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 "김근태에 대한 죗값 갚으려 출마"

2012. 7. 3.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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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나라당행 용서 안했을지라도

민주화운동 세력의 한 분열로 봐"

"김근태 의장이 마지막으로 '손학규 좋은 사람인데….'하고 뒷말을 잇지 못하고 돌아가신 데 대한 죗값을 갚고자 나왔다."

손학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3일 자신을 늘 따라다니던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출신이라는 '꼬리표'에 대해 솔직한 심경을 밝혔다. 평생 민주화 운동을 함께 한 친구 고 김근태 민주당 전 상임고문과 모친에 대한 기억이 얽혀 나왔다.

손 고문은 이날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 대선후보 초청 간담회에서 "일반 국민들은 '정치인 손학규'하면 여전히 한나라당 출신 아니냐고 묻는다"는 질문에 긴 시간을 들여 설명했다.

손 고문은 이날 모임을 주최한 민평련의 의장을 맡아오다 지난해 말 작고한 김근태 전 고문의 경기고 동창이자, 민주화운동을 함께 한 '동지'다.

손 고문은 담담한 어조로 "근태가 마지막 눈을 감으며 학규에 대해 어떤 생각을 했을까"라고 자문한 뒤, "제가 수배받아 도망 다닐 때 저희 집에 와서 (아내가 운영하던) 약국 문도 닫아주고 했던 근태지만, 이 손학규가 한나라당에 간 것에 대해서는 못내, 아마 용서 안 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김)근태와 김대중-김영삼 노선에 대해서 치열하게 논쟁한 적이 있다. 나는 '김영삼도 민주주의자'라고 했고, 근태는 '어떻게 김영삼이 민주주의자냐'고 했다"며 정치노선을 두고 김 전 고문과 설전을 벌이던 순간도 전했다.

손 대표는 이렇게 말을 맺었다.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주홍글씨를 지운다, 멍에를 벗는다는 차원이 아니라 그 과정 또한 민주운동 세력의 한 분열이었다고 본다. 아들이 빨갱이라며 걱정하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비극을 치유하는 것에, 김근태 의장이 손학규는 좋은 사람인데…하고도 뒷말을 잊지 못하고 돌아간 것에 대해 (출마로) 답을 하고자 한다."

좌중에는 잠시 깊은 침묵이 흘렀다.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아래는 당시 토론회 문답의 전문이다.

-성한용: 정치인들에게 물어보면 더이상 한나라당 탈당에 대해 문제 삼으면 안 된다고 한다. 그런데 일반 국민들은 좀 다르다. 아직도 '정치인 손학규'를 얘기하면 "한나라당 출신 아니냐", 이렇게 답변하는 경우 많다. 오랫동안 여당에 몸 담고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이 부분에 대해 일반 국민들의 이해를 구하지 못 하면 대선 후보도 되기 쉽지 않다. 어떤 대책을 갖고 계신가.

=손학규: 맞다. 정확히 지적하셨다. 정치권이나 언론에서는 주홍글씨 지워줄 때가 됐다고들 많이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언론 인터뷰에서는 한번도 빠지지 않고 그런 얘기가 나온다. 그것이 국민들에게 전파되는 것이다. 물론 사실이다. 그런 사실이 있다. 그러나 그것을 끊임없이 확대·재생산하는 것이 정치권과 언론이다.

오늘 이 자리는 민평련, 김근태 의장을 사랑하고 뜻을 같이 하는 분들이 중심이 됐다. 저는 이번에 돌아가신 김근태 의장의 빈소를 지키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내가 이제는 사람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말아야지 이러면서 어느 때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근태가 나한테 어떤 생각을 하고 죽었을까.

