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책 "'박근혜 채무' 차세대에 엄청난 부담, 걱정스럽다"

글·유인경 경향신문 선임기자 2012. 12. 29. 15:18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안철수 당분간이라도 완벽하게 정치무대서 퇴장해야"

대통령 선거 전날, 대표적 보수 논객이자 자유경제원 원장인 전원책씨에게 누가 당선될 것 같으냐고 물었다. 공·사석에서 안철수씨가 절대 단일화의 주인공이 되지 못할 것이며 만약 야권 단일화가 되더라도 양자 대결이 되면 박근혜 후보가 당선된다고 말했기에 그의 의견이 궁금해서였다.

"박근혜 후보가 될 겁니다."

12월 18일에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후보가 역전했다는 자료가 돌았고, 정치평론가들이나 베테랑 정치부 기자조차 "이번엔 정말 모르겠어요. 박빙이에요"라고 말을 흐리고, 심지어 용하다는 점쟁이들도 문 후보가 다음 대통령이 될 운명이라고 했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전 원장은 더욱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마 100만~150만표 정도 차이로 이길 걸요. 투표율이 아무리 높아도 그 정도 차이일 겁니다."

결국 박근혜 후보가 이겼다. 108만표 차이였다. 이런 족집게 도사가 있나.

5일마다 서는 장날처럼 5년마다 치러지는 대통령 선거에서는 정치평론가들이 특수를 누린다. 특히 이번엔 종편채널들이 별별 정치평론가들을 다 불러모아 종일 대선 분석 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 그는 단연 돋보였다. 마지막 대선후보 토론 후에 답답함을 느낀 이들이 전 원장이 출연했던 과거 토론 프로그램을 "이것이 진정한 토론의 정석"이라며 각종 사이트에 올려놓아 화제가 됐다.

선거 결과를 거의 정확히 예측했다면 다음 정부의 스타일도 예측할 수 있지 않을까. 서울 여의도 자유경제원 사무실에서 만난 그에게 5분 간격으로 각종 방송사의 출연과 코멘트 요청, 칼럼과 강의 문의 전화가 걸려 왔다. 그 가운데서도 그는 흐트러지지 않고 인터뷰에 응했다.

박근혜 후보 당선은 보수의 승리가 아닌가. 그런데 표정이 별로 밝지 않다.

"이번 선거에 보수 후보는 없었다. 2007년 이회창 후보가 마지막 보수 후보라고 생각한다. 박 당선인이 어떻게 보수인가. 정책만 보면 미국 민주당 수준이다. 지난 총선 때 김종인씨와 '침대는 과학이다'라는 광고를 만든 홍보전문가를 영입한 후 당의 강령에 '보수'를 두니 마니 논란을 벌였고, 돌연 빨간색으로 무장했다. 자유주의와 보수주의를 추종하는 민주국가에서는 적기를 내건 전례가 없다. 지지자들에게 보수정당이라고 말해 왔던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린 것이다. 굳이 나누자면 우파와 좌파의 선거에서 우파가 이긴 것이다. 보수와 진보의 대결이 아니라 범진보 진영의 전쟁터였다. 박 당선자만이 아니라 수많은 정치인을 만났지만 보수와 진보에 대한 확고한 개념을 알거나 실천하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그저 보스(당대표나 후보)에게만 충성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전문가들은 박 당선인의 승리 요인으로 중도층 공략 성공을 꼽았다. 특히 맹목적인 진영논리에 갇히지 않고 찬양 일변도의 일방 지지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비판적 지지와 함께 원칙적 대안을 제시한 합리적 보수주의자들의 역할이 컸다면서 대표적으로 전원책 원장을 꼽았다. 어떻게 생각하나.

"나는 전이나 지금이나 앞으로도 박근혜 당선자에겐 날 선 비판자일 뿐이다. 대선과정에서 수많은 선거 관련 프로에 출연하고 경향신문 등에 칼럼을 기고했지만 박 후보를 지지하거나 돕지 않았다. 그런데 공을 세웠다니 어이가 없다."

