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님 너무 추워 뵈네..따님이 바람막이 만들어주려나"

2013. 11. 3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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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르포 / 구미의 박정희 동상

▶ 한때 동유럽 국가에 수천개에 달했던 레닌, 스탈린 동상은 소연방 해체 이후 대부분 철거를 면치 못했습니다. 이들에 대한 정치적 평가가 달라졌기 때문이죠. 박정희 전 대통령을 '반인반신'의 지도자로 추앙하며 세운 5m 높이의 동상은 어떨까요. 적절한 추모와 기념의 상징물일까요, 부적절한 정치적 선전과 개인숭상의 산물일까요. 동상을 찾는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경북 구미의 박 전 대통령 생가를 다녀왔습니다.

겨울비가 내린 지난 27일, 경상북도 구미시 상모동에 있는 5m 높이의 한 동상은 비를 맞고 있었다. 금오산 아래 평탄한 분지에 홀로 우뚝 솟은 이 황금빛 동상은 박정희 전 대통령을 형상화한 것이다. 최근 절반은 인간이고, 남은 절반은 신이라는 의미의 '반인반신'의 존재로 추앙받는 그 동상이다.

국내에 정치인들의 동상은 비교적 흔한 편이다. 특히 전직 대통령의 동상은 전국 곳곳에 있다. 대통령의 휴양지였던 청남대엔 모든 역대 대통령들의 흉상이 있고, 이승만·전두환 등 전직 대통령 동상도 도처에 널려 있다. 심지어 철거된 동상이 다시 세워지기도 했다. 서울 남산공원에 있던 이승만 전 대통령의 동상은 1960년 4·19혁명 당시 시위 군중들에 의해 철거됐으나, 2011년 8월 한국자유총연맹에 의해 다시 세워졌다. 퇴임한 지 1년도 되지 않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동상도 충남 서산에 있는 한서대학교 교정에 서 있다. 이렇게 대통령 동상이 비교적 흔한데도, 구미시에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이 주목을 받은 것은 최근 남유진 구미시장이 이 동상 앞에서 한 '반인반신 발언' 때문이었다. 또한 엎드려 절하는 관람객들과 대비되는 높이 5m의 동상 크기도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내외분 어깨 위로 손 얹지 마세요'

경북 구미에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가에선 매년 11월14일 박정희 전 대통령의 '탄신제'가 열린다. 올해 탄신제에서 남유진 시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은 반인반신으로 하늘이 내렸다는 말밖에는 할 말이 없다"며 박 전 대통령을 신의 경지로 추어올렸다. 이 발언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 회자되며 '어떻게 인권을 유린한 독재자를 신처럼 숭상할 수 있나', '지도자를 숭배하는 모습이 북한과 비슷하다', '존경할 만한 부분이 있다고 해도 신에 빗대 표현하는 것은 과도하다' 등 의견들이 분분했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요즘 새누리당을 보면 유신 때 대통령이 추천해 뽑힌 유정회 국회의원들처럼 대통령의 눈치만 보고 있다. 그때도 대통령을 추앙하는 황당한 말들이 많았고, 남 시장이 국민 정서와 어긋나는 '반인반신' 발언을 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말했다. 남 시장의 '반인반신' 언급은 올해 처음 화제가 됐지만, 사실 새삼스럽지 않은 발언이다. 남 시장은 2년 전부터 꾸준히 '반인반신'을 언급해왔다.

남 시장은 대선을 앞두고 있던 지난해 11월 탄신제 때도 "피와 땀을 조국에 헌신하신 반인반신의 지도자는 이제 위대한 업적으로 남아 영원히 기억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선거법을 위반한 두 국회의원으로 인해 주목을 받지 못했다. 지난해 탄신제에 참석한 심학봉 새누리당 의원은 축사를 통해 "금오산에는 두 명의 대통령이 나온다는 전설이 있다. 그 전설이 이뤄지도록 여러분이 지켜줘야 한다"고 말했고, 김태환 새누리당 의원은 "이 기를 똘똘 모아 후보께 보내자. 꼭 이번에 당선되셔서 대한민국을 반듯하게 세우시고, 우리 모두가 꿈을 이룰 수 있는 대한민국을 만들어 주시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공식 선거운동 기간이 시작되기 전에 공식 석상에서 특정 후보의 지지를 독려했던 이 발언들로 인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두 의원에게 구두경고를 내렸다.

