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음모' 사건, 국정원의 '프락치 공작 사찰' 성과?

2013. 9. 1.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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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이경태 기자]

▲ 굳은 표정의 이석기 의원

내란예비음모 혐의를 받고 있는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 31일 오후 서울 강남구 내곡동 국정원 앞에서 열린 '국정원 내란음모 조작, 공안탄압 규탄대회'에 이정희 대표와 함께 참석해 압수수색을 받은 박민정 전 청년위원장의 발언을 경청하며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 유성호

정국을 뒤흔들고 있는 '내란예비음모' 사건이 국가정보원의 '프락치 공작 사찰' 의혹이라는 새 국면을 맞이했다.

통합진보당(이하 진보당)은 1일 이석기 의원 등 당내 인사들이 연루된 '내란예비음모' 혐의와 관련, 국정원이 당원을 거액의 돈으로 매수해 최소 수개월에서 수년 간 진보당을 사찰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무엇보다 이 당원이 '내란예비음모' 혐의의 주요 증거인 '5월 합정동 모임'을 녹취한 것으로 알려져 녹취록을 둘러싼 진위공방은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앞서 내란음모 및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진보당 인사 3명의 영장 범죄사실에 '녹취록' 외 또 다른 증거자료가 없는 것으로 알려진 상황. 국정원 측이 녹취록 외의 '결정적 증거'를 내놓지 못한다면 앞서 제기했던 여러 혐의의 신뢰성도 크게 흔들릴 것으로 보인다.

이석기 의원 체포동의안을 처리하기 위한 '원포인트 본회의'를 둘러싸고도 논란도 거세질 전망이다.

진보당은 이날 국정원의 '프락치 공작 사찰' 의혹을 제기하며 "여야가 '원포인트 본회의'에 합의할 경우, 국회가 국정원의 정치공작에 동조하는 것"이라고 강력히 경고했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사상 처음으로 현역 국회의원이 포함된 국가전복 시도라는 사안의 위중함과 긴급함을 고려할 때 원포인트 본회의를 빨리 열어야 한다"면서 이르면 내일(2일) 중으로 처리할 수도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민주당, 정의당 등 야권 역시 진보당과 선을 그었다.

"가족 전체 해외 나가서 평생 살 금액... 진보당만 사찰했겠나"

▲ 이석기 의원실 상황 설명하는 이상규 의원

지난 8월 28일 오후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국가정보원 직원들이 '내란음모' 혐의로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하는 가운데 이상규 의원이 "국정원 직원들이 변호사가 자리를 비운 사이 압수수색을 실시해 당원들이 항의를 하고 있다"며 의원실 내부 상황을 브리핑하고 있다.

ⓒ 권우성

녹취록 입수경위는 사법당국으로부터 증거능력을 인정받을지 여부와 직결돼 있다. 그동안 국정원은 이를 공식적으로 확인해주기를 거부한 채 "합법적으로 수집된 증거로 법원에서 증거 능력을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다"고 자신해왔다. 그러나 국정원이 진보당원을 매수해 녹취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적법성 논란은 불가피해졌다.

무엇보다 진보당이 주장한 국정원의 '프락치 공작 사찰'이 이번 사건의 단초가 된 '5월 합정동 모임'에만 국한된 것도 아니다. 진보당에 따르면, 국정원·검찰·경찰·기무사 등 공안당국은 2012년 2월부터 9월까지 합동 태스크포스를 꾸려 진보당 인사를 집중사찰했다. 진보당은 이 시기 비례대표 경선룰과 부정경선 의혹을 놓고 심각한 내홍을 겪고 있었다.

이상규 진보당 의원은 이날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언론에서 거론된 협조자가 누구인지 파악됐다"면서 "우리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그는 국정원에 의해 거액으로 매수됐다"고 주장했다. 또 "국정원이 (협조자를) 매수해서 최소 수개월에서 수년 간 (당을) 사찰하도록 했다"면서 "(국정원이) 댓글조작, 대선불법개입도 모자라서 프락치 공작, 정당 사찰까지 했다, 이를 해명하고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국정원이 "터무니없는 주장에 일일이 대응하지 않겠다"고 밝히자, 이 의원은 이날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다시 기자회견을 열고 "국정원은 2012년 2월부터 9달 동안 시흥시 모처에 사무실까지 차려놓고 검찰·경찰·기무사 등과 합동태스크포스(TF)를 꾸려 진보당 인사들을 집중사찰해온 것으로 확인됐다"고 추가 폭로했다.

그는 "대선 직전에는 태스크포스를 해산하고 국정원 단독으로 (사찰을) 진행했다고 한다"며 "국정원이 스스로 국정원법을 위반해서 조직적이고 지속적으로 정당사찰했다는 것을 자인한 셈이다, 국정원의 직무범위에 해당되지 않은 일"이라고 비판했다.

