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탓공방' 與野, 국민 안중에도 없는 막나가는 치킨게임
[이데일리 김성곤 기자]박근혜 정부가 화려하게 막을 올렸지만 모든 것이 빈 칸이다. 여야 정치력 부재로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여전히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내외적인 경제위기와 안보불안 속에서 새 정부는 출범부터 마비사태다. 반면 여야는 대승적 차원에서 정치력을 발휘하기보다는 서로를 거세게 비난하는 '네탓' 공방만을 일삼고 있다. 국민은 안중에 없는 전형적인 치킨게임 양상이다.
◇與野, 조직개편협상 지리멸렬...26일 본회의 처리 무산
조직개편안 처리를 둘러싼 여야 대치는 평행선이다. 여야는 지난달 30일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된 이후 한 달 가까이 10여 차례가 넘는 협상을 가져왔지만 타결에 실패했다. 지난 14·18일 1·2차 처리시한을 넘긴 데 이어 새 정부 출범을 하루 앞둔 24일 막판 협상도 무위로 돌아갔다. 대통령 취임식 당일인 25일에도 여야 원내수석부대표의 회담이 예정됐지만 방송통신위원회의 일부 기능의 미래창조과학부 이관 문제로 불발에 그쳤다.
새누리당은 방송통신 융합을 강조하며 보도 기능을 제외한 비보도 영역의 미래부 이관을 주장하고 있지만 민주통합당은 공정성을 명분으로 방송정책의 방통위 존치를 주장하고 있다. 여야는 브레이크없는 기관차처럼 마주 보고 달리며 상대를 거칠게 몰아세우고 있다. 대선 이후 승자의 포용도, 패자의 허니문도 없는 상황이다. 26일 국회 본회의에서 조직개편안 처리는 결국 무산됐다.
새누리당은 민주당이 대선결과에 불복, 발목잡기에만 집중한다며 맹비난했다.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이날 본회의에 앞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민주당이 행태는 국민들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좀비국회'로 평가받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반면 민주당은 새누리당이 박근혜 대통령의 원안 고수 입장에 매달려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박기춘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새누리당이 대통령의 원안고수 가이드라인에 맞춰 시간을 끌면서 국민도, 민주당도 답답하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브레이크를 풀어주기만 한다면 정부조직개편안이 통과된다"고 박 대통령의 결단을 요구했다.
◇정부 출범부터 우왕좌왕
조직개편안 처리가 늦어지면서 전날 공식 출범한 박근혜 정부는 모든 게 우왕좌왕이다. 내각과 청와대에 구멍이 뻥뻥 뚫렸다.
내각의 상황은 심각하다. 26일 국회 본회의에서 정홍원 국무총리 임명동의안이 통과됐지만 내각은 공백 상태다. 더구나 정부 주요 부처의 세종시 이전과 조직개편에 따른 공직사회의 동요를 감안할 때 내각의 정상 구성은 시급한 과제다. 27일 새 정부 장관 후보자 3명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막을 올리지만 전체 17명의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가 언제 마무리될지는 미지수다. 특히 조직개편안이 처리되지 못해 미래창조과학부, 해양수산부, 산업통상자원부 등은 인사청문회 일정조차 잡지 못했다.
아울러 조직개편안과 인사청문회를 둘러싼 여야의 날선 공방이 지속될 경우 국무회의 파행 사태는 장기화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과정에서 공약했던 경제민주화, 보편적 복지, 일자리 창출과 창조경제 실현 등 주요 정책 및 각종 민생정책의 조속한 추진이 힘들어진다. 물론 이명박 정부의 장관들이 참여한 가운데 국무회의를 서둘러 개최할 수도 있지만 박근혜 정부 첫 국무회의라는 상징성을 고려할 때 가능성은 낮아보인다. 박 대통령이 지명한 장관들로 구성되는 국무회의는 인사청문회 일정을 고려할 때 일러도 3월 중순 이후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인사청문회 또는 사전검증 과정에서 김용준 총리 후보자낙마 사태가 발생하면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
◇청와대, 실무진 인선 지연
내각뿐만 아니라 청와대 상황도 마찬가지다. 조직개편안이 처리되지 못해 박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해야 하는 비서진 구축도 힘들어지고 있다. 대통령실장에서 명칭이 바뀐 대통령 비서실장과 경호처장에서 격상된 경호실장은 편법 임명됐다. 허태열 내정자는 대통령실장, 박흥렬 내정자는 경호처장 등 이명박 정부 청와대 때 직함을 쓰고 있다. 새 정부에서 신설될 국가안보실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북한의 제3차 핵실험 강행과 추가 도발 위협에 따라 안보분야를 총괄 관리하는 컨트롤타워로 국가안보실을 신설했지만 초대 실장 내정자인 김장수 전 국방장관은 공식 임명장도 받지 못했다. 김 내정자가 공식 업무에 나서지 못한 것은 물론 국가안보실 산하 실무 인력 구성도 미뤄지고 있다.
홍성걸 국민대 교수는 "조직개편안은 방통위 기능의 미래부 이관 문제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합의했는데 여야가 국민을 볼모로 구태의연한 기싸움을 벌이고 있다"면서 "야당은 박근혜 대통령 취임 축하 선물을 건네고 여당도 정치력을 발휘해서 야당의 체면을 세워주는 윈윈 전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성곤 (skzero@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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