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주민에겐 反日감정이 거의 없다는데..왜

2014. 7. 4.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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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윤일건 기자 = 북일 정부 간 협상의 급속한 진전과 일본의 신속한 대북제재 해제에 맞물려 북한 당국과 주민들의 일반적인 대일(對日) 정서가 어떤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북한이 한반도의 근현대사와 김일성 주석의 '항일역사' 등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면서 "간악한 일제의 조선 강점"을 강조하지 않은 적이 없지만, 일본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정서는 이상하리만큼 호의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많은 탈북자는 "북한에는 일본에 대해 사무친 증오와 분노를 느끼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고 전했다.

일제의 강점에서 해방된 지 거의 70년이 지났음에도 뿌리깊은 반일정서를 가진 남한 국민과는 사뭇 다른 감정이다.

일본을 향한 남북한 주민의 이런 정서적 차이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우선 북한 당국과 주민의 대일 정서가 우호적으로 변한 배경에는 경제적인 요인이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1959년 12월 재일동포가 처음 북송선을 탄 후 1980년대 초까지 약 10만 명의 재일동포가 북한으로 이주했다.

1970년대 말까지 북한 주민들은 북송 재일동포를 '일본의 간첩' 등으로 부르며 멸시했고, 핵심 조선총련(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간부의 친인척을 제외한 대부분의 북송 재일동포는 대학 진학과 취업 등에서 실제적인 불이익을 감수해야만 했다.

하지만 북한 당국은 일본 경제의 급속한 성장으로 재일동포 상공인들이 많은 부를 축적하게 되면서 1980년대 들어 합영·합작사업 등을 통한 재일동포의 경제적 지원을 기대하게 됐다.

이때부터 북송 재일동포에 대한 북한 당국의 정책도 변했고, 이들에 대한 일반 주민의 인식도 바뀌기 시작했다.

특히 일본의 '돈 많은' 친인척들이 보내주는 엔화 덕분에 많은 북송 재일동포들의 생활수준이 높아지면서 이들의 사회경제적 지위도 함께 상승했다.

북한 주민들은 북송 재일동포를 시기심과 함께 동경의 눈으로 바라보게 됐고 이런 정서는 일본에 대한 우호적인 감정을 갖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1980년대 이후 북한과 일본의 무역이 활발해지면서 북한의 '외화상점'과 시장에서 많이 팔린 일본제 상품도 북한 주민의 대일 인식을 바꾸는데 한몫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최근에는 북한 시장에서 한국산 가전제품이나 화장품이 인기를 끌고 있지만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는 '본산(일본산의 약칭)'의 인기가 독보적이었다.

일본이 2006년 10월 북한의 1차 핵실험을 계기로 북한산 물품 수입금지 등 강력한 대북제재를 시행하기 이전까지 북한과 일본의 교역은 활발했다.

북한 무역선은 북한산 대게나 성게를 일본으로 실어날랐고 돌아올 때는 일본제 중고 자동차, 가전제품, 자전거 등을 싣고 왔다.

'맵시 있고 내구성이 좋은' 일본 제품에 대한 북한 주민의 신뢰에 힘입어 TV를 비롯한 가전제품은 물론이고 자전거 시장에서도 '본산'이면 부르는 게 값이었다는 것이 탈북자들의 전언이다.

시장 상인 출신의 탈북자 김모씨는 "2000년대 초까지 일본제 중고제품이 중국산 신제품보다 수요가 많았고 값도 더 비쌌다"라며 "특히 TV나 CD플레이어 같은 경우 '파나소닉', '소니' 등 일본 브랜드는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고 전했다.

역사적인 측면도 간과하기 어렵다.

북한은 광복 후 곧바로 친일파의 재산을 모두 몰수해 국유화하는 등 적극적으로 친일파 청산에 나섰고, 이 때문에 북한 지역의 친일파들은 대거 남쪽으로 이주했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남한 국민의 반일정서가 해방후에도 친일파 후손들이 여전히 기득권을 차지한 현실에 대한 불만 또는 분노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친일파가 숙청된 북한에서는 일제 강점기 이후 여러 세대가 지나면서 일본에 대한 증오와 분노가 서서히 식었다는 게 주민들의 일반적인 인식이다.

평성 출신 탈북자 박모씨는 "1990년대 '고난의 행군'이 닥치면서 식량배급이 완전히 끊기고 철도운행이 마비되자 일제 통치를 경험했던 할아버지는 '일제 강점기에도 대두박(콩깻묵)일망정 배급을 주고 철도도 거의 정시운행했다'거나 '일제강점기 때가 지금의 김정일 시대보다 훨씬 나았다'고 말하곤 했다"고 전했다.

yooni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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