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주민 A씨가 국경 부근 산에 오르는 까닭은..탈북자에 "돈 보내달라" 북한 가족들 전화 급증
지난 5월 40대 북한 주민 A씨는 북·중 국경 부근에 있는 산에 올랐다. 가파른 능선을 5시간 동안 걸었다. 누구도 거기까지는 가지 않을 것만 같은, 길조차 눈에 띄지 않는 숲이 나타났다. 등산하러 간건 물론 아니다. A씨는 휴대전화 신호가 잡히는 위치를 필사적으로 찾아냈다.
서울의 직장에 있던 B씨의 휴대전화에 발신번호가 표시되지 않은 전화가 왔다. 14년 전 헤어진 북한의 오빠 A씨라고 했다. B씨는 마지막으로 헤어진 기차역의 이름을 물었다. A씨는 역 이름을 말하며 돈을 보내줄 수 있느냐고 했다. 다음날 B씨는 중국 내 브로커의 은행 계좌로 2400달러를 보냈다.
탈북민들이 가족에게 보내는 송금이 크게 늘고 있다고 로이터 통신이 1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특히 북한에 남은 가족이 남쪽으로 간 가족을 먼저 찾아 송금을 요청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중국 내 조선족이 브로커 역할을 한다. 북한에 남아 있는 주민과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를 잇는 역할이다. 브로커 수수료는 송금액의 30%에 이른다. 탈북민이 북한에 보내는 돈도 늘어나 연간 송금액은 1000만 달러가 넘을 것으로 로이터는 추산했다.
북한에선 탈북민들의 송금을 '한라산 줄기'라 부를 정도다. '후지산 줄기'라 불렸던 조총련계 재일동포들의 송금 액수를 넘어서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에선 북한의 일본인 납치가 확인된 이후 조총련에 대한 압박이 커지면서 관련 금융기관이 자금난을 겪고 있고, 조총련 자체가 쇠퇴하고 있는 것도 '한라산 줄기'가 중요해진 이유 중 하나다. 조총련계 2∼3세들이 대북 송금에 소극적으로 변해가는 데다 유엔의 대북한 제재로 일본 당국이 송금을 엄격하게 막고 있다.
한국에서도 송금이 불법이긴 하지만 규제는 거의 없다. 정부 관계자는 "엄밀히 말해 중국으로 송금되기 때문에 정부 차원에서는 막을 방법이 없다"며 "건건이 북한으로 가는지 확인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북한에서도 남쪽 주민과의 접촉은 불법이다. 조선족 브로커의 역할이 필요한 이유다.
남한 내 가족이 보낸 돈은 북한 주민들의 생계비 수준을 넘는다. 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은 연 1200달러(약 140만원).
남쪽에서 보내온 수백만원의 돈은 종잣돈이 되기에 충분하다. 남쪽에서 아르바이트로 두 가지 일을 하고 있는 탈북 대학생 이모씨는 "매년 한두 차례 1000달러씩 북에 있는 언니에게 보낸다"며 "시장에서 사업을 하는 언니가 부자가 된 것은 내가 보낸 돈 때문"이라고 말했다. 북한에선 철저히 숨겨야 할 일인 탈북 가족의 존재가 부의 원천이 된 것이다.
또 다른 탈북자 임모씨는 북한 퍼주기 논란을 의식한 듯 "우리가 보낸 돈이 북한 정권이 아닌 인민들을 돕는다면 좋은 게 아니냐"고 반문했다. 로이터는 "송금 받은 북한 가족이 아무리 쉬쉬해도 눈치채는 경우가 있다"며 "이 경우 돈의 상당수는 뇌물로 쓰인다"고 전했다.
양진영 이성규 기자 hans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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