같이 이길 수 있고, 덜 다칠 수 있는 싸움을 전략적으로 해 보자, 그래도 다 같이 용기내 한 발만 앞으로 더 나아가자는 말이었다. 심상정·노회찬 등의 '진보 1세대'에게 도전장을 내민 서른일곱살 정의당 대표 후보 4번, 조성주는 더 강하고 날 선 주장으로 상대적으로 짧은 자신의 연륜을 포장하지 않았다. 그들의 한계를 지적했지만 맹비난하지 않았다. 그랬다면 우연히 다른 기자 대신 나간 인터뷰에서 귀만 열고 타이핑만 치다 시간을 때웠을지 모른다.

민주주의 밖에서 시작된 나의 세대

"저의 이야기는 아버지의 세상 밖에서 시작됩니다. 제가 성인이 되어 마주한 사회는 아버지 세대가 살아냈고, 성취했던 그것과는 너무나 달랐습니다. 청년들은 선배 세대가 이룬 민주주의 바깥에서 철저히 고립되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조성주 후보가 지난 15일 정의당 누리집에 게시한 '출마의 변'은 화제가 됐다. 민주노총(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공무원노조(전국공무원노동조합) 중심의 운동이 아니라 민주주의 밖의 시민, 노동 밖의 노동자들을 위한 정당이 되겠다고 했다. 노동자임에도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영세 자영업자 등 다양한 직종과 약자를 껴안는 정당을 만들겠다고 했다. 출마의 변은 그가 살아온 삶과 닮아 있다. 대학생 때 높은 등록금과 청년 실업 등 노동문제를 해결해야겠다고 결심한 그는 2010년 3월 대한민국 최초의 세대별 노동조합 '청년유니온'을 만들었다. 청년유니온은 실제 사회를 변화시켰다. 아르바이트생으로 불리던 이들이 노동자라는 이름을 갖게 되도록 사회 인식을 바꾸었다. 30분 만에 배달을 하느라 다치고 목숨을 잃은 청년들을 막기 위해 '피자 배달 30분제'를 폐지시켰다. 커피전문점 아르바이트생들이 주휴수당(1주 동안 규정된 근무 일수를 다 채운 노동자에게 주는 유급 주휴일)을 받을 수 있게 싸웠다.

수십번 취업실패 경험하며청년은 자학하며 고립된다일베의 증가는 진보의 책임알바생 청년 노동조합 만들려전국을 돌며 친구를 만났다정의당 후보 4번으로 섰다"민주주의 밖의 시민과노동 밖의 노동 품는 당 되겠다새누리당이나 대통령 아닌불평등 강요하는 미래와 싸울 것"

-청년유니온을 만들게 된 과정과 계기가 궁금합니다.

"제가 97학번인데 군대 제대하고 오니 대학은 전혀 달랐어요. 선배들은 학생운동이 민주화운동의 선봉대다, 사회를 바꾸는 운동이다라고 말했는데 주변을 보면 등록금 벌려고 아르바이트를 네다섯개 해요. 그때도 등록금이 높았습니다. 어마어마하게 치열한 학점 경쟁을 하며 살아요. 사회를 바꾸는 게 뭐야, 사실상 대학생은 취업준비생들이지, 그게 현실이지. 당시 학생운동이 통일운동, 노동운동과 연대해야 된다고 할 때였는데 저는 등록금 문제,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어요."

- 01학번인 제가 대학 졸업할 때에도 등록금이 학생운동의 주류는 아니었습니다. 좀 이른 주장이었네요.

"그렇죠. 17대 의원인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실에 있을 때 등록금 후불제를 만들었어요. 18대 홍희덕 의원실 보좌관으로 있을 때는 청년실업을 해결하려고 했어요. 청년고용할당제 법안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정책을 만든다고 되는 게 아니었어요. 본인들이 싸움을 해야, 이야기를 내놓아야 유의미해지는 것이잖아요. 그때 일본에 청년유니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바로 저거다, 저걸 하면 되겠다. 국회를 그만두고 그거 만들자고 전국을 돌며 사람을 찾아다녔죠. 대부분 헛소리라고 했어요. 무슨 말도 안 되는 거냐고. 어디에 청년문제에 관심 있다는 사람이 산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 설득하러 갔어요. 경기 안산 지역에 젊은 여성들이 관심있어 한다는 말을 듣고 가서 2009년 초에 만났어요. 그렇게 안면도 없는 세 친구를 만나서 시작했습니다."

