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춘 발탁, 박근혜 추락의 시작?

2013. 8. 6.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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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장윤선 기자]

"저도의 추억."

지난주 경남 거제의 백사장에 막대기로 '저도의 추억'을 쓴 박근혜 대통령이 휴가를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휴가를 끝내고 돌아온 그가 가장 처음 꺼내든 카드는 청와대 참모진을 대거 교체하는 것이었습니다. 진통 끝에 재합의한 국정원 국정조사 기관보고 첫날인 5일 오전 10시, 박근혜 대통령은 그보다 20분 늦은 10시 20분에 청와대 개편소식을 타전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역대 정부 가운데 임기 5개월 만에 참모진 절반을 교체하는 경우도 흔치 않은 상황이지요. 따라서 그 정치적 배경에 상당한 관심이 쏠리는 분위기입니다. 야당에선 국정원 국정조사 물타기 용이라고 비판했지요.

청와대 이정현 홍보수석은 "하반기에 보다 적극적인 정책추진과 새로운 출발을 위해 새로 인선을 결정했다"고 하지만, 정치권에선 계속된 인사 잡음과 대통령의 핵심정책이 제대로 구현되지 못하는 데 대한 책임을 물어 비서실장 이하 수석들을 문책성으로 교체했다는 후문이 나돕니다.

무엇보다 야당이 국정원 대선개입 문제로 장외투쟁에 나섰고 늦어도 9월 정기국회 이전까지 야당을 다시 장내로 끌어들이려면 뭔가 새로운 모멘텀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듯도 합니다.

"우리가 남이가"의 주인공, 김기춘이 돌아왔다

박근혜 대통령의 이번 인사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인사는 단연 '7인회' 멤버인 김기춘 비서실장입니다. 그가 어떤 사람입니까.

김기춘 신임 비서실장은 경남고와 서울법대를 나온 엘리트 검사 출신입니다. 5·16 쿠데타 직전인 1960년 10월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했고, 5·16장학회(정수장학회의 전신)가 주는 돈을 받아 공부를 끝냈다고 하니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꽤나 신세를 진 분 같지요?

1972년에는 법무부 검사 재직시절 유신헌법 초안 작성에 참여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1974년부터는 중앙정보부에서 대공수사국 부장, 중앙정보부장 비서관, 대공수사국장을 지냈지요. 그가 있는 동안 중정에선 무슨 일이 벌어졌습니까. 수많은 조작간첩 사건들이 만들어졌고, 무고한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았지요.

뿐만 아닙니다. 14대 대선 직전인 1992년 12월 11일 전직 법무부 장관이던 그는 부산 지역 기관장들을 불러 모아 민자당 김영삼 후보의 승리를 위해 지역감정을 불러일으켜야 한다고 제안했지요. 그게 바로 잘 알려진 '초원복국집 사건' 아닙니까.

그때 김기춘 장관이 했던 말이 바로 이겁니다. "우리가 남이가."

2004년 국회 법사위원장 시절엔 무슨 일을 했습니까. 노무현 당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 의견서를 작성해 헌법재판소에 제출했지요.

김기춘 인선은 "역사 거꾸로 되돌리겠다"는 선전포고

5일 김기춘 전 의원이 대통령 신임 비서실장으로 임명되었다. 사진은 지난 2005년 7월 19일 당시 여의도연구소장으로 임명된 김기춘 신임 비서실장이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로부터 임명장을 받은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이종호

그럼 박근혜 대통령은 지금 이 시점에 왜 이 분을 비서실장으로 발탁했을까요? 정치권에서는 이번 김기춘 실장의 발탁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철학과 깊이 연관돼 있는 게 아니냐고 분석합니다.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 시절부터 함께 해온 이른바 애국주의 세력과 같이 가야 안심이 된다는 판단, 그러니까 박정희 대통령 시대의 국가이념, 국가 이데올로기를 제대로 한 번 실행보겠다는 생각을 굳히고 김기춘 실장을 발탁한 게 아니냐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녀의 멘토단인 '7인회'의 좌장격인 김기춘 실장을 정치 한복판으로 불러냈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앞으로 대한민국의 정치는 '저도의 추억'이 아니라 '유신의 부활' 혹은 '유신의 완성'을 위해 '김기춘식 세계관의 정치가 복원될 것'이라는 예측이 쏟아집니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 한겨레 > 와 인터뷰에서 "김기춘 실장은 정수장학회, 유신, 간첩조작, 지역감정 등 온갖 부정적인 요소로 볼 수 있는 인물"이라며 "이것은 박근혜 대통령이 역사를 거꾸로 되돌리겠다고 선언한 것이나 같다. 반역사적 인사"라고 평가했습니다.

민주당 이언주 원내대변인은 김기춘 실장의 발탁에 대해 "역사가 거꾸로 흐르고 있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고 논평했습니다.