우리 어머니 돌아가셨을 때 '우리 막내 아들이 빨갱이지' 이러고 돌아가셨을까. 암 선고를 받고 사형선고 받고 병원에 잠입해 들어갔을 때 어머니가 "니가 여기 어떻게 왔느냐. 빨리 가라"고 하셨다. 일년 반만에 만난 막내 아들, 얼마나 보고싶었을텐데 워낙 주변에서 협박을 당하고 형들이 고생하고 그랬기 때문에, "니가 집안 다 망치려 하느냐. 빨리 가라"고 하셨다. 어머니한테 돈을 드렸더니 "이 돈이 어디서 나왔느냐. 빨갱이 돈 아니냐"고 하셨다. 일생을 돈 걱정을 하고 살아서 어머니에겐 돈이 최고니까. "이게 빨갱이돈 아니냐"고 했는데 그건 정작 어머니가 막내며느리 고생한다고 줬던 그 지폐 그대로였다. 근데 빨갱이 돈이라고…. 그러고 돌아가신 게 우리 어머니다.

근태 눈 감으면서 학규 생각했다면, 그런 생각을 했다. 저는 근태가 제가 한나라당에 간 것에 대해서 못내 아쉬워하고 못내 안타깝게 생각했으리라는 것을 잘 안다. 친구에 대한 기본적인, 아주 인간적인 애정은 더할 수 없지만 손학규의 정치노선에 대해서는 흔쾌하지 못 했었다. 제가 도망다닐 때 와서 약국문도 닫아주고 했지만, 그러나 손학규가 한나라당에 간 것에 대해선 못내, 아마 용서를 안 했을지도 몰라요. 그리고 당에 들어가기 전인가 정치에 들어가기 전인가 후인가 김대중, 김영삼 노선에 치열하게 논쟁했었다. 난 "김영삼 노선이다. 김영삼도 민주주의자다"라고 했다. 근태는 한 틀에 놓고 얘끼할 수 없다고 했다. 근태는 "김영삼이 어떻게 민주주의자냐"라고 했다. 난 "둘다 민주주의자로 정당 정치인으로 자기 역할 한 거 아니냐"고 했고, 이걸 놓고 싸운 것이다. 저는 한나라당 들어와서 저 자신을 변화하려 했고, 김근태는 그것이 못 마땅했을 수도 있다.

전 1992년 선거에서 김대중 찍었다. 그러나 대통령 당선되고 나서 그때 몰아친 개혁의 열풍, 그건 저를 유인하기에 충분했다. 나도 "이러면 정치 한 번 나서서 나라 바꿔봐야겠다"고 했다. 저의 가까운 친구, 동료들이 근태뿐 아니라 당시 평민당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제가 민자당, 신한국당 대변인하면서 김대중 대통령에 대해 못 할 말 많이 했다. 지금도 몸둘 바를 모르겠다. 어느 때는 막 변명도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나를 지키려고 노력했다고 끝없이 자위를 하고 싶다. 그나마 YS가 민자당, 한나라당에서 힘이 빠졌을 때 레임덕이 되고 그 이후에는 저는 당에서 무엇을 차지하려고 생각도 안했지만, 당의 주류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그리고 그 전부터 어떻게 당에 개혁을 하는가에 관심이 많았다. 그리고 1993년에 광주 망월동 묘소에 제가 민자당 출신으로 뺏지 달고 갔을 때 광주 시민들이 왜 민자당 의원이 여기 왔냐고 하니까 그때 장영달 의원 등이 저를 보호하면서 "이 사람은 우리 민주 동지"라고 했다.

저한테는 앞으로 제가 대통령이 돼도 이게 단지 주홍글씨를 지운다, 멍에를 벗어던진다는 차원이 아니라 그 과정 또한 민주운동세력의 한 분열이었다. 이런 것을 그 마음 속에 있는 것을 어떻게든 저 혼자만이 아니라 어떻게 하든 사회적으로 같이 치유하고 통합해나갈까(를 생각한다.) 제가 시대적신을 민생과 통합이라고 강조할 때는 이런 측면도 많이 개입돼 있다.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멍에, 주홍글씨를 억지로 지우려고 할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젊어서부터 추구해온 민주주의의 가치, 몸을 던지면서 항상 같이 하려고 했었던 이 땅의 사회적 약자, 노동자들, 그리고 남북분단으로, 어머니는 아들이 빨갱이 아니냐 하고 돌아가신 그 비극을 치유하는 이것에 몸을 던지는 것으로, 그동안 김근태 의장이 '손학규 좋은 사람이긴 한데…'하고 뒷말 잇지 못하고 돌아간 것에 대한 죗값을 갑고자 한다.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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