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백남순 명의 발표문 배포 '외교 망신'

2012. 7. 13. 0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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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놈펜 ARF 회의
[동아일보]
북한이 12일 배포한 언론발표문. 외무상이 사망한 백남순(PaekNamSun·점선안)으로 돼 있다.
‘The brief on what DPRK Minister of Foreign Affairs, H. E Mr. Paek Nam Sun informed in the Meeting of 19th ARF in Phnom Pen…(프놈펜에서 열린 19차 ARF 회의에서 북한의 백남순 외무상 각하가 전한 내용의 브리핑).’

북한이 12일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배포한 영문 언론발표문의 첫 줄이다. 박의춘 외무상 대신 2007년 사망한 전임자 백남순의 이름이 들어 있다. 북한이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 처음으로 참석한 국제회의에서 어이없는 실수로 톡톡히 망신을 당한 셈이다.

북한 대표단은 이날 오후 4시(현지 시간) ARF 회의가 열린 캄보디아 총리실 건물에서 기자회견을 하겠다고 오전부터 예고했다. 매년 ARF가 열릴 때마다 주목을 받았던 북한 이슈가 올해는 역내 최대 현안으로 떠오른 남중국해 분쟁에 밀려 상대적으로 관심이 떨어지자 이례적으로 기자회견을 자청한 것이다.

북한은 예정 시간을 훌쩍 넘기도록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가 오후 5시 40분경이 돼서야 실무자가 급하게 나와서 “이것이 북한의 공식 입장”이라며 A4용지 2쪽짜리 발표문을 뿌렸다. 북한의 ‘핵 억지력’은 미국의 적대적인 대북정책 때문이며 북한은 평화적 우주 이용과 경수로 건설, 우라늄 농축 등의 권리를 가진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북한이 발표문에 전임자 이름을 넣은 실수를 놓고 ARF 회의장 안팎에서는 “매번 똑같은 주장만 반복하는 북한이 기자회견도 못할 만한 사정이 생기자 과거 자료를 급히 그대로 갖다 쓰다가 외무상 이름도 미처 못 바꾼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이날 ARF 자유토론에서 북한에 △추가 도발을 해선 안 되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준수해야 하며 △진정성 있는 비핵화 행동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회의장에서 김 장관과 북한 박의춘 외무상은 서로 멀리 떨어져 앉았고 이동할 때에도 시차를 두는 등 눈길조차 마주치지 않으려 신경 쓰는 기색이 역력했다. 오후에 김 장관이 인사라도 나누려고 박 외무상에게 다가갔을 때는 박 외무상이 손을 설레설레 흔들며 자리를 옮긴 것으로 전해졌다.

김 장관은 이어 겐바 고이치로(玄葉光一郞) 일본 외상,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과 만나 회담을 했다. 이날 3국 외교장관회담은 최근 한일 정보보호협정의 서명 연기 사태로 3국의 안보협력 강화 시도가 무산된 뒤 한미일 외교 수장이 처음으로 얼굴을 맞댄 자리였다.

회담 후 나온 언론발표문에는 남중국해 분쟁과 이란 핵문제, 시리아 내전 등 글로벌 이슈들에 대한 공동의 노력이 대부분이었다. 3국 간 협력 방안으로는 과장급 실무자들이 참가하는 워킹그룹을 미국 워싱턴에 구성하며 북한의 비핵화와 인권 상황 개선을 위한 상호 협의도 지속해 나가기로 했다는 내용 정도가 눈에 띄었다.

지난해 인도네시아 발리에서의 3국 외교장관회담에서 ‘3국 협력 심화’를 역설했던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사실상 3국이 공동 추진했던 한일 정보보호협정이 서명 직전 돌연 연기된 뒤 ‘3국 협력’을 내세우기 껄끄러웠음을 보여준다. 클린턴 장관은 이날 “한미일 3국이 함께 해야 할 일이 많은데 최근 약간의 파열음이 있었던 것에 대해 좀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프놈펜=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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