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2012년 4월의 광주, '희망의 싹'을 이야기한 이정현

조정 기자 2014. 7. 31.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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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를 들이대기가 머쓱했다. 2012년 4월 11일, 나는 광주에 있었다. 제19대 총선 광주 서구을 선거구에 출마한 이정현 후보를 밀착 취재 중이었다. 기자로서 냉철함을 잃지는 않았지만 기왕에 제작하는 '현장21'의 기획보도가 빛나려면 이 후보가 선전하는 편이 더 도움되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변은 없었다. 야권 단일후보인 오병윤 후보에게 2~3% 앞선다는 여론조사 결과까지 나왔지만 이정현은 많은 표를 얻고도 낙선했다. 당시 뜨거웠던 광주에서 만난 이정현 후보와 그의 가족, 지지자들, 패배자의 당당한 모습에서 찾아낸 희망의 씨앗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취재팀과 단독 인터뷰에 응한 이정현 후보는 대뜸 매고 있던 넥타이부터 보여 주었다. 전체가 노란색 바탕에 녹색의 새싹 하나가 가운데 새겨진 것이었다. 색깔도 너무 튀는데다가 입고 있던 양복과도 그리 잘 어울리지 않았다. 그는 그 넥타이를 직접 디자인했다고 자랑했다. 민주당 27년 패권 지역에 지역구도를 넘어서 희망의 싹을 틔우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는 거였다. 넥타이 얘기를 시작으로 그의 인터뷰는 우리 정치에 고착화한 지역구도 타파, 호남 차별의 문제, 정치 혁명 등으로 주제를 이어 나갔다. 18대를 제외하고 내리 세 번을 같은 지역에서 낙선해서 였을까, 이 후보의 얼굴에서 이번 만큼은 꼭 당선되고 싶다는 강한 바람이 읽혀졌다. 시사매거진 프로그램의 특성상 후보의 다양한 면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선거 막판이라서 별도로 상황을 만들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이 후보의 가족들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로 했다. 그런데 언론과 친숙하기로 이름난 이정현 후보가 집을 방문한다거나, 온 가족을 카메라 앞에 세우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가족들이 마음 고생이 많다며 정중히 사양했다. 하지만 가족을 만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워낙 박빙의 승부가 예상되는 터라 그의 아내와 아들이 선거 캠프 상황실을 찾은 것이다. 한눈에 봐도 병색이 완연한 아내는 수줍게 몸을 낮추며 지지자들이 주는 격려 말씀을 경청했다. 아들은 의외의 모습이었다. 검은 가죽 점퍼에 최신 스타일로 손질한 머리칼, 투박해 보이는 아버지와는 전혀 다른 신세대 젊은이였다. 아내는 정치적으로 척박한 땅에서 분투 중인 가장에 대해 최대한 말을 아끼며, 그저 '고생하신다'고만 했다. 이정현 후보도 가족에 대해서는 '고생시켜 미안한 마음 뿐이다'는 얘기만 되풀이했다. 보통 사람이 걷지 않는 길을 가노라면 함께 가는 가족이 내딛는 걸음도 그만큼 힘겨웠을 거라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어쩌면 이길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은 선거 마감이 다가오자 불안함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캠프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양측의 흑색선전이 확산되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어느 길가에 붙어있던 현수막이 훼손됐다는 소리도 들려왔다. 호남에서는 여론조사고 뭐고 다 필요없고, 기표소 들어가면 찍는 당이 따로 있다는 푸념도 들렸다. 광주 서구을에서만 세 차례 출사표를 던진 이정현, 차떼기 정국에 탄핵 역풍이 한창이던 2004년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한 그는 치욕적인 성적표를 받아 들어야 했다. 아무리 영남당에, 비난 받는 야당이었지만 720표를 얻는데 그쳤다. 1% 득표에 그친 것이다. 그랬던 지역에서 절치부심 8년만에 당선을 바라볼 수 있는 상황까지 올라섰으니 얼마나 애간장이 탔을까?

그러나 출구조사 결과가 나오고 개표를 거듭할수록 그의 낙선은 현실로 다가왔다. 선거 취재를 여러번 해봤지만 이 쯤 되면 파장할 시간이 다 된 거였다. 그런데 기대하지도 않았던 좋은 앵글이 그때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화도 나고, 실망과 자책에 감정을 억누르지 못할 만 한데 이정현은 달랐다. 패배를 인정하더니 지지자들이 모여 있는 식당으로 달려 갔다. 유세 때보다 더 우렁찬 목소리로 40% 가까운 지지가 가진 의미에 대해 역설했다. 그리고 또 도전할 거라고 했다. 지지자들은 패장 '이정현'을 연호했고 감동적인 분위기가 연출됐다. 그는 또 자리를 옮겼다. 모교인 살레지오 고등학교 동문들이 쓴 술잔을 나누고 있는 호프집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이정현 안 죽었으니까 기운 내라고 도리어 동창들을 위로했다. 그 자리에서도 언젠가 지역주의를 깨 보이겠노라고 다짐했다. 그랬던 그가 불과 2년여 만에 전남 순천.곡성에서 약속을 지킨 것이다.

정치인 이정현에 대한 평가는 여느 정치인과 마찬가지로 엇갈린다. 경쟁 정당으로부터 숱하게 고소, 고발을 당할 정도로 거친 면을 보이기도 했다. 이번 선거에서도 굵직한 공약들을 내놓으며 '예산 폭탄'을 던지겠노라고 다소 과장된 표현을 써서 비난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홈페이지에 걸려 있는 글귀들처럼 '호남바라기', '호남 예산 지킴이', '호남의 인재를 키우겠다'는 그의 신념은 일관되게 유권자를 파고 들었다. 그리고 마음을 움직였다.

조금 전 밝힌 당선 소감에서 그는 또 한번 날카로운 정치 감각을 드러낸다. "이번에 이정현에게 표를 주신 분들은 이정현이 잘 나서가 아니라 일단 한 번 기회를 주겠다는 의미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정확한 판단이다. 순천,곡성의 유권자들은 이정현에게 완전한 신뢰를 주지 않았다. 다만 그의 소신과 뚝심을 평가하고 일할 기회를 준 것이다. 만약에 이정현 당선자가 지역의 벽을 허문 기적에 심취해 민심 섬기기를 소홀히 한다면, 그래서 마음을 연 분들에게 실망을 안겨 준다면, 30년 만에 이룬 대업은 하루 아침에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이다. 우리 정치사에 큰 획을 그은 이정현 후보의 당선을 축하하며, 지역과 정실에 얽매이지 않고 능력있는 인재가 리더가 되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기대해 본다.

조정 기자 parischo@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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