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남은 추징금 231억 '집안 싸움'.. 형제·사돈 서로 "나만 안 내면 돼"

감혜림 기자 입력 2013. 6. 24. 11:04 수정 2013. 6. 24.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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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노재우 형제 싸움..노태우·신명수 사돈 싸움..신명수·노재우 신경전..

수년째 이어지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집안 싸움 이야기는 물질 만능의 세상을 사는 자녀들에게 반면교사로 알려줄 만하다. 이솝이야기의 우화(寓話)보다 '돈+권력≠행복'의 진리를 생생하게 들려주기 때문이다.

지난 13일 노 전 대통령(81)의 부인 김옥숙 여사가 검찰에 "추징금을 완납해 국가와 역사에 대한 빚을 청산하고 싶다"며 탄원서를 냈다. '검찰이 사명감을 갖고 노재우와 신명수에게 맡긴 재산을 환수해 이른 시일 내에 기필코 추징금을 완납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주시길 간청 드립니다.'노재우는 노 전 대통령의 동생(78)이고, 신명수는 사돈이었던 전 신동방그룹 회장(72)이다. 대통령과 재벌 집안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사달은 권력으로 끌어모은 부정한 돈에서 시작했다. 혼자 감당하기 벅찼는지 일찍이 노 전 대통령은 비자금 일부를 동생과 사돈에게 맡겼다. 노태우 비자금이 드러난 것은 1995년. 법원은 1997년 노 전 대통령에게 "비자금 2628억원을 국가에 내놓으라"고 판결했다. 그동안 검찰이 노 전 대통령의 실명·차명 재산에서 추징한 금액은 2397억원. 남은 231억원이 문제였다.

노 전 대통령은 난 다 털어서 냈으니 내가 동생과 사돈에게 맡긴 돈에서 찾아가란 입장이다. 법원도 2001년 그가 동생과 사돈에게 각각 120억원과 230억원씩 맡겼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노재우와 신명수는)원금과 이자를 국가에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231억원을 남긴 노 전 대통령은 검찰이 이들에게 돈을 환수해주면 추징금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런데 동생과 사돈이 지금까지 내놓은 돈은 각각 52억원과 5억1000만원. 법적으로 검찰은 누구에게 받든 상관없다. 노 전 대통령 자녀 재산에서 차명 재산이 추가로 밝혀지면 그 돈을 가져가면 된다. 그러니 다들 "빨리 저쪽 것을 가져가라"며 검찰을 재촉하는 형국이다.

형제 싸움: 노태우 vs 노재우

노재우씨를 대리하는 이흥수 변호사는 기자와 만나 "노 전 대통령 측이 다른 차명 재산이 있는데도 추징금을 내지 않고 재우씨에게 떠넘기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이달 초 언론을 통해 "노 전 대통령 아들 명의의 대구 아파트와 연희동 주택, 노 전 대통령의 운전기사 계좌에서 나온 30억원 등은 차명 재산일 가능성이 크다"고 폭로했다. 김 여사의 검찰 탄원서는 이 폭로 직후 나왔다.

노재우씨는 형에게 받은 비자금으로 1989년 냉장 회사를 차렸다. 경기도 용인에 있는 이 회사(오로라CS)는 부지 등을 합쳐 자산 가치가 1000억원대로 추정된다. 그럼에도 추징금을 내지 않자 노태우 전 대통령은 2007년 "맡긴 돈으로 동생이 냉장 회사를 설립했으니 내가 회사 소유주"라며 소송을 냈다. 초강수도 동원했다. "회사 대표인 노호준의 배임 혐의가 있다"며 검찰에 고발한 것이다. 노호준은 동생의 아들, 즉 자신의 조카다. 그는 큰아버지의 고발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고 전과자가 됐다.

소유권 소송은 졌다. "120억원을 준 것은 맞지만 회사 설립·운영까지 위임했다고 보긴 어려우므로 (노 전 대통령은) 회사의 실질 주주가 아니다"는 판결이었다. 그렇다고 동생이 추징금 굴레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다. 지난달 법원이 노재우씨에게 "아들 등 제삼자 명의로 소유한 냉장 회사 주식을 매각하라"고 명령했기 때문이다. 회사 전체 주식의 40%가 넘는 규모다. 그는 항고한 상태다.

