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북 딱지' 막 붙이다 큰코다친다

김은지 기자 2013. 12. 12.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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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대 전 검찰총장, 정미홍 전 아나운서, 김무성 의원 등은 함부로 종북 딱지를 붙였다가 구설에 오르거나 소송을 당했다. 보수 교육단체도 전교조를 주체사상 세뇌 세력이라고 주장하다가 손해배상 명령을 받았다.

2004년 윤 아무개씨는 민주노동당에 매달 1만원씩 계좌 이체를 했다. 소액 후원이었다. 2년 뒤 계좌를 없앴고, 후원도 활동도 안 하니 자연스레 탈당했으리라 여겨 아예 잊고 살았다. 그는 5년 뒤 검사로 임용되었고, 몇 달 뒤 검찰에서 연락을 받았다. ‘교사 및 공무원 정당 가입 수사’를 하는데, 윤씨의 당적이 남아 있다고 했다. 그는 곧바로 탈당계를 제출했다. 여기까지다. 윤씨는 ‘종북’일까? 한상대 전 검찰총장의 분류에 따르면 그렇다. 한 전 총장은 지난 11월25일 한 세미나에서 “검찰총장 재직 때 1900여 명을 모두 스크린한 결과, 종북 활동 전력이 있는 검사들을 찾아 사퇴시키고 징계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이후 경과는 언급하지 않았다. 한 전 총장이 꼽은 두 검사는 민노당 가입 전력으로 검찰 수사를 받았다. 강 아무개 검사는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사직 권유를 받고 사퇴했다. 나머지 한 명, 앞서 언급한 윤 검사는 중징계 처분을 받고 면직되었다. 그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1·2·3심에서 모두 승소했다. 재판부는 “당비를 내지 않는 3개월 후부터 당원으로 행사할 수 있는 선거권·피선거권이 박탈되었고, 계좌 정리 이후 당적 유지 여부를 인식할 소재도 없었다”라며 면직 처분을 취소했다. 정작 ‘종북’은 해당 징계나 소송에서 언급 한 번 되지 않았다. 한상대 전 총장의 ‘종북’ 발언은 사실관계조차 틀린 셈이다. ‘종북 유행’에 숟가락을 얹으려 했던 한 전 총장을 두고 검찰 후배들의 뒷말도 무성했다. “김성환 노원구청장에게 800만원 배상하라” 한 전 총장은 구설에 오르다 끝났지만, ‘종북 딱지’ 붙이기를 하다 돈까지 물어준 사람도 있다. 지난 10월 정미홍 전 아나운서는 김성환 서울 노원구청장에게 800만원을 물어주라는 판결을 받았다.  

ⓒ연합뉴스 12월3일 공교육살리기국민연합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전교조의 법외노조 판결을 촉구하는 탄원서를 법원에 제출하면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발단은 지난 1월 노원구의 특강이었다. ‘사진으로 보는 한국 근현대사’라는 인문학 특강 강사로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가 나서자, 일부 보수 성향 단체가 강의를 취소해달라고 집행정지 가처분신청을 냈다. 한 교수가 ‘김일성 찬양론자’라는 게 이 단체의 주장이었다. 1월19일 정미홍 전 아나운서는 자신의 트위터에 “서울시장, 성남시장, 노원구청장 외 종북 성향의 지자체장들 모두 기억해서 내년에 있을 지방선거에서 반드시 퇴출해야 합니다. 기억합시다”라고 썼다. 김성환 노원구청장은 정씨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재판이 진행되면서 정씨는 김 구청장이 ‘종북’이라는 사실을 입증해야 했다. 정씨가 재판부에 낸 논거는 다음과 같았다. “김 구청장이 구청 직원을 대상으로 한 승진시험 논술 과목에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장하준 지음)〉라는 좌편향 반자본주의 서적을 넣어 인사고과에 반영했고, 2010년 구청장 후보로 출마해 4대강 사업 저지를 위한 출정식을 열며 “천안함으로 死대강을 감추려 하지 마라!”라는 구호로 국민을 선동했으며, 민주노동당과 단일화해 당선된 점 등이 ‘종북’ 성향을 드러낸 증거”라는 것이다. 재판부는 정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근거가 매우 빈약하고 진실이거나 진실로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라고 보았다. 재판부는 “어떤 사람이 ‘종북 성향’ 인사로 지목되면 사회적 평판이 크게 손상될 것임이 명백하므로 그로 인한 명예가 훼손되었다 봄이 타당하다”라며 김성환 구청장의 손을 들어주었다. 정씨는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정씨가 김성환 구청장과 함께 ‘종북 성향’ 인사로 꼽은 이재명 성남시장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은 12월17일 선고 예정이다).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도 제주 강정마을 주민에게 ‘종북 딱지’를 붙였다가 소송을 당했다. 2011년 7월 열린 한나라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김 의원은 제주 해군기지 건설 반대 시위를 두고 “종북주의자 30여 명의 반대 데모 때문에 중요 국책사업이 중단되고 있고, 현재 강정마을에서 공사를 제지하는 세력은 사실상 북한 김정일 정권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고 있는 종북 세력이 대부분이다”라고 말했다. 또 김 의원은 “이들이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것은 결국 북한에 불리한 것은 하지 말자는 종북적 행태다”라고 덧붙였다. 강동균 강정마을회장 등 주민 10명이 명예훼손으로 김무성 의원에게 소송을 걸었다. 강 회장은 “해군기지 건설 반대는 주민 의사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비민주적 절차로 진행되었기 때문인데, 집권 여당의 전 원내대표가 무책임한 발언으로 주민들의 사회적 평가를 훼손시켰다”라고 주장했다. 1심 재판부는 김 의원이 주민 9명에게 각각 100만원씩 지급하라고 판결했다(원고 열 명 중 유일하게 윤 아무개씨는 제시된 증거만으로는 해군기지 저지운동에 참가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배상금 지급 대상에서 빠졌다).  

