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박근혜 9개월만에 정권 말기증상"

2013. 12. 9.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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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담> 인터뷰서 거침없는 '정치 발언'

정계 복귀엔 "흘러간 물로 물레방아 못 돌린다"

'정치인 유시민'은 지난봄 "너무 늦기 전에, 내가 원하는 삶을 찾고 싶어서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떠나겠다"고 선언했다. 그로부터 두 계절이 지나고, '지식 소매상 유시민'은 새 책 <노무현 김정일의 246분-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의 진실>(돌베개)를 내놓았다. 정치적 논란이 일었던 '2007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복원해 해설한 책이다. 작가 유시민은 '지식 소매상'으로서 역할을 잘하고 있는 것일까?

<한겨레티브이>가 만드는 대담 프로그램인 '한겨레담'이 궁금증을 해소하려고 나섰다. 독자를 대신해 김보협 <한겨레> 기자가 물었다. 유시민은 근황을 물으니 "근로기준법에 따라 9시에 출근을 하고 6시에 퇴근한다. 이 동네에서는 저를 다 선생님이라고 부른다"며 웃었다. 정치무대에서 은퇴한 뒤 머리카락은 덥수룩하게 귀를 덮었고, 안경 안으로 보이는 눈매는 훨씬 부드러웠다. 얼굴도 편안해 보였고, 특유의 날카로움이 많이 누그러졌다는 느낌이었다.

'한겨레담' 인터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시청자들이 보내온 정치에 관한 질문부터 글쓰기, 역사, 연애, 삶의 태도 등에 관한 여러 질문이 순서 없이 쏟아졌다. 그때마다 '유시민 스타일' 대답이 돌아왔다.

유시민은 정계 복귀를 묻는 질문에 "흘러간 물로 물레방아를 못 돌린다"고 말했다. "직업 정치인으로서 이 시대가 유시민에게 주었던 역할을 다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노무현 같은 사람이 다시 나타난다고 해도 "정치를 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단호하게 말했다. 대신 유시민은 "글쓰기는 사람들의 마음과 정신, 생각을 교류해 세상을 바꿔나가는 것"이라며 작가로서 사회에 기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정치를 떠났다고 유시민이 정치 발언을 멈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거침이 없었다. 박근혜 정부를 향해 "정권 말기 증상을 보이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박근혜 정부가 집권 초기 9개월 동안 보여준 이 모든 모습은 한 정권이 몰락해갈 때 보여준 가장 추악한 모습입니다. 지금 박근혜 정부는 '이념전쟁을 통해서 권력을 유지하고, 단맛을 누린다'고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 4년 동안에도 다른 것을 할 수 있는 역량이 없는 것 같습니다."

유시민은 자신의 정치 발언에 대한 비판을 의식한 듯 "정치적인 견해 표명을 정치인만 할 수 있다면, 그것은 독재국가다. 정치 은퇴한 사람이 왜 정치 발언을 하느냐는 무식한 이야기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유시민은 "박근혜 정부와 엄청나게 투쟁하는 한이 있더라도 직업 정치인으로서가 아니라, 글 쓰는 시민으로서 싸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시민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묻는 젊은 시청자들에게 "자신을 표현하면서 살라"고 강조했다. "자기가 가지고 태어난 것을 더 발전시키고 가다듬고 키우면서 사는 겁니다. 자기한테 없는 것을 부러워하거나, 가지려고 하거나, 남이 가진 것을 질투하거나 이런 것은 모두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래는 '한겨레담' 유시민 인터뷰 주요내용이다.

박수진 <한겨레티브이> 피디 jjinpd@hani.co.kr

▷ [한겨레談 3회] '48:45의 사회'…"나와 다른 사람을 감화시켜라"

■ 유시민 '한겨레담' 인터뷰 주요내용

-이제 호칭을 뭐라고 불러야 하나

"이 동네에서는 다 저보고 '선생님'이라고 불러요. 보통 한국에서 지식을 다루는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선생님이라고 부르잖아요."

-스타일이 많이 변했고, 얼굴이 편안해 보인다.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나

"저도 생활인이니까요. 제일이 글을 쓰는 일이고, 그래서 근로기준법에 따라 9시에 출근하고, 6시 퇴근합니다. 책 읽고 글 쓰고 그렇게 지내지요."

-규칙적으로 글쓰기가 쉽지 않잖아요. 스스로 잘 통제하지 않으면, 그 시간을 지켜내기 힘들 것 같은데.