정치평론가로서 이번 선거를 어떻게 평가하나.

"최악의 선거였다. 문민정부 이후에 5번의 선거에서 최소한 각 당 후보의 기본적 정책 차이를 보여줬다. 이번 선거에선 정책은 다 비슷비슷하고, 그나마 제대로 알리지도 않고 대중 기호와 인기에 영합한 포퓰리즘에만 치중했다. 적어도 과거 후보들은 국민들에게 차별화한 정책을 설명하고 '현재는 어렵지만 조금만 고통을 참으면 미래가 밝아온다'며 인내와 헌신을 요구했다. 그런데 이번 선거는 중간에 포기한 안철수 전 후보마저 이미지와 이벤트에만 치중했다. 정책 알리기-정책과 후보 검증-토론 등의 순서가 아니라 그저 다 해주겠다, 다 퍼주겠다 등 대중 기호와 인기에 영합하는 말만 늘어놓다가 곧장 네거티브로 들어갔고 토론조차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초박빙이었는데 박의 승리를 예견한 근거는 무엇인가.

"이번 여론조사의 경우 응답률이 10% 미만으로 너무 낮아 의미가 있지 않았다. 다만 박근혜와 안철수의 대결이라면 지지층이 세대 대결로 가지만 박과 문의 구도라면 우파와 좌파의 대결이 될 것으로 봤다. 보수와 진보의 대결이라면 몰라도 좌와 우의 대결에선 항상 우파가 승리한다. 진보를 자처하는 이들도 '좌파냐?'고 물으면 펄쩍 뛴다. 첫 토론 후 이정희씨의 태도와 마지막 토론에서 국정원 여직원을 문 후보가 '피의자' 운운하는 것 덕분(?)에 시큰둥하던 5060층이 결집했다. 변화를 요구하는 20~30대는 정작 유약해서 적극 투표를 하지 않고 험란한 세상을 이겨온 이들은 또 자신의 삶이 흔들리고 싶지 않아 '초박빙' '판세가 뒤집혔다'는 소문에 투표장으로 달려갈 것으로 분석했다."

서울 강남에서 민주당 지지율이 총선보다 훨씬 높았던 이유는 어떻게 보나.

"문재인 후보가 당선되어도 나는 안전할 것이라 확신하는 탄탄한 기득권층에서는 오히려 '여성' 대통령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 생각해보라, IMF나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가장 풍요를 누린 이들은 강남 부유층이 아니었나. 높은 이자율에 치솟은 강남 집값으로 그들의 부는 더욱 공고해졌다. 가난하고 고단한 층에서 오히려 '부모를 총칼에 잃고 결혼도 못한 불쌍한 여성'에게 연민과 동정을 보냈다."

안철수씨로 단일화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그렇지 않다. 안철수씨가 주장한 '새정치'는 그저 구호일 뿐이다. 새정치는 과거 후보들이 다 외쳤던 단골 용어다. 김영삼 대통령은 군부 종식을 외치며 하나회를 척결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새정치국민회의를 만들 만큼 새정치에 대한 강한 신념을 보였다. 노무현 대통령이야말로 가장 새정치를 실현한 인물이다. 상향식 민주주의와 기간당원제도를 주장했지만 우리 민도가 낮아 실현되지 못했다. 이명박 대통령조차도 기존 여의도식 낡은 패거리 정치를 혐오하지 않았나. 안철수씨는 정치판의 부패와 무능률을 비판하며 국회의원 수를 줄이자는 주장을 했다. 대통령 제도의 폐단은 권력 남용이다. 그것을 막고 견제하는 것이 국회의 임무이자 기능이다. 국회의원 수를 줄일 것이 아니라 국회를 1년 내내 열어 예결산 심의를 수시로 하고 상시 감사를 하면 된다. 대통령의 사면권 남용은 대법원이 한마디 하면 되고, 낙하산 인사는 청문회에서 철저히 검증하면 된다. 그런데 사면권은 재야 법조인들이 '재벌 가석방은 안 된다'고 떠들 뿐이고 청문회는 망신회로 끝나는 수준이다. 그런데 국회의원 수를 줄이는 것을 새정치의 기치로 내거는 것은 그가 정치를 잘 모른다는 증거다."

