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김문수·이한구 말 바꾸기.. A부터 Z까지

남승모 기자 2012. 7. 17. 12:0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김문수 경기지사가 지난 12일 새누리당 경선 출마를 선언한 뒤 대권 행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김 지사는 대선 출마를 선언한 지난 4월 이후 줄곧 대선 승리를 위해 필요하다며 완전국민경선제 도입을 요구해왔다. 경선 규칙 협상이 난항을 겪자 도입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경선에 불참하겠다고 배수진을 치기도 했다. 정말 불참할 거냐는 기자들의 질문에도 재차, 삼차 확인까지 해줬다.

그러던 그가 말을 바꿨다. 정권재창출을 위한 '대승적 결단'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바로 말을 바꾸기가 멋적었는지 당 지도부가 현행 당헌.당규대로 경선규칙을 확정하려 하자 경선 참여 여부를 놓고 장고에 들어갔다며 외부일정을 중단했다.

정치인에게 장고(長考)란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하지만 대체로 명분과 실리가 충돌할 때 '결단'이라는 의도된 결과물을 내놓기 위한 통과의례로 이용되곤 한다. 물론 김 지사의 장고가 어떤 것인지는 본인만이 알 일이다.

◈ 김문수 "나는 참여할 생각이 없다"

당 지도부가 현행 경선 규칙을 가열차게 밀어붙이던 지난 달, 화두는 비박근혜계 주자들의 경선 불참 여부였다. 그간 완전국민경선제 없이는 경선 참여도 없다는 주자들의 결기 어린 발언들이 하나 둘 이어졌지만 후보별로 확답이 필요했다. 김문수 지사에게 전화 취재를 한 건 사실상 경선 규칙이 확정되기 나흘 전인 지난달 21일이었다.

점심 식사 도중 김 지사가 전화를 걸어왔다. 부재 중 전화를 본 듯했다. 김 지사는 늘 그렇듯 활기찬 목소리로 "김문수입니다"라고 말했다. 기다리던 전화였기에 짧게 인사만 하고 곧장 질문부터 던졌다. "박근혜 전 위원장의 생각이 확고해 현행 규칙대로 간다는데 그렇다면 경선에 불참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 참여하실 생각입니까?"

김 지사는 대답 대신 내게 질문을 던졌다. "어, 나는 박근혜 대표가 이거(완전국민경선제) 안 받아들이고는 과연 되겠는가 이렇게 보는데요? 완전국민경선제 안 받아들이고 본인이 승산이 있을까요?" 박근혜 전 위원장의 생각이 확고하다고 다시 물었다. 그냥 물어봐선 똑같은 답만 돌아올 것 같아 취재했던 박근혜 전 위원장 측과 당 지도부 관계자들의 발언 내용도 함께 설명해줬다.

배경 설명을 들은 김 지사는 잠시 생각하는 듯했다. 하지만 대답은 명쾌했다. "그럼 할 수 없지. (박근혜 전 위원장) 본인이 하고 싶은 대로 해야지. 나는 참여할 생각이 없어요."

그리고 나흘 뒤 당 지도부는 '8월 19일 경선 투표', '20일 대선 후보 선출 전당대회 개최'라는 대선 경선 일정을 확정했다. 물론 현행 당헌·당규에 따른 일정 확정이었고 이로써 경선 규칙 논란은 사실상 일단락됐다. 당 지도부는 평소 주장대로 현행 경선규칙을 그대로 관철시켰다.

◈ 불참 → 관망 → 고심… 다음은?

바로 전날까지도 정책 발표 기자회견을 하며 경선 불참 입장을 재차, 삼차 확인했던 김문수 경기지사는 그러나 경선 규칙이 확정된 지 불과 하루 뒤 돌연 입장을 바꿨다. '불참'에서 '관망'으로 바뀐 것이다.

김 지사는 지난달 26일 정두언 의원 모친 상가에서 기자들과 만나 "완전국민경선제 도입 없이는 대선 승리는 못한다는 내 생각에 변함은 없다"면서도 "다만 지금 당 상황과 흐름이 안개가 짙게 끼어있다가 시야가 조금 분명해진 정도니까 기다려달라"고 했다.

그리고 다음날 경기 북부 지역 의원 조찬 간담회 때는 또 다시 '관망'이 '고심'으로 바뀌었다. 김 지사는 "저희가 파악하기로 상황은 애매한 점이 있고 최고위 의결 과정에도 일부러 그런 여지를 남겨둔 걸로 안다. 저도 상황을 잘 '관망'하면서 '고심' 중에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틀 뒤인 지난달 29일 김 지사는 대선 주자로서의 외부 일정을 전면 중단했다. 이유는 '숙고의 시간'을 갖기 위해서였다. 자신이 주장해 온 '완전국민경선제 도입 거부 = 경선 불참'이라는 간단한 도식을 놓고 무엇을 고심한다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장고는 그렇게 시작됐다.

장고 모드로 들어간 뒤 모든 캠프 활동은 중단했다는 게 캠프 측 설명이지만 뭔가 끊임없이 출마 쪽 돌파구를 찾는 움직임이 감지됐다. 지난 10일로 예정돼 있던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를 17일로 연기한 것도 그런 관측에 힘을 실었다.

물론 김문수 지사 캠프 측은 토론회를 취소했는데도 관훈클럽 쪽에서 일방적으로 잡아놓은 것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취소했다던 17일 관훈클럽 초청토론회는 예정대로 열렸다.) 또 한 일간지에는 김 지사 측이 남경필, 정병국 의원에게 선거대책위원장을 제의했다가 거절당했다는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그리고 후보등록 마감일인 지난 12일. 김 지사측은 경선 참여를 전격선언했다. 말이 '전격'이지 이미 예고됐던 거나 다름없던 터라 파장은 크지 않았다. 그리고 열린 경선 출마 기자회견 역시 관심사는 그의 비전이나 포부보다 말 바꾸기에 대한 김 지사의 '입장'이었다.

