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군' 아래 이병기 비서실장, 걱정됩니다

2015. 3. 3.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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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훌륭한 비서'는 맞지만 '절의의 신료'는 아닌 이병기 실장

대통령이 안 변하는데 '문고리 3인방'을 제어할 수 있겠나

또다시 '혼군의 실패' 못 막은 '불행한 비서' 경력 추가될 것

곽병찬 대기자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97

아무리 뜯어봐도 이번 인사 역시 엉망입니다. 공연한 트집이 아닙니다. 며칠 동안 여당에서 나온 반응만 소개하겠습니다.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7개월밖에 안 된 국정원장을 비서실장에 임명한 것은 유감'이라고 했습니다. 7개월 전 이병기 국가정보원장에게 신임장을 주며 한 말을 생각하면 한심합니다. "약도 먹다 끊으면 내성만 키워 시작하지 않은 것만 못하듯…." 그때 왜 이병기 주일대사를 국정원장에 앉혔는지, 적폐의 내성만 키운 꼴이었습니다. 국가 정보기구의 수장을 청와대 비서실에 앉힌 것은 박정희 전 대통령 때 신직수 전 중앙정보부장을 청와대 법률특보로 임명한 게 고작입니다. 그는 7대 대통령선거를 1년 앞두고 이후락 전 비서실장을 중앙정보부장으로 임명해 선거를 총괄하도록 하기도 했지만, 현직 중정부장을 비서실장으로 기용하지는 않았습니다.

나경원 의원은 오늘 정무특보단을 두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무특보단은 매끄럽지 않고 자연스럽지 않은 인사…." 청와대의 정무 기능이 부족하다는 비판과 지적이 있어 정무특보단을 신설했습니다. 그러나 현역 의원 3명을 대통령 특보로 임명한 것도 이상하지만, 그들 면면이 정무적 기능과 거리가 먼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윤상현, 김재원 의원 등은 그동안 대통령의 나팔수 혹은 저격수로 꼽히던 인물입니다. 야당은 물론 여당과도 소통에 장애를 일으킬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유승민 원내대표도 비슷한 평가를 했던 터였습니다. "특보단을 두려면 야당이나 당내에 소외된 그룹하고 잘 대화가 될 수 있는 분이면 좋겠다는 얘기를 드렸는데, 반영되지 않았다."

장관 인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새로 선임된 장관 후보자 3명을 포함하면 국무위원 18명 가운데 국무총리와 경제부총리, 사회부총리를 포함해 6명이 현역 지역구 의원입니다. 모두 열성적인 '친박' 의원들입니다. 그래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이렇게 뼈 있는 한마디를 던졌습니다. '6명이나 발탁해준 데 대해 감사드리지만, 선거를 앞두고 있으니 지역구 의원 중에선 그만 데려갔으면 한다.'

내년이면 총선입니다. 그 전에 이들은 당으로 다시 돌아올 겁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11개월밖에 장관직을 수행하지 못하게 됩니다. 1년도 채 못 할 게 뻔한 이들이 어떻게, 책임을 지고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겠습니까. 침체된 경기와 엎어진 민생을 되살리는 데 눈치 보지 않고 앞장서겠습니까. 특보단이 대통령에 대한 정치권의 공세를 막아내는 '방탄 특보'라면, 내각은 청와대의 지시를 진돗개처럼 집행하는 '친위 내각'에 불과할 것입니다.

김 대표의 이런 충고는 총평이자 결론이라고 봐야 할 겁니다. "장관이라는 자리는 한 정치인의 경력 관리로 생각해서는 절대 안 되겠다. 개혁을 성공하지 못하면 돌아올 생각 하지 마시기 바란다." 그건 내각이나 청와대로 간 이들에게만 하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대통령더러 들으라고 한 소리입니다.

가장 우려스러운 인사는 뭐니 뭐니 해도 국정원장 교체입니다. 이병기 비서실장은 대통령선거 공작 및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작으로 만신창이가 된 국정원을 이명박 정권 이전 수준으로 돌릴 거의 유일한 인물로 꼽혔습니다. 그는 취임식 때 직원들에게 '머릿속에서 정치 개입이란 말을 아예 지워버리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런 그를 바꿨으니, 세간에서 말하듯 비서실장 돌려막기가 아니라 국정원장 경질에 방점이 찍힌 것만 같습니다.

그의 후임으로 지명된 이병호 전 국가안전기획부(현 국정원) 차장을 보면 그 성격은 좀 더 분명해집니다. 그는 1970년 중령으로 예편한 뒤 중앙정보부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이듬해 7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중앙정보부는 이후락 부장의 지휘 아래 선거 공작의 전면에 나섰습니다. 선거가 끝나고 김대중 후보는 이후락 부장을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박정희 후보에게 진 게 아니라 이 부장, 당신에게 졌다.' 그렇게 7대 대통령선거는 관권부정선거로 치러졌습니다. 이병호 국정원장 후보자는 그런 판에서 중정 통과의례를 치렀습니다.

