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 없이 안락하게 망해가는 민주당

천관율 기자 2013. 1. 29.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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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권 지지자들이 민주당에 묻는다. "당은 왜 이토록 무능했나." 비주류가 답한다. "대선을 주도한 친노가 책임을 져야 한다." 친노가 반박한다. "손 놓고 방관한 비주류의 책임이 더 크다." 이보다 공허한 대화를 찾기도 쉽지 않다.

핵심 질문은 공중에 떴다. 정치세력으로서 민주당이 민심을 읽고 정책을 생산하며 선거 전략을 짜는 데 총체적인 무능을 보여주었다는 문제의식은 사라졌다. 십자가에 못 박을 희생양 물색이 쇄신 논의와 동의어가 되었다. 사람만 바꾸면 해결될 것이라는 접근은 2003년 열린우리당 창당 이후부터만 따져도 10년 가까이 보아온 논리다. 10년 내내 쓴 방법이고, 내내 참패했다.

진짜 문제는 무엇일까. 민주당에서 대선 이후 쏟아진 평가 중에 의미심장한 말이 있었다. 박지원 전 원내대표는 "새누리당 의원은 의원회관에 한 사람도 없는데 민주당 의원은 다들 남아 있더라"라는 말을 했다. 얼핏 비주류 의원들이 열심히 하지 않았다는 평가로 들리지만, 이 말은 더 근본적인 지점을 건드린다.

ⓒ뉴시스 1월15일 민주통합당 비상대책위원들이 광주 5·18 민주묘지를 찾아 헌화한 후 지지자들에게 사죄의 절을 하고 있다.

민주당은 이중으로 '신호체계'가 무너진 당이다. 위로부터의 신호와 아래로부터의 신호가 모두 작동하지 않는다. '선거 승리를 목표로 유권자의 선호에 반응하는 조직'으로 정당을 정의한다면, 민주당은 유권자의 선호를 받아들이는 위아래 신호등 두 개가 모두 고장이 났다. 신호가 제때 작동하지 않으니, 박지원 전 원내대표가 지적한 '강 건너 불구경 하는 집단'이 생길 수밖에 없다.

위로부터의 신호체계부터 따져보자. 대선을 앞에 두고 의원들은 선택지 두 개를 받아들게 된다. 적극 돕거나, 관망하거나. 새누리당 의원이라면, 박근혜 후보를 적극 도와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 새누리당은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하는 1인 지배 정당이기 때문이다. '박근혜가 대선에서 이겼는데 나는 놀았다'면, 다음 공천은 없다고 보면 된다.

리더보다 계파의 성공이 중요

리더는 바뀔 수 있다. 하지만 리더십 자체를 나눠 갖는 일은 여간해서는 없다. 2007년의 승리자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공천에서 친박계를 학살했다. 2012년 총선을 앞두고 당권을 쟁취한 박근혜 비대위원장 역시 투항하지 않은 친이계를 싹 정리했다.

이런 정당에서는 생살여탈권을 틀어쥔 리더의 판단이 그대로 조직 전체의 판단이 된다. 리더는 분명한 권한을 행사하고, 대신 주기적인 선거 결과에 따라 책임도 고스란히 떠안는다. 이명박 대통령은 2010년 지방선거 참패 이후 리더십 붕괴라는 형태로 책임을 졌다. 박근혜 당선자는 2012년 총선 승리로 권한을 연장받았고 대권까지 쟁취했다.

리더는 몇몇 지역·세대·계층이 아닌 전체 여론 동향에 잘 반응해야 할 압력을 받는다. 전국선거의 결과가 리더십의 수명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반면 개별 의원들은 지역구 여론에만 반응하면 재선이 보장된다. 영남의 새누리당 의원과 호남의 민주당 의원이 특히 그렇다. 이 공백을 메우는 것이, 전국 여론의 압력을 받는 리더의 리더십이다. 공천이라는 당근과 권력 배제라는 채찍이 동시에 작동한다. 이렇듯 '선거 승리를 위해 유권자의 뜻에 잘 반응하는 정당'을 만들려면 리더십은 핵심 신호체계다.

