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장 팔린 국악 음반, 그래미 상 후보에"

2011. 9. 10.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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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방 송 : FM 98.1 (18:00~20:00)■ 방송일 : 2011년 9월 9일 (금) 오후 7시 30분■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출 연 : 국악전문음반사 '악당이반' 김영일 대표

▶정관용 > 시사자키 3부 시작합니다. 오늘 3부, 아주 특별한 분 한 분을 모셨습니다. 유명한 사진가이십니다. 한 장에 한 천 만원도 넘는 그런 인물 초상사진을 찍는 그런 분인데요. 그렇게 해서 모은 돈 한 40억원 가량을 탈탈 털어서 국악 전문 음반사를 꾸려가고 계신 분입니다. 우리 국악을 세계에 알리는 그런 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사실 이 분의 꿈은 우리 국악을 세계가 아니라 국내에 알리는 거라고 합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이 그만큼 국악에 대해서 관심이 없고 모른다. 이런 건데요. 게다가 이번에 낸 음반이 내년에 열리는 제54회 그래미상 후보에, 우리 대중음악도 그래미상 후보에 오른 게 하나도 없었는데요, 그래미상 후보에 올랐다고 그럽니다. 국악 전문 음반사, 악당이반의 김영일 대표 나오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김영일 > 예, 안녕하십니까?

▶정관용 > 우선 악당이반이 뭐예요? 나쁜 사람 이반입니까?

▷김영일 > (웃음) 악당은 그야말로, 저희 회사 전화를 누군가 걸었을 때 직원들이 악당입니다, 그러면 뚝 끊는 분들이 계시고요. 무척 몹쓸 데다, 이렇게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그때 악은 음악 할 때 '악'자이고요, '당'은 무리.

▶정관용 > 무리 '당자'?

▷김영일 > 예, 그래서 음악 하는 무리가 모였다, 라고 해서 악당이라고 졌습니다. 그런데 그걸 법인으로 만들기 위해서 상업 등기소에 가서 이제 이름을 등재를 해야 되는데요, 그렇게 해서 갔더니 그 악당이라는 말이 좋지 않은 말이라고 그래가지고 뭐 욕이라든지 아니면 공공기관 뭐 청와대 이런 말을 자기네 회사 이름으로 막 정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그게 유보로 이렇게 분류가 되어 있습니다.

▶정관용 > 아, 회사 이름으로 쓰지 못하게 되어 있는 단어들이로군요?

▷김영일 > 예, 그 중 하나가 악당이었던 것 같고요. 그래서 접두어든 접미어든 붙여 달라 해서 그 뒤에 이제 이반이라고 졌는데, 사실 개인적으로는 제가 사진사이기 때문에 사진을 하는 저의 인생이 1학년 1반이고요, 그 다음에 음악을 만들어서 세상에 알리려는 제 인생은 2학년 2반 같기도 하고. 굳이 한자로 말을 드리자면, 이로울 이자에 나눌 반을 쓰는데요, 그러니까 이롭게 모여서 즐겁게 나누자. 그런데 무얼 가지고 그러냐면, 우리 음악을 가지고.

▶정관용 > 국악을 가지고 하자?

▷김영일 > 예, 그래서 그냥 악당이반, 이렇게 지었습니다.

▶정관용 > 그 회사 이름 설명하시는 게 뭐 수백 번도 하셨겠어요? 워낙 독특해서 말이지요, 이름이.

▷김영일 > (웃음) 예, 악당 그러면 잊지는 않으시더라고요.

▶정관용 > 그런데 제가 처음 소개드렸습니다만, 사진가시잖아요?

▷김영일 > 예, 사진가입니다.

▶정관용 > 전공도 사진을 하셨고?

▷김영일 > 예, 그렇습니다. 대학에서 사진 전공하고, 그렇게 해서 유학도 또 사진으로 다녀오고, 그렇게 사진을. 지금도 사진을 열심히 박아야 그 돈을 조금 더 벌어서 음반을 하나라도 더 만들 수 있지요?

▶정관용 > 사진을 박는다고 하시네요?

▷김영일 > 예, 예전에 어른들이 다 이렇게 이 해 박는다, 사진 박는다, 뭘 이렇게 가져다 고착시키는 것은 박는다, 이렇게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좀 불가에 가서 연반하신 중들을 뵈면, 그분들도 박는다, 라고 그러시고. 재미있어서 그 뒤로는 그냥 저는 사진 박는 사진사라고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정관용 > 그런데 국악 전문 음반사, 언제 만드셨어요?

