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은꼴 두 지도자 박근혜·수치 29일 처음 만난다

김경진 기자 2013. 1. 21.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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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 스페셜올림픽에 참석둘 다 가족 잃고 정치 은둔선거 승리 이끌어 지도자로

박근혜(61) 대통령 당선인과 미얀마 민주화의 상징 아웅산 수치(68) 의원이 29일 만난다. 수치 의원은 평창 스페셜 올림픽 개막식 참석차 28일 입국한다. 한국에 온 다음날 오전 일정이 박 당선인과의 면담이다. 수치 의원은 이어 5·18 민주묘지를 참배하고, 이희호 여사도 예방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인 박 당선인과 미얀마(옛 버마) 독립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아웅산 장군의 딸 수치 의원은 여러 면에서 대비된다.

  18년간 집권한 군인 출신 대통령의 딸과 독립영웅의 딸이란 점에선 다르다. 하지만 인생 역경이나 정치 스타일엔 닮은 점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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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표적인 아시아의 여성 지도자인 두 사람은 '불행한 가족사'를 안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박 당선인은 22살 때인 1974년 어머니 육영수 여사를 조총련계 재일동포 문세광의 흉탄에, 27살 때인 79년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을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의 총탄에 잃었다. 수치 의원의 아버지인 아웅산 장군은 47년 군사정권에 의해 암살당했다. 수치 의원이 2살 때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오빠가 사고로 익사하는 사건도 겪었다. 두 사람 모두 이런 아픔을 통해 고통에 맞서는 법을 배우게 됐다고 밝혀왔다.

 박 당선인은 박 전 대통령 서거 이후 97년 한나라당 이회창 대선 후보를 지원하면서 정계에 입문하기 전까지 18년을 칩거했다. 98년 대구 달성 보궐선거에서 승리해 야당 의원으로 금배지를 달았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역풍을 맞아 한나라당이 위기에 처했을 때 야당 당수를 맡았다. 그는 당사를 천막으로 옮기고 손목에 붕대를 감은 채 선거를 진두지휘해 총선에서 121명을 당선시키면서 궤멸 위기에 처했던 한나라당을 회생시켰다. 이후 노무현 정부에서 치러진 모든 재·보궐 선거를 승리로 이끌면서 '선거의 여왕'이란 칭호도 얻었다. 2007년 대선후보 경선에서 이명박 현 대통령에게 패한 뒤 5년간 때를 기다리다가 2012년 4월 총선을 승리로 이끌고 연말에 대통령에 당선됐다.

 수치 의원도 장기간 정치와는 거리를 두고 살았다. 그는 15살 때인 60년 인도대사로 부임한 어머니 킨 치 여사를 따라 미얀마를 떠났다. 이후 30여 년간 외국생활을 했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한 이후 유엔에서 근무한 걸 제외하곤 인도에서 영국인 남편(티베트 문화 연구학자 마이클 아리스)과 두 명의 아이를 둔 평범한 가정 주부로 살았다.

 그러나 뇌졸중으로 쓰러진 어머니 병간호를 위해 88년 고국에 돌아갔다가 운명이 바뀌었다. 당시 미얀마엔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다. 이른바 '8888(88년 8월 8일)항쟁'이다. 수치 의원은 이를 계기로 '아웅산 장군의 딸'이 남아주길 바라는 여론에 따라 미얀마에 남았고, 야당인 국민민주주의연맹(NLD·National League for Democracy)을 결성한다. 이로 인해 89년부터 무려 21년간 군부정권에 의해 가택연금 상태에 처한다.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수치 의원은 91년 노벨평화상을 받아 세계적인 여성 지도자의 반열에 올랐다.

 가택연금 속에 실시된 90년 총선에서 NLD는 압승을 거뒀다. 민간정부 수립 이후 2010년 가택연금이 해제되자 지난해 4월 보궐선거에 출마해 자신을 포함, 45개 선거구 중 43곳을 승리로 이끌었다. 수치 의원도 2015년 대선 출마 의사를 밝힌 상태다.

 공(公)을 사(私)보다 우선하는 모습도 비슷하다. 박 전 대통령 서거 소식을 들었을 때 박 당선인이 보인 반응은 "전방은 괜찮습니까?"라는 것이었다 . 수치 의원은 가택연금 중이던 99년 남편이 영국에서 사망했을 때, 군사 정부가 자신의 재입국을 허용하지 않을 것을 고려해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두 사람 모두 '레이디'라는 호칭과 관련이 있다. 박 당선인은 육영수 여사가 사망하자 6년간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대신했다. 수치 의원은 미얀마인들이 존경의 의미를 담아 '더 레이디(The Lady)'라고 부른다.

김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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