민주당은 여러 정파가 자신의 몸집만큼 지분을 보장받는 정파연합 정당이다. 집단지도체제에서 당 대표는 권한과 책임을 짊어진 리더라기보다는 그저 '여러 최고위원 중 먼저 나오는 한 명'에 더 가깝다. 이해찬 전 대표의 측근들은, 총리 출신인 이 전 대표가 당 대표 선거에 나선 것을 일종의 희생이라고 여겼다. 이 평가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민주당 인사들이 생각하는 당 대표의 '격'이 그만큼 낮다. 당 리더십의 핵심인 공천권 역시 지분에 따라 나눠 갖는다. 새누리당의 공천권 투쟁이 생사를 건 리더십 쟁탈전이라고 한다면, 민주당의 공천 분쟁은 정파 간 '지분 계산법'의 이견을 미세 조정하는 실무협상이다.

이런 구조에서는 리더가 권한을 행사할 수 없다. 그러면 결과가 나쁠 때 책임 소재도 모호해진다. 선거는 누가 치르는지 알 수 없고, 선거에 지면 왜 졌는지 모르는 정당이 된다. 큰 선거를 졌을 때에는 책임 소재를 따지느라 우왕좌왕하고, 재·보선과 같은 작은 패배를 핑계로 너무 쉽게 책임을 추궁한다. 반MB 정서에 기대어 선거 몇 번을 이긴 2008~2010년의 '착시'를 걷어내고 보면, 이것이 2004년 이후 민주당의 모습이다.

ⓒ시사IN 이명익 2012년 12월20일 선대위 해단식에서 문재인 후보가 당직자를 안아주고 있다.

나눠먹기 구조에서 개별 의원들의 재선 가능성은 '리더의 성공'이 아니라 '우리 계파의 성공'에 달려 있다. 그런데 두 성공이 늘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문재인의 당선을 내심 싫어한 강성 반노는 논외로 하더라도, 그것이 내 계파의 성공과 별 상관이 없다고 느꼈던 비주류 의원은 적지 않았다. 내 앞길은 문재인이 아니라 계파 수장이 챙겨준다. 이러면 리더가 보내는 신호가 작동하지 않게 된다. 대선 막바지에 문재인 캠프는 '민영화 반대 특위'를 만들어, 정책통으로 평가받는 한 비주류 의원에게 맡기려 했다. 상수도와 철도 민영화 문제를 막판 선거 쟁점으로 띄워보려는 기획이었다. 그 의원은 지역구의 대선 캠페인에서 발을 뺄 수 없다며 거절했다. 특위는 어정쩡하게 마무리됐다.

구조가 받쳐주지 않으면 리더 개인이 돌파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문재인 전 후보는 비주류를 끌어당기는 리더십을 발휘하는 데 실패했다. 숫기 없는 성격과 경험 부족이 한몫을 했다. 여러 비주류 의원들은 문 전 후보와 국회 주위를 30분씩 산책하면서도 별다른 제안을 받은 바 없이 날씨와 건강 얘기만 나눠 당황했던 경험을 갖고 있다. 당내 경선에서 경쟁했던 어느 대선주자는, 경선 이후 첫 회동에서 문 후보가 위로나 설득 대신 "변화를 요구하는 시대가 저를 선택했습니다"라고 말실수를 하는 바람에 단단히 마음이 상했다고 한다.

새누리당과 민주당 모두 공식적으로는 집단지도체제다. 하지만 새누리당의 집단지도체제가 '오너'를 보호하는 병풍 성격이 강하다면, 민주당은 계파별 권력 분점을 탄탄히 보장하는 제도다. 안락할 수는 있지만, 리더십 경쟁의 치열함은 그만큼 떨어진다. 그 때문에 당내에서 리더가 성장하는 속도도 느리다. 대선에서 민주당은 '정치 신인' 문재인과 '새 얼굴' 안철수만 쳐다봤다.