▷김영일 > 법인은 2005년도에 출범했고요, 그 전에 개인회사로 한 4~5년간 했습니다. 그래서 개인 회사일 때는 그렇게 음반을 만드는 것까지는 생각을 못하고, 음원을 만들러 이제 전국 각지로 녹음기를 메고 참 여러 번 돌아다니고 여러 해 여러 군데를 다녔지요. 그러면서 녹음을 넣고 그러다보니까, 그 전에는 서울에 있는 스튜디오들, 그리고 주로 우리나라 문화라든지 어떤 좀 중요하다는 것들은 도시 중심.

▶정관용 > 그렇지요.

▷김영일 > 그 중에서도 서울 중심. 완전 편중이지 않습니까? 우리 음악은 도시를 떠나서도, 특히 남도 이런 쪽을 빼놓고는 뭐 도저히 말을 꺼낼 수 없는 그런 위치들이 있는데, 왜 진도 아리랑은 진도에서 녹음이 안 될까? 정선 아라리는 왜 꼭 서울에 있는 스튜디오에 와서 할머니들이 아, 나 여기서 목 갈려서 못 하겠네, 이런 말을 들으면서 음반을 만들어야 할까, 그런 생각을 했는데, 우리나라 각지에 한옥들이 있지 않습니까?

▶정관용 > 그렇지요.

▷김영일 > 그 한옥이 저는 너무 아름다운 스튜디오라고 생각합니다. 가야금만 하더라도 그게 가야 지역에서 실제로 출토된 그런 시간들을 살펴보면 한 2천년 전에도 그 모습이 있었는데, 어떤 악기이든 그것이 소멸되지 않고 오늘날까지 이렇게 존재한다는 것은 그 집과 그 크기와 그 사용처가 분명히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존재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서양식 흡음 위주의 스튜디오보다는.

▶정관용 > 한옥에서 직접 녹음을 하세요?

▷김영일 > 예, 한옥에서 녹음하는 것이 가장 옳겠다, 라고 생각이 들어서, 이제 그 뒤로, 회사를 만들면서 이제 바로 한옥 녹음이라는 그런 필드 레코딩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정관용 > 현장 녹음?

▷김영일 > 예, 그렇습니다.

▶정관용 > 음질이나 이런 데에 있어서 뭐 나쁘지 않아요?

▷김영일 > 아, 너무 아름답고요.

▶정관용 > 잡음 같은 게 들어가거나 그런 것 없어요?

▷김영일 > 그건 좀 그러니까 두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제가 새로 들어온 엔지니어하고 같이 녹음을 하러 다니면 소리를 넣으러 간 엔지니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게 소리입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딱 필요로 하는, 그 음악이라고 하는 소리 이외에 나머지 존재하는 것들을 모두 다 잡음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정관용 > 그렇겠지요.

▷김영일 > 그런데 자연 입장에서 보면 사람이 잡음이고, 사람이 노이즈이지, 사람이 만든 기계들, 경운기라든지 자동차, 비행기, 이런 것들이고요, 그것이 잠잠해지는 시간대가 되면 도로 편안해지는 자연 속의 시간들로 돌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럴 때 연주 하나, 산조든 소리 하나를 얹히든 이렇게 아름다운 시간으로 변하는 장면들을 관찰할 수 없고요.

▶정관용 > 그러면 뭐 풀벌레 소리 이런 것 그냥 놓아둬요?

▷김영일 > 예, 물론입니다. 제가 빌려 쓰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일례를 들어서 좀 우스운 말씀을 드리면, 담양에 있는 소쇄원이라고 하는.

▶정관용 > 유명한 대나무 숲이지요?

▷김영일 > 예, 한국의 정원이라고도 불리고 하는, 그곳에서 그 위에 제월당이라고 하는 곳에서 가야금 산조를 넣는데요, 낮에 저희가 이제 기계장치를 세팅하고 연주자하고 식사를 하러 가면서 엔지니어는 이제 기계를 지켜야 하니까 도시락을 사오기로 하고 다녀왔습니다. 거길 다녀왔더니 그 엔지니어 얼굴이 하얗게 변해있어요.

▶정관용 > 왜요?