"형, 나도 일베가 되었을지 몰라."

청년유니온이 자리를 잡아가자 그는 2013년 서울시 노동전문관으로 영역을 넓혔다. 2012년 대선이 끝난 뒤 정의당에 입당하려 했지만 서울시에서 들어온 노동전문관 제안을 받아들였다. 진보정치 진영에서 부족한 행정 경험을 쌓으면 좋은 자산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는 서울시 일을 마무리하고 지난 4월 정의당에 입당했다.

-선거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노회찬, 심상정 두 분의 스타성이 당을 강화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고 다수의 인터뷰에서 밝혔습니다.

"노회찬 후보와 진중권, 유시민이 진행하는 팟캐스트 '노유진'을 듣고 입당하는 신입 당원이 굉장히 많아요. 심상정 의원의 강력한 메시지에 호감을 느끼시는 분도 많지요. 저는 1세대 진보정치가 실패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노회찬, 심상정이란 두 분으로 올릴 수 있는 지지율은 이제 4~5%입니다. 그게 다 올린 거에요. 이제 다른 방식으로, 조성주라는 2세대 정치의 리더십으로 정당 강화를 하려고 합니다."

-한국 사회에서 진보정당은 약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딛고 있습니다. 정당을 강화하지 못한 것과 스타 정치인 두 사람의 책임. 이 부분에서 인과관계가 잘 설득되지 않습니다.

"그분들의 활약으로 정의당 당원이 2년 사이에 8000명 늘었어요. 그런데 8000명의 당원이 뭐 하고 있냐. 당비 5000원, 1만원을 내고 있어요. 당이 그분들을 활동하게 하고, 조직해야 합니다. 당원한테 맡기면 안 되죠. 가수의 팬클럽도 팬이 모이면 관리가 들어가잖아요. 부산 팬은 무엇을 하시고, 이렇게. 당은 거기에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당직자들은 피로가 누적되고, 역할을 부여받지 못한 당원만 늘었고. 이 상황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당원들에게 미션이 가고 작지만 강하고 움직이는 조직이 되어야 합니다. 야구로 비유하면 투수와 타자, 1번 타자, 마무리 투수 등 제각각 역할이 있어요. 한국은 감독이 야구단을 이끌지만 미국 메이저리그에선 단장이 팀을 구성하고 설계합니다. 감독은 경기를 해요. 경기를 직접 움직이는 건 노련하고 순발력 빠르고 경륜 있는 감독이 해야죠. 하지만 단장은 설계하고 재조직하고 분석합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건, 제가 하겠다는 건 단장의 역할이에요. 팀을 리빌딩하자, 재구성하자는 거예요."

-어떤 영역이든 스타 마케팅은 빠르고 쉽고 확실한 방법입니다. 스타가 아닌 후보께서 한계를 극복하겠다고 했는데 방안이 뭔가요.

"콘텐츠겠죠. 다른 콘텐츠, 다른 음악을 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거죠. 사실은 대중의 선호가 다른 데 있는 것 아니냐는 거죠. 1세대 정치를 하셨던 분들은 1980년대 노동운동 등을 통해 한국 사회를 좋게 만드신 분들이잖아요. 그런데 지금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은 달라요. 노동운동의 바깥, 노동으로 불려지지도 않는 노동이 많아졌어요. 기존의 노동조합 중심에서 확대해 그 밖에 중심을 두고 발을 딛고 서야 합니다. 왜냐, 바깥이 더 많아졌으니까. 저는 나이로 세대교체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진화하자는 것입니다. 1세대가 대변하던 광장 안이 아니라 광장 밖으로 쫓겨난 사람들을 대변하는 진보정치로 바꾸자, 제가 말하는 콘텐츠의 출발점입니다."

-광장 밖으로 밀려난 사람들의 정치적 무관심, 허무주의, 개인주의를 깨고 어떻게 희망을 갖게 하실 겁니까. 그게 더 어려운 것 아닌가요.