남 시장은 2년 전에도 '반인반신'이란 표현을 썼다. 제94회 박정희 전 대통령 탄신제가 열린 2011년 11월14일은 남 시장이 직접 기획하고 추진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동상을 제막하는 날이기도 했다. 이날 언론의 관심은 탄신제에 참석한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의원에게 쏠려 있었다. 당시 한나라당은 중앙선관위 디도스 사태로 존폐 위기에 놓여 있었고, 언론에선 '친박 신당 창당설'이 주요하게 다뤄지고 있었다. 남 시장은 동판에 새겨진 '동상 제작 취지문'에 '박정희 대통령은 반인반신의 혜안으로 국가 경제발전을 이끌어 세계 10대 경제대국 대한민국의 초석을 다졌다'고 적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반인반신의 존재로 보는 그의 인식은 동상을 만든 원동력이기도 했다. 남 시장은 2009년 구미시 새마을회에 제안해 동상건립추진위원회를 설립했고, 2년간 성금을 모으는 등 동상 건립 사업을 이끌어왔다. 2년간 6억원을 성금으로 모았고, 나머지 6억원은 국비로 채워 총 12억원의 사업비로 동상을 건립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반인반신"지난 14일 열린 탄신제에서남유진 구미시장이 말했다박 대통령에 대한 추앙은5m 높이 동상 만든 원동력 됐다"누구 덕에 우리가 잘살고 있는데그것도 모르면서 욕하면 안 된다"60대 남성은 목소리를 높였다동상 세워진 경북 구미 생가에올 한해 57만명이 방문했다

이 동상 앞에선 여러 행사가 열린다. 올해 탄신제에선 남 시장이 전통복식을 차려입고 숭모제(崇慕祭·우러러 사모하는 제사)를 지냈다. 같은 날 구미지역 '다도 모임' 회원들은 다례의식을 치르며 박정희 동상 앞에서 큰절을 했다. 5m 높이의 동상은 사람들이 머리를 조아리며 제사를 지내는 것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평소에는 어떤 사람들이 이 동상을 찾을까.

지난 27일 하루 동안 이 동상 곁에 머물며 찾아오는 사람들을 만났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가는 구미역에서 차로 20여분 걸렸다. 생가 입구에는 방문객들이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 부인 육영수씨의 입간판이 설치돼 있었다. 신체와 비슷한 크기의 전신사진이다. 기자보다 먼저 도착한 한 중국인 관광객은 밝은 표정을 지으며 대통령 내외의 어깨 위로 손을 올린 채 사진을 찍었다. 그 모습이 낯설었다. 아니나 다를까, 입간판 뒤에 '촬영 주의사항'이라는 문구가 있었다. 바로 '내외분 어깨 위로 손 얹지 마세요'라는 내용이었다. 그분의 사진은 우리 옆에 서 있을 순 있지만, 어깨에 손을 올려선 안 되는 존재였다.

뒤편엔 새마을운동 노래 나오는 센서 부착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37년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거주했던 생가 옆엔 분향소가 있었다. 두어 사람이 분향소에 들어가 고개를 숙이고 묵념을 했다. 분향소 바깥에 있는 방명록 앞엔 '이름, 소속, 주소를 적어주시면 기념엽서를 자택으로 보내드립니다'라는 문구가 있었다. 이 문구 때문인지 수백명의 방문객들이 자신의 이름과 소속 단체, 주소를 빼곡히 적었다. 이들은 방문 소감도 구구절절하게 남겼다. 부산시 용호동에서 온 한아무개씨는 '언제나 그립고 보고 싶은 국부국모'라고 적었고, 구미시 원호리에 사는 이아무개씨는 '신이 되신 박 대통령님, 존경합니다'라고 썼다.