▷김영일 > 그래 왜 그런가 했더니, 사장님, 큰일 났습니다. 이 주변 전체가 다 벌레가 울어가지고 이게 어떻게, 에프킬라를 사러갔다 오던지 해야지, 큰일 났습니다.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아, 이 사람아, 우리가 여기를 빌려 쓰러 온, 잠깐 빌려 쓰러 온 사람들이고, 그들이 여기를 지켜온, 아주 면면히 지켜온 경험이니까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마이크를 그쪽으로 가져다놓아라, 오늘 제가 이제 그래미에 이렇게.

▶정관용 > 그래미상 후보에 오르게 한?

▷김영일 > 예, 후보에 오르게 한 음반도 경주 양동마을의 관가정이라는 곳에서 녹음을 넣었는데요, 관가정 귀뚜라미는 더 경쾌하게 웁니다. 그래서.

▶정관용 > 그런 소리들을 다 담아서?

▷김영일 > 예, 바람 소리, 뭐 문풍지 떨리는 소리, 멀리 개 짖는 소리.

▶정관용 > 알겠습니다. 얘기가 갑자기 막 급진전을 해버렸는데.

▷김영일 > 아, 예, 죄송합니다.

▶정관용 > 아니요. 제가 이제 음반사 언제 만드셨습니까, 했더니 법인이 2005년이고 한 2000년부터 전국을 다니면서 음원을 채록하고 하셨다, 설명을 들었는데, 사진하시다가 갑자기 국악이 그렇게 좋아진 건 왜예요?

▷김영일 > 저는 사진하는 동안에 오로지 제가 듣는 음악은 거의 클래식밖에는 없었습니다. 94년도쯤에 제가 어떤 모 월간지에서 사진을 박아달라는 의뢰를 받았는데요. 그게 이제 젊은 음악가들입니다. 그 사람들 클래식도 있고, 재즈도 있고, 대중가요도 있고, 국악도 있었는데, 그 중의 한 사람, 국악인으로서 저를 찾아온 사람이 최수정이라는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음악 하는 사람이니까 노래를 부르시고, 나는 사진을 박을 테니까. 그래서 그 사람이 옆으로 돌아서더라고요. 그래서 저희 스튜디오 벽면을 쳐다보고 "아서라, 세상사 쓸 것 없다, 군불견 동원 도리 편시춘...", 그게 이제 지금에 와서야 단가라는 것, 본 판소리를 하기 전에 목을 푸는 단가라고 불리는 짧은 곡인 줄 알았고요, 제목은 '편시춘'이라는 노래인데, 그 노래를 부르는 동안 제가 셔터 버튼을 누르지를 못했습니다.

▶정관용 > 왜요?

▷김영일 > 저는 제 인생에 처음입니다. 그러니까 그 이전도, 그 이후도, 어떤 피사체를 보고, 저한테 얼마나 높으신 분들이 제 앞에 와서 사진을 박아도 단 한 번도 셔터를 못 누르거나 그런 적이 없거든요.

▶정관용 > 왜요, 그러니까?

▷김영일 > 그러니까 그 음악은, 그러니까, 저의 심장 뛰는 소리하고도 같고요, 이상하게 제가 살아왔던 모든 제 몸을 구조하고 있는 것들과 전혀 떨어지지 않는 그런 형태의 음악이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꼼짝을 못하고 거기에 얼어가지고 사진을 못 박고 이제.

▶정관용 > 완전히 사로잡히셨군요?

▷김영일 > 예, 그 친구랑 저의 사무실로 다시 와서 차를 한잔 하면서 도대체 국악이라는 게 뭐냐. 당신 지금 뭘 부른 거냐. 그건 어떻게 이해하는 건가?

▶정관용 > 그러니까 그 전에는 국악을 전혀 모르셨군요?

▷김영일 > 예, 일단 클래식 방송을 계속 트니까, 93.1이라는 곳에서 저녁 5시? 4시쯤에 국악이 한 시간쯤 나와요.

▶정관용 > 맞아요.

▷김영일 > 최종민 교수라는 분이 사회를 봤던 걸로 아는데요, 그 어른이 그걸 트시고 그러면, 저는 그 자리에서 딱 끄던지 다른 데로 돌리면서 아, 왜 이 시간 쯤, 출장을 가는 시간쯤에 졸리게 이런 걸 틀까, 사고 나라고. 그런 마음을 가지고 국악을 대했던 것이 바로 저입니다.