"그게 정치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까 이야기하듯이 실패할 것 같은 싸움이 아니라 이길 것 같은 싸움을 하자는 거에요. 작은 성공을 인지시켜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먼 미래의 유토피아가 아니라 지금 당면한 삶의 작은 변화를 보여주자는 거에요. '비정규직 철폐하자'가 아니고 실업급여 3개월을 6개월 받게 해주는 거, 당장 급한 것을 해결하고 경험하게 하는 것입니다. 저는 정치의 힘을 믿습니다. 일베가 만들어진 데는 진보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해요. 청년들이 수십 번의 취업 실패를 경험하고 아르바이트하다가 임금 체불 겪고, 자신이 무력하고 한심한 존재라고 인지하게 됩니다. 상처받고 자학하고 고립돼요. 청년유니온 한 조합원이 그래요. '형, 어쩌면 나도 청년유니온을 안 만났으면, 그래서 체불된 임금을 못 받았으면, 일베가 되었을지 몰라. 내가 한심해서 취업을 못 한 게 아니구나, 사회구조적인 데 문제가 있다는 걸 청년유니온 통해서 알게 되었잖아. 그렇지 않았으면 형, 나도 일베가 되었을지 몰라.' 이야기를 듣는데 너무 놀랐어요. 그들을 대변해주는 정치나 조직이 없고 불평등이 심화되면 거기서 일베가 나온다고 생각해요. 그 친구의 이야기가 참, 저에게는 잊지 못할 기억이에요. 이들을 대변하는 조직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사회를 좋게 만들 수 있겠구나."

타협은 용기다

조성주는 현재 '유쾌한 정치 실험 공동체'를 기치로 내건 정치발전소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정치 냉소주의와 무관심을 내려놓고 좋은 정치의 힘을 믿어보자는 취지다. 그는 3년 전부터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차기 대선 유력 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전 미 국무장관의 정신적 스승으로 불리는 사울 D. 알린스키 강의를 해왔다. <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 등을 저술한 알린스키는 1960년대 노동운동, 빈민운동, 지역사회 운동을 벌였다.

-알린스키가 한 말 가운데 몇 가지를 소개한다면요.

"'타협은 용기다. 타협은 비겁한 게 아니다. 용기 있는 자만이 타협할 수 있다.' 약간 마키아벨리즘적인 요소도 있어요. '비도덕적인 수단을 써야 한다면 과감하게 써라. 대신 혼자 괴로워하면 된다. 전체의 공익을 위해서라면. 차라리 그것이 낫다.'"

조성주의 강의 내용 등을 엮은 책 <알린스키, 변화의 정치학>이 오는 29일 발간된다. "알린스키는 특정 이데올로기를 믿지 않고 도그마(교조)에 빠지는 것을 유난히 혐오했다. 학생운동가들이 혁명이라는 단어가 주는 달콤한 환상에 빠져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부정하고 그 안에서 평범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가난한 사람들의 삶의 고뇌를 무시하는 것을 참을 수 없어 했다."(26쪽)

-알린스키가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가요. 1960년대 미국은 혁명의 시대였습니다. 성조기를 불태우는 반미, 반전 운동 등이 한국의 진보와 닮았다고 생각한 것입니까.

"극단적인 상황은 진보만이 아니라 전체에 있어요. 진영 논리에 갇혀 있다는 말을 하잖아요. 알린스키가 가장 많이 비판했던 것이 예를 들면 이런 거에요. 1960년대 반전운동가 학생들이 경찰에게 증오의 언어를 쏟아내고, 반전이라는 가치에 동의하지 않으면 극우적이고 보수적인 사람들로 밀어붙이는 태도를 비판했습니다. 저는 지금 한국 사회에 증오의 언어만 있다고 생각해요. 박근혜 대통령만 욕하면 그것이 곧 진보인 줄 여겨요. 상대에게 분노를 쏟고, 증오하는 것만으로 우리가 강해지지 않거든요. 그것은 약함의 표현일 뿐이죠. 진짜 내면이 단단하다면, 상대를 설득하는 언어, 내 편으로 끌어오는 의사소통 방식을 써야 합니다. 그래서 출마선언문에 이렇게 썼어요. '정의당은 박근혜 대통령과 싸우는 정당이 아닙니다.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과 싸우는 정당이 아닙니다. 정의당은 미래와 싸워야 합니다. 오늘의 이 폭력적이고 불평등한 체제가 강요하는 미래를 바꾸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목표입니다.'"