또 이 의원은 "(국정원이) 사찰 사유로 언급한 진보정당 간 통합에 대한 동향이 국정원법의 국내보안정보와 무슨 관련이 있나"며 "합법적 정당활동을 사찰하기 위한 조직을 구성하고 운영한 것 자체가 해서는 안 될 행위였다, 이 연장선에서 국정원은 거액의 돈으로 프락치를 매수해서 정당에 내란음모죄를 뒤집어씌웠다"고 강조했다.

이 의원은 특히 "군부정권 때나 있었던 국정원 정당사찰에 대해 국회가 묵과해서는 안 된다, 진보당만 사찰했겠나"라면서 국회 정보위원회 소집을 요구했다.

'협조자'에 관한 추가 정보도 공개했다. 이 의원은 "(협조자가) 언제부터 얼마씩 받고 매수된 거냐"는 질문에 "저희가 확인한 것은 가족 전체가 해외로 나가서 평생 살 수 있는 상황이고, 거기에 들어가는 돈이라면 거액일 수밖에 없다"고 답했다. 또 "(협조자의) 도박 빚이 어떤 경우에는 하루에 1000만 원 이상 넘어간 것까지 확인했다"며 "이 과정 속에서 국정원의 매수 작업이 된 것으로 확인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외에도 (파악한) 사실이 더 있다"면서 "국정원이 이 과정에서 공작정치한 부분이 너무나 명백하기 때문에 국정원의 답변을 기다리는 것이고, 국정원이 거짓말한다면 하나하나 저희가 증거를 갖고 계속 반박해나갈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원포인트 본회의 이르면 2일 열릴 듯... 민주당·정의당마저 '거리두기'

윤상현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는 1일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사상 처음으로 현역 국회의원이 포함된 국가전복시도라는 사안의 위중함과 긴급함을 고려할 때 원포인트 본회의를 빨리 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진은 지난 8월 7일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잠시 생각에 잠겨 있는 윤 원내수석부대표의 모습.

ⓒ 남소연

통합진보당은 이 같은 의혹과 함께 이 의원 체포동의안을 처리하기 위한 '원포인트 본회의' 개최를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상황은 여의치 않다.

당장 새누리당은 오는 2일 정기국회 개회식 때 이 의원 체포동의안을 처리하자고 주장하고 나섰다. 윤상현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이날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수원지법이 발송한 체포동의안이 이르면 내일(2일) 오전 중 국회에 접수될 것"이라며 "사상 처음으로 현역 국회의원이 포함된 국가전복시도라는 사안의 위중함과 긴급함을 고려할 때 원포인트 본회의를 빨리 열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태흠 새누리당 원내대변인도 이날 논평을 통해 "국회는 내란예비음모라는 사상초유의 국기문란 사건의 핵심 용의자인 이석기 의원의 체포동의안 처리에 신속하게 임해 사건의 실체가 조속히 드러나도록 협조해야 할 것"라며 "민주당은 지난해 총선에서 야권연대라는 미명하에 이석기 의원 등 종북주의자들을 국회에 진출시킨 원죄를 씻기 위해서라도 체포동의안 처리에 적극 동참해야 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민주당과 정의당 등 야권마저 진보당과 거리를 두고 있다. 김한길 민주당 대표는 이날 오전 여의도 대산빌딩에서 열린 새 당사 입주식에서 "민주당은 나라의 헌정질서 파괴하는 모든 세력과 싸우는 것을 두려워 않겠다"며 "그 상대가 국정원이든, 종북세력이든 두려워 않고 맞설 것이고 대한민국과 민주주의를 반드시 지키겠다"고 선언했다. 진보당으로부터 선을 확실히 그은 셈이다. 앞서 김 대표는 전날 오병윤 진보당 원내대표 등의 면담 요청을 거부하기도 했다.

박용진 민주당 대변인은 "체포동의요구서가 국회로 넘어오면 민주당은 국민상식에 입각하여 국회법 절차에 따라 원칙적으로 처리하겠다"면서 "민주당이 이 문제를 원칙적으로 대응한다고 해서 '국정원에 동조한다'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고, 국정원 개혁이 수포로 돌아간다는 판단은 국민들께서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심상정 정의당 원내대표는 이날 비공개 원내대표단 회의에서 "대한민국 헌법과 법률에 의거해 존재하는 공당이고 그 소속원이라면 이번 수사에 당당하게 임해야 한다"이라며 "국민들은 헌법 밖의 진보를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역시 진보당이 당당하게 수사에 임하면서 구체적으로 해명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다만 심 원내대표는 "국정원 개혁이 전무한 상태에서 국정원이 '내란음모' 수사의 주체가 됨으로써 이번 수사는 시작부터 많은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고 지적한 뒤, "국정원은 국기문란 사건 국면전환용이라는 의구심을 해소하기 위해서도 이번 수사를 검찰로 넘기고, 자숙하면서 수사상 요구되는 사항에 협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확인되지 않은 피의사실들이 무분별하게 언론에 유출되어 국민의 의혹이 증폭되고 있는 특수한 상황인 만큼, 지금까지 수사한 결과를 발표하라고 국정원에게 요구한다"고 말했다.

