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리스트' 총정리..'경남기업 수사'에서 '대선 자금' 메모까지

2015. 4. 12.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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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더(The) 친절한 기자들]

'자원개발 의혹-이완구 부정부패 척결 지시-검찰 수사' 속전속결

'먼지털이식 압박' 들어오자 성 전 회장 '친박 실세'들 향해 '경고'

목숨 끊기 전 웃옷 주머니에 넣어둔 명단, '판도라의 상자' 열리다

섣부른 예단은 금물이나, '의도를 품은 기획'은 늘 암초를 만난다…

'성완종 리스트'가 정국을 강타하고 있습니다.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경향신문>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허태열 전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7억원, 김기춘 전 실장에게 10만달러를 건넸다"고 밝힌 데 이어 그의 윗옷 주머니에서 김기춘·허태열·홍준표 등 정권실세 8명 이름과 그들에게 건넨 액수가 적힌 쪽지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MB 정권' 비리 수사의 일환으로 시작된 자원외교 수사가 박근혜 정권 핵심부를 겨냥하는 상황이 벌어진 겁니다. 부메랑이 돼 돌아오고 있는 자원외교 수사의 시작과 끝을 정리했습니다.

■ 박근혜 대통령과 경남기업의 '특수관계'

경남기업은 박근혜 대통령과 긴밀한 관계에 있었던 신기수(2007년 별세) 전 회장이 경영했던 회사입니다. 건설업계 거물이던 신씨는 1979년 10·26 뒤 박 대통령에게 300평 규모의 '성북동 집'을 마련해준 인물입니다. 박 대통령은 2007년 7월19일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검증 청문회에서 "부모님이 유일하게 남긴 재산인 서울 중구 신당동 집으로 동생들과 이사했으나 집이 좁아서 꼼짝 못하던 상황이었다. 이 사정을 알던 신 회장이 제의를 했고, 그걸 받아들였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순전히 호의로 집을 지어 줬다는 얘기인데, 신씨는 언론 인터뷰에서 당시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 전 대통령의 부탁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신씨는 국가안전기획부에서 강도 높은 조사를 받은 뒤인 1984년 6월 경남기업 경영권을 포기합니다. 이후 경남기업은 1988년 대우그룹 계열사로 편입됐고 2003년 성완종 전 회장이 경영하던 대아건설에 인수되면서 성 전 회장과 인연을 맺게 됩니다. (▶ 관련 기사 : '자원외교 압수수색' 경남기업, 박 대통령과 이런 인연이…)

성 전 회장이 운영하던 경남기업이 자원외교와 관련해 본격적으로 언론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건 1월22일 <한겨레>가 관련 의혹을 보도했기 때문입니다. 김신종(65) 전 광물자원공사 사장이 해외자원개발 사업을 하면서 성 전 회장의 부탁을 받고 경남기업 보유 지분을 고가에 매입해줬다는 내용입니다. 이 결정으로 광물자원공사는 100억원대 손실을 껴안았습니다.

이후 이완구 국무총리는 3월12일 취임 뒤 첫 담화를 발표하면서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부정부패를 발본색원하겠다"며 '척결'해야 할 부정부패의 사례로 4가지를 제시합니다. 이중 하나가 '해외 자원개발과 관련한 배임과 부실 투자'입니다.

엿새 뒤 검찰은 한국석유공사와 경남기업을 전격 압수수색합니다. 경남기업이 2001년 이후 국외 석유개발 사업 등을 하면서 정부로부터 350억원 이상의 '성공불 융자'를 받았는데 이 중 수십억원이 자원개발에 투자되지 않고 성 전 회장 가족의 계좌 등으로 빼돌렸다는 게 주요 혐의였습니다. '언론 보도-이완구 총리 지시-검찰 수사'까지 채 두달도 걸리지 않은 속전속결의 행보였습니다.

성 전 회장은 같은달 17일 경영권 포기를 선언합니다. 경남기업은 이날 성 전 회장이 채권단에 경영권 및 지분 포기 각서를 제출했다고 19일 밝혔습니다. 성 전 회장은 "회사와 직원들을 살릴 수 있다면 아무 조건 없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현재 회사 경영 상황에 대해 무한 책임을 지겠다"고 말했습니다.

