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동 건 무상버스 선거판 가로지르나

이오성·김동인 기자 2014. 3. 31.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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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판을 뒤흔들지도 모를 버스가 차고지에서 시동을 걸고 있다. 이름은 무상버스. 경기도에서 출발해 한반도 남서쪽으로 향하는 것으로 노선을 잡았다. 얼마나 많은 노선이 생겨날지, 얼마나 많은 승객을 태울지는 아직 모른다. 시동은 걸렸고, 달려봐야 안다.

열쇠를 먼저 꽂은 쪽은 원혜영 민주당 의원이다. 원혜영 의원은 1월 초 경기도지사 출마를 선언하면서 버스공영제 문제를 들고 나왔다. 경기도가 설립한 공공기관(경기대중교통공사)이 버스를 소유함으로써 경기도민의 편익에 부합하는 대중교통 정책을 실시하겠다는 취지다. 버스 회사의 이익에 따라 만들어진 노선을 조정하고, 출퇴근·심야·등교·어린이 전용 등 맞춤형 버스를 운행하겠다는 게 골자다. '공짜' 버스는 아니지만 정기권, 단체구매권 등을 도입해 버스 요금 체계를 다양하게 만들겠다고 밝혔다. 무상이 아닌 '버스의 공영화'에 초점을 맞춘 기획이었다.

ⓒ시사IN 신선영 경기도 안성의 한 정류장에서 주민들이 버스를 기다리는 모습.

정작 경적을 요란하게 울린 건 김상곤 경기도지사 예비후보다. 김 후보는 3월12일 경기도지사 출마를 선언하면서 무상 대중교통 공약을 터뜨렸다. 버스공영제를 단계적으로 실시해 무상 대중교통 시대를 열겠다는 것이었다. 경기도교육감 시절 무상급식을 실시해 파란을 일으킨 당사자인 만큼 그가 내놓은 두 번째 무상 이슈는 커다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언론은 이를 '무상버스' 네 글자로 함축했다. '공짜 버스' '포퓰리즘 버스'라는 비판도 즉각 뒤따랐다. 야권의 경기도지사 경쟁자인 원혜영 의원도 김상곤 후보의 공약이 공공성의 문제를 '가격 논쟁'으로 전락시켰다며 불쾌함을 숨기지 않았다. 공짜와 버스공영제는 별개의 문제라는 지적이다.

경기도지사 출마 선언 후 여드레 만에 나온 공약

실제로 김상곤 후보의 공약은 비판받을 구석이 적지 않다. 먼저 무상버스는 그리 오랜 숙성을 거치지 않은 공약이다. 무상버스라는 전대미문의 공약이 3월4일 경기도지사 출마 선언 이후 여드레 만에 나왔다. 2월 말까지만 해도 김 후보가 경기도지사 출마를 두고 오랫동안 저울질했던 것을 감안하면, 정책을 검토하고 현실화할 시간이 절대 부족했다. 경기도 같은 광역권에 대한 대중교통 정책을 수립하고 발표하려면 아무리 빨라도 한 달은 걸린다는 게 정책 전문가들의 견해다.

김상곤 후보 측은 "무상교통 정책을 오래 연구한 전문가들이 다수 참여해 만든 안이다. 충분한 검증을 거쳤다"라고 설명했지만, 정치권의 해석은 다르다. 출마 선언 이후에도 여론조사에서 새누리당 남경필 예비후보에게 다소 뒤지는 추세를 극복하지 못하자 여론의 관심을 끌 만한 공약을 급조해서 던진 것 아니냐는 시각이 우세하다.

무상버스에 대한 논란이 거세지자 김상곤 후보의 걸음이 바빠졌다. 3월26일에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내놓겠다고 했다가 갑자기 발표일을 3월20일로 엿새나 앞당겼다. 김상곤 후보 측은 "무상버스를 둘러싼 잡음을 잠재우기 위해 발표 시기를 앞당겼다"라고 설명했다. 잡음이 커지는 만큼 김 후보가 어떤 실행 방안을 내놓을지에 대한 기대도 커갔다.

그러나 3월20일 김상곤 후보가 내놓은 실행 방안은 '대폭 축소'라고 봐도 좋을 만큼 후퇴했다. 2015년부터 65세 이상 노인과 초·중학생, 장애인이 무료로 버스를 이용할 수 있게끔 하겠다는 내용이다. 2016년부터 고등학생도 무료로 이용하고, 2017년부터는 비혼잡 시간대인 평일 오전 11시부터 2시까지 무료로 버스를 탈 수 있도록 했다. 직장인·대학생 등 버스 이용이 잦은 이들은 무료 대상에서 빠졌다. 서울 지역과의 연계 방안에 대해서도 언급이 없었다. 김 후보 측은 "교통카드 시스템이 잘 되어 있어 서울로 접어드는 순간 요금이 자동 계산되므로 별 무리가 없다"라고만 설명했다.