"사람을 잘 안 만나죠. 정치를 10년쯤 했기 때문에 네트워크가 굉장히 커졌거든요. 아는 사람이 많고. 손님이 왔다 가시거나 누구 좀 만나러 갔다 오고 그러면 시간이 반나절씩 가버리니까 작업을 할 수가 없죠. '정치할 때는 잘 쫓아다니더니, 그만 두니까 코빼기도 안 보인다'는 이야기를 듣더라도 상관없어요. 저한테 적합한 크기의 네트워크와 인간관계를 조정중이라 그렇게 노력하고 있죠."

# "이 동네에선 저 보고 선생님이라고 불러요"

-지식소매상답게 부지런히, 새 책 <노무현 김정일의 246분-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의 진실>을 썼다. 이 책을 왜 쓰게 됐나.

"남북의 국정 최고책임자들이 어렵게 만나서 4시간 동안 대화를 나눴는데, 공개되면 안 되는 게 이렇게 공개가 됐잖아요. 그러면 좀 읽어봐야죠. 그런데 잘 안 읽으시더라고요. 그리고 내용에 대해서 여러 억측이나, 다양한 해석을 내놓고 싸움만 하고요. 대화록이 글이니까, 글을 다루는 사람들이 합리적이고 냉정하게 이것을 읽고 독해하고 해석해서 참고할 부분을 참고하고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좀 어려워서 저도 잘 이해하려고 공부하고, 자료도 찾아보고 하는 과정에서 관심 있는 시민들과 같이 나눴으면 좋겠다 싶었죠. 그런 생각이 들어서 쓰게 됐어요."

-<노무현 김정일의 246분-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의 진실> 책은 많이 팔렸나

"남북관계에 대해서 다들 '나도 좀 안다'는 생각들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굳이 돈 주고 사서 머리를 쥐어짜고 싶은 수고를 안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의욕을 가진 분들만 읽어 보면 되지요." (웃음)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면, 한 때는 권력의 정점에 있었다. 다 놓아 버렸는데, 어떤 점이 가장 홀가분한가.

"우선 만나기 싫은 사람을 안 만나도 되는 게 그게 큰 행복이에요. 정치인은 세일즈맨과 비슷해서 우리 회사 제품을 별로 안 좋아하는 사람도 만나서 회사 제품이 좋다고 사달라고 얘기해야 해요. '자유인'이라는 것은 자신이 원하지 않으면 안 해도 상관이 없으니까 얼마나 좋아요. 내 시간이 얼마나 귀한 시간이에요. 정말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만나서 살아도 시간이 부족한데, 별로 만나고 싶지도 않고 마음속으로 싫어하는 사람을 만나서 시간을 보내는 그런 고통이 없는 것만 해도 굉장히 좋지요."

# "정치 금단현상은 정치보다 재미있는 일을 못 찾았기 때문"

-정치는 마약 같다는 느낌이 든다. 과거 정치인들 보면 정치를 끊지 못하고 여러 당에 어슬렁거리는 이들도 많다. 정치 금단현상을 느끼지 않나.

"저한테 정치는 통증을 느끼게 하는 순간들이 많았죠. 그래서 금단증상이 아닌 해방감 같은 걸, 아침마다 느끼죠. 정치할 때는 일주일에 세 번씩 조찬모임도 있고, 이러던 삶에서 이제는 7시 ~ 7시 30분까지 정상적으로 자고 일어나서 아침밥 차려 먹고, 세수하고 옷 갈아입고. 그것도 내가 입고 싶은 대로 입고 내가 하고 싶은 차림으로 그냥 다니면 되니까 좋은 거지요. 이게 너무 좋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람들이 (정치를) 못 떠나는 것은 정치보다 재미있게 살아갈 일을 못 찾아서 그래요. 정치가 마약처럼 쾌감을 줘서 그런 면도 없지는 않겠지만, 그것 말고 이 사회 속에서 이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자신에게도 의미가 있고, 타인과 사회에도 의미가 있을 수 있는 그런 일들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못 떠나는 거예요."

('한겨레담' 제작진은 다양한 독자들의 질문을 받았다. 웹 홍보물을 개시한 첫날부터 메일이 쏟아졌다. 식을 줄 모르는 인기의 비결을 물었더니, "스스로 차별적 상품 같다"고 말하며 웃었다. 아직은 그를 '정치인 유시민'으로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여러 차례 직업 정치인으로서 복귀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정치 관련 질문이 꽤 모였다. 다음은 독자들의 질문이다.)

# "직업 정치인으로서 유시민의 역할은 다 했다"

-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다. 다시 고 노무현 전 대통령 같은 분이 나타나도 정치를 안 하겠나.

"네. 그런 분이 나타날 일도 없겠지만 아주 비슷한 분이 나타난다고 해도 정치를 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제 나이가 50대 중반으로 향하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 시작한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어려운 일이죠."

