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고기는 막은 줄 알았는데..

2010. 12. 4.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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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미 언론 "쇠고기 수일 내 재논의 합의"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3일 오후(현지시각) 단독으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에서 한국이 일방적으로 양보한 자동차 분야의 합의문을 공개하면서 '굴욕적인 밀실 협상'이라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또 우리 정부의 주장과 달리, 미국 언론은 쇠고기 문제를 추가로 협상하기로 했다고 보도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익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한국은 농산물 분야에서 돼지고기의 관세 철폐 기간을 연장하고, 특허 분야에서 의약품 등록-특허 연계 조항을 일부 수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5일 오전 11시 협상 결과를 공식 발표한다.

 미국 통상전문지 <인사이드 유에스 트레이드>는 미국 무역대표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미국산 쇠고기가 월령에 상관없이 한국 시장에 진출하도록 수주, 수일 내에 논의를 이어가기로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반면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4일 오후 인천공항에 도착해서도 기자들을 만나 "쇠고기는 협상하지 않았다"고 못박아 '진실공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미국 쇠고기 수입조건은 2008년 4월 이명박 정부가 받아들인 완전개방 수준이다. 다만 촛불시위로 상징되는 국민적 저항 덕분에 한국인의 신뢰가 회복될 때까지 30개월 이상의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지 않는다는 조건부 제한에 미국이 한시적으로 합의했을 뿐이다. 미국이 한국민의 신뢰가 회복됐다고 밀어붙이면, 언제라도 미국산 쇠고기는 월령에 상관없이 수입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인사이드 유에스 트레이드>는 또 한국은 미국산 돼지고기의 관세 철폐 이행기간을 다소 줄이고, 의약품 등록 시판 허가를 특허와 연계한 조항을 일부 수정했다고 밝혔다. 미국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그 영향은 그 다지 크지 않으며 다른 나라의 수출업자들과 비교하면 여전히 가격경쟁력에서 우위"라고 설명했다. 의약품 등록·시판 허가와 특허를 연계시킨 조항은 특허권자가 오리지널 의약품의 특허 기간에는 보건당국이 복제약 시판을 막아야 한다는 것인데, 복제약 비중이 큰 우리나라한테는 일방적으로 불리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미국 무역대표부가 발표한 자동차 분야의 내용을 보면, 한국산 자동차의 수출이 어렵도록 관세 인하 시기를 늦춰 미국 시장을 더 닫았고, 미국산 자동차의 수출이 쉽도록 자동차 안전기준, 환경규제, 세금제도를 바꿔 한국 시장을 더 열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성명을 내 "획기적인 딜(landmark deal)"이라며 "이번 합의가 미국의 수출을 110억달러 가량 늘리고 일자리 7만개 이상을 창출하는 효과를 줄 것"이라고 환영했다.

미국은 한국산 승용차 관세 철폐를 상당히 늦췄다. 지난 2007년 6월 합의서명한 협정문에는 3000cc 미만 한국산 승용차는 FTA 발효 즉시, 3000cc 초과 대형 승용차는 3년 이내에 2.5%의 관세를 없애기로 했지만 이번엔 배기량에 상관없이 발효 후 5년째 해에 관세를 철폐하기로 했다. 미국은 "한국산 수입차의 90%가 3000cc 미만이라는 점에서 상당한 성과"라고 평가했다.

 한국산 트럭에 대해서는 애초 10년 동안 25%의 관세를 단계적으로 폐지하기로 했으나 이번 재협상에선 8년간은 25%를 그대로 유지하고 나머지 2년간 단계적으로 완전히 없애기로 했다. 반면 한국은 미국산 트럭에 대한 관세 8%를 애초 합의대로 바로 폐지한다. 또 미국산 전기차.하이브리드차 등 친환경차에 대한 관세(8%)를 10년간 단계별로 없애기로 했던 것도 이번엔 FTA 발효 후 4년간은 4%로 감축하고 5년째 되는 해에 완전히 없애기로 바꿔 기존 협정문에서 크게 후퇴했다. 대신 한국은 미국산 승용차에 대한 8% 관세를 애초 즉시 철폐에서 4년간은 4%만 부과하고 5년째 되는 해에 완전 철폐하기로 했다.

