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중 병원도 못가고.. 어느 女軍중위의 죽음

입력 2013. 9. 11. 03:11 수정 2013. 9. 11.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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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부인과 없는 최전방 부대서 과로로 뇌출혈 뒤 아이 출산
육군본부 '일반 사망'으로 처리.. 권익위는 "순직 인정하라" 권고

[동아일보]

올해 1월 중순. 임신 7개월째인 28세의 이신애 중위(사진·여군사관 55기)는 몸이 붓는 등 건강상태가 갑자기 악화됐다. 그 무렵 이 중위는 공석인 부대 운영과장의 업무를 대신 맡은 데다 2월로 예정된 혹한기 훈련을 도맡아 준비하느라 하루 12시간을 넘겨 일할 정도로 업무가 과중하게 몰리던 상황이었다. 밤늦게 숙소에 들어와 쓰러져 잠드는 일이 반복되고 있었다.

산부인과에 가봐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그가 근무하던 곳은 강원 인제군의 최전방 부대. 인제군엔 산부인과가 없었다. 춘천의 산부인과를 가려면 왕복 3시간. 일이 쌓여 선뜻 휴가 얘기를 꺼내지 못했다.

그사이 이 중위의 건강은 날로 악화됐다. 급기야 2월 2일 이 중위는 배가 아프다며 쓰러졌다. 마침 숙소를 찾았던 회사원 남편 연모 씨가 이 중위를 데리고 황급히 속초의 산부인과로 차를 몰았다. 병원 측은 상태가 심각하다며 더 큰 병원을 추천했고 강릉의 병원에 도착했다. 의사는 상황이 급박하니 배 속의 아이부터 출산시키자고 했다. 그날 밤 10시경 제왕절개로 나온 아기는 인큐베이터로 보내졌다. 이 중위는 아기 얼굴을 보지 못한 채 다음 날 오전 7시 47분경 눈을 감았다. 사망 원인은 임신성 고혈압으로 인한 뇌출혈이었다.

육군본부는 "이 중위의 뇌출혈이 임신성 고혈압으로 발생했고 군 복무가 임신성 고혈압의 악화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기 어렵다"며 이 중위의 죽음을 순직으로 인정하지 않은 채 '일반 사망'으로 처리했다.

육군 중령으로 제대한 아버지 이모 씨의 가슴은 찢어지는 듯했다. 이 중위의 할아버지도 6·25전쟁에 참전했고 대위로 예편했다. 3대가 군인이라는 자부심이 슬픔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이달 10일 육군본부에 "이 중위의 사망을 과로로 인한 순직으로 인정해줄 것"을 권고했다. △이 중위가 사망하기 한 달 전 받은 산부인과 검진에서 아무런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고 △이 중위가 1월 소속부대 지휘관 교체와 부서장 대리업무로 한 달간 50시간의 초과근무를 했다는 것이다. 권익위가 의학적 견해를 구한 산부인과 전문의 3명은 "과로로 인한 스트레스가 임신성 고혈압에 영향을 줬다"고 지적했다.

권익위 관계자는 "이는 8000여 명 여군의 권익 문제다. 육군본부는 권고를 바탕으로 순직 인정 심의를 다시 할 것이라고 했다. 순직 인정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아버지 이 씨는 "인제군에 산부인과 하나 없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 앞으로 여군이 더 늘어날 텐데 국가가 나서 해결할 문제"라며 눈물로 말을 잇지 못했다.

2월 2일 697g으로 태어나 4개월을 인큐베이터에서 자란 아들은 다행히 지금은 건강하다. 이 중위의 유해는 여전히 아버지 이 씨의 방에 있다. 그는 순직이 인정돼 이 중위의 유해가 국립묘지에 묻힐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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