-지난 대선에서 양산에 묻혀있던 문재인도 끌어올렸다. 첫 질문이 '노무현 같은 사람이 또 나온다면…' 이었는데, 이 질문을 통해서 이런 생각도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몇 년 뒤, 할 만한 사람이 없다, 유시민 당신이라도 나와서 경쟁해달라는 강력한 요청이 있으면 어떻게 할 건가.

"흘러간 물은 물레방아를 못 돌려요"

-'꺼진 불도 다시보자'는 말도 있잖아요?

"꺼진 불이 다시 일어난 경우도 있죠. 고 김대중 대통령 같은 경우엔 오랜 정치생활을 통해서 아주 잘 검증이 된 분이었고, 어떤 경우라도 믿어주는 일정 수의 유권자들이 있었죠.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정치를 꼭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다거나, 내가 꼭 국가운영을 해야 한다거나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꼭 직업으로서 정치를 해야 우리 사회를 좋은 사회로 바꾸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고요. 정치는 물리적 강제력을 동반하는 국가권력으로 사회를 개선해나가는 노력이라면, 글쓰기는 사람들의 마음과 정신, 생각을 교류해서 세상을 바꿔나가는 것이거든요. 물론, 세상을 바꾸는 것이 글쓰기의 목적은 아니죠. 글쓰기는 제 자신을 표현하는 일이고, 제가 살아가는 방식이에요. 저의 생업이기도 하고요. 제가 직업정치인으로서 이 시대 안에서 나에게 주어졌던 역할은 이미 다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 '48:45의 사회'…"나와 다른 사람을 감화시켜라"

-박근혜 정권 잔여 4년을 어떻게 견뎌내야 하는가.

"5년 만에 잘 안 바뀌어요. 재미있는 여론조사들이 가끔 있는데 '전직 대통령 선호도 조사' 같은 거요. 지난 10월 '리서치뷰'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34.3%로 가장 높고 그 뒤로 박정희 26.1%, 박근혜 18.5%, 김대중 15.4%, 이명박 1.7% 대통령 순이에요. 이 선호도를 합쳐보면 48:45. 전직 대통령 선호도라는 지표를 놓고 보면 대한민국 국민이 둘로 딱 나눠져 있다는 거예요. 여기에는 정치만 들어 있는 게 아니에요. 이 진영은 정치로만 갈라진 진영이 아니죠. 예컨대 철학, 도덕, 삶의 방식, 인생관으로 갈라진 진영이에요. 그래서 역사 논쟁이 치열한 거예요. 이렇게 국민이 반으로 나눠져 있는 상황에서 박정희, 박근혜 대통령의 선호도를 합치면 45%가 돼요. 그 힘이 이 정권을 만든 게 아니겠어요. 다음에 꼭 정권이 바꾸기를 원하신다면, 이렇게 해보세요. 설문에서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이 아닌 다른 대통령을 선호한다고 답했을 것 같은 사람을 1년에 한 명씩 설득하시면 돼요. 설득의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죠. 결국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삶의 태도가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좋게 비쳤을 때, 인생관의 접근이 이뤄지는 거예요. 그래서 삶을 대하는 태도 면에서 다른 사람을 감화시켜나가야 한다는 거예요. 올해부터 한 사람씩 앞으로 4년간, 5명씩만 해주면 확실히 바뀐다고 보죠. 지나간다는 것은 그냥 지나가는 게 아니라, 누군가 그런 노력을 하기 때문에 지나가게 되는 것이거든요."

# "박근혜 정권 이념전쟁으로 권력 유지"

-<어떻게 살 것인가> 집필 당시와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다르다. 예를 들면, 국정원 등 국가기관의 대선개입도 의혹 수준이었으나 검찰 수사를 통해서도 상당부분 밝혀진 상태다. 대선 결과에 승복하는 성숙한 태도를 주문했는데, 그 생각은 변함이 없나.

"선거가 끝났을 때는 축하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고,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갖고 있었어요. 그것하고 집권해서 하는 모습을 보면서 잘하고 못 한다를 판단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에요. 지금 박근혜 정부가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정권 말기 증상이에요. 집권 초기 9개월 동안 보여준 이 모든 모습들은 어떤 한 정권이 몰락해갈 때 보여준 가장 추악한 모습이에요. 어떻게 된 정권이 초기 1년 동안 보통의 말기 증상을 보일까. 그 점이 좀 놀라워요. 박근혜 대통령이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대통령이 되고 나면 그 자리가 주는 책임 의식과 소명의식이 있어요. 또 그 자리에서 취득하게 되는 새로운 정보 같은 것들이 대통령으로 하여금 좀 더 시야를 넓히고, 도량을 넓힐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어요. 그런데 아닌 것 같죠. 지금 박근혜 정부가 하고 있는 일은 '이념전쟁을 통해서 권력을 유지하고, 단맛을 누린다' 이렇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앞으로 4년 동안에도 다른 것을 할 수 있는 역량이 없는 것 같아요. 있으면 좋겠는데, 없을 것 같다는 의심이 점점 짙어지고 있죠."