민주당이 이런 구조가 된 데에는 역사적 맥락이 있다. 김대중 총재 시절의 민주당은, 김대중이라는 전국구 정치인(영호남 지역구도를 벗어나려 발버둥을 쳤다)이 호남의 권력 독점을 추구(이 경우 영호남 지역구도는 오히려 도움이 된다)하는 호남 엘리트를 전국 여론에 따라오도록 끌어당기는 당이었다.

DJ가 청와대에 입성해 민주당이 리더십 재편기를 맞이했던 2000년께부터, 이른바 '당내 민주주의'가 민주당의 핵심 화두가 된다. DJ를 비롯한 '3김'의 리더십을 권위주의로 규정한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지만, 그 대안으로 당내 민주주의를 내세운 것은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는 지적이 많다. 출판사 후마니타스 박상훈 대표(정치학 박사)는 "민주주의는 유권자의 선호를 정당이 정확하게 반영하도록 하는 것이지, 정당 내부의 의사결정이 민주적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 기업은 시장의 선호를 정확히 따라야 하지만 기업 내부까지 시장 원리로 움직이지는 않는 것과 같은 원리다. 정당에 필요한 것은 분명한 권한을 주고 책임을 지우는 구조다"라고 지적했다.

쇄신파의 기수로 떠올랐던 천·신·정(천정배·신기남·정동영)은 누구 하나 '포스트 DJ' 리더십을 완성하지 못한 상태였다. 셋은 '당내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당정 분리와 권력 분점을 제도화했다. 이때부터 당내 민주주의는 정치 개혁의 동의어가, 리더십은 권위주의의 동의어가 되었다.

호남 향우회를 대체할 조직 기반 없어

권한과 책임 구조가 무너졌다. '지도부가 6개월을 유지하면 장수했다는 평을 듣는' 열린우리당의 리더십 붕괴는 그 결과였다. 열린우리당은 리더에게 책임을 묻기에는 명분이 취약한 재·보선 패배를 근거로 지도부를 갈아치우기를 밥 먹듯 했다. 당장 한두 번 선거를 잡겠다고 당의 권한·책임 구조를 흔드는 문화가 누적되더니, 결국 어떤 선거도 이기기 힘든 허약체질 정당이 되었다. '당내 민주주의'가 민주주의를 잡아먹은 꼴이었다.

아래에서의 신호체계도 고장이 났다. 위로는 리더십이 무너져내리는 동안, 아래에서는 당의 풀뿌리 조직이 쪼그라들었다. 새누리당은 핵심 조직 기반인 관변단체와 자영업 이익단체가 여전한 버팀목이 되어준 반면, 민주당의 전통적 조직기반인 호남 향우회는 위력이 예전 같지 않다. 수도권의 한 민주당 재선 의원은 "17대 총선과 19대 총선만 비교해도 '바닥'이 다르다. 수도권 중산층으로 진입한 호남 출신 장년층은, 자녀는 물론이고 본인도 보수당 지지로 돌아선 경우가 많다"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렇다고 민주당이 호남 향우회를 대체할 만한 조직 기반을 만들지도 못했다. 특히 지방으로 갈수록, 생활공간에 침투 자체가 불가능한 수준이라는 것이 당 조직 관계자의 자평이다. 야권 지지 성향이 강한 고학력 화이트칼라 유권자는 '동네 네트워크'에서 고립되곤 한다. 이들이 다른 사람과 교류하는 주 무대는 동네가 아니라 직장이다. 지역 단위로 활동하는 현재 정당 시스템에서 이들을 조직하기란 만만치 않다. 반면 여권 지지 기반인 자영업자나 주부는 동네 네트워크의 '빅 마우스'다. 고스란히 파괴력 있는 지역 조직이 된다.

조직의 성격과 밀도가 달라지면, 당에 전달되는 신호가 달라진다. 대선 기간 박근혜 후보는 거의 모든 일정에 지역의 시장을 포함하는 스킨십 행보를 한 반면, 문재인 후보의 일정은 유동인구 밀집 지역에서의 대규모 유세 비중이 컸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는 네 차례나 유세를 했다. 박근혜는 찾아갔고, 문재인은 불러들였다. 마음을 정하지 못한 유권자를 누가 더 많이 만났을지는 자명하다.