-알린스키가 강조한 타협의 순간이 후보에게도 자주 있었습니까.

"제가 17대 최순영 의원실에서 다섯 달 일했거든요. 그때 민주노동당은 국회에 진입한 첫 진보정당이었고 주장이 굉장히 셌어요. 당시 민주노동당이 내세운 대학생 등록금 관련 정책은 무상교육이었습니다. 그걸로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등록금 후불제를 교수노조에 속한 한 교수님이 제시했는데 당시 당은 받을 수 없는 정책이었습니다. 왜? 우리는 무상교육이니까. 등록금 후불제를 받아서 당에 갖고 가서 이거 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우리는 중간 지점으로 가야 한다고 설득했어요. 노동은 늘 타협의 순간입니다. 노사관계는 겉으로 극단적 갈등으로 보이지만 노동자들이 국회를 찾아왔을 때는 대신 싸워달라는 경우보다 중재해서 타협해달라는 것이 많아요. 사쪽을 찾아가서 설득하고 늘 마지막에는 타협을 봅니다."

-올해 4월에 입당하였습니다. 당 대표 선거는 이기기 위해서입니까. 경험이나 도전을 위해서입니까.

"이기기 위해서 나왔습니다. 이길 수 있다고 봅니다. 제가 당 대표에 나오겠다고 결심한 시점은 더 오래전입니다. 정의당 사람들과 계속 관계가 있었고 작년 지방선거 끝나고 입당하려다가 서울시 노동전문관 일이 늦어지면서 양해를 구했습니다. 마무리하고 가겠다고 했어요. 당 유권자가 9742명입니다. 절반 이상이 최근에 입당한 신입 당원이지요. 과거 진보정당 선거는 거의 득표가 계산이 되었어요. 누구 찍을 사람이다, 정해져 있었죠. 지금 그렇지 않습니다. 6000명 이상은 성향이 강하지 않아 깜깜이 선거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신입 당원들을 대상으로 바람을 일으키자. 그럼 이길 수 있다는 판단이 있었죠."

정치와 내면의 단단함

-조 후보의 화법은 정치에서 이기는 언어가 아닌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척결 대상을 정해 놓고 불나방처럼 달려가서 비판하며 통쾌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인간에게는 선을 지향한다며서 악해지는 경향이 있지요. 정치는 그걸 이용하지 않습니까.

"이긴다는 게 뭔가요. 이긴다는 게. 악을 타도하는 것입니까? 저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누군가를 악으로 규정하고 가는 건 굉장히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당장에 제가 박근혜 대통령과 싸우는 정당이 아니라고 하니 반응이 옵니다. 당장 저 사람들과 싸우지 않고 어떻게 미래와 싸우겠느냐고. 당장에 부정한 거 비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게 우리, 나의 정체성이 될 수는 없어요. 그것이 정체성이 되면 늘 분노에 차있고 사람들을 늘 분노하게 해야 해요. 타인의 고통이란 건 자기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느껴요. 당장에 엄청나게 분노하고 슬프고 그렇지만 지속되지 않습니다. 왜? 나의 삶이 있기 때문에. 그런 방식으로 사람들은, 싸움은 지속되지 않습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정치는 결국 누가 더 내면이 단단한가의 싸움이라고 생각해요. 누가 더 화려한가의 싸움이 아니라. 제가 오랫동안 고뇌하고, 노동운동 밖의 사람을 만나고, 민주주의 밖의 시민들을 만나면서 가져왔던 것은 내면의 단단함이에요. 아침마다 거울을 보면서 생각해요. 내가 뭐 하고 있는 거지? 무슨 미친 짓을 하고 있는 거지, 내가? 제가 무슨 대단한 신념으로만 가득 차있고 뭐 그런게 아니고 이를 닦으면서 생각해요. 무슨 짓을 하고 있느냐고. 특히 정치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질문이 찾아옵니다. 정치라는 게 마치 세상 전체와 뭔가를 하는 것 같잖아요. 그 순간을 버텨내는 것은 아, 그래도 내가 누구를 대변해야 하는 거지, 이 사회의 무엇을 좋게 하는 것이 내 사명이지, 스스로 되뇌입니다. 내 이야기에 동의해주지 않으면 당연히 분노하죠, 짜증나죠. 하지만 당장 분노하지 말고 뭔가 다른 방법은 없을까 찾아보는 것입니다."