 외형적으로 두 나라의 관세 철폐 기한을 '5년'으로 맞추는 듯했으나 내용적으로는 한국이 훨씬 더 불리하다. 수출량이 한국이 월등히 많은 데다 일본 차와 치열한 경쟁 상황에서 '에프티에이 가격경쟁력'을 갖게 되는 시점이 5년이나 늦춰졌기 때문이다. 농축산업이나 금융, 서비스 분야 등은 두루 손해지만, 자동차 분야는 큰 이익이라던 정부의 주장이 무색해졌다.

 기존 협정문에는 없던 자동차 특별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처)도 문제가 적지 않다. 세이프가드 규정은 한-미에 상호 적용된다는 점에서 큰 영향이 없거나 막상 세이프가드가 발동되면 최대 8% 관세 면제 효과를 보는 미국이 한국(최대 관세 2.5% 감면 혜택)보다 타격이 더 클 것이라고 한국 정부 쪽은 설명한다. 그러나 자동차 수출 규모가 크게 차이 나 역시, 한국이 불리하다고 통상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지난해 한국은 미국에 47만6857대의 자동차를 수출한 반면에 미국산 자동차는 7663대만 수입하는데 그쳤다. 사실상 우리가 세이프가드를 발동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셈이다.

 자동차 특별 세이프가드는 또, 일반 세이프가드의 적용기간(10년)과 달리 관세 완전 철폐 이후 10년간 발동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따라 미국은 한국산 승용차에 대해선 15년간, 한국산 트럭의 경우 20년간 세이프가드를 발동할 수 있다. 더욱이 일부 자동차 제품에 대해선 한번 이상 세이프 가드를 적용할 수 있도록 했고 세이프가드 적용기간도 일반 세이프가드(3년)보다 긴 4년간 고율의 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미국이 강한 보호장치를 두는 섬유 특별 세이프가드와 맞먹는다.

 반면 미국차의 한국 시장 접근 방어벽은 완전히 무장해제했다. 우선 미국이 대표적인 비관세 장벽이라고 주장했던 안전기준과 연비 배기가스 등 환경기준 적용이 미국차에 대해선 큰 폭으로 완화됐다. 안전기준의 경우 기존 협정문에서는 연간 판매대수 6500대 미만인 차량에 대해서만 별도 조처없이 곧바로 한국 내 판매가 가능하도록 했지만, 이번엔 그 기준을 연간 판매대수 2만5000대 미만으로 크게 늘렸다. 가장 인기가 높은 미국산 자동차 차종의 연간 판매대수가 현재 5000대를 넘지 못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미국 차들은 상당히 오랫동안 한국의 안전기준을 빗겨갈 수 있게 됐다.

 연비 및 온실가스 배출기준 등 환경기준도 미국산 자동차는 2007년 FTA 합의 이후 한국의 강화된 기준에서 20% 완화되는 기준을 적용받게 된다. 한국은 앞으로 10인 이하 승용차의 경우 연비를 17㎞/ℓ 혹은 CO2 배출기준을 140g/㎞로 강화할 방침이지만 미국차는 14.6㎞/ℓ 혹은 CO2 168g/㎞만 충족하면 된다. 미국에 과도한 `예외'를 인정해 국민의 환경, 건강권을 침해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밖에 자동차 관련 새로운 규정을 도입할 경우, 한국은 미국업체가 이를 적용할수 있도록 12개월 유예기간을 두기로 했다. 기존 세계무역기구(WTO)에선 통상 6개월을 권고하고 있다. 

 '점(.)이든 콤마(,)든 협정문에 다시 찍는 일은 없다'고 공언하던 정부가, 자동차 분야에서 일방적으로 앙보함으로써 2007년 6월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이익의 균형'이 허물졌다는 지적이 '후폭풍'으로 몰아치고 있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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