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명 가볍게 보지 않는다"던 박정희 "대학생 잡히면 총살"

입력 2012. 9. 25. 16:49 수정 2012. 9. 25. 18:3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단독] 김충식 전 기자 20년전 저서 "정보보고 일지에서 확인… 인혁당 기획사형 근거"

[미디어오늘 조현호 기자]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23년 전 "아버지가 인명을 가벼이 여기실 분이 아니다"라는 인터뷰 동영상이 최근 공개돼 반향을 낳은 것과 관련해 실제로 박 후보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인혁당 '사법살인' 사건 발생 1년 전 "대학생놈들 순 빨갱이, 잡히기만 하면 모두 총살"이라고 말한 일이 있다는 기록이 뒤늦게 밝혀졌다.

25일 김충식 전 동아일보 기자(현 방통위 부위원장·가천대 신방과 교수)가 20년 전인 1992년 작성한 '정치공작 사령부(KCIA) 남산의 부장들'이라는 저서를 보면 민청학련 사건과 인혁당 재건위 사건을 만들어내 대학생과 재야인사들을 줄줄이 잡아들였던 1974년 박정희가 이같이 말한 것으로 기재돼 있다.

민청학련 사건으로 붙잡혔던 여정남(인혁당 사건으로 사형)과 유인태 민주통합당 의원이 1974년 4월 구치소에서 마주쳐 대화를 나누던 중 유 의원이 "아무리 독살스런 사람들이지만 설마 사형시키기야 하겠느냐"고 위로하자 여정남씨는 "아냐, 박정희는 지금 몇 명을 죽이려고 하는 것 같아"라고 대답했다는 것.

이어 김 부위원장은 책에서 이렇게 썼다.

"실제로 박 대통령은 1974년 4월 5일 군포 야산에서 식목일을 기념, 오동나무를 심으면서 말했다. '민청학련 대학생놈들은 보고를 들어보니 순 빨갱이들이야. 잡히기만 하면 모두 총살이야'라고 공언, 경기도지사와 기자들을 대경실색케 했다. 비록 대변인을 통해 '없었던 얘기로 해달라'는 보도관제가 뒤따랐지만…".

박정희의 이 같은 발언 이후 민청학련 사건과 인혁당 사건 관련자들이 잡혀들어가기 시작했으며, 이듬해 4월 9일, 민청학련 사건의 배후로 지목돼 잡혀들어온 인사 8명을 사형선고(8일) 다음날 새벽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 모두 형장의 이슬이 됐다. 이른바 자유당 정권의 조봉암 이후 대한민국 역사상 두 번째 사법살인으로 일컬어지는 '2차 인혁당 사건'이 일어났다. 도예종, 서도원, 하재완, 송상진, 이수병, 김용원, 여정남 등 8인의 혐의는 '민청학련 배후조종죄'였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의 23년 전 MBC < 박경재의 시사토론 > 인터뷰. ⓒ뉴스타파 캡쳐

김 부위원장은 저서의 집필 시절인 1992년 박정희의 발언을 확인한 것은 동아일보 내부 정보보고 일지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신정부의 극심한 언론통제 때문에 당시 언론에는 한 줄도 실리지 않은 내용이었다.

김충식 부위원장은 25일 인터뷰에서 "박정희의 발언은 당일 동행취재했던 동아일보 청와대 출입기자가 동아일보 내부 정보보고 일지라는 일종의 취재일지에 작성한 것을 복사해뒀다가 책을 쓸 때 인용한 것"이라며 "당시 김성진 대변인이 이 발언을 없었던 얘기로 해달라 해서 단 한 군데의 언론에도 보도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책을 출간한 지 20년이나 됐는데 내용에 대해 한 번도 이의제기를 받아본 일이 없다"고 답변했다.

김 부위원장은 "박정희의 당시 이 발언이 1975년 4월 9일 전격 처형된 인혁당 사람들에 대한 살의이며 기획사형으로 몰고 간 계기가 아닌가 생각된다"며 "민청학련의 배후를 인혁당으로 본 사건이 2차 인혁당(인혁당 재건위) 사건이기도 하고, 당시 박정희의 인식에는 인혁당과 민청학련이 혼재돼 있었다"고 밝혔다.

김충식 전 동아일보 기자가 1992년 집필한 저서 '정치공작사령부 남산의 부장들' 2권 표지

'아버지는 인명을 가벼이 여기실 분이 아니다'라는 박근혜 대선후보의 23년 전 인터뷰 동영상에 대해 김 부위원장은 "책 출간을 위해 취재에 응했던 당시 중앙정보부 차장보인 조일제 전 국회의원은 민청학련 사건 시절을 떠올리며 '광기의 시대'라 표현했다"며 "그는 당시 광기에 휘말리면 누구라도 같이 미치게 된다고 회고했었다"고 전했다.

한편 박근혜 후보는 1989년 5월 19일 방송된 MBC < 박경재의 시사토론 > '박근혜씨, 아버지를 말하다' 편에 출연해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의 의문사를 두고 '중정이 파리에서 납치해 차지철이 동석한 상황에서 박정희 스스로, 또는 차지철이 사살했다'는 풍설에 대해 "거짓말 꾸며내도 비슷하게 만들어내야지 아버지 모르시고 하는 얘기"라며 "5·16도 무혈혁명이었다는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하는데, 아버지답게 아버지가 인명을 가볍게 보고 할 분은 절대 아니다"라고 주장했었다.

Copyrights ⓒ 미디어오늘.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Copyright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