-방금 "박근혜 정부가 초기에 집권 말기 현상이 일어난다"고 비판했다. 어떻게 보면 정치 떠난 분이 정치 이야기를 하느냐, 이렇게 비난하는 분도 있을 수 있다.

"정치적인 견해 표명을 정치인만 할 수 있다면, 그것은 독재국가죠. 의사표시라는 것은 그 권리를 우리 헌법이 대한민국 국민 누구에게나 제한 없이 할 수 있도록 그렇게 권리를 부여했잖아요. 만약에 정치발언을 정치인만 할 수 있다면, 국민들은 다 입 닫고 살아야죠. 기자는 왜 정치 기사를 쓰죠. 언론인들은 왜 정치 칼럼을 쓰죠.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들은 클로징 멘트에 왜 자기 견해를 얘기해요. 그런 것은 무식한 주장이에요. 왜 남의 권리를 갖고 뭐라고 해요. 제가 박근혜 정부와 엄청나게 투쟁하는 한이 있더라도 직업 정치인으로서가 아니라, 글 쓰는 시민으로서 싸울 거예요. 대한민국이 나에게 부여해준 모든 권리를 가지고 싸울 거거든요. 그래서 저한테 정치 은퇴하는 사람이 왜 정치 발언을 하느냐는 무식한 이야기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아요."

# "정치인들을 평가할 때는 말보다 삶의 이력을 보라"

-국민들이 정치에 관심을 끊지 않도록 당부하고 싶은 말은 뭔가.

"사람은 잘 안 변해요. 그리고 스스로 변했다고 믿는 경우에도 인정받기 어려워요. 저는 그것이 현실임을 인정해요. 사람은 잘 바뀌지 않기 때문에 제가 시민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요. 특히, 정치인들을 평가할 때는 말을 보고 평가하면 안돼요. 물론, 말도 들어봐야겠지만, 어떻게 살아왔는지 봐야 해요. 그 사람이 살아온 이력이 어느 선거가 임박한 시점에서 하는 말보다 훨씬 더 신뢰성이 있는 거예요. 남을 위해서 자신이 손해 본 일이 전혀 없는 사람은 권력을 쥐고 나서도 남을 위해서 무언가를 하기가 굉장히 어려워요. 그 점은 분명하거든요.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들이 어떻게 사는지 모른다고 봐요. 보통의 사람들이 세상에 대해서 어떤 불안감이 있는지.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떤 억울한 일을 당하는지, 힘없고 돈이 없다는 이유로 어떤 무시를 당하는지. 무시당하고, 차별당하는 것에 어떻게 대응하고 살아가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고 봐요. 그런 점을 강조해서 말씀드리고 싶고요. 삶이라는 것은 자기 거예요. 어떤 식으로 살든, 세상과 어떤 식으로 관계 맺든, 그것은 그 사람의 문제고, 권리라고 생각해요."

# "존중과 배려가 중요, 다 해주는 사랑이 최악"

- 얼마 전, 서울방송 배성재 아나운서가 "나라가 이 꼴인데, 연애는 무슨"이라는 말을 했다. 나라가 이 꼴이면 개인의 행복을 위한 것들은 죄가 되는 건가. 연애 잘하는 방법이 궁금하다.

