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눈에 흐려진 '과거 청산'

입력 2004. 8. 30. 06:55 수정 2004. 8. 30. 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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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박대표 ‘유신시대 옹호’ 인식 비판 목소리박정희 공격 경계하다자신도 울타리갇혀“잘못된 국가권력 진상규명차원 접근해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지난 29일 당 의원연찬회에서 밝힌 ‘과거사’ 관련발언이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당 안팎에서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유신시대 독재 논란과 정수장학회 문제 등에 대한 사과 요구가 거세지는 것과는크게 다르게, 박 대표는 ‘문제될 것 없다’는 인식을 여과없이 드러냈다.

박 대표는 연찬회에서 작심한 듯 40분 가량의 시간을 할애해, 당 안팎의 과거사관련 논란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박 대표는 우선 사과 문제에 대해 “과거의잘못을 사과할 만큼 충분히 사과했다”는 태도를 보였다. 그리고는 이어지는 사과요구에 대해 “순수한 의도가 아니라, 헐뜯기”라고 불쾌감을 표시했다.

그는 유신시대도 적극 ‘옹호’하고 나섰다. 인권탄압과 조작 의혹이 제기된인혁당 사건 등에 대해 “법적으로 전부 결론난 사항들”이라고 문제가 없다는태도를 보였다. 그는 한걸음 더 나아가 “이 문제들이 새롭게 조명된다 하더라도법적으로 바라보고 진행해야 한다”고 밝혀, 이들 사건을 ‘옭아맨’ 수단인국가보안법을 긍정하는 듯한 태도를 드러냈다. 그는 국가보안법 폐지에 분명한반대의 뜻을 밝힌 바 있다. 박 대표는 또 유신시대에 대한 평가는 “역사학자와국민의 몫”이라고 주장했다.

박 대표는 특히 정수장학회 이사장직 사퇴 논란에 대해 “(정수장학회 설립을)잘못했으니 내놓으라고 하는데, 어떤 과정이었는지 확실히 아는가”라며 “어떤 게옳은지는 법정에서 갈라야 한다”고 역공을 폈다. 장학회 이사장직 유지에 거리낄것이 없으니, 물러날 이유도 없다는 생각을 분명히 드러낸 셈이다.

박 대표의 이런 주장에 대해, 전문가들과 관련 당사자들은 30일 “과거사 문제를지나치게 정치적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사실 관계를 왜곡하고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사회학)는 “유신시대 등에 대한 전체적인 평가는역사학자의 몫일 수 있으나, 현재 제기된 과거청산은 과거에 잘못됐던 공권력행사의 진상을 규명하고 피해자의 명예를 회복하자는 것”이라며 “박 대표가과거청산을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공격이라는 정치적 의도로 해석하다보니,자신도 정치적 울타리에 갇힌 것 같다”고 지적했다.

박 대표가 예로 든 인혁당 사건의 희생자인 도예종씨의 부인 신동숙(73)씨는“몰라도 너무 모르는 소리”라며 “인혁당 재판이 당시 존재했던 법이라도 제대로적용한 재판이었는지, 자신의 아버지가 어떤 일을 했는지 제발 공부 좀 하고말하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정현백 성균관대 교수(사학)는 “인혁당 등 과거에이미 법적 절차가 끝난 ‘과거사’는 인권에 기초한 새 법에 의거해 재조명해야한다”며 “과거 악법으로 법처리가 끝났으니 됐다는 발상은 히틀러의 나치 시대에법적으로 다 끝난 일은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서 다시 다룰 이유가 없다는 주장과같은 얘기”라고 반박했다.

‘정수장학회 관련 부산시민사회단체 공동대책위원회’의 임동규공동위원장(부산기독교청년회 사무총장)은 “이미 정황증거를 통해 헌납이 아닌강탈이라는 것이 밝혀졌고, 한나라당 안에서도 박 대표가 정수장학회 이사장직을내놓아야 한다는 주장이 대세를 이루는 판에 그런 발언을 하는 것은 이해할 수없다”고 밝혔다.

김민철 민족문제연구소 상임연구원은 “박 대표는 ‘사과했다’고 주장하는데,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사과했는지 전문가들조차 잘 모른다”며 “사과는‘미안하다’는 말로 되는 것이 아니며, 무엇을 잘못했는지 ‘사실’에 대한구체적 인정과, 그에 따른 후속 조처들이 수반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현백 교수는 “박 대표에게 박정희의 과오를 사과하라는 것은 연좌제이고합당치 않기 때문에, 박 대표는 아버지가 저지른 과오가 무엇이었는지 밝히고자신이 박정희식 정치의 연장선에 있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하면 된다”며“하지만 박 대표는 스스로 박정희의 딸이라는 인식에 젖어 이 점을 분명히 깨닫지못하고 있다”고 말했다.정재권 전정윤 기자, 대구/박영률 기자 jjk@hani.co.krⓒ 한겨레(http://www.hani.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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