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사태 해법, 미국에 맞선 반기문 총장

2013. 6. 18.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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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병규의 글로벌포커스] 반 총장이 미국에 반대한 이유 "무기 제공, 어느 쪽에도 도움 안 돼"

[미디어오늘 백병규 언론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미국과 다른 길을 선택했다. 그것도 결정적인 시점에. 반 총장이 미국과 정면으로 대립한 적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 뜻밖의 일이다.

반 총장은 14일 기자들과 만나 "시리아 반군에 대한 미국의 무기 제공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시리아 정부군과 반군 "그 어느 쪽에도 무기를 제공하는 것은 도움이 안된다"며 "군사적 개입은 해법이 안된다"고 강조했다.

반 총장은 미국이 반군에 무기 제공을 하기로 한 결정적인 사유라고 할 수 있는 시리아 정부군의 화학무기 사용에 대해서도 "지금으로서는 단정할 수 없다"며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는 "(미국이 주장하는 것처럼 시리아군의 사린가스 사용을 확정짓자면) 모든 증거물의 연계보관성(chain of custody)이 필요한데 그렇지 못하다"며 "현장의 증거가 없다"고 말했다.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이 입수해 실험실에서 분석한 증거라는 것들이 과연 현장의 증거들과 일치하는 지 확인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시리아정부군 사린가스 사용 단정 못해"

▲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한반도 위기가 한참 고조됐을 때인 지난 4월 초 백악관에서 오바마 미 대통령을 만난 한반도 문제를 협의하고 있다.

반 총장의 이 같은 입장과 판단은 미국과 정면 배치되는 것이다. 러시아가 반 총장의 발언을 적극 지지하고 나선 이유다. 17일부터 북아일랜드에서 열리고 있는 G8에서 시리아 정부의 입장을 두둔하고 있는 러시아를 압박하려 했던 오바마 미 대통령으로서는 무척 곤혹스럽게 됐다. 러시아가 오히려 유엔을 등에 업고 미국을 반격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실제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카메룬 영국 총리, 오바마 미 대통령의 잇단 회담에서는 러시아가 목소리를 높였다. 오바마와 카메룬이 푸틴과의 회담이 "매우 유용했다"고 한 반면 푸틴은 "서로 입장이 크게 달랐다"며 각을 세울 정도였다.

북아일랜드 주요8개국(G8) 정상회담의 가장 주된 의제로 부상한 시리아 문제와 관련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미국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것은 왜 그런 것일까?

그동안의 경위를 살펴보면 반 총장이 돌연 반기를 든 것은 아니다. 시리아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반 총장과 오바마 미 대통령은 그동안 보조가 잘 맞았다. 군사적 개입 보다는 외교적 해법을 추구해 온 것이나, 사린 무기 사용 여부에 대한 신중한 접근 태도 등 그 동안 두 사람은 이심전심으로 보조를 맞춰왔다.

5월 초 영국과 프랑스 등이 시리아 정부군이 사린가스를 사용한 확증을 잡았다며 적극적인 군사개입을 주장할 때만 하더라도 오바마 미 대통령은 "보다 확실한 검증이 필요하다"며 신중한 태도를 취했다. 척 헤이글 미 국방장관은 "동맹국의 판단도 판단이지만 중요한 것은 사실 그 자체"라며 이들 두 국가의 군사개입 요청을 뿌리쳤다.

그랬던 미국이 며칠 전 돌연 태도를 바꿔 시리아 정부군이 '제한적으로' 사린가스를 사용한 것이 '최종 확인'됐다고 발표하고 나섰다. 이같은 판단에 입각해 시리아반군에게 '무기제공'을 하기로 결정했다. 수잔 라이스 유엔주재 미국 대사는 14일 시리아 정부군의 사린가스 사용에 관한 미국의 분석 내용 등을 담은 서한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게 전달했다. 반 총장이 기자들과 만나 시리아 정부군의 사린가스 사용을 단정할 수 없으며, 시리아반군에 대한 미국의 무가제공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기자들에게 밝힌 것은 바로 이 서한을 받은 직후다.

입장과 태도 바꾼 것은 반 총장 아니라 바로 '미국'

반 총장이 이런 행보는 기존의 입장과 다르지 않다. 반 총장과 유엔은 시리아 사태의 해결을 위해서는 즉각적인 휴전과 외교적 협상, 인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일관되게 주장해왔다. 군사적 개입으로는 사태만 악화시킬 것이란 경고도 계속 해왔다. 화학무기 사용 여부와 관련해서는 유엔의 독자적인 현지 조사를 추진해왔다.

반 총장이 즉각 미국에 반대하고 나선 것은 바로 이유 때문이다. 무엇보다 반군에 대한 무기지원은 결국 전면적인 군사개입으로 이어질 개연성이 크고, 그럴 경우 시리아 사태의 참상은 더욱 커질 것이란 우려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또 시리아 정부군이 사린가스를 사용했다는 미국의 분석을 그대로 신뢰하기엔 너무 '정치적인 판단'이라고 본 것 같다.

실제 미국의 이번 조사결과는 5월 초 영국이나 프랑스가 내렸던 결론과 같다. 그 판단과 해석의 근거(물증) 또한 다르지 않다. 반군들을 통해 제공된 '샘플' 분석이 거의 전부다. 문제는 이들 샘플들과 현장의 토양이나 여타 다른 샘플과의 비교 분석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험실에서의 분석만으로는 샘플 자체의 조작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반 총장이 사린가스의 사용 여부를 확정짓기 위해서는 '현장(on ground)조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한 이유다.

