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만큼 슬프고 흉한 일 없어"..朴대통령-측근 '애증사'

2015. 6. 28. 15:58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가장 측근에 있었던 정치인도 생각 다르면 단호히 '절연' 김무성과 애증 교차..진 영 강재섭 등도 거리 멀어져

가장 측근에 있었던 정치인도 생각 다르면 단호히 '절연'

김무성과 애증 교차…진 영 강재섭 등도 거리 멀어져

(서울=연합뉴스) 강병철 기자 = 박근혜 대통령이 최측근이었던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에 대해 "배신의 정치"라며 사실상 자진사퇴를 요구함에 따라 박 대통령과 다른 측근 인사와의 '애증사'(愛憎史)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부친의 서거후 측근들의 배신을 지켜본 박 대통령은 어떤 정치인보다도 깊은 '배신의 트라우마'가 있고, 그 점때문에 누구보다 '신의와 원칙'을 중시하는 정치철학을 가지게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박 대통령이 2007년 출간한 자서전에서 "사람이 사람을 배신하는 일만큼 슬프고 흉한 일은 없을 것"이라면서 "상대의 믿음과 신의를 한번 배신하고 나면 그다음 배신은 더 쉬워지며 결국 스스로에게 떳떳하지 못한 상태로 평생 살아가게 된다"라며 '변절'에 대한 단호한 인식을 드러낸 바 있다.

박 대통령은 그동안 이른바 '측근'이라고 해도 자신의 생각과 다른 행보를 하거 나 '자기 정치를 한다'는 판단을 할 경우에는 엄격한 입장을 취해왔고, 정치적으로 절연한 경우도 있었다.

박 대통령과 가장 대표적으로 애증 관계에 있는 인물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다.

박 대통령은 당 대표였던 2005년 당시 김무성 의원을 사무총장으로 발탁하면서 두 사람은 본격적인 인연을 맺었다.

김 대표는 2007년 대선 후보경선 때 당시 박근혜 후보가 이명박 후보에게 밀렸지만 끝까지 실무를 총괄했고, 2008년 18대 총선 '보복 공천' 과정에서 희생됐다.

이후 '친박(친박근혜) 무소속'으로 당선되면서 '친박 좌장'의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김 대표는 '로키' 행보를 하던 박 대통령과 달리 계파 목소리를 내겠다고 하면서 박 대통령과 갈등을 빚었다.

이어 박 대통령이 김 대표의 원내대표 출마에 반대하고 김 대표가 세종시 수정안에 대해 박 대통령과 다른 입장을 내면서 박 대통령이 "친박에는 좌장이 없다"는 말까지할 정도로 두 사람의 관계는 악화됐다.

친이(친이명박)계의 추대로 2010년 원내대표를 맡은 김 대표는 친박계가 사실상 주도한 2012년 공천 때 다시 낙천했다가 그해 대선에서 선거대책위원회 총괄 선대본부장을 맡아 백의종군하면서 박 대통령과의 관계를 회복하게 된다.

이어 지난해 7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김기춘 비서실장의 교체를 요구하고 같은 해 10월에서는 개헌론을 꺼내놓으면서 박 대통령과의 관계도 불편해졌으나 박 대통령이 지난해 4월 해외 순방 전 김 대표를 청와대로 불러 성완종 리스트 파문으로 어수선한 상황을 수습할 것을 당부하면서 두 사람의 관계가 복원됐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유 원내대표의 사퇴를 요구하고 유 원내대표가 버티기를 하면서 이 문제를 수습해야하는 김 대표는 다시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됐다.

박 대통령의 대표 시절 역시 비서실장을 맡았던 진영 의원도 박 대통령과 애증 이 교차해온 정치인이다.

2004~2005년 비서실장을 맡는 등 박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였던 그는 2012년 박 대통령이 반대한 세종시 수정안에 찬성하면서 박 대통령과의 관계가 소원해지기도 했으나 대통령직 인수위에 부위원장으로 참여하면서 신임을 재확인했다.

박근혜 정부 출범초 박 대통령의 가장 강력한 신임을 받는 위치로까지 부상했다.

그러나 2013년 초대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내각에 합류한 그는 그해 9월 기초연금 축소 등 '복지 공약 후퇴'에 불만을 품고 일방적으로 사표를 제출하는 이른바 '인사 파동'을 일으키고 당으로 복귀했다.

박 대통령과 강재섭 전 한나라당 대표와의 관계도 애증사의 한 대목.

강 전 대표는 박 대통령의 1998년 재보선시 대구 달성 출마에 관여하고 달성 지역 선대위원장을 맡아 박 대통령의 원내 진입에 기여했다.

박 대통령이 대표였던 2005년에 강 전 대표는 원내대표로 사학법 투쟁을 지휘했으며 이후 강 전 대표는 박 대통령의 물밑 지원 속에서 당 대표가 됐다.

그러나 2007년 대선 후보 경선 때 균형 행보를 한다는 이유로 "MB(이명박 전 대통령)쪽으로 기우는 것 아니냐"며 친박 진영으로부터 원망을 받았다.

이어 2008년 이른바 '보복 공천' 과정에서 박 대통령이 "나도 속았고 국민도 속았다"며 당 공천을 정면 비판하고 이로 인해 강 전 대표도 결국 불출마 선언을 하게 되면서 두 사람은 대립하게 됐다.

soleco@yna.co.kr

환자 낙상사고 '간호조무사 vs 물리치료사' 누구 과실
전경련 "무인도를 김수현 섬, EXO 섬으로 만들자"
'안타까운 죽음'…일손부족 여친부모 배달 돕다 택시와 충돌
'층간소음 스트레스'…자기 집에 불지른 50대 징역2년
의협 "메르스 조회시스템 갱신 늦어 병의원 피해"

▶연합뉴스 앱 지금 바로 다운받기~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