◈ 이한구 "입이 열 개라도 할 말 없다… 사퇴한다"

정두언 의원 체포동의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된 지난 11일, 새누리당 이한구 원내대표가 갑작스레 국회 기자회견장을 찾았다. 체포동의안이 부결된 지 불과 1시간여만이었다. 이 원내대표는 국민 여러분들께서 갈망하시던 쇄신 국회의 모습 보여드리지 못한 데 대해 죄송하다며 부결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새누리당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다고 밝혔다.

원내대표 사퇴는 최근 몇년 동안 유례가 없던 일이었다. 자신이 주도한 여야 협상안이 의원총회에서 깨지고 퇴짜를 맞아도 끝끝내 버티는 게 관행처럼 굳어진 상황에서 이 원내대표의 사퇴 선언은 충격적이었지만 또한 신선하기도 했다. 당직자들의 반응도 비슷했다. 여기 저기서 괜찮은 정치인인데 아쉽게 됐다는 말도 나왔다.

사퇴 선언으로 당 전체가 술렁였다. 황우여 대표는 물론 당내 최대 주주인 박근혜 전 위원장도 사퇴를 만류했지만 이 원내대표의 사퇴를 막지는 못했다. 야당은 즉각 '정치 쇼'라고 평가 절하했다. 하지만 여당 원내대표의 사퇴라는 대형 이슈에 밀려 큰 반향은 얻지 못했다.

사퇴 선언 다음날 이 원내대표는 SBS와의 전화통화에서 사퇴 입장에 변화가 없다며 그렇지 않으면 국민이 진정성 있게 봐주겠냐고 되물었다. 나아가 자신의 사퇴를 '쇼'라고 비판한 박지원 원내대표를 향해 체포동의안 부결의 공동 책임이 있는 만큼 박 원내대표도 함께 사퇴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 이틀을 넘기지 못한 호언 장담

그 다음 날인 13일에도 이한구 원내대표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의원총회에서 어떤 결론이 나더라도 돌아가지 않는다. 무조건 사퇴한다"며 사퇴 방침을 거듭 밝혔다. 당 지도부는 사퇴 발표 당일 심야 최고위원회의를 열어 이 원내대표의 거취문제를 의원 총회에 붙이기로 한 상태였다.

이 원내대표는 "진영 정책위의장, 김기현 원내수석부대표와 다시 얘기했고, 총사퇴 입장에 변함이 없음을 재확인했다"고도 했다. 또 "국민에게 사과하는 진정성을 보여주려면 비록 의원들이 잘못한 것이라 하더라도 우리 원내지도부가 물러나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 호언장담은 이틀을 넘기지 못했다.

지난 15일 새누리당은 의원총회를 열어 이한구 원내대표의 재신임을 결정했다. 박근혜 전 위원장은 의총 참석에 앞서 이한구 원내대표의 업무복귀를 요구했다. 7월 임시국회 동안 처리해야 할 민생 현안도 많고 이를 지키는 것도 불체포특권 포기 약속을 지키는 것 만큼 중요하다는 논지였다. 그날 오후 이 원내대표는 업무 복귀를 결정했다.

다음날인 16일 이한구 원내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신상발언을 했다. "사퇴 의사 밝힌 것을 지키려고 노력했지만 그 이후 여러 가지 상황 변화가 생기면서, 또 당의 이름으로 다시 복귀하라는 얘기가 있어서 부득이하게 제가 뱉은 말을 그대로 지킬 수 없게 됐다"며 사과했다.

사퇴를 번복한 이유에 대해서는 "한 번 뱉으면 꼭 지켜야 되는 것으로 지금까지 살아왔으나, 조직의 일원이기 때문에 당의 명령은 계속 거부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리게 되었다"고 해명했다. 의원총회에서 어떤 결론이 나더라도 돌아가지 않던 말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특히나 박근혜 전 위원장이 말했던 7월 임시 국회 마무리를 위한 한시적 복귀도 아니었다. 완전 복귀였다. 원내대표 사퇴는 '정치 쇼'라던 야당의 비판을 어떻게 되받을지 궁금해졌다. 결국 그날 오전 이한구 원내대표의 첫 교섭단체 대표연설은 사퇴 번복에 대한 야당 의원들의 야유 속에 진행됐다. 19대 국회 개원 후 여당 원내대표의 첫 연설은 그렇게 빛이 바랬다.

◈ 실리 - 대의명분 - 말 바꾸기

종종 실리에 밀려 별것 아닌 걸로 취급받기도 하지만 정치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대의명분이다. 각종 선거에서 또는 상임위에서 명분 없는 싸움은 곧 잘 참패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특히나 큰 정치를 추구하는 정치인이라면 대의명분을 목숨처럼 여긴다.

하지만 또 자신의 실리를 위해 말 바꾸기를 할 때 이용되는 것 또한 대의명분이다. 대의명분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자기 주장을 꺾고 진로를 수정한다고 말한다. 어떤 면에서는 역설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큰 선거판에서는 종종 볼 수 있는 광경이다.

김문수, 이한구 두 정치인의 말 바꾸기가 진정한 대의명분 좇기인지, 아니면 실리를 좇기 위한 말 바꾸기인지는 알 수 없다. 정치인의 진정성을 예단하는 것처럼 위험한 것도 없다. 국민의 각자의 판단에 맡겨볼 일이다.남승모 기자 smnam@sbs.co.kr

Copyright ©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