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석지시 거부하다 '폭탄 선언'.. 무너진 공직기강

남혁상 기자 2015. 1. 10.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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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한 민정수석 전격 사의 표명 배경과 파장

김영한 청와대 민정수석의 사의 표명은 9일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 도중 돌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오후 이 소식이 국회에서 전해진 뒤에도 상당시간 경위를 파악하느라 애를 먹었을 정도였다. 워낙 전격적으로 벌어져 청와대조차 진의를 확인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는 의미다.

이번 일은 일개 청와대 수석의 단순한 사의 표명에 그치지 않고, 사실상의 '항명'으로 여겨진다. 김기춘 비서실장이 김 수석에게 직접 수차례 국회 출석을 지시했음에도, 이를 따르지 않은 데다 오히려 '사퇴 폭탄선언'을 하는 전례 없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그만큼 청와대는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김 수석의 구체적인 언급은 직접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김 실장에게 "나는 사퇴할 것이니 (운영위 전체회의에) 출석할 수 없다"고 했다고 여당 관계자는 전했다. 그는 사의 의사를 김 실장은 물론 다른 민정수석실 관계자들에게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김 수석과 통화는 못했지만 사의는 굳힌 것 같다"고 했다.

김 수석은 야당이 국회 운영위 출석을 요구하던 초기부터 "나가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고 한다. 운영위 현안보고의 핵심이슈였던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이 자신이 재임하기 이전에 벌어진 일이고, 단순한 현안보고를 위해 청와대 민정수석이 국회에 출석한 전례가 없다는 점을 들어 강력 반발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와대 수석이 홧김에 "그만두겠다"고 한 것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게 청와대 내부 기류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핵심참모가 국회 출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사표를 내던지는 일 자체가 박근혜 대통령이 누누이 강조해온 공직기강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행위라는 판단이다.

또 사흘 뒤 신년 기자회견을 앞두고 국정운영 구상에 몰두하던 박 대통령에게도 커다란 부담을 지운 것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박 대통령은 김 수석 사의 표명 소식이 전해진 시각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서 열린 여성계 신년인사회에 참석 중이었다. 박 대통령은 김 실장으로부터 관련 보고는 받았지만,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즉각 알려지지 않았다.

지난해 6월 3기 참모진 개편을 통해 청와대에 입성한 김 수석은 7개월 만에 스스로 옷을 벗게 됐다. 대검찰청 강력부장 출신에 공안통으로 분류되는 김 수석은 검사 시절에도 다혈질 성격을 종종 드러냈다. 그와 검사 생활을 같이했던 한 법조계 인사는 "여당조차 청와대 수석을 보호해 주지 않으니까 김 수석이 욱 해서 '그럼 그만두겠다'고 한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역대 정부에서 청와대 정무수석이 국회 출석한 사례는 다섯 차례밖에 없다. 노무현정부 당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요구로 문재인, 전해철 민정수석이 차례로 출석했다. 이 중 3건은 국정감사 증인 신청에 의한 출석이었고, 2건은 해명을 위한 '자진출석'이었다. 여당 관계자는 "국회가 현안보고를 위해 청와대 민정수석에게 국회 출석을 요구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했다.

남혁상 기자 hs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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