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발한 진보당 "목숨 걸고 싸우겠다"

2013. 11. 6.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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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이경태,선대식,이주연,권우성 기자]

[기사대체 : 6일 오후 3시 50분]

▲ 통합진보당 의원단 삭발

통합진보당 의원 5명(이상규, 김미희, 오병윤, 김재연, 김선동)이 6일 오전 국회 본청앞에서 정부의 정당해산 심판 청구에 항의하며 삭발을 하고 있다.

ⓒ 권우성

머리카락이 서걱서걱 잘려나갔다. 귀 위로 가위가 스쳐가자, 김재연 통합진보당 의원이 눈을 지그시 감았다. 이상규 의원이 가장 먼저 파르스름해진 민머리를 드러냈다. 김미희 의원은 담담하게 정면을 바라봤다. 의원들의 머리카락이 금세 수북이 쌓였다.

미리 예고됐던 일이었지만 가위와 이발기가 등장하자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민주주의 지켜내자"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던 한 남성 당직자가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흘렸다. 옆의 여성 당직자도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쳐냈다. 모두 손팻말 뒤로 얼굴을 숨기고 숨죽여 울었다.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었다.

헌정 사상 첫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를 받게 된 통합진보당(아래 진보당) 의원들이 6일 오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삭발했다. 내란음모혐의로 구속된 이석기 의원을 제외한 김미희·김선동·김재연·오병윤·이상규 의원 등 의원단 전원이 참여했다. 정부가 지난 5일 진보당을 대상으로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를 헌법재판소에 제소한 것을 규탄하고 투쟁을 결의하는 자리였다.

"총성 없는 쿠데타... 우리는 노동자·농민·도시서민·민중의 벗이고자 한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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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전'이었다. 진보당은 이날 결의대회의 시작을 '민중의례'와 '임을 위한 행진곡'으로 시작했다. 19대 총선 직후 "애국가 부르기를 강요하는 것은 전체주의다"라는 이석기 의원의 발언을 빌미로 국회의원 자격심사를 거론하는 등 종북 공세에 시달렸던 점을 감안할 때, 당이 해산 위기에 몰린 지금 이를 택한 건 정면 대응이었다.

오병윤 진보당 원내대표는 여는 말을 통해 "어둠이 깊어갈수록 새벽이 다가온다, 어둠이 빛을 이길 순 없다"며 투쟁 의지를 더욱 북돋았다.

그는 "(민주노동당 당시) 무상의료·무상교육 현수막을 들고 거리를 내달릴 적에 많은 국민들이 박수를 보냈고 2004년 17대 총선에서 10명의 진보정당 국회의원을 탄생하는 영광을 누린 적도 있었다"면서 "삿된 무리들의 준동은 순간의 어려움을 주지만 그에 맞서왔던 자랑스럽고 영광스러운 투쟁은 그 자체로 민중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에 출범 이후 수많은 탄압 속에서도 진보정당으로서 살 길을 묵묵히 지켜왔다"고 말했다.

또 "진보당은 노동자·농민·도시서민·민중의 벗이고자 함을 다시 고백한다"며 "수구·기득권 세력들을 국회의사당과 현실정치에서 완전히 박멸하는 그날까지 끝까지 맞서 싸우고 하는 꿈을 국민 여러분이 함께 지켜주시라"고 호소했다.

김선동 의원은 "총성 없는 쿠데타"라고 표현했다. 그는 "진보당은 민주노동당 때부터 동학농민운동, 3·1자주독립운동, 4·19민주혁명의 정신을 계승하고 6월 민주항쟁의 주체들이 87년 노동자대투쟁 정신을 실천하기 위해 만든 당"이라며 "(정부는) 이를 두고 헌법에 위반한다는 어거지를 피워 헌법정신을 유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박근혜 정권과 새누리당은 전시작전권 반환 연기, 경제민주화와 서민공약 파기, 6·15공동선언 및 10·4공동선언 부정 등 스스로를 역사의 퇴보이자 반동임을 증명하고 있다"면서 "해산돼야 할 것은 새누리당이고 국가정보원이고 유신독재의 잔당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울러, "진보당은 이 시각부터 최후의 일각, 최후의 1인까지 국민과 함께 승리의 그날까지 모든 신명을 다 바쳐 투쟁할 것"이라며 "저희가 필요하다면 민주의 제단(祭壇)에, 애국의 제단에, 민중생존권을 위한 제단에 어떤 주저함도 없이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밝혔다.

"내란음모 낙인에도 8% 득표한 진보당... 청와대 간담 서늘해졌을 것"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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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 의원은 최근 치러진 경기 화성갑 보궐선거 결과를 지적하며 이번 사태를 '정치공작'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내란음모 정당이라는 낙인을 찍었는데도 홍성규 진보당 대변인이 화성 선거에서 8% 득표했다, 가장 많은 지지를 받은 투표소에서는 서청원 당선자와 4%p 차이였다"며 "청와대와 국가정보원은 간담이 서늘해졌을 것이다, 이런 정당을 그대로 두고 어떻게 (그들의) 영구집권이 가능하겠나"라고 말했다.