그런 그가 <월간조선> 2013년 2월호에 실린 기고문에서 김대중 대통령 시절 국정원을 두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햇볕정책으로 국정원을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국정원에 대해서는 더 심하게 말했습니다. 국정원에서 정치 공작을 말소하려고 노력했던 두 정부의 국정원을 두고 그랬으니, 그가 생각하는 국정원의 상은 쉽게 그려집니다. 이명박 정부까지 포함해 그는 15년을 '국정원 상실의 시대'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국정원도 비난한 것은 그 당시 부활했던 국정원의 정치 공작 때문이 아닙니다. '문외한들을 요직에 앉혀 조직을 무너뜨렸'던 게 그 이유였습니다. 그러면 그가 근무할 때의 중앙정보부와 안기부는 어떠했습니까. 국내에서의 정치공작은 물론이고, 북한과 결탁해 총풍 등 선거 공작을 시도했거나 시도하려고 했습니다. 그런 국정원의 정치 공작에 대해서는 모른 척 넘어갔습니다. 아무리 좋게 봐도 그는 임명권자의 명령에 진돗개처럼 따르는 인물에 불과합니다. 국정원 쇄신과 제자리 찾기는 물 건너갔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혹시 이병기 비서실장이 전임자처럼 '왕실장'으로 군림한다면 모를 일입니다만, 그럴 가능성은 손톱만큼도 없습니다. 이 실장 자신이 그걸 원치 않을 겁니다. 그는 권은희 새누리당 대변인이 했던 말처럼, 자신의 한계와 분수를 꼼꼼히 지켜왔습니다. 국정원은 대통령의 직속기관입니다. 게다가 당신은 집권 첫해 이미 국정원을 정치 전면에 세워 야당과 대거리하도록 했던 터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국정원 쇄신을 채근할 수 있겠습니까. 정반대의 상황이라면 모를까.

사실 그는 훌륭한 비서였습니다. 그러나 목숨을 걸고 대통령의 잘못을 막는 '절의의 신하'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초기의 직업외교관 그리고 김영삼 정부 시절의 안기부 2차장을 제외하고는 노태우 전 대통령 보좌하는 일에 몸담았습니다. 정무적 조언도 하며 문고리를 성실하게 지켰습니다. 그 결과 그는 '정치인 노태우'의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창조했고, 대통령이 되는 데 일조했습니다. 그러나 노태우 대통령이 망가지는 걸 그는 막지 못했습니다.

우선 '월계수회'와의 관계입니다. 노태우 대통령 시절 국정 전반을 쥐락펴락했던 건 '황태자' 박철언과 사조직 월계수회였습니다. 이 실장이 의전비서관으로 '문고리'를 잡고 있긴 했지만, 노 대통령 내실의 문고리는 박철언씨가 쥐고 있었습니다. 당도 청와대도 박씨와 월계수회의 눈치를 봐야 했습니다. '지옥사자'라는 별명의 이춘구 민정당 사무총장도 그들의 전횡을 어쩌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전횡은 노태우 정부를 일찌감치 레임덕에 걸리게 했습니다. 사사건건 김영삼 대표와 충돌하던 박철언씨는 김 대표에게 축출됐고, 그와 함께 노 대통령의 날갯죽지도 꺾였습니다. 일개 비서관이라고는 하지만, 총신으로서 그는 노 대통령을 바로 세우지 못했습니다.

노태우 대통령이 부패하는 것도 막지 못했습니다. 노 대통령이 2000억여원에 이르는 뇌물을 재벌들로부터 챙길 때 문고리를 쥐고 있었던 것은 그였습니다. 다른 문을 통해 거둬들였으니 알 수도 없었겠지만, 그는 충분히 그런 짓을 눈치챌 만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무런 일도 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퇴임 후 부정축재가 들통 났고, 노씨는 죄수가 되었습니다. 비서로서 성실성과 금도는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주군이 망가지는 것을 막지 못했으니 절의의 신료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기대보다는 걱정과 우려가 커지는 까닭은 거기에 있습니다. 단도직입으로 제 한계 안에서만 성실한 그가, 어떻게 '문고리 3인방'을 제어할 수 있겠습니까. 국정원이 다시 정치 공작과 종북 공작의 못된 습관으로 돌아가는 걸 저지하겠습니까. 결국 열쇠는 대통령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대통령이 변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입니다.

문고리 3인방을 두고 '일 잘하는 사람을 어떻게 찌라시 때문에 내보낼 수 있느냐'고 했던 게 바로 대통령입니다. 그들과의 관계를 정리해주지 않는 한 청와대 비서실의 실패는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실장은 다시 한 번 혼군의 실패를 막지 못한 불행한 비서로서의 경력을 이력서에 하나 더 써넣게 될 것입니다.

곽병찬 대기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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