▶정관용 > 그런데 한 순간에 그냥?

▷김영일 > 예, 이후로 수정 씨가 저를 그런 공연장으로 데리고 다닌 게 아니고요,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소리꾼들, 뭐 지리산에 들어가서 북 들고 7년이나 안 나온 배일동이라는 아주 미친 인물도 있는데요. 그런 인물들을 만나게 해주면서 그 밤들을 지내고. 북은 소리를 넘으려고 들고, 소리는 북을 매달고 가려고, 그런 칼만 안 들었지, 아주 첨예한 밤들을 보면서 아, 여기다가 마이크만 대면, 사진은 내가 박을 수가 있으니까. 그리고 그 형들한테 물었습니다. 그 음반 하나씩 내가 살 테니까 일러주라, 그랬더니 아니, 형님, 우리 같은 사람 음반을 누가 만들어요? 그게 저는 굉장히 충격이었거든요.

▶정관용 > 아예 음반이 없지요, 예.

▷김영일 > 예. 그래서, 아니, 그럼 이걸 내가 안 만들면 누가 만들어?

▶정관용 > 알겠습니다. 아주 유명하신 명창들, 이런 분들하고 작업하시는 게 아니군요?

▷김영일 >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젊고요, 그 다음에 그러나 지켜보았을 때. 저는 지켜보기를 굉장히 열심히 하는 편입니다만, 조금만 건드려주고, 조금만 올려주면.

▶정관용 > 알겠습니다. 그래서 국악 음반 지금 전부 몇 장 정도 만드셨습니까?

▷김영일 > 쉰 두 개 타이틀입니다.

▶정관용 > 그런데 그걸 만드시는데 40억이란 돈이 들어가요?

▷김영일 > (웃음) 일반 CD를 만들어보니까요, 저희가 직접 제작을 하고, 사진도 스스로 박고 이렇게 하면 CD 한 장을 만드는데 대략 한 천 이삼백만원에서 천오백만원 정도 드는데, CD는 1982년도에 상용화된, 이제 지나간 기술입니다. 요즘 누가 CD를 사지도 않고요. 그래서 그 뒤로 우리가 보고 있는 것들도 뭐 HD, Full HD, 3D, PDP, LED, LCD 이런 식으로 계속 발전하듯이 듣는 것도 SRCD, HQCD, 그 다음에 뭐 블루레이, DVD 오디오, 그리고 이제 최상위 개념의 SACD, 그러니까 슈퍼오디오 컴팩 디스크인데요. 그렇게 계속 발전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나라에서는 SACD 쪽은 개발이 되지 않았고, 지금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연주자나 그 다음에 SACD가 무려 7천여 종 나와 있거든요. 우리 음반은 하나도 안 나와 있고요.

▶정관용 > 아, 그래요?

▷김영일 > 그래서 제가 칸느에서 하는 미뎀(MIDEM)이라는 음반 박람회를 가는데요. 그거를 한 5년 동안 들고 가서 성냥팔이 소년을 하고 그랬는데, 아무도 안 쳐다봅니다. 저 변방에서 뭘 들고 와서 저러고 있는가. 그런데 작년 올해 사이에 SACD를 10장 들고 가서 거기 펼쳤는데요. 너무 질문이 많고, 인터뷰하자고 달려오고. 그래서 이런 기술의 힘이고. 그렇다면 우리 것은, 이런 최고 사양의 그런 음반을 만들어서.

▶정관용 > 최고 수준의 음반을 만들다보니까 제작 단가가 한 장당?

▷김영일 > 그게 이제 지금은 한 3,500만원 정도로 뛰어올랐습니다. 그러니까 10 타이틀을 만들면 한 3억5천만원, 직원들 봉급, 렌탈비, 그 다음에 뭐 그 밖에 들어가는 비용 하면 일년에 꽤 많은 액수를 까먹는 것 같습니다.

▶정관용 > 그렇게 만든 음반은 몇 개씩이나 팔립니까?

▷김영일 > 판소리는 1년에 한 10여장 팔리는 것 같고요. (웃음) 부끄럽습니다. 산조는 한 20장 정도 나가는 것 같습니다.

▶정관용 > 그러면 몇 장씩 찍으세요?