'프락치 공작 사찰' 의혹, 녹취록 진위공방 영향 줄까?

진보당이 국정원으로부터 매수된 당원에 의해 '5월 합정동 모임' 내용이 녹취됐다며 '프락치 공작 사찰' 의혹을 제기하면서 녹취록 내용에 대한 진위공방도 더 거세질 전망이다. 만약 진보당의 주장처럼, 내부협조자가 국정원에 매수된 것이라면 녹취록의 신뢰성도 추락하기 때문이다. 현재 진보당은 녹취록의 일부 내용이 행사 취지와 다르게 왜곡·편집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만, 구체적인 녹취록 발언에 대한 반박이 없어 진위공방은 평행선만 달리고 있다.

지난 8월 30일 언론에 공개된 녹취록에 따르면, 이 의원은 '5월 합정동 모임'에서 130여 명의 참석자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우리가 총보다 꽃이라는 것을 지향하는 것은 분명하나 때에 따라서는 꽃보다 총이라는 현실 문제 앞에 새로운 관점에서 현재 조성된 한반도의 엄중함을 직시해야 되지 않는가"고 말했다.

또 "오는 전쟁 맞받아치자, 시작된 전쟁은 끝장을 내자 어떻게? 빈손으로? 전쟁을 준비하자, 정치 군사적 준비를 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하면 물질 기술적 준비 체계를 반드시 구책해야 한다. 그런데로부터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고 발언하거나 "북한의 모든 행위가 다 애국적이다, 다 상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모든 행위가 다 반역이다"라며 남한과 북한을 비교했다.

마무리 발언에서는 "격변정세를 주동적으로 준비하는 것에 대한 하나의 결의가 아니라 실질적인 내용으로 물리적으로 강력하게 준비해달라"라고 밝혔다.

녹취록의 분임토의 내용은 더욱 위험한 수위를 넘나들고 있다. 이상호 경기진보연대 고문은 "예를 들면 폭탄을 제조하는 데 있어서 거기에 내가 참여하는 데 있어서 능력이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 추천하고 참여하면 되는 것", "(평택의 유조창) 안에 들어가서 시설을 파괴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안이고 중요시설 안에서 이것들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철도가 지나가는데 있어 가지고 통제하는 곳, 이곳을 파괴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 방법이다, 통신 같은 경우도 가장 큰 데가 혜화국이에요" 등의 발언을 했다.

"적들에게 심대한 타격을 입힐 수 있는 전기·통신 분야에 대한 공격을 하는 것까지 포함해 여러 의견이 나왔다(김근래 경기도당 부위원장)", "어떤 지인은 비상식량 준비나 생화학전 무기 때문에 비상 화생방 무기들을 구입해서 비치하고 있다(이영춘 민주노총 고양파주지부장)" 등의 발언도 나왔다.

그러나 이석기 의원은 지난 30일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해당 강연에서) 한반도에 전쟁이 있다면 그에 걸맞은 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면서 "'양측의 군사행동이 본격화되면 앉아서 준비만 할 것인가'라고 물어본 것"이라고 해명했다. 또 녹취록 전체를 부정하느냐는 질문에 "인명살상 파괴지시 혜화동(통신국) 유류저장고 등의 (파괴) 지시에 대해 철저히 부정한다"고 답했다.

당시 5월 모임 참석자인 김홍렬 진보당 경기도당 위원장과 김근래 부위원장도 같은 날 기자회견을 통해 녹취록의 왜곡·편집 가능성을 제기한 바 있다. 김 위원장은 "기간시설 파괴 등 모의 관련해서도 전혀 논의하지 않았다, 정세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여러 의견이 나왔으나 총기나 시설 파괴 등과 같은 발언이 나온 바 없다"고 밝혔다.

김 부위원장도 녹취록상 자신의 발언에는 "전쟁이 나면 남북 서로가 기간시설을 파괴하게 되고 살상이 이어지기 때문에 우리도 자유로울 수 없다, 통신이나 전기, 도심이 우선 타깃이 될 것"이라며 "대한민국 국민의 생명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러한 심정으로 전쟁을 막아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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