안철수씨는 정치를 계속한다는데.

"정치인 안철수의 효용은 끝났다고 본다. 그의 정치관이 모호하고, 그에게 모였던 기라성 같은 명사들도 정책과 신념으로 모인 이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안철수란 브랜드의 대중적 인기를 업고 자기 꿈을 펼치려는 패거리 정치꾼과 무엇이 다른가. 안철수씨는 로스 페로와 닮았다. 컴퓨터 기업으로 명성과 부를 얻은 다음 그걸 발판으로 정치쇄신이라는 명분 하나만으로 생소한 정치판에 뛰어든 배짱까지 둘은 붕어빵이다. 다만 페로는 자기 신념에 투철해 포기하지 않았으며 끝까지 완주해 자신을 지지하는 대중에게 그 책임을 다했다. 그리고 당연히 정치무대에서 사라졌다. 대통령 출마가 마지막 정치행위가 되어야 패거리 정치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원칙에 그는 충실했다. 안철수씨는 당분간만이라도 완벽하게 정치무대에서 퇴장해야 한다."

인수위원장을 비롯한 일부 인수위 명단이 발표됐다. 특히 윤창중 수석대변인의 과거 언행에 대한 비판이 거세다.

"인수위원회 면모가 상징적이긴 하지만 대단한 영향력도 없고 역할도 하지 못한다. 특히 대변인의 경우 국민들이 시비를 걸 만큼 중요한 자리도 아니다. 청와대 대변인이 아니지 않은가. 더구나 박 당선인은 책임총리제를 해서 장관을 직접 안 뽑겠다고 약속했는데, 1월 말까지는 총리가 정해져야 총리가 장관들을 뽑는다. 인수위의 기능은 한 달 남짓이다. 전혀 감동을 못주는 명단들이긴 하지만…."

아무튼 드디어 여성 대통령 시대가 열린다. 박 당선인에게 여성 리더인 대처, 메르켈 등을 벤치마킹하라는 주장도 많다.

"대통령이나 총리 등 리더의 자격은 지식, 정의감과 결단력, 그리고 용인술이다. 지도자가 머리를 빌리는 것도 한계가 있다. YS가 금융경제 지식이 있었다면 흑자부도인 셈인 IMF 참극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대처를 존경하는 이유는 복지교육 장관을 거쳐 총리가 되었지만 경제분야에 대해 확실한 지식과 풍부한 역량으로 재정정책에 관한 한 실패가 없었다. 대통령이란 자리는 경제·국방·외교는 물론 심지어 개고기의 식용화 문제 등 수많은 어젠다에 관해 공부를 해야 한다. 공학도 출신이라는 공통점으로 메르켈을 많이 박 당선자와 비유한다. 메르켈은 '점진적 변화'란 단어로 상징된다. 양쪽 진영이 서로 격론을 벌이다 지쳐 쓰러질 때까지 경청한 후에 자기 의견을 피력한다. 공존의 원리, 관용의 도를 보이는 것이다. 무엇보다 정책에 관한 한 엄청난 공부를 해서 유럽 재정위기를 겪으며 독일이 유럽의 금고 역할을 하면서도 흔들리지 않도록 그리스 등 타국의 경제정치도 파악한다. 박 당선인의 경우엔 5년 전에 비해서는 향상된 수준을 보이나 참모를 제대로 뽑아야 한다. 지도자의 철학을 파악해 정책 집행을 하고 전문성을 보충해줄 용인술이 절대 필요하다."

박 당선인의 정책을 보면 향후 우리 정부의 미래가 밝아 보이는가.

