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합참 비밀 도면 유출..범인은 '먹튀'한 軍

김태훈 기자 2014. 5. 14.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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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일부 방송과 신문들이 합동참모본부 신청사의 도면이 유출된 문제를 두고 며칠째 보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합참의 도면, 특히 전쟁 지휘소라고 불리는 지휘통제실의 도면이 고스란히 군 외부로 흘러 나갔다는 것이 보도의 요지입니다. 군 시설의 도면은 어지간하면 군사 기밀입니다. 논산 훈련소 위치도 기밀이라는데 하물며 군 시설의 도면은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합참의 지휘통제실, 흔히 지통실이라고 부르는 시설입니다. 지통실은 천안함 피격, 연평도 포격전 같은 남북 간 전투상황이 발생하면 합참의장 뿐 아니라 대통령이 직접 자리 잡고 앉아 작전을 지휘하는 군 컨트롤 타워의 최고봉입니다. 군 시설 가운데에서도 최고의 보안이 요구되는 곳입니다. 이곳의 도면이 군 밖에서 나돌고 있습니다. 북한이 이 도면을 손에 넣으면 합참을 도청하거나 포격할 때 상당히 수월해집니다. 어디에 지통실이 있는지, 지통실은 어떻게 구성됐고, 어디에 누가 앉아 있는지를 북한이 속속들이 알면 도청이나 포격할 때 타깃 정하기가 훨씬 편해집니다. 부작용이 어디 그 뿐이겠습니까.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한마디로 정리하면 군이 먹튀를 했기 때문입니다. 군이 합참 신청사의 방호 시설 설계를 민간 업자에게 맡기고 설계비를 안줬기 때문에 생긴 일입니다. 이런 사실은 제가 국방부 출입기자 시절이던 지난 2012년 당시의 합참의장도 익히 알았습니다. 합참의장 이하 합참의 주요 본부장 보직을 가졌던 장군들도 군이 민간인에게 일 시키고 돈 안 줘서 지통실 도면이 유출됐다는 사실을 다들 알고 있었습니다. 합참의장과 본부장들에게 제가 직접 상세히 설명해드렸으니까요. 국방장관이라고 몰랐을까요. 그런데 2년이 다 되도록 군은 그 도면을 회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중간에서 돈 먹은 세력들을 제대로 잡아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인데 군은 그 사고 뭉치들을 잡을 의욕도 염치도 없습니다.

●합참 지통실 도면 유출 사건의 전말

군의 먹튀로 피해를 본 민간 사업자는 EMP 방호시설 전문업체의 대표입니다. EMP탄은 북한이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전자기파 폭탄입니다. 이 폭탄이 터지면 모든 전기회로가 타버립니다. 컴퓨터, 전화기 모두 먹통이 됩니다. EMP탄 공격을 받으면 군 지휘부가 눈과 귀, 신경망, 뇌를 모두 잃게 됩니다. 그래서 2012년 여름을 목표로 합참 신청사를 지을 때 북한의 EMP 공격에 대비한 방호시설을 갖추기로 했습니다.

국방부는 그동안 주한미군과 국방부에 EMP 시설을 만들어줬던 EMP 방호시설 전문업체의 정 모 대표에게 EMP 방호시설 설계를 맡깁니다. 정 대표가 불모지나 다름없는 우리나라 EMP 방호계의 독보적인 인물이니 당연히 국방부는 정 대표에게 일을 맡긴건데 문제는 별도의 설계 용역 계약을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EMP 방호시설 설계가 끝나면 공사도 정 대표가 도맡는 것이 수순이었기 때문에 일을 느슨하게 처리했던 것이지요. 정 대표도 자신이 일을 맡을 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국방부가 EMP 방호시설을 설계한 정 대표를 팽했습니다. 국방부는 뜬금없이 정 대표의 업체가 전문 건설 면허가 없다는 이유를 내걸었습니다. 그리고는 실적도 불명한 3개 업체를 골라 방호시설 공사 일을 줍니다. 그럼 EMP 방호시설 설계비는? 국방부는 설계비도 안줬습니다. 정 대표는 그래서 합참의 도면과 EMP 방호시설의 도면을 챙겨뒀습니다. 설계비를 받기 위해선 볼모가 필요했던 겁니다.

●설계비는 누가 채갔을까?

국방부 시설본부와 합참 신청사 건설 사업단은 잘 알고 있습니다. 정 대표가 받아야 할 설계비를 누가 가져갔는지... 국방부 시설본부 측은 2012년 저에게 "설계를 한 정 대표가 돈을 못받은 것은 미안한 일이지만

국방부 입장에서는 이제 와서 어쩔 수 없다" "유사한 사업이 있을 때 정 대표가 일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겠다"고 설명했습니다. 시설본부나 산하 기관이었던 신청사 건설 사업단 또는 사업 참여 업체의 누군가가 정 대표에게 지급해야 할 설계비를 가로 챘습니다. 그 내막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2012년 전역했습니다. 그 사람은 현역 시절 다른 의혹으로 군 검찰의 수사를 받다가 전역하는 바람에 모든 수사는 유야무야됐습니다. 군이 의욕이 있다면 민간 검찰로 이첩해도 되는데 그냥 덮어버린 꼴입니다.

이것이 바로 합참 지통실 도면 유출 사건의 전말입니다. 시설본부, 기무사, 조사본부 등이 정 대표를 여러 차례 조사했지요. 하지만 군 당국은 사건의 전말을 알기에 정 대표가 갖고 있는 도면을 강제 회수할 수 없습니다. 군이 민간인에게 일 시킨 뒤에 돈 안주고 내쫓는 나쁜 짓을 했으니까, 군이 백성 돈 가로챘으니까 공권력을 휘두를 염치가 없는 겁니다.

시설본부가 정 대표에게 유사 사업을 맡게 해준다고 한 약속도 현재는 휴지조각이 됐습니다. 군 당국은 그동안 정 대표를 팽하기 위해 각종 루머와 억측을 주변에 흘렸습니다. 그 때문에 정 대표의 신용은 땅에 떨어졌습니다. 군이 기술력 충만한 민간인을 철저히 짓밟은 사건이고 우리 군의 도덕성을 엿볼 수 있는 사건입니다.김태훈 기자 oneway@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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