그는 앞서 의원들보다 담담하게 이번 사태를 비판했지만 투쟁결의문을 낭독하면서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진보당 의원단은 국민과 함께 사생결단의 각오로"라고 투쟁결의문을 읽던 그는 목이 메는지 한동안 뒷말을 잇지 못했다. 그를 격려하는 당원들의 박수 이후에야 "민주주의 사수, 친일부활, 유신독재를 막아낼 것"이라고 힘겹게 결의문의 첫 문장을 끝맺었다.

진보당은 투쟁결의문을 통해 "정부의 말대로 하면 이 땅에서 노동자 민중을 위해 일을 하는 모든 시민단체와 노동조합은 해산당할 수 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진보당에 대한 해산청구는 이 땅의 진보개혁을 열망하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탄압"이라고 규정했다.

또 "전국교직원노조 법외노조화, 공무원노조에 대한 검찰수사, 그리고 진보당 해산청구는 진보 개혁세력의 씨를 애초부터 없애버리려는 수구 보수세력의 준동"이라며 "진보당은 고개 숙여 국민여러분께 함께 싸우자고 감히 요청 드린다, 진보당은 박근혜 정권의 친일독재 부활, 유신독재 시대를 맞아 진보당은 생명을 걸고 싸우겠다"고 밝혔다.

이어, 예정했던 의원단 삭발식이 진행됐다.

"북한 꼭두각시당 아니라는 것 알면서도 '없애야 할 세력'으로 모략"

▲ 통합진보당 의원단 삭발·단식 돌입

통합진보당 의원 5명(이상규, 김미희, 오병윤, 김선동, 김재연)이 6일 오전 국회 본청앞에서 정부의 정당해산 심판 청구에 항의하며 삭발한 뒤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 권우성

결의대회 시작 전부터 계단 앞 광장에서 모여 있던 당원들은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의원들의 머리카락이 잘려나가기 전부터 당원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모두 '긴급조치 부활반대', '민주주의 수호 진보당 사수', '반민주적 유신폭거 진보당 해산기도 중단하라'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었다. 모두 숙연한 가운데 의지를 다잡고 있었다.

강원도 정선에서 온 당원 이지연(36)씨의 눈은 이미 빨갛게 충혈된 상태였다. 그는 이번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 사태로 휴가까지 내고 강원도 정선에서 올라왔다. 그는 "박근혜 정부가 당을 탄압할지 예상했지만 대선개입 등에 대해 사죄하지 않고 이렇게 나올지 몰랐다"면서도 "당원들이 모여서 눈물을 흘리는 게 가슴 아프지만 우리가 울어서 민주주의가 회복된다면 더 울어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한 당직자는 "지금이 최대 위기는 아니다, 이것도 이겨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이렇게 나온 이상 우리도 의원 전원 삭발이라는 초강수를 둔 것"이라며 "박근혜 정부가 무리수를 둬 진보당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여성 의원들은 삭발식 이후에 발언에 나섰다. 김미희 의원은 "진보당은 북한을 추종한 적도, 북한의 명령에 따라 움직인 적도 없다"며 "당원들의 손으로 뽑은 당대표와 당원들이 추천해 국민이 뽑아주신 국회의원과 당원들이 직접 뽑은 중앙위원, 대의원들이 함께 당이 나아갈 바를 정하고 그에 충실히 임해왔다"고 말했다.

또 "북한의 지령에 움직이는 꼭두각시당이 아님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정부와 국정원이 거짓말과 모략으로 우리를 '없애야 하는 세력'으로 몰아가고 있지만 국민 여러분께서 진실을 헤아려 달라"고 호소했다.

김재연 의원은 "목숨 걸고 싸우겠다"고 짧게 밝혔다.

이정희 당대표는 이날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다. 한 당 관계자는 "이후 의원단이 진행할 단식에 동참하기엔 이 대표의 몸이 많이 축난 상태"라고 설명했다. 대신 이 대표는 비슷한 시간 다른 장소에서 시민사회와 함께 섰다. 그는 이날 오전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열린 위헌적 정당해산 규탄 시민사회 기자회견에 참석, "어두운 시대가 재현되고 있다, 저희 진보당은 독재회귀를 막는 저희의 몫을 현 단계에서 충실하게 해내겠다"고 의지를 밝혔다.

한편, 진보당 의원단은 이날 삭발식 이후 본청 2층 정문 바깥에서 무기한 단식에 돌입했다. 이외에도 서울광장 72시간 노숙농성, 100곳 1인시위, 촛불집회 등을 진행하며 정부의 '정당해산 심판청구'를 규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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