실제 민주당 일각에서는 이 시점에 박근혜 대통령이 그를 비서실장으로 앉힌 건 야당을 협력적 관계로 보기보다는 하위 파트너십으로 보고 있다는 증거라고 입을 모읍니다. 김 실장이 유신 정권 시절 공안검사를 했고, 한국 헌정사의 최대 오욕 중 하나인 유신헌법의 초안을 만들었던 인물이기 때문이지요.

야당 무시 전략, 그게 박근혜 대통령의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다만, 김기춘 실장은 옛날 정치를 잘 아는 사람이기 때문에 야당에게 뒷문을 열어주면서 '데리고 가는 정치'를 할 가능성이 높다는 진단도 있습니다. 다시 말해 굴종적 여야 관계를 만들어갈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인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2인자를 두지 않는 스타일로 알려졌는데 정작 이번 인사를 통해 김기춘 실장이 2인자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우세합니다. 청와대, 박근혜 대통령의 2인자로서 막후정치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는 거지요.

5일 신임 비서실장에 임명되자마자 새누리당 대표를 만난 뒤 곧장 민주당 천막당사를 방문해 김한길 대표를 만난 것도 실은 '민주당 김한길 지도부가 어느 선까지 양보를 원하는지 견적을 내고자 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김한길 대표를 만나 정부 여당이 양보할 수 있는 선이 어디까지인지 확인하려고 갔다는 거지요.

자, 여기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야당만 무시하는 것일까. 500명으로 출발한 촛불이 한달 새 3만 명으로 불어났는데도 국정원 선거개입의 진실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나는 모르쇠로 일관하더니 유신헌법을 만든 아버지 세대의 정치인을 신임 비서실장에 앉힙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유신헌법과 중앙정보부의 조작간첩사건들, '우리가 남이가' 지역감정 유발로 인한 대선개입 등등 과거 공작정치의 상징이나 다름 없었던 김기춘 비서실장을 기용함으로써 국민들 앞에서 '이쯤하면 막가겠다'고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됩니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곧 '소프트 유신'이 온다고들 입을 모읍니다. 1970년~80년대 민주인사들을 가두고 고문하고 죽이고 납치하는 방식으로 해온 공안통치를 '하드 유신'이라고 한다면, 21세기 고급 인력을 데려다 놓고 댓글을 달며 여론조작을 하는 새로운 방식의 '소프트 유신'을 준비 중일 거라는 거지요.

딱딱하냐 부드럽냐 그게 중요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유신시대'로 회귀한다는 게 핵심 포인트입니다. 전태일, 박종철, 이한열 등등 수많은 젊은이들의 피와 죽음으로 지킨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박근혜 정부의 '소프트 유신'으로 무너진다면 그때 우리 국민들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김기춘 발탁, 촛불 민심은 어떻게 반응할까요

국정원 정치공작 대선개입 시국회의 주최로 3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제5차 범국민대회에 수많은 촛불을 든 시민들이 참여하고 있다.

ⓒ 남소연

문제는 야당입니다. 민주당은 5일 밤 늦도록 국정원 국정조사의 비전과 향후 대응방향을 놓고 긴 토론을 했지만 딱히 결론을 내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참여했던 의원들도 "나조차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겠다,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인터뷰를 피했습니다.

주변에서는 김한길 대표가 장외투쟁을 선언했을 때는 이 국면이 장기화 될 수 있다는 각오를 했다고 합니다. 국정원 국정조사는 그 자체로 진행하되 서울광장 천막농성은 장기화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새누리당과 청와대는 9월 정기국회 이전에 반드시 야당을 데리고 국회로 들어가겠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지만 김한길 지도부가 어떤 선택을 할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국민들은 뜨거운 뙤약볕에서 쏟아지는 장맛비를 맞으며 거리에서 촛불 한 자루를 들고 국정원 선거개입의 진실을 밝혀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 수가 처음에는 500명이었지만 지난 토요일 급기야 한달 새 3만명으로 불어났습니다. 김기춘 비서실장이 발표된 이번 주 촛불집회에 또 얼마나 많은 인파가 모일지 알 수가 없습니다.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이미 박근혜 대통령이 1년도 안 돼 국정운영이 불가한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예고한 바 있습니다. 많은 시민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김기춘 비서실장을 선택하는 순간부터 추락의 길을 걷게 됐다고 우려합니다. 혹시 박근혜 대통령 스스로 그 시간을 단축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기춘 전 법무장관을 비서실장에 선임하는 순간 박근혜 대통령은 끝났다" "국민은 지난 유신정권에서 김 실장이 한 일을 알고 있다"고들 합니다. 청와대 2인자로 돌아온 김기춘 실장, 그는 앞으로 국민과 함께 하는 정치를 해나갈까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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