■ '성공불 융자'란?

검찰은 경남기업의 성공불융자에 주목합니다. 성공불융자는 기업이 국외 자원개발 사업에 실패할 경우 정부가 빌려준 융자금을 전액 혹은 일부 감면해주고, 성공했을 때는 융자금보다 많은 금액을 갚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검찰이 성공불융자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자원외교 투자 행위를 업무상 배임죄로 보기 애매했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실패했지만 당시로서는 해볼 만하다는 경영상 판단이 있었다"고 해명할 경우 이를 뒤집기가 쉽지 않습니다. 자원개발 사업은 높은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속성을 갖고 있어 더더욱 배임 혐의 입증이 어렵습니다.

검찰은 나랏돈이 들어가는 성공불융자가 애초 목적대로 돈이 사용됐는지, 다른 곳으로 빼돌린 것은 없는지를 파헤치는 쪽으로 수사의 초점을 맞췄습니다. 과장된 자료를 이용해 융자를 받아냈거나 돈을 엉뚱한 데 썼다면 사기나 횡령죄로 처벌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경남기업은 2009년 1월 워크아웃에 들어갔는데도 러시아 캄차카와 카자흐스탄 카르포브스키 광구 자원 탐사 명목으로 정부에서 14억원가량의 성공불융자를 받았습니다. 제대로 된 자원개발을 할 수 없는데도 성공불융자를 통해 나랏돈을 지원받았다고 의심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실제로 경남기업은 성공불융자를 받아 석유공사와 함께 러시아 캄차카, 미국 멕시코만, 카자흐스탄 카르포브스키 광구 등에서 석유·가스 탐사 프로젝트에 참여했지만, 사업은 대부분 실패했습니다.

검찰은 성공불융자뿐 아니라 경남기업의 일반융자도 들여다봤습니다. 대표적인 게 아프리카 니켈광산 개발 비리 의혹입니다. 경남기업은 마다가스카르 암바토비 니켈광산 사업에 참여하면서 한국광물자원공사로부터 130억원의 일반융자를 받았는데 검찰은 그 과정에서 부당 대출과 횡령 등의 혐의가 있다고 의심했습니다.

■ 부인까지 소환, 성완종에 대한 전방위 압박

성 전 회장 소환에 앞서 검찰은 지난 1일 그의 부인 동아무개(61)씨를 불러 조사했습니다. 동씨는 경남기업 비자금 조성에 동원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건물관리업체 채스넛과 건축자재 납품업체 코어베이스의 실소유주로 알려져있습니다. 검찰은 경남기업이 이 회사들을 이용해 100억원이 넘는 규모의 비자금을 조성했다고 보고 동씨를 추궁했습니다.

성 전 회장은 이 대목에서 크게 압박감을 느낀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9일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검찰이) 자원 쪽을 뒤지다 없으면 그만둬야지, 제 마누라와 아들, 오만 것까지 다 뒤져서 가지치기 해봐도 또 없으니까 또 1조원 분식 얘기를 했다"며 "(검찰이) 저거(이명박 정권의 자원외교)랑 제 것(배임·횡령 혐의)을 '딜'하라고 그러는데, 내가 딜할 게 있어야지"라고 말했습니다. 자원외교 비리와 관련해서 뚜렷한 혐의점이 없자 '먼지털이식 수사'로 자신을 압박했다는 뜻입니다.

■ 성 전 회장 "나는 친박이다"

검찰은 3일 성 전 회장을 소환했고 사흘 뒤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습니다. 회삿돈 250억여원을 횡령하고 9500억여원 규모의 분식회계를 통해 800억여원의 부당 대출을 받은 혐의(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의 횡령·사기, 자본시장법 위반)를 적용했습니다.

