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이 김정일에 보고".. 실제론 '김계관이 대통령에 보고'

구교형 기자 2013. 6. 25.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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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회담 회의록' 새누리당 주장과 원문 차이

새누리당은 지난해 대선부터 지금까지 남북정상회담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을 했다고 주장해왔다. 국가기밀인 정상회담 회의록 공개·열람이 어려운 상황에서 '굴종' '배신' 등 극단적 표현을 쓰고, '국기문란 사건'이라고까지 했다. 하지만 '2007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전문이 공개되면서 그간 새누리당의 폭로가 '회의록 발췌문' 발언을 과장하거나 자의적으로 왜곡했다는 사실이 속속 확인되고 있다.

▲ "미국이 땅따먹기…NLL 골치 아파" 발언 없어발췌문 일부 자의적 해석 노 발언 '친북' 몰아가

무엇보다 "처음부터 끝까지 비굴과 굴종의 단어가 난무한다"거나 "상상을 초월한다. 정상회담 내용이 아니다. 대화록이 아니고 보고하는 수준이었다"고 밝힌 서상기 의원의 지난 20일 주장은 대표적인 '왜곡' 사례로 꼽힌다. 노 전 대통령은 "6자회담에 관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는데, 조금 전에 보고를 그렇게 상세하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는데 여기서 '보고'란 당시 북측 김계관 부상이 정상회담 중간 6자회담 경과를 남북 정상에게 보고한 것을 일컫는 말이었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발췌문을 열람한 뒤 "노 전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보고드린다'는 표현을 자주 썼다"고 지적했다.

'NLL 포기 발언' 주장도 마찬가지. 정문헌 의원은 지난해 10월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의 통일부 국정감사에서 "노 전 대통령이 정상회담 당시 김 위원장과의 단독회담에서 NLL을 주장하지 않겠다고 한 비공개 대화록이 존재한다"고 밝혔다. 이어 "노 전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NLL 때문에 골치 아프다. 미국이 땅따먹기 하려고 제멋대로 그은 선이니까. 남측은 앞으로 NLL을 주장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회의록 원문을 보면 노 전 대통령이 NLL을 남한 내 갈등의제로 인정하고 '괴물'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골치 아프다"고 한 적은 없다. "미국이 땅따먹기 하려고 제멋대로 그은 선"이란 발언도 없다. "앞으로 NLL을 주장하지 않을 것"이란 부분도 없었다.

오히려 "(NLL은 남한에서) 현실로서 (영토선으로)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면서 "NLL을 갖고 이걸 바꾼다 어쩐다가 아니고 공동번영을 위한 바다 이용계획을 세움으로써 민감한 문제들을 미래지향적으로 풀 수 있다"고 했다.

"그건(NLL) 옛날 기본합의 연장선상에서 앞으로 협의해 나가기로 하고…"라고 이전 정부들의 방침을 계승한다는 취지를 명백히 했다.

새누리당이 노 전 대통령을 '친북·반미주의자'의 전형으로 몰아간 부분 역시 발췌문 일부를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정 의원은 "대화록에 북핵문제에 대해 노 전 대통령이 '내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북한이 핵보유를 하려는 것은 정당한 조치라는 논리로 대변인 노릇을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북한이 나 좀 도와달라'고 했다고 돼 있다"고 전했다. 또 "주한미군 철수와 한반도 통일에 대한 김 위원장 발언에 노 전 대통령이 동의를 표시했다"고 말했다.

'변호'란 단어가 있지만 노 전 대통령 발언은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북한을 어르고 달래는 데 방점이 찍혔다. 노 전 대통령은 "우리 민족끼리 아무리 하고 싶어도 고립을 자초하는 자주는 할 수 없다"며 "김 위원장이 북·미관계 개선을 위한 문만 열어놓는다면 미국이 이에 상응한 관계개선 조치에 속도를 내도록 재촉할 것"이라고 설득했다.

2005년 북측에 대한 방코델타아시아은행(BDA) 제재에 대해 노 전 대통령이 "미국의 실책"이라고 언급했다고 주장한 부분은 사실이지만, 전후 맥락을 살펴보면 설득의 화술(話術)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BDA 문제는 미국이 잘못한 것인데, 부당하다는 거 다 알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말미에는 "우리가 문제를 실질적으로 풀어나가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에서 지지를 확보해야 한다"며 미국과의 대화 필요성을 강조했다.

주한미군 철수문제에 대해서는 "2012년이 되면 작전통제권을 우리가 단독 행사한다. 안보 개념은 대북 안보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제는 동북아시아 전체를 내다본 안보체제를 갖춰야 한다"고 했다. 특히 '주한미군 철수 동의'라고 정 의원 등이 주장한 부분의 실상은 "(미군) 2사단이 (서울에서) 철수한다는 것이 방침이었는데, 마침 미국도 재배치 계획을 가지고 있어서 일치해서 (우리가) 용산기지를 이전하는 데 60억달러란 돈이 든다"는 용산미군기지 이전에 대한 내용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정상회담 당일 김 위원장이 오전 회의를 끝으로 추가 회의를 잡으려 하지 않자 "오후에 시간 내주시는 게 그렇게 어려우면 나도 내려가렵니다"라고 강수를 두는가 하면,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건설에 미온적 태도를 보이자 "이번 걸음에 차비를 뽑아가야지, 무슨 말씀입니까. 그리고 실제로, 서해문제는 깊이 말씀드리고 싶다"고 압박했다.

< 구교형 기자 wassup01@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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