"연애를 잘하는 방법은 모르겠고. (웃음) 연애도 인간관계 중에 하나잖아요. 모든 인간관계의 보편적인 원칙 같은 것이 있다고 봐요. 모든 인간관계에서 기본 원칙이 되어야 하는 것이 있죠. 타인을 독립적이고 인격적 주체로서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그 출발이라고 봐요. 의존하거나, 지배하는 것은 정말 좋지 않은 인간관계라고 생각하죠. 우리나라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의존적인 경향이 있어요. 부모와 자식 관계도 그렇고 연인이나 부부 관계도 그렇고, 선생님과 학생들 관계도 마찬가지에요. 대학에서 심지어 교수와 학생들 사이의 관계도 그렇고요. 정치에서도 보스와 조직원 사이의 관계도 그렇죠. 모든 것을 함께해야 한다는 상호의존적인 방식의 관계가 많아요. 이렇게 의존적이니까, 지배 관계로 가는 거예요. 누군가에게 의존하게 되면 존엄을 지키기가 어려운 상황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또 의존하기 때문에 지배할 수 있는 것이거든요. 모든 관계의 대원칙은 '타인이 독립적인 인격의 주체라는 것'. 모든 문제에서 최대한 자기결정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것. 이 점을 염두에 두고 관계를 맺어간다면 연인관계도 다 똑같다고 봐요. 물론, 다른 관계와 달리 연인 관계는 성적인 끌림이 섞여 있죠. 정당이나 정치를 예로 들자면 이념적 끌림이나 공동의 이상이 끌림이 요소라고 할 수 있죠. 연인단계는 다분히 육체적이고, 정서적인 끌림의 관계가 같이 들어있기 때문에 그것이 연인관계의 특수성이죠. 그 특수성이 인간관계의 보편성을 압도해서는 좋은 관계가 될 수 없다고 봐요. 그리고 남자든 여자든 나를 존중해주는 사람을 사귀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존중 속에서 배려도 나오고, 다 해주는 사랑은 최악이라고 생각해요."

-글을 잘 쓰고 싶다. 이 욕망을 채워줄 노하우가 있나.

"글을 잘 쓰려면 우선 많이 읽어야 해요. 어휘가 없으면 글을 쓸 수가 없어요. 우리말 어휘를 아주 풍부하고 아름답게 구사한 책을 반복해서 읽는 것이 필요해요. 또 작은 수첩을 들고 다니면서 끊임없이 메모하는 것도 좋아요. 우리글의 구조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죠. 우리글의 기본은 말이 글보다 우선이에요. 먼저, 말이 있고, 그 다음에 글이 있었어요. 순서로 보면 어휘를 잘 알아야 하는 것이고, 그 다음에 말, 마지막이 글이에요. 말이 글보다 우선해요. 고인이 된 이오덕 선생님의 지론이에요. 이 점을 유념하고 글을 써보면 자신의 글이 흉한지, 예쁜지 알 수 있어요. 읽어봐서 듣기 좋으면 좋은 글이에요."

# "자신을 충분히 표현하면서 살아라"

-정치인 시절부터 솔직하고, 화끈한 입담에 반했다. 그래서 팬도 많고, 안티도 많은 걸로 알고 있다. 그럼에도 자기표현에 솔직한 이유가 있나.

"그건 그냥 성격이죠. 사람은 자기가 갖고 태어난 걸로 살거든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자기가 가지고 태어난 것을 더 발전시키고 가다듬고 키우면서 사는 거예요. 없는 것을 가지고 살 수가 없거든요. 자기한테 없는 것을 부러워하거나, 가지려고 하거나, 남이 가진 것을 질투하거나 이런 것은 모두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하고요. 때로는 자신이 가진 것이 세상과 잘 맞아서 대박이 나는 수도 있어요. 제가 가수 에일리의 팬인데요. 노래도 춤도 시원하게 하고, 외모도 시원하고 좋잖아요. 노래 가사를 들어보면, 사랑에 얽매이지 않는 아주 당당한 여자를 이야기해요. 그래서 우리 딸과 같은 나이지만, 좋아하는데. 에일리가 가진 재능이라는 게 100년 전만 하더라도 돈을 벌 수 없는 재능이에요. 그것이 21세기 대중문화의 시대, 미디어의 시대를 맞아 엄청난 돈을 벌게 해주었잖아요. 그게 행운이거든요. 그래서 돈을 많이 번 사람들은 자신의 재능이 돈을 벌었다고 생각하면 안 되고, 내 재능이 시대와 맞아서 돈을 벌게 됐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게 맞죠. 그렇게 생각하면 돈을 조금 다르게 쓸 수 있을 거라고 보는데요. 조금 운이 없으면, 내가 갖고 태어난 것과 세상과 매치가 안 돼서 큰돈을 벌 수 없거나, 명예를 얻을 수 없기도 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가진 것을 가지고 사는 게 가장 좋은 삶의 방식이라고 생각하죠. 인생이라는 것은 자기를 표현하면서 사는 거예요. 사람이 무엇을 하든, 그것이 즐겁고 스스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기를 표현할 때거든요. 어떤 사람은 노래로, 글쓰기로, 운동으로, 정치로…. 이게 다 자신을 표현하는 거예요. 그런 점에서 보면 저는 정치하는 동안 저 자신을 충분히 표현하면서 살았고요. 글쓰기 역시 제가 갖고 있는 생각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이거든요."

정리/ 박수진 <한겨레티브이> 피디 jjin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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