그러자 성 전 회장은 영장실질심사를 하루 앞둔 8일 서울 중구 전국은행연합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당사자가 직접 기자회견을 여는 건 매우 이례적입니다. 그는 "(나는) 엠비(MB) 정부의 피해자"라며 "(박근혜) 대통령 당선을 도왔는데 내가 (전 정부 수사의) 표적이 됐다"고 주장했습니다. 성 전 회장은 "2007년 이명박 정부 인수위원회의 자문위원 추천을 받았으나 첫 회의 참석 후 중도 사퇴했다"며 "2012년 총선에서 선진통일당 서산태안 국회의원으로 당선됐고, 새누리당과의 합당 이후 대선 과정에서 박근혜 후보를 위해 혼신을 다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자신의 도움을 받은 친박계 인사들을 향한 '경고'로 해석되는 발언이었습니다. 또 자신은 박근혜 정부의 검찰이 수사를 집중하고 있는 이명박 정권의 인물이 아니라 '친박 인사'라고 강조한 것입니다.

그리고 성 전 회장은 영장실질심사가 예정돼 있던 9일 새벽 억울하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집을 나가 북한산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안타까운 죽음으로 마무리되는 듯했던 사태는 그가 숨지기 직전 <경향신문> 기자에게 털어놓은 민감한 얘기가 10일 공개되면서 반전을 맞습니다. 그는 9일 서울 청담동 자택을 나온 직후인 새벽 6시 <경향신문> 기자에게 전화해 "김 전 실장이 2006년 9월 VIP(박근혜 대통령) 모시고 독일 갈 때 10만달러를 바꿔서 롯데호텔 헬스클럽에서 전달했다"며 "2007년 당시 허태열 본부장을 강남 리베라호텔에서 만나 7억원을 서너 차례 나눠서 현금으로 줬다. 돈은 심부름한 사람이 갖고 가고 내가 직접 주었다"고 말했습니다. 자신이 친박 인사임을 뒷받침하는 구체적인 정황을 털어놓은 겁니다.

그러자 검찰은 더 큰 이야기를 기자들에게 공개합니다. 최윤수 서울중앙지검 3차장은 10일 오전 기자들과 만나 "어제 저녁 서울 강남 삼성병원에서 성완종 전 회장을 검시하는 과정에서 메모지를 한장 발견했다. 메모지에는 대여섯명의 이름과 액수가, 나머지는 이름만 기재돼 있다. 한 사람은 (액수 옆에) 일자도 기록돼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또 "메모지에 적힌 글자(숫자 포함) 수는 55자이고, 성 전 회장이 숨지기 직전 언론 인터뷰에서 돈을 건넸다고 밝힌 두 사람(김기춘·허태열)도 포함돼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성 전 회장이 남긴 메모에는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10만달러, 허태열 전 대통령 비서실장 7억원, 유정복 인천시장 3억원,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 2억원, 홍준표 경남도지사 1억원, 부산시장 2억원' 등 내용이 적혀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또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과 이완구 국무총리는 금액 없이 이름만, 김기춘 전 실장 이름·액수 옆에는 '2006년 9월26일 독일'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정국

11일 경향신문은 성 전 회장과의 전화 통화 음성파일을 추가로 공개했습니다. 경향신문은 "성 전 회장이 인터뷰에서 '(2012년) 대선 때 홍 본부장(홍문종 의원)에게 2억원 정도를 현금으로 줬다. (새누리당과 선진통일당이) 통합하고 매일 거의 같이 움직이며 뛰고 조직을 관리하니까 해줬다. 이 사람도 자기가 썼겠습니까. 대통령 선거에 썼지'라고 말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성완종 리스트'의 파장이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2012년 대선 자금으로까지 번진 것입니다. (▶ 바로 가기 : 박근혜 '불법 대선 자금' 논란에 불지른 성완종 폭로) 홍문종 의원은 곧바로 기자회견을 열어 "황당무계한 소설"이라며 전면 부인했습니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정국이 대혼란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4·29 재보선이 코앞입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12일 오전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검찰이 명운을 걸고 성역 없이 신속하게 수사해 국민에게 진실을 밝혀 의혹을 씻어줘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성완종 리스트'의 진실은 무엇일까요? 사태는 어떻게 전개될까요? 섣부른 예단은 금물입니다. 다만 한가지 확실한 건 의도를 품은 기획은 늘 암초를 만난다는 점입니다.

(▶ 참고 기사 : 성완종 전 회장에 대한 <한겨레21> 인물 분석 - 쓰러진 '1천원의 신화')

김원철 기자 won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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