▷김영일 > 보통 1천장에서 1,500장 찍습니다.

▶정관용 > 계속 그냥 쟁여져 있는 거로군요?

▷김영일 > 예, 저희 회사에 이렇게 음반이 입고되어서 처음에 있을 때 굉장히 기뻤는데요, 지금은 그게 한 5만장, 6만장 되다보니까.

▶정관용 > 조금씩만 찍으시지.

▷김영일 > (웃음) 아, 그런데... 예, 나눠주는 음반의 수량이 그것 한 10배 이상 됩니다.

▶정관용 > 아, 무료로 배포하시는 것?

▷김영일 > 예, 방송국에도 보내고.

▶정관용 > 알겠어요. 그런데 이번에 54회 그래미상 후보에 올랐어요?

▷김영일 > 예, 그렇습니다.

▶정관용 > 이거 어떻게 그렇게 된 겁니까? 국내 대중음악도 한 번도 못 올라간 건데. 우선 그래미상이 어떤 건지, 잠깐만 소개해주시고요.

▷김영일 > 그래미는 보통 일반적으로는 뭐 영화로 보면 아카데미상에 비견된다는 그런 이야기를 하는데요. 일단 54회니까 그 역사가 뭐 깊은 것은 사실이고. 한때 그래미상의 상의 영역이 굉장히 넓어서 200여 가지의 상이 존재하다가, 영역이 존재하다가 작년에 140개로 줄었는데요, 올해 그거를 권위를 더 높이기 위해서 그래미 측에서 70여 개로 줄였습니다.

▶정관용 > 줄였어요?

▷김영일 > 예, 그런데 줄여만 가는 것이 아니고 신설되는 항목도 있는데요, 그게 게임 음악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지금은 제가 국악을 들고 나갔지만, 어서 클래식도, 어서 대중가요도, 어서 게임 음악도... 우리나라에서 게임한다고 하면.

▶정관용 > 알겠습니다. 이번에 올라간 건 어느 부문에 올라간 거예요?

▷김영일 > 예, 두 가지 부문입니다. 한 가지는 기술 부문인 서라운드, 그것은 이제 5.1채널 이상의 기술을 그 회사가 가지고 있느냐, 그걸 보는 거고요. 또 하나는 이제 월드 뮤직이라고 해서, 그 안에 이제 저희 회사도, 아니, 우리나라도 월드 뮤직에 포함되어서 그 부분에.

▶정관용 > 알겠습니다. 그 그래미상 후보에 오른 음반이 '정가악회 풍류 Ⅲ-가곡', 이렇게 되어 있는데, 그 중에 태평가, 잠깐 좀 듣고 또 계속 이야기를 나눠보지요.

(음악)

▶정관용 > 예, 시작하면서 말씀하신 것처럼 귀뚜라미 소리부터 싹 귀에 들어오는데요?

▷김영일 > 예.

▶정관용 > 정가악회 풍류 3가곡? 가곡 3개를 녹음했다, 그렇게 되는 건가요?

▷김영일 > 아닙니다, 정가악회의 3번째 앨범이라는 뜻이고요, 3번은요. 그 다음에 가곡이라는 음악을, 장르라는 뜻이고, 이제 여자가 불렀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것은 정확히 여창가곡이겠습니다.

▶정관용 > 가곡이라고 하는 게 하나의 판소리와 같은, 하나의 형식이에요?

▷김영일 > 예, 음악적 장르인데요, 우리나라는 이제 왕으로부터 시작해서 평민에 이르기까지 음악의 구조가 아주 탄탄한 나라입니다. 세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6개나 등재되어 있고, 6개 등재되어 있는 나라는 전 세계 우리나라 하나입니다.

▶정관용 > 아, 그래요?

▷김영일 > 옆나라 중국도, 일본도 전혀 그렇지 않고요. 그러니까 클래식이 그러면 베토벤 이전과 이후에 뭐 이런 악성들을 포함해서 몇 곡이나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을까, 저도 그걸 살펴보다가 깜짝 놀랐는데요. 단 한곡도 등재되어 있지 않습니다.

▶정관용 > 그런데 우리 국악만 6개가?

▷김영일 > 예, 국악은 6개가 등재되어 있습니다.

▶정관용 > 그런데 가곡이라는 건 어떤 겁니까?