생가 옆에는 기념관인 '민족중흥관'이 있었다. 이 기념관 입구에 들어서자, '민족중흥관을 경건한 마음으로 관람합시다'라는 안내문구가 눈에 띄었다. 기념관을 나와 북쪽을 바라보면 5m 높이의 황금빛 동상이 한눈에 보였다. 생가에서 동상까지 뻗은 150여m의 길은 반듯하게 나 있었고, 동상 주위론 둥근 광장이 펼쳐져 있었다. 상공에서 동상과 길을 바라보면 '열쇠' 모양이었다. 동상 안내문엔 이 구조를 일컬어 '5천년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 부국으로 가는 열쇠를 형상화했다'고 설명했다. 반듯하게 뻗은 길 왼쪽은 황폐한 공터였고, 오른쪽엔 도로가 있었다. 양옆에 눈에 띄는 대상이 없다 보니, 이 길을 걷다 보면 유독 동상만이 눈에 들어왔다. 동상은 왼발을 한발 내딛고 있었고, 오른손엔 두루마리가 들려 있었다. 사람이 동상에 다가가고 있지만, 마치 동상이 걸어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동상을 제작한 김영원 홍익대 교수는 "한발을 앞으로 내디디며 앞을 쳐다보는 것은 전진하며 미래를 응시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길옆엔 박정희기념사업회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18개 주요업적으로 선정한 경제개발 5개년계획 추진, 자주국방 실현, 국민교육헌장 제정 선포, 7·4남북공동성명 발표, 한-일 국교정상화 등이 돌에 새겨져 있었다.

가까이서 본 동상은 생각보다 컸다. 성인 남성의 머리가 동상의 무릎 관절 근처에 닿을락 말락 했다. 동상 오른손에 든 두루마리엔 '이 나라 국민으로 태어나 평생의 소원이 있다면 우리 세대에 조국을 근대화해 선진 열강과 같이 잘사는 나라를 한번 만들어 보자는 것입니다'라는 박 전 대통령이 졸업식에서 연설한 내용이 쓰여 있었다.

동상은 2011년 3월 한 손을 상공으로 뻗은 설계도 초안이 나왔으나, 평양에 있는 김일성 동상과 비슷하다는 지적을 받고 지금의 모습으로 수정됐다. 구미시 새마을회가 주축이 된 동상건립추진위원회는 애초 동상을 10m 크기로 만들 계획이었다. 동상을 세울 장소도 생가뿐 아니라 구미역 광장, 구미시청 등도 주요 후보 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권위적으로 보일 수 있다는 비판을 받고 현재의 크기와 장소로 확정됐다. 제작자인 김영원 교수는 친서민적인 이미지를 강조했다.

"권위적인 느낌을 주지 않으려고 넥타이도 매지 않은 차림으로 만들었습니다. 우리와 같은 사람이지만, 의지가 굳고 민족을 위해 헌신하는 지도자를 형상화한 것이죠. 남 시장의 발언과는 제작 취지가 좀 다릅니다."

이 동상의 뒤편엔 새마을노래, 새마을운동이 보급된 세계지도, 박 전 대통령 연보 등이 적혀 있었다. 이곳엔 센서가 있어 사람이 접근하면 바로 노래가 흘러나왔다.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너도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세."

27일 정오께 한 60대 여성이 새마을노래 리듬에 맞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노래를 들으니 어떤 생각이 드느냐"고 묻자, 이 여성은 "옛날 생각이 나서 눈시울이 붉어진다"고 답했다. 노래는 옛 기억을 불러내고 있었다. 옆에 서 있던 60대 남성은 "70년대엔 이장이 아침마다 마을회관에 있는 큰 앰프로 이 노래를 틀었다. 이 노래를 들으며 사람들이 일어나 힘차게 하루를 시작했다"고 회고했다. 노부부 옆엔 사진사가 기자에게 촬영을 권유했다. 이 사진사는 "기념사진 하나에 오천원이다. 장사가 잘되진 않지만, 어르신들이 종종 사진을 찍는다"고 말했다. 요즘 보기 드문 기념사진 전문 사진사가 박정희 동상 옆에 있었다. 빗줄기가 굵어지자 사진사와 노부부는 황급히 동상 곁을 떠났다. 한시간 정도 비바람이 몰아쳤다. 비가 잦아들자, 60대 남성 둘이 다시 동상을 찾았다. 박 전 대통령이 그리워 찾아왔다는 한아무개(60)씨는 "누구 덕에 우리가 배불리 먹고 잘살고 있는데 그것도 잘 모르면서 쿠데타, 유신이라고 욕하면 안 된다. 우릴 이렇게 살린 쿠데타, 유신이라면 열번이라도 더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한씨는 "6·25도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이 엔엘엘(NLL)을 포기한다느니, 유신이라느니 그런 얘길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기자가 "어르신도 6·25를 직접 겪진 않았잖아요"라고 말하자, 한씨는 정색했다.

"직접 겪진 않았어도 어릴 때 어른들에게 얘기를 많이 들었어. 박 대통령이 아니었으면 북한에 밀렸어. 우리가 60년대만 해도 북한보다 못살았잖아."

