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팔아 비겁하게 정치하지 말라

2015. 5. 25.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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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성한용 선임기자의 현장칼럼 창

재보선 패배 뒤 또 권력 다툼에 두 전직 대통령 끌어들여더는 '친노' '동교동' '김대중' '노무현' 입에 담지 말아야문재인·안철수·김한길·박지원, 자기 것 걸고 당당히 나서야

국회에 있는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실과 원내대표실, 대변인실에는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다. 이곳에서 당 회의를 할 때 가보면 두 사람이 회의 참석자들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다는 착각이 든다. 요즘 사진 속 표정이 좀 슬퍼 보인다. 야당 내부 권력다툼에 자신들의 이름이 동원될 줄 생전에 알았을까?

4·29 재보궐선거 이후 주승용 최고위원과 박지원 의원이 던진 '문재인 책임론'이 '친노 패권주의' 공방으로 번져 가라앉지 않고 있다.

공격의 앞줄에 전직 대표 김한길 의원이 있다. 김한길 의원은 대표 시절 '친노'가 자신을 흔들어서 떨어뜨리려 한다고 파악했다. 2014년 1월 새해 기자회견에서 "내부에 잔존하는 분파주의를 극복하겠다"고 한 일이 있다. 그랬던 김한길 의원이 지금은 문재인 대표를 흔들고 있다.

"당대표인 제가 그분의 이름으로 패권을 추구한다면 그분이 하늘에서 노할 것입니다. 또 친노-비노로 분열을 조장하는 것이야말로 그분이 가장 슬퍼할 일입니다."(문재인)

"친노라는 분들이 스스로 벽을 허문다면 우리 당의 친노니 비노니 하는 분열상은 곧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니 세간에서 친노의 좌장이라고 불리는 문 대표의 결심에 달린 일입니다."(김한길)

친노-비노, 또는 친노-호남 갈등 프레임은 2004년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에서 열린우리당이 갈라져 나올 때 잉태되었다. 눈이 매서운 한나라당과 보수 성향 논객들이 야권분열의 그 씨앗을 놓치지 않았다. '친노'는 '종북', '386', '강경' 등의 단어와 차례차례 결합되어 갔다.

10년 이상 시간이 지났다. 노무현은 가고 없다. 그런데도 보수 성향 언론들은 여전히 '친노'라는 단어를 서슴없이 제목으로 뽑아 쓰고 있다. 추모식에서 노건호씨가 김무성 대표를 직접 공격한 것은 부적절했다. 그러나 노건호씨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아들이다. '친노'가 아니다.

희한한 것은 야당이 아직도 그 친노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도대체 왜 그럴까. '친문'(친문재인)이라는 말은 왜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것일까.

'김대중'은 야당에서 거룩한 이름이다. 그런 이름에 흙이 묻기 시작한 것은 4·29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문재인 대표가 권노갑 상임고문과 박지원 의원의 선거 지원을 요청했을 때였다. 양쪽이 밀고 당기기를 하면서 동교동계는 당내 권력투쟁의 한축으로 묘사됐다. '동교동계'는 정치적으로 '김대중'과 같은 의미다.

선거가 끝나자 '호남정치' 복원을 내세웠던 천정배 의원이 '디제이'(김대중)를 입에 담았다.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은 "내 남편의 이름이 정쟁에 오르내리지 않게 해달라"고 당부해야 했다.

두 전직 대통령의 존재는 현재의 야당이 집권한 경험이 있다는 증거다. 야당 전체의 소중한 정치적 자산이다. 그런데 야당 사람들이 개인의 정치적 이득을 위해 두 전직 대통령을 자꾸 당내로 끌어들이고 있다.

그런 사람들일수록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나치게 미화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에게 김대중은 '완벽한 역량과 리더십을 갖춘 인물'로, 노무현은 '소신을 관철하기 위해 모든 것을 던지는 승부사'로 종종 표현된다. 두 사람이 살아 있었다면 지금의 난관을 다 헤쳐나갈 수 있을 것처럼 말한다. 거짓이다.

두 사람이 많은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독재와 싸우느라 그랬는지 매우 독선적인 데가 있었다. 동교동에 참모는 없었고 비서만 존재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좌충우돌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자서전에 이렇게 썼다.

"노 대통령 5년 동안에 민주당 지지 기반이 무너졌다. 대북 지원에 대한 특검, 분당 등은 잘못된 것이었다. 게다가 원칙도 없이 한나라당에 연립정부를 제시하고 최대 지지기반인 호남 사람들과 젊은이들을 실망시킨 것은 참으로 아쉬웠다."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해보자. 김대중·노무현 두 사람은 그들의 역량만으로 대통령에 당선된 것일까? 노무현 전 대통령 1주기에 출판된 자서전 <운명이다>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그들(젊은이들)이 기적을 만들었다. 그것은 결코 당연한 승리가 아니었다. 일회적인 승리, 의외의 승리였다.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도 나의 당선도 모두 이례적이고 특수한 조건이 결합되어 만들어진 사건이었다."

기적이 잇따라 두 번 일어났다는 얘기다. 이런 말도 남겼다.

"보수 세력은 이념적으로 튼튼하게 결속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기득권의 결속력도 매우 강하다. 공동의 이익에 근거를 둔 네트워크를 감성적 네트워크로 재조직하는 능력도 뛰어나다."

야당가에 2016년 총선은 몰라도 2017년 대선은 이길 것이라는 낙관론이 있다. 1997년, 2002년 두 차례의 기적 때문에 생긴 착각이다. 2007년, 2012년에 비해 정치 환경이 야당에 유리해졌다고 볼 근거는 거의 없다. 후보군도 김대중·노무현에 앞선다고 보기 어렵다. 2017년 대선에서 야당이 이기면 기적이다.

지금 야당이 걸린 질병의 이름은 '절박감 상실'이다. 당 지도부나 국회의원, 당직자들의 정권교체 열망이 지지자들보다 높다고 보기 어렵다. 왜 자신들이 집권해야 하는지 정확히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요구한다. 더는 전직 대통령 팔아서 비겁하게 정치하지 말라. '친노' '동교동' '김대중' '노무현'이라는 단어를 아예 입에 담지 말라. 국회와 당사에 있는 두 사람의 사진과 흉상도 이제 치웠으면 좋겠다.

과거 화려했던 시절의 추억을 파는 사람들에게 유권자들은 절대로 표를 주지 않는다. 문재인·안철수·김한길·박지원의 정치가 도대체 무엇인지 밝혀라. 왜 당신들을 지지해야 하는지, 왜 새정치연합을 지지해야 하는지 말해보라. 자기 것을 걸고 당당하게 나서라.

성한용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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