미국의 < 솔트레이크트리뷴 > 은 18일 화학무기 전문가들을 인용한 분석기사에서 사린가스가 사용됐다는 미국의 결론은 "지극히 회의적"이라고 평가했다. 우선 미국 정부의 분석 결과를 발표한 벤자민 로지 백악관 외교안보 고문은 알레포 인근 두 곳을 비롯해 홈즈 등 사린가스가 사용된 지역과 시점을 특정했지만 "당시의 전투 현황이나 사망자 숫자와 같은 구체적인 정황은 제시하지 않았다."

무기감축협회(Arms Control Association)의 그레그 틸만은 "보다 구체적인 정보 없이는 사린가스가 사용됐다는 미 정보기관의 판단을 액면 그대로 신뢰하기 어렵다"면서 "발표문을 보더라도 매우 신중하게 언급됐지만 사린가스 사용을 입증해줄 증거물들의 '연계보관성'이 취약하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시리아에 대한 적극적인 군사 개입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는 국제전략연구센터(CSIS:Center for Strategic and International Studies)의 앤서니 코드맨은 "시리아 정부군이 사린가스를 사용했다는 미국 정부의 발표는 (군사 개입의 명분을 찾기 위한) 정치적 기획"이라고 단언할 정도다.

결정적 계기 된 < 르몽드 > 기사도 곳곳에 허점

▲ 17일 북아일랜드 벨파트스에서 개최된 G8 정상회의에서 개막연설을 하고 있는 오바마 미 대통령. BBC는 그가 이 연설에서 '시리아내전'을 언급하지 않은 것과 관련해 '양면의 오바마(Two Obam)'라는 기사(사진)를 썼다. '높은 이상'에 가득 찬 오바마, 그리고 '꾀죄죄한 현실'에 시달리고 있는 오바마.

지난 5월 초 영국과 프랑스가 시리아 정부군이 사린가스를 사용했다고 판단하게 된 결정적 계기를 제공했던 프랑스 < 르몽드 > 기사와 관련 비디오 영상 등에 대해서도 이들 전문가들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 르몽드 > 의 생생한 현장 사진과 비디오 등의 보도 이후 영국과 프랑스는 자국 정보기관이 입수했다는 '샘플'을 조사한 결과 사린가스를 사용한 것을 확인했다며 유엔에 긴급조치를 요구하는 서한을 보냈다.

< 르몽드 > 기사와 사진, 비디오를 보면 시리아 반군들이 사린가스 공격을 받고 있다며 방독면을 쓰고 있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사린가스는 피부를 통해 인체에 스며들기 때문에 방독면 착용은 난센스라는 것. 또 사린가스에 노출된 병사들을 꽤 오랜 시간에 걸쳐 야전병원으로 옮긴 것 등으로 묘사돼 있는데 사린가스에 아주 미량이라도 노출됐을 경우 거의 즉사하게 돼 후송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도 지적됐다. 또 사린가스에 노출된 환자를 후송하거나 치료할 경우 방호복을 착용하지 않았을 경우 환자에 노출된 사린가스에 의해 2차 피해가 발생하는 데 이런 피해 사례가 단 한 건도 보고되지 않았다는 점 등이 지적됐다.

오히려 유엔독립조사위원회 소속 조사위원은 지난 5월초 "화학무기인 사린가스를 사용한 것은 시리아반군"이라고 주장해 큰 파문을 낳기도 했다. 스위스 검찰총장 출신인 가를라 델 폰테 위원은 "시리아 인접국에 머물면서 내전 피해자와 병원 관계자 등을 인터뷰한 자료에 따르면 시리아 반군이 화학무기인 사린가스를 사용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확정짓기 위해서는 '추가보완'이 필요하지만 현장 인터뷰 자료 분석에 따를 때 사린가스를 사용한 것은 '시리아반군'임을 분명히 했다.

실제 시리아 정부 쪽 등에서는 반군이 화학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정황도 제시되고 있다. 지난 5월30일 러시아의 영어채널인 < RT > 는 터키 지역 언론 보도를 인용해 "터키 보안군이 알카에다와 연계된 알누스라전선 반군 집에서 사린가스가 들어 있는 2kg의 실린더를 압수했다"고 보도했다. 아 알누스라전선 요원은 터키 남부 국경도시인 아다나에 대한 테러를 기획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시리아 국영통신사인 < SANA > 는 "시리아정부군이 하마시 인근 파라에에서 자동소총과 수제폭탄을 비롯해 사린가스 등이 들어있는 반군의 컨테이너 2개를 확보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반기문 총장이 '유엔의 길' 간다면…

전쟁의 가장 첫 번째 희생자는 '진실'이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이런 '외신의 정보'만으로는 사실을 가리기가 힘들다. 물론 그동안 미국 등 세계의 슈퍼 파워가 움직여왔던 '문법'과 '맥락'을 살펴보자면 대략 그 진상을 유추해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동안 주요 현안에서 미국 등 서방 주요국과 보조를 맞춰왔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시리아 문제에서 미국을 정면 반대하고 나선 것은 주목할 일이다. 그동안의 흐름을 보자면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다른 선택이 있었을 것 같지도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런 길을 가기가 쉬운 것만은 아니다. 반 총장으로서는 비로소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제 목소리를 낸 것일 수 있다.

반 총장이 앞으로도 얼마나 소신 있게 대응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무력 개입으로 시리아 사태를 해결하려 하는 시도는 오히려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민간인 피해만 더 키울 것이란 반 총장의 판단과 그 방향은 옳다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 반 총장에 대한 한국인들의 성원과 지지가 필요한 때라면 바로 지금이 아닐까 싶다.

힘내시라, 반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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