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히신문이 '박근혜 1년' 질타하고 나선 까닭

2013. 12. 31.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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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병규의 글로벌 포커스 > 한·일 모두 정권의 폭주로 민주주의 '위기'…세태의 흐름도 적신호

[미디어오늘 백병규 언론인] 일본 < 아사히신문 > 은 박근혜 대통령 당선 1주년을 맞아 지난 23일 박 대통령에게 '열린 정치'를 촉구하는 사설을 실었다. 한국 문제에 관심이 많은 신문이고, 평소에도 국제적인 사안에 대해 목소리를 내왔던 신문이기에 박 대통령 당선 1주년을 맞아 이런 사설을 싣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국내 그 어떤 언론에 못지않게 지난 1년 박근혜 정권의 문제점을 매섭게 짚고 비판해 국내 언론이 그 내용을 인용 보도하기도 했다.

< 아사히신문 > 은 박 대통령이 '국민통합'을 전면에 내걸고 대통령에 당선됐으면서도 국민통합과는 거리가 먼 행보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정원 등 국가기관의 선거 개입 의혹 규명에도 적극적이지 않고 반대세력을 포용하는 자세도 보이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 아사히 > 는 박 대통령에게 "민주화를 이룬 지 오래인 지금의 한국에서 (유신과 같은) 수상쩍은 체제를 부활시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면서, "그런 의혹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도 투명한 국정운영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이 신문은 이를 위해 부정선거 의혹을 해명하는 '진지한 행동'과 국정원의 근본적 개혁, 그리고 야당 등 반대세력과 '대화'와 '타협'을 추구하는 '겸허함'을 갖기를 촉구했다.

남의 나라 일에 주제넘은 간섭?

▲ 한국과 일본 모두 정권의 '불통'과 '폭주'로 민주주의의 위기를 맞고 있다. 사진=연합뉴스·아사히신문

박근혜 대통령과 한국 정부가 보기엔 주제넘은 간섭일 수 있겠다. '여러분은 일본 정치나 잘 챙기세요'라는 말이 절로 나올지도 모르겠다. '일본 정치인들의 삐뚤어진 역사인식이나 제대로 바로 잡기나 하라'는 면박을 당하기 십상이다. 다른 나라 일에 개입하거나 언급하기가 쉽지 않은 까닭이다. < 아사히 > 는 박 대통령의 당선 1주년을 맞아 쓴소리를 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박 대통령의 완고한 자세가 일·한 관계에도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그러나 (두 나라는) 민주주의의 가치를 공유하는 이웃 나라다. 열린 정치를 서로 경쟁해가는 관계로 나아가는 것이 서로에게 이익이 될 것이다."

한국과 일본이 민주주의를 향한 선의의 경쟁을 했으면 한다는 바람일 것이다. 그것은 곧 한국의 민주주의가 안녕하지 못하면 한·일 관계는 물론 일본의 민주주의 역시 나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판단일 것 같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안녕하고 건강해야 일본의 민주주의도 함께 성장해나갈 수 있다고 보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실제 일본 사정도 안녕치 못하다. 며칠 전 아베 신조 총리가 기어이 대형 사고를 쳤지만, 일본 국내 분위기는 진즉부터 험악했다. 아베 총리는 특정비밀보호법안을 막무가내로 밀어붙였다. 민주당 등 야당과 언론, 법조계, 시민사회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자민당을 앞세워 일사분란하게 통과시켰다. 각본에 따른 한 치 오차 없는 강행 처리였다.

< 아사히신문 > 이나 < 마이니치신문 > 같은 일본의 언론들은 두 달 넘게 사투를 벌이다시피 했다. 국민의 알권리는 물론 언론자유, 무엇보다 일본의 민주주의 토대를 뿌리부터 위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들 일본 언론들은 전력을 다했다. 매일 같이 그 문제점을 지적하는 시리즈 사설을 쓰고, 연속 기획물을 내보냈다. 하지만, 아베 총리와 자민당의 폭주를 저지하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야스쿠니신사 참배, 아베 폭주의 귀결?

지난 26일 아베 총리의 전격적인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바로 이런 폭주의 필연적 귀결이라는 분석도 있다.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찾은 26일, 자민당 내에서도 그의 참배 사실을 알고 있었던 이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자민당의 이시바 시게루 간사장조차 참배 당일 통보를 받았다. 자민당 간부가 "이제 아무도 막을 수 없게 됐다"고 불평한 까닭이다.

연립여당인 공명당도 당일 통보 대상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공명당의 야마구치 나쓰오 대표도 당일 오전 전화로 아베 총리의 참배 일정을 통보받았다. 야마구치 대표는 즉각 '반대'한다고 밝혔지만 아베 총리는 전혀 괘념치 않았다. 야마구치 대표가 아베 총리로부터 들은 말은 "반대할 줄 알았다"는 것이다.