박근혜 캠프 일정팀에는 각 지역 조직의 방문 요청이 빗발쳤다. 풀뿌리에서부터 발생한 압력이 위로 타고 올라간다. 전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들어줄 수밖에 없다. 지역 구석구석을 방문하도록 신호가 작동하는 것이다. 지방·자영업자·주부·50대의 여론도 조직을 타고 수집된다. 문재인 캠프에는 이런 압력이 거의 없거나, 있더라도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반면 앉은 자리에서 쉽게 확인이 가능한 온라인 여론은 대체로 과대 대표되었다.

ⓒ뉴시스 1월13일 국회 민주통합당 대표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 문희상 비대위원장(가운데)이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위로는 리더십의 압력. 아래로는 풀뿌리 조직의 압력. 풀뿌리 조직은 바닥 정서의 흐름을 포착하고, 리더는 구성원에게 좀 더 보편적인 여론에 반응하도록 압박한다. 이 두 신호체계 모두에서, 새누리당이 민주당보다 앞선 정당이었다. 두 압력이 모두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민주당은 '숨을 곳이 많은 안락한 당'이었다.

민주당 문희상 비대위원장은 곧 있을 전당대회를 두고 커다란 숙제를 해결해야 한다. 당장 뜨거운 감자는 '모바일 투표'다. 민주당이 지난해 1월 전당대회부터 도입해 총선과 대선에 모두 적용한 모바일 투표는, 신호체계가 붕괴되다시피 한 민주당에 나름의 대안으로 제시된 성격이 짙다. 리더십과 풀뿌리 조직의 압력이 모두 작동하지 않으니, 모바일 직접 참여라는 방식으로 유권자가 보내는 신호를 받아 보자는 취지였다.

비판자들의 핵심 논지는, 모바일 투표가 수도권, 화이트칼라, 정치 고관여층의 뜻을 과잉 대표한다는 것이다. 일종의 신호 왜곡이 발생한다. 이들의 입맛에 맞춘 정책과 캠페인이 너무 많이 생산되면, 지방·50대·주부·자영업자가 이탈한다. 이것이 대선 패배의 한 원인이 되었다고 비판자들은 주장한다. 정당의 조직 역량을 중시하는 '최장집 학파'가 대표적이다.

반면 모바일 찬성론자들은, 신호체계가 완전히 망가진 민주당에서 모바일마저 없다면 '호남 향우회 정당'으로의 후퇴가 뻔히 예상된다고 주장한다. 안병진 경희사이버대 교수는 "미국 민주당도 2004년 하워드 딘의 온라인 캠페인이 패배하면서 온라인 무용론이 일었지만, 전통적 캠페인을 펼친 존 케리 역시 본선에서 졌다. 반면 2008년 오바마는 온라인과 풀뿌리를 결합시켜 재선에 성공했다. 하워드 딘이 패배했다고 케리로 돌아가자는 주장과 오바마로 진화하자는 주장, 어느 것이 옳은가?"라고 반문했다.

이는 물론 논쟁할 가치가 있는 주제이다. 하지만 현재 민주당은 모바일 투표의 유·불리를 먼저 판단하고 그에 따라 입맛에 맞는 이론을 골라잡는 분위기다. 당장 3월 또는 5월에 치러야 할 전당대회 규칙이 걸려 있는 문제여서 생산적인 논의가 이루어지기 힘든 구도다.

'아래로부터의 신호체계'를 복원하는 문제는 어쨌거나 논란거리라도 되었지만, '위로부터의 신호체계'를 복원하는 문제, 즉 리더십의 재구성 문제는 테이블에 올릴 수 있을지조차 불확실하다. 리더에게 분명한 권한을 주고 결과(이를테면 2년 단위로 있는 큰 선거인 지방선거와 총선)에 책임을 지게 하자는 지적에는 여러 관찰자들이 동의하는 편이다. 하지만 당에 리더십의 싹이 잘 보이지 않는 현 국면에서, 권력 분점이라는 '안락한 동맹'을 계파 수장들이 스스로 깰 수 있을지는 매우 불투명하다.

천관율 기자 /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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