장보고·김일성·김대중 동상에 비교하면…

빗줄기가 굵어져 기념관으로 비를 피했다. 한 남성 관람객이 기념관으로 뒤따라 들어왔다. 구미시에 거주하는 백진호(43)씨였다.

"70년대생이지만, 구미 사람으로서 박 대통령은 우리의 큰 자랑입니다. 공업단지를 설립해 구미를 발전시키기도 했구요. 저는 하루에 한번꼴로 여기에 들러요. 답답할 때마다 한바퀴 둘러보고 갑니다."

기자가 동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자, 백씨는 자신의 생각을 털어놨다. "북한도 아니고, 저런 큰 동상을 세운다는 게 좀 생소하긴 하죠. 그래도 구미시민들이 십시일반으로 설립한 동상이잖아요. 그분을 기리는 방식 중의 하나라고 봐요."

박정희 생가를 관리하는 장성길 구미시 박대통령기념사업계장은 "구미시민들뿐 아니라 박정희 대통령을 추억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다. 10월 추모제와 11월 탄신제 때는 하루에도 수천명이 방문한다"고 밝혔다.

오후 3시께 동상 앞에서 만난 이아무개(67)씨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가, 기념관, 동상들을 비교의 대상으로 언급했다.

"전라도에 가봤더니 김대중 대통령의 생가, 기념관, 동상이 훨씬 크고 우람합디다. 거기엔 노벨평화상 받은 것도 전시돼 있고, 여기랑 비교가 안 돼요. 우리가 이렇게 사는 게 누구 덕인데요. 이분의 업적에 비하면 동상은 하나도 크지 않아요."

실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상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동상보다 크다. 김 전 대통령의 모교인 전남제일고(옛 목포상고)에 2010년 설립된 동상은 높이가 7.3m에 이른다. 박 전 대통령의 동상보다 2.3m 큰 셈이다. 국내 최대의 동상은 전남 완도군에 설립된 장보고 동상이다. 이 동상은 높이 31.7m다. 한반도에서 장보고 동상에 비견되는 것은 평양 만수대에 있는 김일성 동상이다. 1972년 김일성 60회 생일을 기념해 설립된 그 동상은 높이가 23m다.

오후 3시 반이 되자, 동상 주변엔 눈보라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서 있기도 힘들 정도인 세찬 바람을 뚫고 동상 옆으로 다가간 박아무개(70)씨는 추위를 걱정했다.

"우리 대통령님 너무 추워 뵈네…. 딸이 대통령이니까 바람막이 하나 만들어주려나. 지금 상태론 안 돼. 너무 추워 보여."

한 시간 뒤 눈이 그치자 임채석(82)씨가 '영산향교'라고 쓰여 있는 관광버스에서 내려 동상 곁으로 다가왔다. "동상 보고 어떤 느낌이 들었냐"고 물어보자, 임씨는 "제가 박 대통령과 포병학교에서 같이 근무했다"고 입을 뗐다. 임씨 옆에 있는 친구 두 명이 기자를 향해 "사람 제대로 찾았다. 이 친구가 박 대통령 가문과 친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임씨는 손을 내저으며 두 친구를 말렸지만, 기자를 바라보며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기억을 회고했다.

"1950년대 박정희 대통령이 포병학교 교장일 때, 내가 그 부대에서 하사였어요. 체격은 왜소하지만, 아주 다부진 사람이었죠. 우린 이렇게 버스 타고 다니면서 지난번 박근혜 대통령 선거 때도 운동 다니고, 요즘도 이렇게 같이 놀러 다녀요."

박정희기념사업회는 올 한해 57만명의 관람객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가를 찾았다고 밝혔다. 비가 오고 간간이 눈보라가 몰아쳤던 27일에도 관람객들은 꾸준히 생가와 동상을 찾았다. 대부분 박정희 전 대통령을 존경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정치 지도자를 추앙하는 문화를 어색하게 느끼거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정치적인 비판을 허용하지 않고, 의견이 다른 사람들을 탄압하고 죽였던 박 전 대통령의 과거를 주목하지도 않았다. 다만 이들은 자신들의 배고픔을 해결해 줬다고 굳건히 믿고 있는 한 지도자를 기리며 힘들었던 과거를 떠올릴 뿐이었다.

구미/윤형중 기자 hj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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