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영문화개선 6년째..軍가혹행위 여전

김연숙 2011. 7. 10.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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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습 뿌리깊어 근절에 한계..지휘관 방관도 문제

(서울=연합뉴스) 김연숙 기자 = 해병대에서 전우에게 총격을 가해 4명을 숨지게 한 사건을 계기로 우리 군에 남아 있는 전근대적인 병영문화가 또다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

총격을 가한 김모 상병(19)과 범행을 공모한 혐의로 구속된 정모 이병(20)이 "기수열외를 우려했다", "선임들에게 가혹행위를 당했다"는 등의 주장을 직ㆍ간접적으로 내놓으면서 전군에 음성적으로 남아 있는 병영 악ㆍ폐습을 이제는 뿌리 뽑자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지난 2005년 6월 경기 연천의 최전방 경계초소(GP) 내무반에서 발생한 총기난사 사건 이후 군이 대대적인 병영문화 개선 운동을 펼친 지 6년이 지났지만 우리 군대의 뿌리 깊은 병영 부조리를 완전히 제거하는 데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기상천외한 악ㆍ폐습 = 지난 3월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해병대에서는 청소 불량, 암기 소홀, 군기 유지 등을 구실로 철봉 매달리기, 엎드려뻗쳐 등의 얼차려부터 상습 구타와 기수열외, '악기바리' 등이 광범위하게 이뤄진 것으로 드러났다.

후임자가 선임자 대접을 또는 후임자가 선임자 인정을 하지 않는 것을 말하는 이른바 기수열외는 해병대원이란 빨간 명찰을 달고 있지만 동료들에게 해병대원이 아닌 투명인간 취급을 당하는 것이다.

동료를 총으로 쏜 김 상병이 "기수 열외를 당하지 않았지만 곧 기수 열외를 당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진술한 것은 기수열외에 대한 심리적 압박감을 어느 정도 느꼈음을 암시한다는 관측이다.

강제로 음식을 먹게하는 '악기바리'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많은 양의 밥을 주고 재빨리 먹으라고 강요하는 식이다.

계급 호봉에 따라 생활양식을 다르게 하고 어기면 얼차려를 주는 '호봉제'도 있다. 시시콜콜 항목을 적고 호봉이 올라갈 때마다 금지항목을 하나씩 풀어주는 가혹행위이다.

악ㆍ폐습은 해병대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지적이 많다. 일부 신병 가족들은 육군 신병훈련소에서도 행동이 느린 훈련병들을 대상으로 기수열외와 흡사한 가혹행위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군 전역자들은 화장실 변기에 머리 박고 물내리기, 밤에 자다 일어나 찬물로 샤워하기, 겨울에 총기대에 혀 붙였다 떼기, 눈뜨고 자기, 빨래집게 코에 꽂고 당겨빼기 등 각종 기상천외한 가혹행위를 경험했다고 전하고 있다.

이런 악ㆍ폐습을 고쳐보겠다고 나섰다가 오히려 봉변을 당하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해병대 사병 복무를 마치고 부사관이 된 A모 하사는 자신의 부대에서 후임병이 선임병의 구두를 닦고 군복을 다려주는 등의 관행을 금지하고 청소와 각종 사역을 선ㆍ후임이 공평하게 나눠 하도록 했다.

이에 선임병들은 "이제 와서 왜 이러냐"며 반발했고 후임병에게 A 하사를 기수열외하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그는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상부에 신고하면 기수열외를 당하고, 다른 부대로 전입하더라도 그 꼬리표가 늘 따라다닌다고 전했다.

◇가혹행위 끔찍한 사고로 번져 = 국방부 감사결과에 따르면 2009년부터 지난 3월25일까지 해병 2개 사단에서는 고막천공, 늑골골절, 정강이 타박상 등으로 치료를 받은 환자가 943명에 달했다. 당시 담당 의무관은 "이런 증상은 대부분 구타에 의해 발생한다"고 전했다.

이 같은 가혹행위를 견디다 못해 끝내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지난 5월 강원도의 한 GOP 초소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B모 이병은 평소 동작이 느리다며 선임병들로부터 잦은 질책과 가혹행위를 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의 가족들은 "입대 전에는 밝고 리더십 있는 성격으로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다"고 말했다.

지난 4일 해병대 총기사건 공모 혐의를 받고 있는 정 이병은 사고 당일 자신이 그동안 겪은 각종 가혹행위를 떠올리며 범행을 공모한 것으로 국방부는 설명하고 있다.

정 이병은 모 병장이 "병장은 하나님과 동급"이라면서 자신의 성경책에 불을 붙이는 한편, 전투복 지퍼 부위에 분무식 살충제를 잔뜩 뿌린 뒤 불을 붙인 일도 있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당국도 총을 쏜 김 상병의 끔찍한 범행이 개인적이고 심리적인 문제에 비중이 있다고 설명하면서도 부대내 악ㆍ폐습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고강도 조사를 벌이고 있다.

◇지휘관들 가혹행위 척결의지 있나 = 일부 전역자들은 "지휘관들이 병사들 사이에서 자행되는 가혹행위를 알면서도 모르는 척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가혹행위를 당한 병사가 피해 사실을 상관에게 알린다고 해도 문제가 해소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는 게 전역자들의 말이다. 부대의 명예훼손과 불이익을 우려한 지휘관들이 가볍게 처리하고 넘어간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8월 해병 모 대대에서 구타로 C이병이 전치 5주의 피해를 당했는데도 해당 부대의 지휘관은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고, 오히려 입원 중인 피해자에게 전화를 걸어 사건을 축소 진술토록 한 것으로 감사결과 드러났다.

한 예비역은 "지휘관들은 기강해이를 원인으로 지목하면서 또다시 일방적인 정신교육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하지만 규율보다 자율을 추구하는 집단생활에 익숙지 않은 20대 초ㆍ중반의 젊은이들은 또 한 번 벽에 부딪히게 된다"고 근절대책 마련을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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