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윤창중씨가 말한 "문화적 차이"에 대하여

이현식 기자 2013. 5. 11.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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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중씨의 표정은 매우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의 그것이었다. 그는 심경을 말할 때는 침중한 어조로 매우 천천히, 사건 개요를 설명할 때는 그보다 높은 톤에 다소 속도가 붙은 어조로, 그에게 제기된 성추행 의혹을 구구절절이 반박했다. 현장 기자의 전언에 따르면 방송 카메라와 조명을 고려해 분장까지 했더라고 하니, 과연 준비가 철저했던 모양이다.

30여 분 이어진 회견을 요약하자면 그의 말은, '여성의 허리를 툭 쳤으나 엉덩이를 만진 것은 아니다' , '격려해 주려 했던 것일 뿐 성희롱 의사는 없었다', '속옷 차림으로 호텔 방문을 열었으나, 성적인 의도는 없었다'는 것이다.

사실관계는 앞으로 검증이 되겠지만, 일단 진술의 패턴은 상당히 익숙하다. 미국의 클린턴 전 대통령은 젊을 때 영국에서 마리화나를 피웠다는 의혹 제기에 대해 이런 '명언'을 남긴 적이 있다. "마리화나를 시험삼아 피워 본 적은 있다. 그러나 (연기를) 들이마시지는 않았다". 호텔방 청소부를 성폭행한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전 IMF 총재는 이렇게 주장했었다. "성접촉은 있었다. 그러나 강제성은 없었다."

윤창중씨는 이번 일이 '문화적 차이'에 따른 오해라고 주장했다. 씨의 장황한 반박 내용이 모두 사실이라고 치자. 그렇더라도 이 "문화적 차이"라는 해명을 받아들일 수 없으며, 그 말을 곱씹어볼 수록 화가 난다는 사람들이 많다.

미국에서는 여성의 "허리를 툭 치며 격려"하면 안 되는데, 한국에서는 그것이 용인되는 행동이라는 말인가? 어떤 경우에도 여성의 동의 없이 함부로 신체를 만져서는 안되는 것 아닌가? "허리를 툭 친" 것을 피해여성이 "엉덩이를 움켜잡은" 것으로 경찰에 진술하게 된 것도 문화적 차이로 설명할 수 있는가? (이 여성이 울고 있는 장면을 목격한 행사 관계자가 여럿이라고 한다.) 한발 더 나아가, 윤씨는 "허리"에 대해 일반인들보다 훨씬 폭넓은 정의를 갖고 있는 게 아니냐고 묻는 사람도 많다.

"격려"라고 윤씨가 말한 상황도 여전히 납득이 어렵다. 우리나라 직장의 문화를 생각해 보자. 너무도 중요한 두 개의 공식 행사 사이에, 딸 같은 나이의 가이드/인턴을 위로, 격려해 준다고 호텔 바에 데려가 와인을 마시는 것이 "문화적으로" 납득 가능한 상황인가? (그 호텔 바에서 와인 2병을 마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청와대 대변인을 모시라는 임무를 부여받은 재미 직업 운전사가, 대변인이 오란다고 호텔 바에 합석을 했을까? 그것도 "문화적 차이"로 해석해야 하는 일일까?

윤창중씨가 "문화적 차이"를 들먹일 때 머릿속에 떠올린 "문화"가 어떤 것인지, 사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아니, 하루하루 사회생활을 하면서 몸으로 느끼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갑-을 관계", "갑질", "갑의 횡포" 같은 말들로 함축된다. 힘 센 자가 힘 약한 자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는 걸 당연시하고, 서비스를 받는 자가 서비스를 공여하는 자를 비인격적으로 대하는 문화 말이다. 이를 간파한 네티즌들은, 윤창중씨와 남양우유, 기내 라면을 합성한 사진을 만들어 우리 사회의 '갑'들을 조롱했다.

민주사회에서는 살인범에게도 변론의 기회를 준다. 청와대에 입성할 때부터 많은 국민들에게 미운 털 박힌 사람이었던 윤창중씨라고 해서, 소명의 기회를 박탈당해서는 안된다. 그렇지만 그 정도되는 공인이라면, 자기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 자신이 쏟아놓은 '해명'이 만일 거짓으로 드러날 경우, 한국의 "문화"를 국제적으로 욕보인 것에 대해서도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이현식 기자 hyunsik@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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