ⓒ연합뉴스 3월20일 김상곤 경기도지사 예비후보가 무상버스 공약을 발표했다(왼쪽).

재정 탓이었다. 첫해에 노인과 장애인, 초·중학생을 대상으로 무상버스를 운행하는 데 드는 비용은 956억원으로 추산된다(16쪽 표 참조). 경기도 예산 중 고정 지출되는 경상비를 빼고 매년 도지사가 쓸 수 있는 예산이 4798억원이므로, 적어도 시행 첫해에는 무리 없이 무상버스의 '첫발'을 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2016년에 1725억원, 2017년에는 2686억원이 들어간다. 김상곤 후보는 "이 금액을 기초지자체와 합의해 분담할 경우 경기도 부담은 많이 줄어든다. 세금은 더 걷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역풍은 곧바로 불었다. 김상곤 후보의 실행 방안이 나오자마자 각계의 비판이 이어졌다. 버스공영제를 두고 김상곤 후보와 각을 세웠던 원혜영 의원은 "세금을 더 걷지 않겠다는 무상버스 공약이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내놓은 기초연금 공약과 무엇이 다른지 묻고 싶다"라며 돌직구를 날렸다. 야권의 경기도지사 예비후보인 김진표 의원도 "급조된 후보가 설익고 무책임한 공약을 내놔서 새정치민주연합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있다"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진보 진영도 가세했다. 3월21일 노동당은 "버스공영제에 대한 해법 없이 요금 보조 방식으로 접근한 이번 발표는 함량 미달이다"라는 논평을 냈다.

특히 아쉬운 대목은 버스공영제 논의가 무상 논쟁으로 변질된 점이다. 김상곤 후보의 공약을 만드는 데 자문역으로 참여한 대중교통 전문가는 < 시사IN > 과의 인터뷰에서 "발표 내용을 보고 실망했다. 결국 재정 현실성에만 초점을 맞춘 내용이다. 자칫 버스공영제 논의가 더 이상 확대되지 못하고 요금 보조를 통해 버스 사업자의 주머니만 불려주는 게 아닌지 염려된다"라고 말했다.

이런 각계의 비판이 쏟아지면서 김상곤 후보의 무상버스 공약은 '동네북'이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무상버스 공약이 발표된 직후 조사한 3월14일 JTBC '전국'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무상 대중교통에 공감 않는다'는 의견이 70%나 되었다. 그런데 왜 김상곤 후보는 무상버스 공약을 밀어붙이고 있을까.

< 시사IN > 이 제작한 인포그래픽(오른쪽)에 흥미로운 대목이 나온다. 무상버스 공약 발표 직후 세간의 관심은 경기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이들에게 맞춰져 있었다. 서울과의 무상버스 연계 문제, 서울 방향 출퇴근 시간 단축 등이 주요 이슈였다. 그런데 경기교통DB센터의 통계를 분석해보니 2011년 경기에서 서울로 이동한 비율(21.1%)보다 경기에서 경기로 이동한 비율(75.4%)이 세 배 넘게 높았다. 출근 통행으로만 따져도 경기도 내 이동(65.3%)이 경기-서울 간 이동(30%)보다 두 배 이상 높았다. 세간의 선입견을 비켜가는 수치다. 경기도민에게는 경기도 내 교통 문제가 더 피부에 와 닿는 이슈라는 이야기다.

특히 경기도 내 통행량을 분석해보면 승용차가 절반(49.9%)을 점유했고, 그 뒤를 버스(31.7%)가 차지했다. 전철·지하철은 3.4%에 불과했다. 서울 지역의 교통수단별 분담률이 전철·지하철-버스-승용차 순인 것과는 확연히 대비된다. 승용차를 제외하면, 경기도민의 절대다수가 이동 시 버스에 의존하는 것이다.