▷김영일 > 가곡이라는 것은 이제 제일 상위개념으로 봤을 때 왕을 위한 노래가 있고요, 그 바로 밑에 이제 조선시대 선비층, 문인이라고 불렸던 사람들이.

▶정관용 > 양반들?

▷김영일 > 예, 문인악. 그러니까 그 밑에가 이제 민요, 그리고 그 밑에 조선시대 대중가요라고 할 수 있는 판소리라는 게 있지요. 그럼 이제 양반들이 시를 짓고 그 시에 노래를 붙인 게 가사가 되고요.

▶정관용 > 그게 가곡이다?

▷김영일 > 아니요, 가곡은 거기에서 한 칸 더 예술적으로 더 늘려집니다. 그래서 지금 보시면 피리, 대금, 해금 이런 소리가 들리듯이.

▶정관용 > 그렇지요.

▷김영일 > 소위, 노래방으로 치면 이제 풀 밴드를 다 불러다가 당시에 있던 악기를 다 불러다가 그 악기의 성음 위에 시조를 하나하나 얹혀가는 것인데요.

▶정관용 > 아, 시조창은 우리가 많이 들어봤는데, 그걸 완전히 악단과 함께 하는 시조창?

▷김영일 > 예, 그렇습니다.

▶정관용 > 그렇게 한 게 가곡이다?

▷김영일 > 예.

▶정관용 > 이 음반은 몇 장 팔렸습니까?

▷김영일 > 사실 뭐 제작이 되어서 팔리기 시작한 게 올해 5월이기 때문에 그렇게 오래는 안 되었지만, 8장 팔렸습니다. (웃음) 많이 나갔습니다.

▶정관용 > 해외 수출도 하세요?

▷김영일 > 그렇습니다.

▶정관용 > 그런데 외국에서는 사가요?

▷김영일 > 아, 외국에서 더 많이 팔렸습니다.

▶정관용 > 몇 장이요?

▷김영일 > 외국에서는 6월부터 팔리기 시작했는데, 20장 나갔습니다.

▶정관용 > 20장 나가면 대박이군요?

▷김영일 > 아, 예. 그렇습니다. 1년치 다 나갔습니다.

▶정관용 > 제가 처음에 소개하면서 이분의 꿈은 국악을 우리 국내에 알리는 것이다, 라고 이야기 드렸거든요. 무슨 이야기입니까, 이게?

▷김영일 > 예, 한 장 한 장 만들어서 그러니까 우리 음악을, 연주자 개개인이 전 국민을 만나지 못할 거니까, 미디어의 힘을 빌려서 여러 사람이 같이 듣는 것이 좋겠다, 라고 해서 제가 음반사를 차리게 됐는데요. 그 힘이 의외로 미약하더라는 거지요. 그러니까 그걸 우리 국민 스스로 찾지 않으면 누구도 찾아주지 않을 거니까, 이걸 이렇게 하다가는 열장씩 팔리면 백년 걸려야 천장이 팔리는데, (웃음) 전 뭐 이미 없을 것이고. 그래서 고민을 하다가 이제 우리나라에서 잘 알릴 방법이 없다면, 아주 서양에서 최고로 유명한 데 가서 우리가 유명해지면, 그게 빠르게 역으로 우리에게 재수입되어서 알려질 방법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그래미를 노크하게 된 것이지요.

▶정관용 > 그래서 그래미에 올리게 됐고, 저랑도 인터뷰를 하게 되시고?

▷김영일 > 예, 그렇습니다.

▶정관용 > 사진으로 모으신 돈 꼬박꼬박 다 까먹고, 참 남들 관심 안 갖는 국악, 어떻게 좀 알려보려고 고군분투하고 계신데, 후회되진 않으세요?

▷김영일 > 아니요, 전혀 후회하지 않습니다. 저는 우리한테 이런, 우리 민족에게 이런 음악이 있다는 게 너무.

▶정관용 > 자랑스럽다?

▷김영일 > 예, 자랑스럽고.

▶정관용 > 부끄럽습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국악에 대한 사랑, 우리 함께 다시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악당이반 김영일 대표, 아주 훌륭하신 분 만났습니다. 오늘 고맙습니다.

▷김영일 >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대한민국 중심언론 CBS 뉴스FM98.1 / 음악FM93.9 / TV CH 412)< 저작권자 ⓒ CBS 노컷뉴스( www.nocutnews.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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