한상대 전 검찰총장, 정미홍 전 아나운서, 김무성 의원(왼쪽부터)은 종북몰이로 구설에 올랐다.

그러나 항소심인 서울남부지법 민사 1부(정인숙 부장판사)에서는 결과가 뒤집혔다. 항소심 재판부도 ‘특정인을 종북주의자·북한 정권의 꼭두각시로 지목할 경우 명예훼손에 해당한다’는 원심 판단에는 동의했지만 ‘반대 데모자 30여 명’과 같은 표현에는 특정인이 명시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들어 강정마을 주민의 소송을 기각했다. ‘전교조가 주체사상 세뇌’ 주장은 허위 정미홍 전 아나운서나 김무성 의원 외에도 함부로 종북 딱지를 붙였다가 손해배상 명령을 받은 보수 단체가 있다. ‘반국가교육 척결국민연합’ 등은 2009년 전교조 교사의 일제고사 거부 논란이 있자, 현수막 시위 등을 벌였다. 현수막에는 “김정일이 이뻐하는 주체사상 세뇌하는 종북집단 전교조, 북한에서 월급 받아라!” 등의 내용이 쓰여 있었다. 서울남부지법 1심 재판부는 “‘주체사상 세뇌하는’ 부분은 증거가 없는 점에 비추어 허위 사실 적시에 해당하고, 반국가·반사회 세력으로 낙인찍혀 사회활동을 위축할 가능성이 있을 정도로 사회적 평가를 저해시킨다” 등의 이유를 들어 전교조에 2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교육과 학교를 위한 학부모연합’은 2011년 당시 한나라당 조전혁 의원이 자신의 홈페이지에 전교조 조합원 명단과 소속 학교를 공개하자, 이들 6만명 교사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전교조 본부의 자료에는 종북·친북 자료가 많고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한다. 심지어 북한의 연방제 통일과 김일성 부자를 찬양하는 자료도 있다. … 이런 일부 종북 세력이 전교조를 이끌고 있다.” 전교조는 ‘교육과 학교를 위한 학부모연합’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전교조를 종북세력이 이끄는 단체 등으로 폄하했다는 이유다. 재판부는 “피고(교육과 학교를 위한 학부모연합)가 낸 증거는 자신들이 쓴 표현이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근거라고 볼 수 없다. 알 권리와 표현의 자유의 한계를 벗어났다고 봄이 상당하다”라며 전교조에 2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처럼 ‘종북’ 발언과 관련해 손해배상 선고가 나온 것은 지난해가 처음이다. 대법원 판결문 검색 시스템으로 ‘종북’이라는 단어를 검색하고 판결문을 찾아본 결과, 2012년 4건 2013년 7건이 있었다. 그 전까지는 ‘종북’이라는 단어가 ‘종북면’ 같은 행정지역 등에서만 등장할 뿐이었다.

김은지 기자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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