김문수 후보의 GTX 공약, 지난 선거 좌우해

김상곤 후보의 무상버스 공약은 경기도민의 가장 가려운 곳을 긁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대중교통 문제는 경기도 주민이 불편해하는 요인 1순위로 나온다. 싸늘한 전국적 여론과 달리 경기도에서 무상버스 공약은 어떻게 굴리느냐에 따라 강력한 정치적 파괴력을 가진 '무기'가 되는 것이다. 2010년 지방선거의 '학습 효과'도 있다. 당시 민주당은 50만명 이상의 경기도 대도시에서 대부분 승리했다. 광역의원 선거에서 71명의 당선자를 내 한나라당(36명)을 압도했다. 그러나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야권 단일후보였던 유시민 후보는 패했다.

당시 유시민 후보는 핵심 공약으로 천안함 사건으로 인한 '안보 위기' 문제와 '4대강 사업 반대'를 들고 나왔다. 반면 김문수 한나라당 후보는 'GTX(수도권 광역급행철도) 건설'을 간판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 결과 유시민 후보는 47.79%의 득표율을 얻어 김문수 후보에게 4.4%포인트 차이로 졌다. 경기도 광역의원 비례대표 선거에서 야권이 얻은 54.45%에 한참 못 미치는 득표였다. 만약 유시민 후보가 김문수 후보의 GTX 공약에 맞서는 실생활 교통 이슈를 들고 나왔으면 선거 결과가 달라졌을 수도 있었다는 게 정치권의 평이다.

경기도 여론에 밝은 한 정계 인사는 "김상곤 후보가 자칫 이념 논쟁으로 비칠 수 있는 버스공영제가 아니라 실생활 이슈인 무상버스를 전면으로 들고 나온 건 지난 지방선거의 교훈이다. 김문수 후보의 GTX도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았지만, 경기도 주민에게 절실하게 먹혔다"라고 말했다.

버스공영제 논의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조짐을 보이는 것도 김상곤 후보 측에는 청신호다. 전북도지사에 도전하는 유성엽 민주당 의원은 3월20일 2년간 계속된 전주시 버스 파업의 원인으로 수익성 없는 민영버스를 지목하며 버스공영제를 공약으로 제시했다. 유 의원은 전북교통공사를 설립해 버스공영제를 현실화하고, 단계적 무료버스를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원혜영·김상곤 후보가 제시한 버스공영제 로드맵을 따른 모양새다.

ⓒ시사IN 이명익 3월19일 서울 사당역 광역버스 승차장에는 경기도로 퇴근하는 직장인이 많았다.

전남도지사 출마를 선언한 이낙연 민주당 의원도 3월19일 "버스 (준)공영제를 농어촌 지역부터 도입해 단계적으로 전남 전역으로 확대하겠다"라고 밝혔다. 이낙연 의원은 버스 (준)공영제 도입을 제안하면서 전남 신안군의 사례를 언급했다. 1000여 개 섬으로 이뤄진 신안군이 국내 최초로 버스공영제를 도입한 곳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각계의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오른쪽 상자 기사 참조). 에스토니아, 프랑스 등 무상 대중교통을 실시한 외국의 사례도 관심을 모은다(19쪽 딸린 기사 참조).

수도권도 들썩이고 있다. 재선에 도전하는 김만수 부천시장이 버스공영제 도입을 놓고 공론화를 시작했고, 구리·평택 등 수도권 기초단체에서도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버스공영제 논의가 활발하다.

서울시도 버스공영제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져

가장 주목되는 건 서울시의 행보다. 서울시는 아직 공식적인 견해를 밝히지 않고 있다. 박원순 시장이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엄청난 비용이 들기 때문에 쉽게 결단할 수 없다"라고 말하면서 버스공영제에 '부정적'이라는 보도가 나왔지만 속단하기에는 이르다. 취재 결과 서울시는 관련 자료를 놓고 면밀히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도와 접한 서울에서 어떤 식으로든 버스공영제 논의에 시동을 걸 경우 무상버스는 이번 지방선거의 판세를 좌우할 핵심 이슈로 떠오르게 된다.

3월20일 김상곤 후보는 무상버스 실행 방안을 발표하면서 일성으로 "해내는 사람은 길을 찾고, 못하는 사람은 핑계를 찾는다"라고 말했다. 3월21일 원혜영 의원은 "무상급식으로 성공한 김상곤 후보가 급식과 교통은 다른 맥락인데도 '성공의 덫'에 빠져 무상교통을 도입했다"라고 날선 비판을 계속했다. 김상곤 후보가 2010년 무상급식에 이어 던진 무상버스 의제가 통합의 미로에서 헤매는 야권에게 과연 '길'을 터줄까? 아니면 '성공의 덫'이 될까.

이오성·김동인 기자 /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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