"너무 걱정스럽다. 솔직히 줄푸세 등 과거 공약은 물론 이번 대선에서의 공약을 이행하려면 22조원의 새로운 자금이 필요하다고 한다. '약속의 정치인'을 이마에 붙이고 다니는 분이니 새로 예산을 짜자, 채권을 발행하자 등의 논의가 벌써부터 정가를 술렁이게 한다. 채권 발행은 곧 국가채무이고, 균형재정이 무너질 수도 있다. 현재 대한민국 부채가 국가부채, 공기업부채, 지자체부채 등을 합쳐 대략 1800조원 규모다. 채권 발행은 무엇보다 차기 정부나 차세대에게 엄청난 부담인데 걱정스럽다."

그럼 어떤 정책을 조언하고 싶은가.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 성장동력을 키워 무너진 중산층을 회복하는 것이다. 유일한 희망인 성장은 고작 2~3%로 예상되는데 대기업을 규제만 할 것이 아니라 고용 증가를 위한 투자를 하도록 방향 전환해야 한다. 신공항이나 2만명 이상 수용가능한 컨벤션센터 등의 건설업도 살려야 한다."

이명박 정부가 4대강 등 토목공화국으로 비난을 받았는데 또 건설이 해법인가.

"사회 기반시설은 단순한 토목건설이 아니라 그 자체가 복지다. 사는 곳에서 가깝게 이동할 수 있는 국제공항, 다양한 행사에 참여할 수 있는 컨벤션센터 등이 만들어지면 그 과정에 고급 일자리가 창출되고 그 시설을 통해 국민들은 풍요를 느낀다. 돈만 지급하는 것이 복지가 아니다."

인수위원회와 더불어 국민통합위원회도 발족됐다. 51.6%의 지지를 받았으나 48%의 큰 반대층이 있는데 아름다운 국민통합이 가능할까.

"국민통합은 계층간 통합, 세대간 통합, 지역간 통합, 이념간 통합으로 나눠진다. 세대간 갈등은 구석기 시대에도 있었고 지역분쟁과 갈등 역시 선진국도 심하다. 이념통합은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다. 현재 국민들이 바라는 것 역시 양극화 해소 등 계층간의 격차를 줄여 통합하는 것이다. 중산층이 압도적 다수가 되면 계층 통합이 된다. 가장 부드러운 사회 통합을 위해 중산층을 70%로 만들면 된다. 그리고 하위 15%는 보살피고 상위 15%는 세금도 더 내고 기부도 많이 하면 얼마나 사회가 잘 돌아가겠나. "

보수의 아이콘이고 때론 보수꼴통이란 말을 듣는데 왜 청년들에게 인기가 있다고 생각하나.

"내가 진짜 보수이기 때문이다. 보수의 진정한 가치는 자유·책임·도덕성이다. 다소 과격한 표현을 해도 진정성이 이해되면 욕을 먹지 않는다. 가짜 보수와 가짜 진보가 너무 많아 비난받는데, 그들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물론 홍익대 근처에서 젊은 진짜 보수 청년들과 맥주도 자주 마셔셔 소통을 하긴 한다."

박사보다 더 훌륭한 것인 밥사, 밥사보다 더 위력이 큰 것이 술사라는데, 그는 술을 사주면서 철학을 전하니 인기가 많을 수밖에….

< 글·유인경 경향신문 선임기자 alice@kyunghyang.com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 >

[경향블로그]

[백승찬의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보수의 뇌구조 < 똑똑한 바보들 >

[온라인칼럼] "한국의 보수는 원칙, 도덕성, 일관성을 잃었다"

[온라인칼럼] 한국형 진보·보수 용어 적절한가

[구정은의 '오들오들매거진'] '진보'를 생각하는 영국의 보수파

[구정은의 '오들오들매거진'] 미국 '보수주의 백과사전' 출간

[글로벌칼럼 '경계를 넘어'] 영국 보수파의 거대한 기획

[마영신의 놀이터] '보수라 말 못하는 이유'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