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정보 쏟아내기..'북풍 정국' 몰아가나

이용욱기자 2009. 6. 5. 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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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리제재에 때맞춰 '슈퍼노트' 부각후계세습·ICBM 등 정치적 오용 소지

북한 정보가 쏟아지고 있다. 권력세습 등 내부 정보는 물론 북한군의 동향까지 정부 주변에서 정보가 넘쳐나고 있다. 하지만 신빙성 있는 정보와 첩보 수준의 정보, 부풀려지거나 왜곡된 정보 등이 섞여 있는 만큼 옥석을 가려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정보의 사실 여부를 떠나, 북한 관련 정보들이 다른 정치적 의도로 악용될 여지가 적지 않다는 지적도 많다.

서해 연평도에서 야간 경계 근무를 섰던 해병대 부대원들이 4일 새벽 근무교대를 위해 이동하고 있다. < 연평도|김영민기자 >

최근 미국에선 갑작스럽게 100달러 위폐인 '슈퍼노트'가 현안으로 부각됐다. 워싱턴타임스가 2일(현지시간) 미국과 해외정보기관 관계자들의 말과 보고서 자료를 인용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최측근인 오극렬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주도로 노동당 산하기관인 함남 평성의 상표인쇄소에서 슈퍼노트가 제작되고 있으며, 그의 아들인 오세원과 친척인 리일남도 관여하고 있다"고 보도한 게 발단이다. 미국이 유엔 안보리 등에 대북 금융제재 등을 설득하기 위해 북한의 불법 활동을 부각시킨 것으로 보인다.

일단 내용은 대체로 사실이라는 게 당국 확인이다. 다만 핵심 정보가 한국 정부에서 미국 정부로 넘겨졌다는 점이 주목된다. 특히 오 부위원장 아들이 슈퍼노트 제작의 핵심인물이라는 점과 오세원이라는 이름 등 처음 공개된 정보가 남한 정부에 의해 파악돼 미국으로 전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 간 정보 공유라고 할 수도 있지만, 정보 공개에 한국 정부가 관여한 모양새가 됐다.

북한 정보가 정부 경로를 통해 나온 사례는 적잖다. 국정원 제3차장이 국회 정보위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김정운 세습'을 알린 게 대표적이다. 주무부처인 통일부의 현인택 장관은 4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국가브랜드위원회 주최 제2차 국제자문포럼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뇌졸중을 앓지 않았다면 후계 문제가 이렇게 신속하게 제기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흥미롭게도 김 위원장의 건강이 악화되기 시작한 이후 북한이 공격적이고 폭력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고 공개 언급하기도 했다.

또 군 당국은 2일 합참 군사지휘본부를 방문한 국회 국방위원들에게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중거리미사일을 동시 다발적으로 발사할 가능성도 있다"고 했고, '외교 소식통'은 "4월 중순 이후 영변의 핵 재처리시설 가동에 착수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전했다.

물론 북한 정보들이 국민의 긴장감을 높이고, 긴급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알려져야 한다는 데 이론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정부가 전한 정보 중 다수는 '가능성이 있다'는 등 확인이 부족한 것이었다. 왜곡도 나오고 있다. 워싱턴타임스는 "지난해 11월 부산에서 경찰이 100만달러 상당의 슈퍼노트를 압수했다. 북한이 한국을 슈퍼노트의 유통과 세탁거점으로 활용하려는 것"이라고 했지만, 당시 부산경찰청은 "제조·유통경로까지는 확인하지 못했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다 보니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궁지에 몰린 정부가 국면타개를 위해 북한 정보를 흘리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서거정국을 비켜가고, 6월 국회의 주도권을 안 빼앗기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강래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국정원 기조실장을 했던 사람으로 속성을 잘 아는데, 국정원 3차장의 전화를 받으면서 석연치 않고 불쾌한 마음이 들었다"면서 "정부·여당이 서거정국을 북풍정국으로 바꾸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을 피부로 느꼈다"고 말했다.

정부는 또 김정운의 후계세습을 공식화함으로써 핵실험·미사일 발사 등 북한의 무력시위가 내부문제에서 비롯됐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현 국면에서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대북정책 실패와 무기력함을 가리려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장용석 평화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은 "남북관계 악화에 대한 정부 책임을 무마시키려는 방편으로 정보를 이용한다고 하면 차후에 더 큰 정책 실패를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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