아베 총리의 거침없는 행보의 배경으로는 크게 3가지가 꼽힌다. 첫째는 높은 지지율. 돈을 풀어 경기를 부양한다는 아베노믹스가 그 밑천이다. 워낙 바닥을 친 경기여서 그 반동에 따른 반등인지, 아니면 아베노믹스의 효과인지에 대해서는 이론이 있지만 어쨌든 일본 경제가 나름 활력을 되찾고 있는 것이 아베 총리의 지지율을 견고하게 뒷받침해주고 있다. 특정비밀보호법안의 강행 처리과정에서 한 때 50% 아래로 떨어지기도 했지만, 아베 정권에 대한 지지율은 여전히 50% 안팎에서 강세를 유지하고 있다.

둘째는 지난 7월 참의원 선거에서의 압승. 그나마 일본 정치의 균형추 역할을 해왔던 참의원의 브레이크가 완전히 풀렸다. 더 이상 야당의 반대나 견제에 큰 신경을 쓸 필요가 없게 됐다. 아베 총리가 그동안 신중을 기해왔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 등에 대해 국내에서는 그다지 크게 신경을 쓸 필요가 없게 됐다.

세 번째는 자민당 내 비판 세력의 실종. 자민당은 이전에는 이념적인 측면에서 그 구성 폭이 상당히 컸다. 그러나 지금은 마치 일사불란한 '바위덩어리' 같은 정당이 됐다는 평가다. 일본의 유명 칼럼니스트 오다지 마타카시는 최근 < 아사히 > 에 기고한 글에서 자민당의 오늘에 대해 "당내 통풍이 아주 나쁘고, 이론의 여지가 없으며, 패기만만한 젊은 세대의 목소리가 사라진 정당"이라고 혹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베 총리와 자민당에 대한 여론의 지지는 꽤나 강고하다. 특히 젊은층의 지지가 만만치 않다. 지난 29일자 < 아사히신문 > 의 여론조사 결과는 그런 흐름을 잘 보여준다. < 아사히신문 > 은 '20대의 정치·사회의식'에 초점을 맞춰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20대 1893명, 30대 이상 1792명을 대상으로 동일한 질문지로 실시한 것. 일본 20·30대 "자민당 개혁적" …33%는 "침략전쟁 아니다"

▲ 자민당을 개혁적으로 본다는 응답이 20대에서 가장 많았다. 그래픽=아사히신문

조사 결과 20대 일수록 자민당을 '개혁적(변혁적)'으로 보는 평가가 세대 중에서 가장 많았다. 전체 세대별 경향을 보면 20대, 30대, 40대가 자민당을 다른 세대보다 상대적으로 더 '개혁적'이라고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50대, 60대, 70대는 '안정적'이라는 평가가 더 강했다. 자민당의 이념적 성향에 대해서는 모든 세대가 '우파적'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역시 20대와 30대가 세대 중에서는 자민당을 그래도 '중도' 쪽에 가깝게 평가했다. 반면 50대, 60대, 70대는 '우파적'이라고 보는 응답자가 훨씬 많았다.

일본의 20·30대가 다른 세대보다 자민당을 더 '개혁적'이라고 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이든 세대의 고정관념이 자민당의 변화를 제대로 포착하지 못한 것일까? 아니면, 20·30대의 평가 기준이 기성세대 보다 더 보수적인 것일까?

칼럼리스트 오다지 마타카시는 아베와 자민당이 높은 지지도를 유지하고 있는 이유로 '결단력'에 대한 일본 사회의 맹목적 지지 흐름을 들었다. 최근 10여 년 동안 일본 국민들은 정치적 지도자들이 무언가를 결단해주기를 바라왔고, 이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것. 그 방향이나 내용과 무관하게 일단 '결단'하고 '실행'하는 것에 환호할 준비가 돼 있다는 것이다.

아베 총리는 이른바 '결정의 정치'를 하겠다고 공언해왔다. 정치적 결정을 미적거리는 데 일본 정치의 폐해가 있다고 본 그는 결정하면 과감하게 밀어붙인다는 것을 정치적 행동의 지침으로 삼았다. 야당이나 언론의 거센 반발에도 특정비밀보호법안 등을 강행 처리한 것이나 오키나와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 등 그동안의 난제 등에 속도를 낸 것이 대표적이다. 아베 총리와 자민당이 20·30대에게 상대적으로 더 '개혁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일 수 있다.

< 아사히 > 는 태평양 전쟁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졌다. '침략전쟁'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침략전쟁이 '아니다'라는 응답이 20대에서 33%가 나왔다. 비록 과반에는 못 미치지만 다른 세대에 비해 가장 높게 나온 것이었다. 아베 정권의 독주 못지않게 일본의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요인이 이미 세태에 내재돼 있다고 본다면 너무 과민한 반응일까.

< 아시히신문 > 이 박근혜 정권의 불통행보와 한국 민주주의의 안위에 깊은 관심과 우려를 나타낸 것은 어쩌면 동병상련의 심경일 수 있겠다. 아베의 '폭주'가 박 대통령의 '불통'과 겹쳐지고, 그것을 배태한 세태의 흐름 또한 두 나라 모두 위험해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과 일본 두 나라의 민주주의 역시 상호 의존적일 수밖에 없다는 현실 인식의 소산이기도 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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