-정치인들은 자신의 욕망과 공공선을 함께 추구합니다.

"정치가 원래 그런 속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아직 정치가 조 후보 개인의 욕망을 채워주는 단계는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죠."

-조 후보 개인의 욕망은 채워지지 않고 공공선만 추구해야 하는 상황이 지속되어도 계속 정치를 할 겁니까.

"어려운 질문인 것 같아요. 정치인이 정치에서 취할 수 있는 욕망은 일종의 권력이잖아요. 권력감(權力感)을 채우고 대신 그걸 통해서 공익적인 걸 하도록 하는. 저는 권력감에 취하지 않고, 명예감 정도의 수준으로 일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봅니다. 100% 올곧은 사람이 있겠습니까. 내가 혹시 취하는 것은 아닐까, 되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건 혼자서는 못 할 것 같아요. 주위 사람들에게서 신호가 오겠지요. 저에게는 아직 그만큼 권력에 취하는 순간이 오지 않아서 그렇긴 한데 늘 염두에 두고, 고뇌 속에 가지 않겠습니까."

-아무나 정치인이 되지 말아야 하잖아요. 정치인이 되기 위한 자질이 무엇이고, 후보는 그 중에 무엇을 가졌습니까.

"상상력인 것 같아요. 적당히 타인의 고통을 느끼거나 동정하는 수준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공감할 수 있는 수준의 상상력을 이야기하는 거에요. 밀란 쿤데라가 동정심이야말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최고의 감정이라고 이야기했잖아요. 여기서 동정심은 시혜적인 의미는 아니겠지요. 그게 없으면 정치가 안 되는 거 같아요. 정치가 한 사회의 수많은 갈등과 아픔, 문제들을 집약해놓는 거잖아요. 제가 가지고 있는 장점이 그거라고 생각해요. 문학이나 시, 글 쓰는 것을 좋아하는 것도 그걸 읽을 때 그런 순간을 느껴요. 알린스키는 상상력, 밀란 쿤데라는 동정심, 누군가는 공감이라고 쓰는 데 어떤 단어가 적절할까요. 타인의 고통에 교감하는 능력, 그게 아닐까 싶습니다."

조성주는 자신이 지은 책 <알린스키, 변화의 정치학>을 이런 글로 마무리하였다.

"선배 세대들은 믿었던 이데올로기의 종말을 경험하며 절망했었다고 늘 술에 취해 말했다. 그런데 우리 세대는 믿을 것이 아무것도 없는 와중에 지푸라기처럼 환상을 부여잡고 왔던 것에 대한 후회가 더 크다. 그 환상의 안개가 걷히고 나서 현실을 목도할 수밖에 없는 순간들이 각자에게 닥쳐왔을 때 많은 동료들이 마음의 병을 앓아야 했다."

"인간의 삶은 진보와 보수, 정치와 운동 같은 것보다 몇 배는 더 복잡하고 넓은 영역이다. 그리고 늘 더 아름다운 곳이다."

"막 서른이 되었을 때 책 한 권을 낸 적이 있다. 그때 나는 너무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야 할 20대에게 미안하다는 사과의 말을 붙였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 다시 책 한 권을 냈을 때 이렇게 말했다. '지금 당신들과 같이 걷고 있다'고. 이제 30대 후반이 되고 있는 지금 그냥 '다음 세대를 믿는다'는 말을 건네고 싶다."

2세대 진보 정치인이라는 이름으로 한정짓기에 그는 좀 더 풍요로운 사람이다. 청춘과 여유, 정의와 용서, 열정과 낙관, 책임감과 믿음을 함께 지니기는 쉽지 않으니.

박유리 기자 nopimul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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