노 전 대통령 형제는 홀어머니 밑에서 단둘이 자랐다. 그래서 우애가 남달랐다고 한다. 이흥수 변호사는 "병상에 있는 노 전 대통령은 다투는지도 모를 것"이라고 주장했다. "형제간의 다툼이 아니라 형수와 시동생의 싸움"이라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 측은 정반대 주장을 했다. 한 측근은 "노재우씨의 뜻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누군가 바람을 넣고 있다는 것이다.

사돈 싸움: 노태우 vs 신명수

재계 서열 50위였던 노 전 대통령의 사돈 기업 신동방그룹은 1999년 부실 경영으로 몰락했다. 신명수 회장이 지분을 유지하는 계열사는 정한개발이다. 바로 건네받은 비자금 230억원으로 사들인 서울 소공동 서울센터빌딩을 소유한 기업이다.

노 전 대통령은 비자금 문제가 불거진 이후에도 동생과는 달리 사돈 관계는 원만하게 유지했다. 그는 1995년 비자금 수사 당시 "건물의 소유권에 관하여 지분 비율을 약정한 것은 없으나 신명수가 알아서 내 몫을 인정해줄 것으로 믿었다"고 진술했었다. 어차피 아들(노재헌)에게 갈 돈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재헌씨는 노 전 대통령 재임 당시인 1990년 신 회장 딸과 청와대에서 결혼했다.

그런데 2011년 이쪽도 균열이 생겼다. 홍콩에 있던 며느리가 "남편의 외도를 견딜 수 없다"며 이혼소송을 낸 것이다. 몇 개월 뒤 재헌씨도 "아내가 외도한다"며 맞소송을 냈다. '비자금 230억원=아들 몫'이란 믿음이 깨진 것이다. 그러자 작년 노 전 대통령은 검찰에 진정을 냈다. '신명수가 (비자금으로 산) 건물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개인 빚을 갚았으니 배임 혐의가 있다'며 비자금 230억원에 이자를 얹은 654억원을 내놓으라는 내용이었다. 검찰은 수사를 진행 중이다.

작년 7월 이혼한 아들 부부는 현재 한국과 홍콩에서 재산 분할 소송을 하고 있다. 신명수 회장 측근은 "노 전 대통령 측에서 '소송을 그만두면 검찰 진정도 없던 걸로 하겠다'는 의사를 전해온다"며 "소송 과정에서 아들에게 준 차명 재산이 드러나는 것이 겁나서 그러는 것 아니겠느냐"고 주장했다.

신경전: 신명수 vs 노재우

신명수 회장은 현재 2001년 법원의 추심금 판결에서 해방된 상태다. 검찰이 2001년 이후 추심을 하지 않아 2011년 7월 신 회장의 채권 시효(10년)가 끝나 돈을 받아낼 법적 근거가 사라진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신동방그룹이 해체되면서 신 회장 명의의 재산이 대부분 넘어가거나 근저당이 잡혀 추심이 어려웠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으로 산 빌딩마저 신 회장 개인 소유가 아니라 법인 소유라는 이유로 추징 대상에서 제외한 것은 논란이다.

노 전 대통령의 동생 노재우씨 측은 이것도 불만이다. 노 전 대통령이 2008년 노재우씨를 상대로 냉장 회사 주식 처분 금지 가처분신청을 해, 노재우씨는 2008년부터 시효가 다시 늘어났기 때문이다. 노재우씨를 대리하는 이흥수 변호사는 "검찰이 신 회장 돈은 추심을 안 하고 재우씨에게만 거둬들여 형평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신명수 회장은 김옥숙 여사의 탄원서로 '노태우 비자금'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자 "추징금 형태로 내면 노 전 대통령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이라 다른 방법을 찾고 있다"며 "재산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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